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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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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불교 토 론 방 - 초기불교의 자기사랑에 관한 고찰/안양규
수연 추천 0 조회 108 16.11.16 17:0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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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11.16 17:09

    첫댓글 동체자비는 자기자비가 전제될 때 가능하겠습니다._()_

  • 16.11.17 09:27

    잘 읽었습니다
    먼저 자아가 있고 자아를 부처님이 가르치는대로 사랑하고
    그 다음에 이타이군요
    새로운 관점이 생깁니다
    무아만 알았는데 자리 즉 자기사랑이라는 것도
    초기불교에는 존재하는군요~~

  • 작성자 16.11.17 13:20

    말씀 감사합니다.^^
    <자아>와 <자기>를 구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는 행위자이고, <자아>는 대상화된 <자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타적인 이기심은 <자아 사랑>에서 나오고, 동체자비는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대상화되지 않은 <행위자로서의 자기>는 오직 행위할 뿐 내용규정이 불가능하여 육체를 제외하고는
    남과 구별할 수 없기에 모든 생명과 동체일 수 있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무아>를 언급하고 있기에..._()_

  • 작성자 16.11.17 13:19

    따라서 <자기 사랑>은 스스로를 대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지하는
    온전한 긍정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_()_

  • 16.11.17 13:26

    @수연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타자(사람 동물 식물)를 사랑해야 겠습니다
    자아를 사랑해도 괜찮다 고 하니 더욱더 불교가 좋아 보입니다
    무아와 자아사랑(자리) 그리고 이타(타자의 사랑)에 대한 주제는
    다시 한번 큰 틀에서 심사숙고해보고 싶습니다
    무아를 생각하며 자아와 타자에 대한 사랑...
    고맙습니다

  • 작성자 16.11.18 16:13

    원 글의 자기존중감(self-esteem), 자기사랑(self-love), 자기중시(selfregard), 자기가치(self-worth) 등과
    다른 글의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모두 자아(ego)가 아니라 자기(self)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래는 자아와 자기에 대한 참고 글입니다.
    자기를 궁극적 실재라 하는 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으나,
    자아와의 차이를 크게 드러내는 점에서 참고할만 글이지않나 싶습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CF4Q&articleno=9300109

    //ego는 자아, self는 자기로 구분해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아와 자기는 둘 다 ‘나’를 뜻합니다. 그러나 자아나 자기가 가리키는, '나'란 존재의 차원이 다릅니다.

  • 작성자 16.11.18 16:02

    자아는 의식의 중심부로서 내가 의식하고 있는 나를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self)는 자아(ego)가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잠재성입니다.
    자기는 자아가 태어나는 토대이자, 선악, 미추, 시공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입니다.

    자아가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라면 자기는 잠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의 이미지입니다.
    자기(self)는 발견되어야 하고 수용되어야 하고 실현되어야 할 어떤 것이지만 자아(ego)는 그렇지
    않습니다.

    각 문화권에서는 자기를 불성, 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등등으로 불렀습니다.//

    (‘자아(ego)’와 ‘자기(self)’의 차이에 대해서
    [류가미의 문예기행(15) 인터메조…십우도, 자기를 찾아서] )

  • 작성자 16.11.18 16:26

    '류가미'님이 <자기>를 내재하는 <불성>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여기서 더 나아가
    궁극적 실재라고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도나 신은 <자기> 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기>는 물론
    그 이외의 다른 일체를 포괄하며 동시에 그 모두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궁극적 실재는, 대승불교에서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 해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류가미'님이 <자기=불성>을 궁극적 실재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곧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김아무개'씨의 일부인 새끼손가락을 '김아무개씨라고 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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