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리의 학이 날다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靑瓷象嵌雲鶴文梅甁), 간송미술관 소장
2012년 12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에서 촬영
색(色)형(形)문양(紋樣)의 삼박자가 빚어낸 걸작(傑作),
이름하여 ‘천하제일 비색청자“
특별전이 국립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도자기에 대해서는 석봉(石蜂) 조무호(趙懋鎬)선생의
이천 가마에서 도자기 체험도 해 보았다.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청자가마터를 비롯하여 일본 국보 이도 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 알려진 웅천 요지(窯址)까지 조상들의 가마터도 직접 찾아가 보았다.
박물관 특별강좌 시간에는 월주요(越州窯)에서부터 경덕진(景德鎭)의
송나라 청자까지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교육도 받았다.
이만하면 고려청자 특별전을 감상 할 기본 소양은 갖춘 셈이다.
고려청자 특별기획전은 주제별로 4부로 꾸며 놓았다.
생산 유통 소비에서부터 고려(高麗)를 보는 창(窓), 상감(象嵌)기법,
끝으로 고려 청자 중 걸작선정 전시로 구분해 놓았다.
고려청자는 12세기 초, 사회가 안정되고 중국의 다양한 도자기 문화가 유입되면서
여러 종류의 청자를 생산하게 되는데, 강진과 부안은 그 대표적인 생산지다.
그러다가 1270년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면서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14세기 후반부터는 왜구들이 서남해안에 출몰하면서 강진과 부안 도공들이
가마터를 버리고 내륙으로 피난을 떠나자 가마터는 황폐해졌다.
오늘 전시품들은 대부분 12세기 초 전성기 때의 작품들이다.
사진을 통해서만 보던 국보급 보물 18점을 포함, 총 350여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걸작들을 내 카메라에 담는 기분은 비아그라를 처방받은 80대 노인 만큼이나 흥분되었다.
3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내 카메라에 작품들을 담아왔다.
그 중에서도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靑瓷象嵌雲鶴文梅甁)은
특별전시 기간 3일동안만 선 보였다.
“간송선생 우리문화유산 이야기”에는 그 획득 과정이 소상히 적혀있었다.
1935년, 서울 필동의 일본인 골동상이 고려청자 매병하나를
조심스럽게 감상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주둥이 바로 밑에서부터 풍만하게 부풀었다가 좁아들면서 흘러내리는
어깨선과 허리선이 유난히 아름다운 높이 42cm의 매병.상감된 흑백의
동그라미 마흔여섯 개가 병 전체에 조화롭게 배치되어있고,
동그라미 안에는 구름사이를 뚫고 날아오르는 마흔여섯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고,
원과 원 사이에는 흐르는 구름을 뚫고 학들이 날아오른다.
매병에 그려진 학은 모두 예순 아홉 마리.
매병을 돌리면 수백 마리의 학이 구름사이로 날갯짓하고 있다.
마치 천 마리의 학이 구름사이를 날고 있는 듯 했다.
이 매병은 개성 근처의 무덤에서 도굴꾼에 의해 발굴되어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그는 매병을 일본인 수장가에게 팔려고 대구로 내려갔으나 그 일인은 본국으로 떠난 뒤였다.
결국 대구에서 치과의원을 하는 신창재에게 4천원에 팔아 넘겼다.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가격이었다.
그 뒤 이 매병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일본인 골동품상이 사 들였는데
이때 이미 가격이 두 배로 뛰어있었다.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서도 소식을 듣고 1만원에 매병을 사겠다고
제의했으나 마에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소식을 듣고 간송은 마에다를 찾아가 매병을 보고는
즉석에서 2만원을 제시하고 매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본 오사카의 유명한 수집가가 간송의 집을 찾아와
구입가의 두 배를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간송은 거절했다.
이 매병은 고려청자의 최고품이라는 찬사 속에 “청자상감운학매병”이라는
이름으로 국보 제 68호로 지정되었다.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와 그 진귀한 보물을 아무런 제지(制止)도 받지 않고
무한정으로, 정성을 다해 내 카메라에 모셔왔다 (옮겨 수정한 글)
첫댓글 고맙습니다.
덕분에 청자 작품의
작품 이름을 알게됩니다.
상세한 작품 설명 감사드립니다.
환절기 건강유의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