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삼불리는 봉산을 뒤로 하고 동편에는 연등, 서편에는 설멧등이 감싸 안은 180여호나 되는 큰 마을이지요. 지금은 넓은 들로 변해 있지만 옛날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고 나는 아름다운 어촌마을이였답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매굿소리가 하늘에 다았고 휘엉청 둥근달이 중천에 떠서 가가호호 안부를 묻고 복을 나누어 주는 그림같은 고향이였지요.
매굿은 정월 초 나흘날에 시작하여 열사흘날까지 이어 졌답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 잊어져 버린 그때 그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광대로 분장한 좌포수 김준기(회진父),우포수 정성기(철순부) 어른이 앞장 서고 그뒤를 상쇠 방양길(극환부), 중쇠 김태순(정채부), 끝쇠 김태열(영창부), 징쇠 오만춘(경탁부), 장구 김길남(성윤부), 북은 김영환(형남부) 김갑수(남기부) 김성구(재진부) 유인석(종모부) 김형신(종석부) 김학기(진만부) 소구는 김동환(성진부) 김우철(종오부)이 풍악을 울리며 주민들을 몰고 다녔지요.
가가호호 사립문에 이르면 그집 대주님께서 예를 갖추어 정중하게 매귓꾼을 집안으로 안내 했답니다. 신명나게 한바탕 굿판이 벌어 졌지요. 마루에는 성주님께,마당에는 마당신께, 정지에는 조강신께,장독에는 삼신님께,곡간에는 조상님께, 우물에는 샘각시님께 한해의 시작을 고하고 악귀를 쫓고 복을 빌어 주었답니다.
뒤안을 돌아 소막 돼지막 뒷간을 밟고 나오면 마당에는 주안상이 푸짐하게 차려지고 쌀이며 복전을 두둑하게 내 놓았 답니다.대주님이 새해소망을 고하면 포수들이 이를 받아 상쇠 꽹가리에 마춰서 덕담을 띄우고 모듬굿이 한바탕 뒤를 이어 갔습니다.
포수는 쌀 자루를 어깨에 메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돈은 용천대 새끼줄에 줄줄이 꿰어 달아 이웃에서 또 그이웃으로 흥을 이어 갔습니다.어린애들도 신이 났지요. 낮굿은 보통 이렇게 해서 오전 10시에 시작하고 오후 3시쯤에 끝이 납니다.
어둠이 내리면 또 밤굿이 시작되었지요. 포수들이 정해 놓은 순서대로 액운이 겹친 집은 액막이로, 환자가 있는 집은 쾌유를 빌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집은 무병장수를 기원해 주고, 가세가 넉넉한 집은 더 베풀어서 큰 부자 되라고 축원해주며 새벽닭이 울 때까지 밤을 지새워 굿을 이어 갔습니다. 부잣집들은 닭죽을 쒀서 내놓고 마을 잔치를 벌렸지요. 남녀노소 할것없이 노래 부르며 장끼 자랑을 했답니다.
그때가,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유청연(장춘부)어른의 구성진 가래소리, 땅골댁(성학모)의 간드러진 길가락소리,당죽댁(행자모)의 논메는 소리, 한적댁(종석모)의 풍년가 부르는 소리가 분위기를 잡아 놓으면 이어서 명창 소리꾼 유종순(수일부)어른의 쑥대머리가 이어졌지요.옥중에 춘향이가 망부석을 부여 안고 자드러어지게 울부짖는 대목에 이르면 관중들은 눈물을 훔치다 말고 엥콜엥콜 소리를 질러 댔답니다.
그 노래소리,그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쟁쟁합니다.
고향을 지키고 계신 종열(덕희부)이 형은 술한잔 들고 나면 잊어진 추억을 꺼내 들고 가상댁 형수와 함께 그때 그 노래를 부르곤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