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수운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한다. 또한 후용리 견훤산성에는 돌무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나동(왕건이 쉬어간 마을)과 궁촌리는 견훤이 토성을 쌓고
궁실을 짓고 석축을 쌓아 성곽을 구축한 곳으로 왕건이
동네 맞은편 건등산에 진을 치고 장기전을 꾀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왕건 시대 이후 천년이 지난 지금 그의 유품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리 없지만
왕건이 이곳에서 후용산성에 있던 견훤과 대적하여 승전한 까닭에 고려의 창건과 문막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건등산과 마주보고 있는 후용리 입구 왼쪽 산은 왕건과 맞서 싸웠다는 견훤의 산성인 돌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어 당시의 격전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격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왕건은 꾀를 써서 견훤성에 이르는 도로를 차단하여 군량미 조달을 막고, 취병산을 휘감아 돌던 섬강물을 막았다가 일시에 풀면서 횟가루를 풀어 뿌였게 흐리게 했다고 한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견훤의 병사들이 쌀뜨물이 흐르는 줄 알고 이물을 마시고 견훤의 군사가 다 죽으니 왕건의 승리로 끝났다는 웃지 못할 전설이 지금도 구전되어 오고 있다.
후용리에는 뱀이 많고, 뱀이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왕건과 견훤의 싸움으로 견훤의 군사가 이곳에서 몰살을 당하였으니 그 혼이 뱀으로 환생하였다. 그래서 뱀이 많으며 서로 사람의 혼이 섞였으니 물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