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어원
서기 207년 중국 후한 시대.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이었다.
유비는 제갈공명(제갈량)을 군사(軍師: 으뜸 장수 밑에서 작전을 짜고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유비는 어느 날 살이 오동통 오른 토끼 한 마리를 잡았다.
그는 그 놈을 맛있게 요리해 제갈공명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참하게 거절당한 유비는 코가 석 자나 빠져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으~음.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유비는 더 통통하고 예쁜 토끼를 잡아
정성껏 요리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갈공명을 찾아갔다. 허걱~. 그런데도 제갈공명은 토끼 요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세 번째. 유비는 사냥한 토끼를 한 손에 쥐고 제갈공명에게 갔다.
정중한 예를 갖춘 뒤 유비가 물었다. “공명 선생, 왜 제가 잡은 토끼를 드시지
않으십니까?토끼요리 앨러지라도 있으십니까?
도대체 토끼를 어떻게 해 드려야 잡수시렵니까?” 어이없다는 듯,
유비를 한참 동안 째려보던 제갈공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삶고 쪼려!!” 푹 삶고, 콱 조려야 먹는다---는
세월이 물처럼 무섭게 흘러,중국의 삼국시대가 끝나고 한국의 삼국시대가
막 열릴 무렵. ‘삶고쪼려’는 한반도로 건너왔다.그리고 삶고 쪼려란 문장에서
‘삶’자에서 ㄹ 탈락 현상이 일어나고‘초’자는 세인들의 강퍅해짐과 더불어 경음화
과정을 거쳐 ‘쪼’로 바뀌었다.사람들은 물고 물리는 삼국전쟁의 현장에서 급하게
요리를 하다 보니 발음도, 삶고, 쪼려로 끊어서 하지 않고 그냥 붙여서 삼고초려라고
잽싸게 하게 되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가 제갈량의 초려(草廬)를 세 번이나 찾아서 마침내
그를 군사(軍師)로 삼은 일.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
① 사람을 맞이함에 있어 진심으로 예를 다함[三顧之禮]
② 윗사람으로부터 후히 대우 받음의 비유.
1) 후한(후한) 말엽,
유비(劉備:자는 현덕(玄德),161∼223)는 관우(關羽:자는 운장(雲長),?∼219),
장비(張飛:자는 익덕(益德),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全軍)을 통솔할 군사(軍 師)가 없어
늘 조조군(曹操軍)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 휘(司馬徽)에게 군사(軍師)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伏龍)이나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伏龍)은 누구고 봉추(鳳雛)는 누구입니까?"
그러자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량(諸葛亮 : 자는 공명(孔明),181-234)이 복룡인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 땅에 있는 제갈 량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 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은 새파란 애숭이라던데…."
"그까짓 제갈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다."
마침내 수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적벽대전 (赤壁大戰)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비는 그 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한실(漢室)의 맥을 잇는
촉한 (蜀漢)을 세워 황제(皇帝 소열제(昭烈帝),221∼223)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이 되어 후주(後主) 유선 때까지
2조(二朝)를 섬겨 후세 충신의 표상이 되었다.
한자공부 복습
47 신 사 가 복 ( 信 使 可 覆 )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믿을 신(信),
하여금 사(使),
옳을 가(可),
덮을 복(覆)
48 기 욕 난 량 ( 器 欲 難 量 )
사람의 기량은 깊고 깊어서 헤아리기 어렵다.
큰일을 해내는 사람, 못하는 사람보고 그릇이 작은 사람 또는 큰사람으로 표현함에서
오는 말을 인용해서
1.그릇이란 여러 가지라 가리기
2.하고자 하는
3.어렵고
4.양에 맞춤역시 어렵다.
(3의 難을 두 번 쓰는 것은 주사에 결합되어 賓位,客語를 돕기위해 두 번도 사용된다) 의
심하지 않음 이라는 뜻에서 신용(信用)로 표기하며 믿고 쓴다는 것이다.
사신(使臣) 나라에서 신부름 역할을 하는 신하라는 뜻이며 벼슬 이름이기도하다.
가능(可能)하다,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동의를 한다.
복(覆) 지난 일을 거듭하다, 반복(反覆) 되풀이하다.
그릇기(器),
하고자 할 욕(欲),
난難 나儺 불이간不易艱곤 어려울 난(難),珠名木곤구슬 이름 난(難),
患也근심스러울 난(難),阻也 막힐 난(難), 責也 꾸짖을 난(難), 詰辨 힐난할 난(難),
盛예곤然 우거질 나(儺)同 한寒 가歌 .
헤아릴 량(量),
욕구(欲求) 욕심 껏 구함.
난사(難事) 어려운 일.
수량(數量) 수를 헤아리는 표현적 단위를 요하는 말(물이 2(리터)),사과 2(개)등을 표현.
(리터, 개 등은 헤아리는 단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