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24~ / 아그립바 왕을 전도하는 바울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행 26: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행 26: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행 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행 26: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행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바울은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증거하였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보고 많은 공부를 하다가 미쳤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왕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뿐 아니라 왕에게 복음을 믿는 죄인인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24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베스도는 바울이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이사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베스도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하고 있는 바울을 볼 때 순간적으로 그가 미친 것이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바울의 말을 베스도가 가로막았습니다.
25~26절 바울은 미친 자가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바울의 미친 탓으로 돌리는 베스도의 비난에 대해 바울은 조금도 이성을 잃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자신의 온전함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다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이 은밀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베스도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함을 알고 더 이상 그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아그립바 왕에게 호소했습니다. 바울은 결코 비굴하지 않게 모든 것을 담대히 말하고 있습니다.
27~28절 “아그립바 왕이시여, 예언자들의 말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이 말속에는 선지자를 믿는다고 하면 예수의 메시아 되심과 부활 또한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9절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말이 적든 많든 왕뿐만 아니라 지금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결박된 것 말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바울은 죄수로 심문을 받고 있지만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왕이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게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습니다.(18절).
바울은 현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죽은 후에 있을 하나님 나라와 심판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비록 왕이지만 사단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받아서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록 죄수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마음에는 성령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의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여 왕 노릇 할 것을 믿었습니다.
30~31절 그러자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버니게를 비롯해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일어났습니다.그들은 그 방을 나갔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행 26:32)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지금 석방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바울을 석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바울의 무죄를 최종적으로 조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무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지 않는 것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가이사에게 항소하였기 때문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석방되지 못하고 로마의 가이사에게 가야 하는 현재 상황의 배후에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행 23:11).
바울의 석방되지 못함은 도리어 그에게 가장 안전한 로마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해보다 밝은 빛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빛을 비추십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무지에서 지혜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결박당할지라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예수님은 부활하여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를 통해 세상 권세 자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적인 구원의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