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 분명 낯익은 이름인데 그분이 누구인지 뚜렷하게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것도 다 나이 탓이겠지. 잠시 후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에 '푸코의 진자'와 '희랍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거의 다 이윤기 선생을 통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진정한 해석에 눈을 떴을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소설도 창작했지만 번역에서 더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훌륭한 번역가는 뛰어난 창작자 못지 않게 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아니면 우리는 다른 언어권에서 태어난 명작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감상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지적 자산은 얼마나 보잘 것 없이 축소되겠는가? 경향신문에 실린 이윤기 선생에 대한 기사의 내용이 좋아서 여기 퍼왔다. 1947년생,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계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하다.
ㆍ번역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완벽주의 추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저서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씨(사진)가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3세. 고인과 가까운 사이인 한희덕 섬앤섬 출판사 대표는 이날 “이윤기 선생이 25일 오전 심장마비를 일으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27일 오전 9시50분께 타계하셨다”고 밝혔다.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난 고인은 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입선해 등단했으며, 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찾기>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신화 연구에 매진해 온 고인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국내 출판계에 신화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고인은 특히 국내 번역 문학계의 개척자로 불릴 만큼 뛰어난 번역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2000년 ‘대한민국 번역상’을 받았으며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가 선정한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적 역저로는 <그리스인 조르바> <장미의 이름> <변신 이야기> <푸코의 진자> <양들의 침묵>이 있으며, 딸 다희씨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사랑 3부작 <한여름 밤의 꿈> <겨울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역하기도 했다.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세련된 번역으로 국내 영문번역의 일인자로 꼽혀온 고인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번역을 통해 번역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인은 번역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여,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잡아 개역판을 내 국내 번역계에 귀감이 됐다. 92년 독자들의 지적을 반영해 <장미의 이름> 전면 개역판을, 95년에는 6개월간의 번역작업 끝에 <푸코의 추>를 처음부터 다시 번역해 <푸코의 진자>로 제목을 바꿔 내놓았다. 당시 고인은 첫 번역에서 완벽을 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죽다가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에 매달리는 열정을 보였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5권이 이르면 10월쯤 출간될 예정이었으며, 최근 재번역한 <천로역정>과 <반야심경>이 발간을 앞두고 있다. 한희덕 대표는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의 신화에 관한 책 10권을 준비하셨는데 타계해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편 후배 작가들은 트위터를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권위와 틀을 싫어하시고 그렇게 많은 걸 아시면서 겸손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분이셨다”며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했다. 소설가 김영하씨도 “이윤기 선생님은 ‘가르침’이라는 것을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 평생 겸허한 ‘메신저’로 사셨다. 그럼에도 부고를 듣는 순간, 그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화장한 뒤 고인의 작업실이 있는 양평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화가인 부인 권오순씨와 아들 가람, 딸 다희씨 등 1남1녀가 있다.
---------2010년 8월 27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