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6th, 2007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가뿐하고 기분좋게 로마에서의 마지막날을 보내고 싶었다.
정해진 계획도 없이, 특별히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대전차경주장을 찾았다.
화이트 초콜렛을 달콤하게 녹여가며 대전차경주장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영화 "벤허"에서 왕이 경기를 관람하며 누렸을 흥분의 그 맛을 대신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천국에 있는 것만큼이나 달콤했을까,,
경주장에서는 서로 죽으네 사네 하며 필살기를 다해 달리는데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편안히 앉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을 그 때를 상상하니
같은 시공간에서도 입장이 이처럼 천지차이로 나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그때의 시공간으로 내달려 지금의 내가 서있는 곳, 바로 이 자리에서
왕의 기분을 대신 느끼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더운 여름 날, 모래 바람 먼지 돌풍 또한 가히 장난이 아니었겠다 싶다.
바다의 신 얼굴을 새긴 로마시대의 하수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기에 자존심이 상해,
그리고 최소한 나는 여느 관광객과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해두고 싶어
"진실의 입" 만큼은 결단코 보지 않겠노라고 결정했었더랬다.
그런데 로마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가 되면서 자꾸만 찜찜한 무언가가 있었다.
로마까지 와서 "진실의 입"도 보지않고 갈 수가 있느냐 하는,,
"진실의 입"은 로마에 왔다는 확인을 대신할 발도장이나 다름 없었다.
나, 김민영이 여기 로마에 왔노라,고 당당히 입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진실의 입"을 보았느냐의 여부로 판가름날 일이었다.
그래서,, 다녀왔다. -_ -;; 순 억지쟁이.
인생은 가끔 뭐 이런 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책으로만 봐았던 베스타 신전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대리석의 모자이크 바닥이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그보다 사실 난 로마스러운 한 그루의 나무가 맘에 들었다.
안녕, 나무야..?!
로마의 젖줄, 테베레강
웅장한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몰려있는 곳을 떠나
소박한 로마의 모습이 남아있는 트라스 테베레로 가기위해 팔라티노 다리를 건넜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 테베레 성당
오전 1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는 성당의 시계를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그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사진 속의 시계는 그 때의 그 시간에 내가 그 곳에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묘한 증표같다.
어디선가 불어 온 바람에 두껍고 무거운 장막같은 커튼이 자연스레 걷혔다.
살짝 걷혀진 틈새를 비집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주한 모습.
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풍선처럼 하늘로 올라가 닿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특이했던 성당의 외벽
회칠을 한 벽에 조각조각 붙여진 이름모를 조각들이 나름 멋진 인테리어를 대신하고 있었다.
알 수 없지만, 하나하나 귀중한 의미를 지닌 것들 일거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조각들이라면,
이 벽 전체는 긴긴 역사를 단 하나의 벽에 아우르고 있는 셈.
로마의 소박함이 묻어나는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 테베레 광장
까페 주인은 여유있게 테이블과 의자를 배열하고,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이탈리아 사람들이 여는 평범한 아침의 소리가 귓가에 파고 들었다.
분수 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박한 로마의 아침을 함께 했다.
광장 안에 울려 퍼지던 아코디언 연주가의 흥겨운 선율에 몸은 절로 리듬을 탄다.
지나칠 정도로 관광지틱한 스페인 광장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
여행자들에게 인기있다는 트라스 테베레 거리를 지나 포르타 포르테세 벼룩시장을 찾았다.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보다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선 길이었는데
이리저리 헤매기만 하고 다시 원점.
친절한 이딸리아노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찾아갔으나, 오잉??
그새 모든 게 망했는지 벼룩시장은 온데간데 없었다.ㅠ
포르타 포르테세의 이름에서 묻어나는 앙증맞은 벼룩시장이 있어야 할 곳엔
아무것도, 단 한 마리의 개미조차도 기어다니질 않았단 말이다.
이탈리아어도 모르고 뜻조차 알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어감이 좋다고, 맘에 든다고
이 더운 날 골목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찾아낸 결과가 허망함으로 둘러싸인 껍데기 뿐 이라니.
아깝게 낭비한 오전 시간을 휴지통에 던져 버려 깨끗이 "휴지통 비우기"를 하고 싶었다.
눈물이 날만큼 환상적이었던 라자냐를 점심으로 떼우고 다시 찾은 트레비 분수
로마에서의 첫 날 찾았던 비오는 날의 분수도 멋지지만
역시나 분수는 밝은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최고인 듯.
스페인 계단 앞 난파선 분수에서 벌컥벌컥 들이 마셨던 물은 그야말로 꿀 맛이로고!
비 오는 날엔 볼 수 없었던 판테온 안의 햇살
대극장 안의 스포트라이트 같은 햇살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판테온 내부 곳곳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길고 시원하게 뻗은 나치오날레 거리를 따라 마지막에 도착한 공화국 광장
로마에서의 여정이 거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공화국 광장을 마주보고 서있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역사를 무엇보다 가장 귀한 국가의 자산으로 여기는 로마답게
어딜가든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남은 오후, 트라스 테베레에서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광장으로 이동해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을 지나쳐 나보나 광장까지 여유있게 돌아보는 동안
요 며칠간 로마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다시한번 쫓아가는 듯한 기분좋은 상상에 빠졌다.
매일매일 내 집 안마당처럼 거쳐가고, 지나다니던 테르미니 역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며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챠오, 로마!
언젠가 다시 올게!
이 말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나의 마음을 싣고 기차는 피렌체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Roma in Italy (18:30) → Firenze (20:06)
첫댓글 오늘 로마 편은 여운을 남겨주는 듯한 느낌이네요, 피렌체에선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용?? ㅎㅎㅎㅎㅎㅎ
피렌체요?? 말도 마셔요-ㅎㅁㅎ;;
글과 사진들을 보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네요.. 그래.. 바로 저기였지... 공감...^^
저도 여행기를 쓰면서 사진보며 아, 이때 여기 갔었지,, 또 다시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어요~
오랫만에 올리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