복 주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1:28; 5:2; 9:1; 12:2,3; 22:17,18; 26:12,13; 39:5; 욥42:12,13; 시73:18-20; 잠23:17; 24:1,19,20; 엡1:3
읽을말씀: 민6:24-26; 대상4:9,10
주제말씀: 민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첫째, 복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또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즉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민6:24)
그러고 보니 하나님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부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인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
그 이후에는 누구누구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 아들에게 복을 주셨고,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창22:17 상)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즉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하신지라.”(창12:3 하) /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7,18)
그렇다면 이 복은 어떤 것입니까?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또한 어떤 성격의 복입니까? 신령한 복, 곧 영적인 복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즉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으로써,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내세적이며 영적인 복에 더욱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질적인 복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39:5) /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욥42:12,13)
그러니 무엇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까? 세상에 속한 현세적, 물질적인 복입니다. 즉 지금 당장은 잘 나가고 또 형통한 것처럼 보여도, 그의 결국은 언제나 파멸과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23:17) /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잠24:1) / “너는 행악자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을 꺼지리라.”(잠24:19,20) /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 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73:18-20)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한 무엇을 사모해야 합니까?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들입니다. 즉 세상이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또 줄 수 없는 신령한 복들을 사모하고 또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보면서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고 또 구해본 적이 있습니까? 원컨대 지금부터 하나님께 복을 구하기를 시작함으로써, 인생의 크고 놀라운 반전들을 경험해가기를 원합니다. 야베스처럼 말입니다.
둘째, 야베스처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 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9,10)
본문에서 야베스는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까?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대상4:9 상) 그는 처음부터 존귀한 인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출생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겠습니까? 참고로, ‘야베스’라는 이름이 ‘고통’을 뜻하는 ‘야차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 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하)
출생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인생여정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경은 매우 협소(狹小)했고, 그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제약(制約)을 받았으며, 또한 그는 내내 환난과 근심 속에서 지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생의 반전을 꿈꾸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인생의 후반전을 꿈꾼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깨닫고,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대상4:10 상) 그 하나님께 작정하고 복을 구한 것입니다. 어떤 복을 구했습니까? 자신의 지경을 넓히시고 환난과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복입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상4:10 중)
한 번만 기도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매일 같이 기도했을 것이요 또한 몇 년을 그리 기도했을 것입니다. 대충 기도했겠습니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도했겠습니까? 자신이 구한 것을 하나님께 허락 받을 때까지 했을 것입니다. 구하기만 했겠습니까? 직접 개간(開墾)도 하고 부지런히 노력을 하는 등 구한 것을 찾아 나서고 찾은 후에는 그것이 열릴 때까지 부지런히 두드렸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하) 즉 하나님의 강력한 도우심의 손길로 그의 지역(기업)이 확장되었고, 당면 중인 환난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어떤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까? 존귀한 인생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대상4:9 상)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의 인생도 시작부터 삐걱대고 지금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아서 극적인 반전이 필요하며 지금과는 다른 인생의 후반전을 절실합니까? 우리의 지경이 점점 더 확장되기를 원하고 지금의 환난과 근심 속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까? 그렇다면 야베스처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고 또 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