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의 기쁨] 채워 주는 사람
다음 가사를 보고 어떤 곡의 후렴구인지 맞혀 보자.
“너만을 바라보던 날 차버렸어. 나 완전히 새 됐어.” 싸이의 〈새〉다. 가사만 보고도 적잖은 이가 흥얼거릴만큼 유명한 노래다. 한데 이 부분은 싸이가 아닌 어떤 여성 보컬이 노래했다.
싸이와 〈새〉는 잘 알려져 있는데, 후렴구는 누가 불렀을까?
우리나라 코러스 실력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김효수 님(45세)이다.
그녀는 코러스 경력 이십오 년 차다. 지금까지 작업한 곡은 어림잡아 이만여곡. 조용필,
나훈아, 이문세, 김현철, 신승훈, 이승환, 자우림, 성시경, 쿨, 백지영, 지오디, 씨스타…… 기라성 같은 가수들과 함께했다.
그녀는 대학생 때 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공은 그와 무관한 생명 공학이었다. 학교에 음악 동아리 ‘꼬망스’가 있었는데, 강변 가요제 대상 출신 가수 박영미가 거기서 활동했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박영미의 팬이었다. 동경한 가수가 있는 곳이니 고민 없이 지원했다. “당시는 실용 음악과가 없고, 대학 가요제나 강변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인 시절이에요. 대학마다 유명한 음악 동아리가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합창단 활동을 많이 했고, 대학생이 되면 가요제에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디션 보고 꼬망스에 들어갔죠. 대단한 선배가 많았어요.”
창작 가요 동아리라 작곡, 연주, 퍼포먼스까지 두루 경험했다. 공연 때 코러스를 하자 작곡가, 가수로 활동하는 선배들이 “너 잘한다.” 하며 녹음실로 데려갔다. 첫 작업물은 소찬휘의 데뷔 앨범. 그렇게 코러스 일을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을 함께한 신연아, 이현정과 코러스 팀도 꾸렸다. 이름은 ‘빈칸 채우기’로 지었다. 셋의 음악적 색채가 가요계의 새로운 트렌드에 딱 맞아 좋은 반
응을 얻었고, 일감이 밀려들었다. 신연아는 훗날 빅마마 멤버로 데뷔했고, 이현정은 작곡가가 되어 휘성의 〈안 되나요〉, 거미의 〈그대 돌아오면〉 등을 지어 히트시켰다.
그녀도 솔로 앨범을 낸 적 있다. 이 경험으로 코러스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젝스키스, 핑클 등을 만든 기획사 사장님 눈에 띄어 솔로 앨범을 제안받았어요. 노래하는 건 좋았지만, 가수가 꿈은 아니었어요. 한데 유명한 기획사에서 제안하니까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덜컥 수락했죠. 막상 녹음하고 보니 사람들의 기대치도 부담스럽고, 제가 그에 못 미치는 듯해 힘들었어요. 방송 출연할 때는 혼자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버거웠어요. 앨범도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요. 여섯 달 만에 그만두고 코러스로 돌아갔어요. 저는 가수보다 코러스가 적성에 맞고, 더 편하고 재미있어요.”
기억에 남는 뮤지션은 누구일까? “김현철씨 덕에 다양한 기회를 얻었어요. 김현철 씨 콘서트에 코러스로 참여해 일 년 정도 투어를 같이 다녔어요. 당시 김현철 씨가 가장 유명한 작곡가라 이름난 가수한테 곡을 많이줬어요. 그 곡들 녹음할 때마다 저를 데리고 다녔죠. 이승환 씨 덕도 봤어요. 이승환 씨가 워낙 공연으로 유명하니까요. ‘이승환 코러스’ 하면 다른 말이 필요 없었어요. 덕분에 공연 잘한다는 가수들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죠.”
그렇게 인연이 쌓여 조용필 코러스까지 합류했다. “새로운 작업자님한테 누군가 ‘얘 용필이 형 코러스 하잖아.’라고 저를 소개하면, 제가 전에 뭘 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아요. 그간의 포트폴리오가 필요 없을 정도예요.” 그녀는 ‘일등’이 아니라 ‘하나뿐인 존재’가 되길 권했다. “사실 전 코러스계에서 일등은 아니에요. 굳이 등수를 따지면 5위 안에는 들까요. 한데 등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코러스는 저마다의 목소리, 개성,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중에서 작업자가 무얼 선호하는지에 따라 선정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지금껏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곡은 효수가 딱이야.’ 하는 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열이 아니라 다른 거예요.”
코러스는 노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액세서리 같은 거예요. 코러스가 없는 노래는 맨얼굴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코러스는 거기에 화장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달아 주고, 보정까지 해 주는 거죠.” 곡을 들었을 때 코러스인 줄 모르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한 팀처럼 목소리가 섞이는 경우다. 핑클의 〈루비〉에서 “I can’t cry(아이 캔트 크라이).”가 반복되는 부분이나, 이정현의 〈바꿔〉에서 “바꿔, 바꿔.” 하는 후렴구는 가수만 부르는 듯 들리지만, 여기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이를 ‘백업 보컬’이라고 한다. 가수 목소리를 풍성하게 하고, 감정을 더해 준다.
코러스는 상당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창작의 영역이다. “옛날에는 코러스 음표를 악보에 그려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새는 안 그래요. 악보를 줄 때 음표도 없이 코드만 줘요. 그걸 보고 자유롭게 하는 거죠. 알아서 만들어야 하니까 창작의 영역으로 인정해 줘요. 그래서 코러스도 저작 인접권이 있어요.”
최근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유산슬의 〈합정역 5번 출구〉에 그녀가 코러스를 넣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95만회를 기록했다. 그녀의 코러스가 합쳐져 노래가 몰라보게 변신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방영됐다. 댓글을 보면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많고, 몰랐던 이들도 “코러스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하는지 처음 알았다.”라며 감탄했다.
“코러스를 이십 년 넘게 했지만, 저희 엄마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딸 뭐 해?’ 하고 물어서 ‘코러스 해.’라고 답하면, ‘가수야? 티브이에는 왜 안 나와?’ 하고 되물어요. 녹음실에서 하는 작업은 전문적이긴 한데, 공개되지는 않으니 일반인은 모르죠. 그 과정을 방송에서 보여 주었잖아요. 저희는 늘 하는 일인데, 사람들이 신기하게 봐 주어서 고마워요.”
코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적당함을 지키는 거예요.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코러스가 필요 없는 곡들도 있어요. 필요한 만큼만 들어가야 결과가 가장 좋아요. 그걸 알아채는 게 제일 중요한 듯해요.”
그녀에게 이름 앞에 직업명을 무어라 쓸지 물었다. 그녀는 코러스라 적기를 원했다. 가수는 가수지만, 굳이 그 호칭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고. 일을 향한 그녀의 자부심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