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당신을 펼치는 날
곽 애 리
나는 당신을 접을 수도 펼 수도 입맞춤할 수도 기차역에서, 산길에서, 어슬녘 도심을 걸으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접어서 들고 다니는 나의 고독처럼 속주머니 속에 당신을 넣고 걷는 오후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비 내리는 강둑 물가에 심어진 나무 아래 우산을 받치고 마음껏 당신을 펼치는 날 비닐우산 위에 떨어지는 동그란 눈물 마지막 손으로 훔친 것은 웃음이었네 가슴에 묻었다면 헤어짐은 없어 물여울에 비친 당신을 접어 발걸음 옮기는데 당신이 묻는군요 네, 슬몃, 하늘을 올려보다가 젖은 걸음 옮기는데 또다시 당신이 묻는군요 네
- 시집〈주머니 속에 당신〉황금알 -
〈곽애리 시인〉
△ 강원도 평창 출생. 198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 2017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현재 뉴욕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가 강사로 활동.
주머니 속에 당신 - 예스24
곽애리의 시편들은 다채로운 낭만의 노래와 디아스포라로서 유목의 몸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낭만적인 진술과 형태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몸으로 발현하면서 시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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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애리 시집 〈주머니 속에 당신〉 황금알 | 2023
후러싱 외딴 골목
굴다리를 지나서 전설이 잠든 곳, 그즈음인가 후러싱* 외딴 골목 흙먼지 휘날리는 외지의 땅 누군가 세월을 헤집고 다닌 흔적이 폐지처럼 쌓여 있는 곳 철문 굳게 내리고 벽돌담에 그려놓은 흑백의 언어들 검붉은 페인트칠 속에 갇혀 사는 낯선 낱말들이 깊은 울음을 토해내다가 그만 멈춘다 메마른 도시, 소외의 구석 자리 강한 악센트, 남미의 언어들끼리 돌풍처럼 세차게 남루를 흔든다 어디선가, 뿌연 매연 날리며 달려온 행상 여인 새벽의 꿈을 오버코트에 껴안고서 1불에 건네준 커피 한 잔과 과자 한 쪽에 서늘한 삶을 목으로 넘긴다 슬픔의 뿌리를 짙게 빨면서 아득한 시야에 뉴욕을 건너가는 7번 기차, 그대가 열망하는 도시는 아득히 멀기만 하여 불편한 모래바람에 현실을 움켜쥐고 모르는 척 오늘을 넘기면서, 달력 한 장을 찢는다 * 후러싱Flushing: 뉴욕 퀸즈 한인 밀집 거주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