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북 가죽 화엄 법고 이야기
화엄사의 운고각은 1918년 금정암에 있는 세월 비구니가 영산전 앞에 중건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법고 가죽이 낡아 앞부분이 찢어져서 그 탓에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이 법고가 새로운 가죽으로 바꿔 아름다운 소리를 되찾게 된 사연이 있다.
화창한 봄날, 한 신사가 화엄사 보제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흰 양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몸은 탄탄한 멋쟁이었다. 마치 진조 스님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신사가 스님을 불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님이 나이를 70살이라고 했다. 겉보기엔 50살쯤 되어 보이는 정정한 노신사였다. 신사가 말했다.
“저도 젊었을 때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도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5년 전에 길에서 한 노스님을 만났는데 저더러 업장이 많으니 절에 한 번 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교라서 그냥 무시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요 며칠 전부터 노인 한 분이 계속 꿈에 나타나서 ‘업장이 많으니 참회의 기회가 있을 것일세. 화엄에 가면 자네가 할 일이 있으니 가보시게’라고 하시더군요. 궁금해서 화엄사에 왔습니다.”
진조스님은 노신사에게 인생살이를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제가 도축업을 하다 보니 항상 좋은 것을 많이 먹었지요. 그러다 보니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애를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여자 천 명을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연애했고 이제 30명만 더 만나면 천 명을 채우게 됩니다.“
노신사는 신이 나고 자랑스러운지 그렇게 말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제루에서 휴식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이 노신사의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참 대단한 노장일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조스님이 말했다.
“도축업을 하는 일도 살생죄입니다. 가축이 도축장에 들어갈 때 두려움에 떨고 죽기 싫어합니다. 가축도 사람과 같은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요. 그래서 죽을 때 원망과 원한이 가득한 채로 비명 액사하는 것입니다. 도축된 가축을 위해서 천도하는 마음을 가져 보신 적 있는지요? 그 애혼을 위해 위령제를 꼭 지내야 합니다. 금생에 자기가 직접 받거나 자식이 받기도 하지만 멀리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무병장수하기 위해선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삼가야 합니다. 또 적극적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주는 방생을 많이 하면 나와 자손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과보를 받게 됩니다. 즉 살생을 하면 죄를 받아 불행해지고, 방생하면 건강하고 장수하여 복덕을 누립니다.”
이어서 수많은 여인과 연애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인과 연애하는 것은 음란죄입니다. 조상 중에 바람쟁이가 있으면 그 자식에서 대물림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요. 아니면 전생에 연애 한번 못하고 죽어서 금생에 한을 풀 듯 많은 여인과 연애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는 비상식적인 인생살이입니다. 지금부터 과거에 지은 죄를 불보살님 전에 귀의하여 참회하면서 여생을 편히 지내세요.”
진조스님이 말을 끝내자 노신사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합장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난 노인이 화엄사에 가면 할 일이 있으니 가보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진조스님은 불현 듯 운고각의 법고 가죽이 찢어진 것을 떠올렸다.
“꿈에 나타나신 노인은 바로 무수보살님입니다. 처사님에게 화엄사에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법고를 보수하는 일인 듯합니다. 운고각의 찢어진 법고가죽을 새것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지요?”
진조스님은 노신사에게 운고각에 매달린 찢어진 법고를 보여 주었다. 법고를 살펴본 그가 말했다.
“이것 참 심하게 찢어졌네요. 제가 법고 보수를 하겠습니다.”
진조스님과 노신사는 함께 대웅전으로 들어가 삼배를 마치고 법당에서 안내하는 주지 스님의 상좌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으며 안내 스님과 노신사는 주지 스님이 있는 삼전으로 갔다. 안내 스님이 명선 주지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법고 보수 불사와 위령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1976년 구례읍 봉동리에 사는 시주님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시주한 새로운 가죽으로 운고각 법고 앞뒤를 교체하고 헌 가족은 북 전체를 감싸고 용 그림 단청을 하고 나니 법고가 아름다운 소리를 되찾았다. 또한 명부전에서 그동안 도축된 동물을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그해 하반기에 범종각을 세우기 위해서 운고각을 해체하여 보제루 오른쪽으로 옮겼다. 종삼 주지 스님이 2010년 10월 21일에는 운고각 해체 신축불사 중건을 하여 2012년 11월 23일 새로운 법고를 조성하기 위해 법고를 떼어 창고에 보관했으며 새로운 법고가 커서 운고각 안에서 조립 작업을 하기 시작하여 2020년 12월 18일에 완성했다. 신 화엄법고 봉안 및 시타식을 2020년 12월 19일 오전 10시에 봉행했다. 시타에는 진조스님이 화엄법고를 치는 것을 시작해서 학인 스님이 돌아가며 쳤다. 화엄법고는 길이 8자(2m 40cm) 지름 7자(2m 1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