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네모난 돌방무덤(구정동 방형분, 사적) 모서리에 세워졌던 기둥돌이다. 하나의 사각 기둥돌(모서리석) 바깥쪽 두 면에 조각이 이루어져 있다. 한 면에는 이 서역인상이, 다른 인접한 면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발을 들고 포효하는 서역풍의 사자상이 각각 돋을새김(부살)되어 있다.
신라에서 사자는 불탑(분황사 석탑, 불국사 다보탑 등)이나 왕릉의 사방을 지키는 웅장한 수호신이다. 구정동 모서리기둥 측면에 조각된 사자 역시 두 앞발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강렬한 수호신(신수, 神獸)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즉, 누군가에게 순종하거나 길들여진 모습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서역인이 든 막대기는 사자를 때리거나 조련하는 채찍이 아니다. 서역 무인의 신분과 격조, 또는 실크로드를 거쳐 유입된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상징적 소장품(폴로 채, 격구 채)로 해석하거나한다. 불자(拂子)나 무기로 보더라도 사자를 제어하는 도구가 아니라, 악귀와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주술적·상징적 의장용구(또는 수호 무기)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첫댓글 구정동 방형분(方形墳, 네모무덤)의 모서리기둥(隅柱石)에 조각된 '서역인상(호인상, 胡人像)'이다.
이 석조각은 통일신라 석조 미술 및 국제 교류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대표적 유물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네모난 돌방무덤(구정동 방형분, 사적) 모서리에 세워졌던 기둥돌이다.
하나의 사각 기둥돌(모서리석) 바깥쪽 두 면에 조각이 이루어져 있다. 한 면에는 이 서역인상이, 다른 인접한 면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발을 들고 포효하는 서역풍의 사자상이 각각 돋을새김(부살)되어 있다.
푹 들어간 깊은 눈, 큼직하고 높은 코, 덥수룩한 수염 등 전형적인 중앙아시아/서역계 인물(소그드인 또는 페르시아계)의 용모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머리에는 띠(두건/헤어밴드)를 매었고, 몸에는 소매가 좁고 수놓아진 듯한 옷(호복/공복)을 입었으며, 발에는 장화 형태의 화(靴)를 신었다.
양손으로 비껴 쥐고 있는 막대기는 학계 및 박물관 설명에서 오랫동안 서역 및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던 '폴로(Polo, 격구/타구) 경기용 채(폴로 스틱)'로 보아 왔다.
다만 한편에서는 끝부분의 굵기나 곡선 형태, 그리고 인접한 면의 사자상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사자를 부리거나 길들이는 도구(불자, 拂子)"로 해석하는 고고·미술사적 견해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왕릉은 원형 봉토 주위에 십이지신상을 둘러 새기지만, 구정동 방형분은 네모난 능묘 모서리에 사자와 서역인 모서리기둥을 세우는 독특한 구조를 취했다.
괘릉(원성왕릉) 및 흥덕왕릉의 입체 무인석과 더불어, 8~9세기 신라 상류층 및 왕실 사회에 서역 문화(폴로/격구 경기, 서역 복식, 사자 사육 문화 등)와 서역인들의 입국·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하는 소중한 실물 자료이다.
신라에서 사자는 불탑(분황사 석탑, 불국사 다보탑 등)이나 왕릉의 사방을 지키는 웅장한 수호신이다.
구정동 모서리기둥 측면에 조각된 사자 역시 두 앞발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강렬한 수호신(신수, 神獸)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즉, 누군가에게 순종하거나 길들여진 모습이 전혀 아니다.
괘릉(원성왕릉)이나 흥덕왕릉을 보면 입구에 서역인 형상의 무인석(무신상)이 서 있고, 그 앞뒤로 석사자가 배치되어 있다. 즉, 서역 무인과 사자는 모두 능묘를 함께 지키는 수호적 존재이다.
구정동 방형분의 경우 사각 기둥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한 면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수호 무인(서역인)을 새기고, 인접한 면에는 수호신수인 사자를 함께 배치하여 무덤의 모서리를 강력하게 비보(裨補)하고 수호하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따라서 서역인이 든 막대기는 사자를 때리거나 조련하는 채찍이 아니다.
서역 무인의 신분과 격조, 또는 실크로드를 거쳐 유입된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상징적 소장품(폴로 채, 격구 채)로 해석하거나한다.
불자(拂子)나 무기로 보더라도 사자를 제어하는 도구가 아니라, 악귀와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주술적·상징적 의장용구(또는 수호 무기)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구정동 방형분 모서리기둥의 서역인과 사자는 ‘조련사와 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능묘를 지키기 위해 결합된 ‘서역풍 수호 무인’과 ‘수호신수(사자)’의 쌍(Pair)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신라 미술사의 맥락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