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이 성당에서 예기치 않게 만난 것은 신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이 성당과 연도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녀가 소란스러운 노래 속에서 며칠을 보냈던 청년 노동대와 비물질적 유사성을 지녔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미사는 마치 배반당한 세계처럼 느닷없이, 음성적으로 그녀에게 나타났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날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아름다움이란 박해자들이 실수로 어딘가에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만이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노동절 행렬의 배경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배경의 화폭을 찢어야만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쿤데라, 민음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노래야그 꼭지에 3번째 이야기다. 한 꼭지가 지나면 '다음은 누구를 만날까?'라는 부담 섞인 셀레임이 찾아온다. 지난 금요일 저녁, 서울 신당동녹음실(한국가톨릭문화원 녹음실)에서 한 친구를 만난다. 2시간 가량 음악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하고 돌아온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생활성가 가수 권성일 미카엘이다.
그와 지난 일, 지금 일,앞으로 할 일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마치고 나온다. 신당동떡볶이 골목을 지난다. 그리고 한편의 소설이 흘러 지나간다. 데레사와 사비나 틈새에서 사랑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삶을 살아가는 토마스가 생각난다. 삶은 늘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무거움과 가벼움을 요구한다.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에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언제나 그렇듯이 그와 한 이야기를 대화체 그대로 올려본다.
“성일아, 안녕! 잘 지냈지. 고맙다. 이렇게 만나네. 만난다 만난다 하면서 언제나 말뿐이었는데, 무슨 녹음이야?” “형. 반가워. 형도 잘 지냈지? 이번 캠프주제곡이야. 살레시오 청소년캠프…아침부터 노래 녹음하고 이제 믹싱하는 중이야.” “기철이 석희도 고생이 많네. 준익이, 소영이 목소리가 나네. 노래 좋다. 역시 성일이 니가 CCM친구들을 잘 챙기는 구나. 내가 부끄럽네. 나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내가 뭘..순이랑 지수가 다했지 뭐. 형 조그만 기다려, 한시간이면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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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일 생활성가 가수.(사진/신상훈) | 신당동 녹음실에서, "가자 갈릴래아로"
녹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권성일 미카엘 형제가 디렉팅을 한다. 2011년도 살레시오 청소년갬프 주제곡인 ‘와서 보아라’라는 주제곡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반복은 곧 내 것이 된다. 따라 부른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와서 보아라!. 살다보면 누군가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한다. 둘러치지 않는 내가 그에게 얘기한다. 와서 봐! 거기서 듣지만 말고…녹음이 어느정도 끝나가고 있다. 밥을 시킨다. 4명이지만 5인분을 시킨다. 성일이는 혼자 2인분을 먹는다.
“성일아, 요즘도 시국미사 다녀?” “응. 며칠 전엔 여주성당에 갔다 왔고, 그전엔 김해 활천성당에도 다녀왔지. 형은 요즘 계속 여의도미사 가고?” “응. 성일아. 너 첫앨범이 2000년에 나왔나? ‘가자 갈릴래아로’.” “그지. 2000년. 근데 형은, 지난 앨범이야기는 무슨, 3집앨범 얘기를 하지 그래?” “흐흐, 이 꼭지는 앨범 홍보하는 곳이 아냐. 지난 이야기도 듣고, 성가에 대한 뒷말이라던가, 혹은 노래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들어보는 꼭지야. 타이틀 곡이 ‘가자 갈릴래아로’잖아. 그 노래 이야기 좀 해줘라”
“그 노래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구절을 가지고 만든 노래야. 형도 알겠지만, 갈릴래아라고 하면, 척박한 땅, 가난한 땅, 소외된 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잖아. 요즘 사람들을 보면, 혹은 교회를 보면, 병자와 약자를 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힘있는 자 혹은 가진 자 편에 서 있잖아. 그런걸 꼬집은 노래야. 교회가 해야 할 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말하고 싶었지” “그렇구나. 먹고살기 힘든 거 뻔할 텐데, 어떻게 하다가 가톨릭CCM판에 들어왔어? 그리고 첫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나야 평범한 주일학교 교사였지. 다만 노래를 좋아할 뿐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교구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지내가 보니까, 노래도 만들게 되고,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그러니까, 1998년도 서울교구에서 98창작생활성가제라는 대회를 열었어. 그리고 내가 곡을 냈는데, 그게 대상을 탓지. ‘더불어 메리크리스마스’. 그때 그 노래 대박 났었어. 교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밖에 액션송도 하게 되고, 군종교구에서 군인성가 앨범작업도 하게 되다보니 그리 됐어.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서울 성북동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성가대 지휘자가 상옥이형이였어. 그때 상옥이형이 평화방송에서 <사노찬노-사랑의 노래 찬미의 노래>를 진행하고 있었지. 그런 인연 때문에 방송도 하게 됐지. 방송 꼭지 중에 ‘노래로 떠나는 복음 여행’이라는 코너를 내가 맞게 됐고, 그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지. 그러다가 1999년 평화방송 제1회 PBC창작생활성가제에서 라우라떼가 부른 ‘이젠’이라는 곡으로 상도 받고, 그게 인연이 되어, 바오로딸에서 앨범을 만들 생각이 없느냐? 라고 묻길래 바로 대답했지. ‘네’라고. 그렇게 시작된 거야.”
권성일 미카엘의 말을 들으면서, 12년전 인천 부평4동에서 정기적으로 하던, 성가 열린음악회가 생각난다. 現한국가톨릭문화원의 전신인 생활음악연구소에서 하던 음악회다. 미카엘은 항상 함께 노래하는 이였다. 땀 흘리며 음향을 설치하기도 하고, 밥은 좋아하지만, 술은 못마시는 친구. 너털너털한 웃음을 가진 친구. 오늘처럼 길게 말을 섞는 것도 99년 이후로 처음이다.
"그냥 느껴, 당연히 사회참여 해야 한다고"
“성일아, 몇 년전 3집도 나왔잖아. 2집과 3집 얘기도 좀 해줄래?” “형. 2집 앨범은 말하기도 싫어. 내 교만으로 만들어진 앨범이야. 초판 3000장 찍고, 다시는 찍지 않았지. 2집 만들 때, 내가 참 어리석었지.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따라올 줄 알았지. 그리고 좋아할 줄 알았지. 결과는 내 교만만 확인했고, 나뿐만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지 않았나 봐. 부끄러운 앨범이야. 교만으로 똘똘 뭉친 앨범. 그리고 3집은 신곡 6곡을 포함해서 몇 년 전에 나왔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하겠더라고. 그게 2집과 3집의 결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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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대한문 앞 종교인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권성일 미카엘 씨.(사진/고동주 기자) | “성일이 너가, 제도권 교회 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이라고 해야하나? 교회의 사회참여! 이것과 관련해서도 많은 일들을 하잖아. 특별한 계기가 있나? 쉽지 않을 텐데. 눈치도 보이고, 누군가에게 눈에 띄게 되면 밥줄도 끊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선 거야?” “형. 나라고 고민을 안 하겠어. 하지만, 그런 고민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그런 일, 즉 교회의 사회참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냥 느껴, 해야 한다고. 그래서 하는 거야. 어릴적부터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래. 삼촌과 삼촌친구와 함께 지냈거든. 그러면서 80년대 정치,사회적 문화를 일찍 맛본 거 같아.”
“지금 가톨릭에서 보면 너, 나, 정식이형.. 이렇게 셋이 이 바닥에 있잖아. 다른 친구들도 함께 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 “형. 이 바닥에 있는 친구들은 너무 수동적이야. 뭔가를 해야겠다라고 마음먹는 것에 서툴러. 오히려 불러주길 바라지.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이 바닥이 힘들잖아. 무섭고, 눈치도 보이고. 가장 큰 이유는 이 바닥의 세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지. 내적 신앙에만 전념하기도 어렵잖아. 사회참여.. 이것은 더욱 그들에게 다른 세계야.”
우린 흔히 정의, 진리, 신앙, 지식을 말한다. 아주 익숙하게 말한다. 하지만, 정의,진리,신앙,지식에 둘러싸인 배경 뒷편의 일들엔 관심이 없다. 아니, 뒷편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많다. 우리의 눈은 보이는 것만 만나게 된다, 스스로 의심과 분노를 품지 않는 한. 성일이와 나는 약 20분간 분노에 섞인 말로 다른 대화를 한다. 차마 이곳엔 적을 수가 없다. 내가 첫앨범에 관해 말한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한곡을 정해야해. 그리고 그곡을 설명해야 하는데. 난 너를 만나러 오면서, ‘가자 갈릴래아로’로 할까 정했는데, 너 생각은 어때? 다른 곡으로 할래?” 성일이는 약 2분간 고민한다. 그리고 말한다.
“형. ‘너 나를 사랑하느냐’로 하자! 그게 좋겠다.” “그래. 나도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21장은 내게 너무 많은 선물을 준 구절이야. 항상 지치고 힘들 때 혹은 떠나고 싶을 때, 이 구절을 생각하면 다시금 살게 해주는 힘이 있어. 분명. 1집 앨범 얘기도 해주고, 구체적으로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곡도 설명해줘”
“1집 앨범은, 아까 말했듯이, 사노찬노 꼭지에 있던 ‘노래로 떠나는 복음여행’에서 매주 한 곡씩 발표했던 노래들이야. 한곡 한곡 쌓이다 보니까 앨범을 만들 수 있었지. 나는 급하게 혹은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내가 기도의 노래로 만들게 되지. 1집곡들을 설명하자면, 타이틀 곡은 ‘내가 만난 그분’이야. 1998년도 주님수난성지주일 때 만든 노래야. 그림을 그렸지. 군중속에 예수가 있고, 예수를 바라보는 군중 속에 내가 있지. 그런 걸 노래하고 싶었어. 군인들이 아주 좋아해. 1집 앨범에 ‘진리를 따라’와 ‘그분께로 한걸음씩’만 빼고 내가 다 만들었어. 기도의 노래로. 그 앨범에는 묵상의 노래인 ‘십자가’도 있고, 대희년 가톨릭 청소년 캠프 주제가인 ‘새하늘 새땅’도 있고, 삶 속에서 느끼는 것을 표현한, ‘친구에게’ ‘약속’이라는 곡도 있어. 이 두 곡은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불러.”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요한,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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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ntree a Jerusallem 15c | 요한복음 21장은 많은 이들에게 부끄러움과 힘을 주는 내용이 있다. 나도 21장을 내용으로 만든 노래가 있다. 오늘은 권성일 미카엘 형제가 만든 노래를 들어본다.
“형.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하잖아. 그리고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를 처음 만난 그곳에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잖아. 그리고 묻잖아.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반이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잖아. 오히려 양을 맡기고 교회의 반석으로 삼고. 베드로를 보면 나도 그와 같이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성서에서는 세 번의 사랑을 그냥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지만, 히브리어로 된 성경에서는 사랑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 첫번째 두번째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묻고, 마지막 세번째 사랑은 필리아적인 사랑으로 묻지. 예수님은 그렇게 물으시지. ‘베드로야, 너가 나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하느냐?’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가 아니잖아. 정직하게 대답하지.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필리아적으로 사랑합니다’. 형. 난 이 구절이 너무 맘에 들어. 자신의 한계, 사랑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야. 아가페는 절대자 혹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표현되고, 필리아는 친구 혹은 이성을 가진 사랑으로 표현 되잖아. 베드로는 예수처럼 살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짐을 하지. 그래서 이 구절이 너무 좋아.”
성일이가 말하는 동안, 난 동시에 두가지를 생각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절대와 상대, 하늘과 땅, 고집과 배려, 묶임과 풀어헤침, HEAVEN과 SKY, 존레논과 폴메카트니…그리고 내가 묻는다. 다른 주제를..
찬양사도직(?), "밥 왔다. 밥 먹자. 잘 먹을게"
“성일아. 우리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한국가톨릭찬양사도협의회’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잖아. 그곳에서 일반 성가가수를 ‘찬양사도’라고 부르는데, 찬양사도라는 말, 너무 무겁지 않냐? 사도라는 말에는 ‘죽음을 각오하고’라는 말도 숨어 있잖아.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으로 비유하자면, 아가페와 필리아로 바꿀 수도 있고, 세상교회 속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는데, 굳이 무거운 십자가를 진 것과 같이, 찬양사도라는 말을 쓰는 것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 구절에 그런 말이 나오거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나는 이 말을 살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하거든, 사람이 진지할수록 혹은 열정이 가득찰수록 그 뒤에 따르는 위험요소도 많거든. ‘찬양사도’와 ‘성가가수’라는 이름은, 같은 뜻 다른 소리지만, 그런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 “맞아. 형. 그런 게 무서운 거야. 진리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 때도 많아. 우리 사도단도 그런 경우가 많아. 반성해야지. 밥 왔다. 밥 먹자. 잘 먹을게..”
늘 감사하다. 권성일 미카엘을 만나고 오는 길은 감사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알게 되면서 많은 이들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 감사하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얼굴 뿐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다. 그래서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비가 많이 온다.
그깟 이름과 열정은 나를 올가미 속에 묻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삶은 늘 내게 가볍게 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과 나는, 내게 무겁게 살라고 한다. 가볍고 무거운 것.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린 늘 이것 때문에 머리와 가슴이 터진다. 그리고 애써 감추기 위해, 무표정한 얼굴로 바꾼다. 때론 내 열정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내게 더 큰 상처로 온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듯이,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인지, 내이름과 내열정으로 무덤을 파는 자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멜론으로 권성일 미카엘이 부른 ‘너 나를 사랑하느냐’를 듣고 집으로 온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 권성일
너 나를 사랑하느냐 너 나를 사랑하느냐 너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내게 고백할 수 있느냐 나를 따르는 길은 정말 힘든 가시밭 길이다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갔던 고난의 길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참 사랑의 길이었다 나를 섬기듯 이웃을 섬기고 옳은 일에 목숨을 바쳐라 힘든 이 세상 나만을 믿고 나를 따라 주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웃음 띤 얼굴로 내일을 살련다. 하지만, 늘 다짐 뿐이다. 밀란쿤데라가 내게 얘기한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권성일 1집 <가자! 갈릴래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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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일 미카엘
-1998년 제2회 청년창작생활성가경연대회 대상 (더불어 메리크리스마스) -2000년 첫앨범 ‘가자, 갈릴래아로’ 발매 -2003년 평화방송 ‘사노찬노’ 진행 -2005년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 -2010년 3집 ‘노래로 떠나는 복음여행’ 발매
공연,피정,음반문의 Tel : 010-5399-7626 E-mail : omichael@hanmail.net
권성일 미카엘을 만날 수 있는 곳 서울 목5동성당 주일 9시 미사 서울 성현동성당 수요미사 10시 & 주일 6시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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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 현재 한국가톨릭문화원 음악팀장으로 활동. 서강대 철학과 졸업. SBS 효과실 음악감독(1998~98년). '신상옥과 형제들' 창단멤버(드럼, 1992년). 연극 및 무용극 음악작곡. 2011년 안중근 기념 연극작품 <그대의 봄> 음악감독 및 작곡. 무용극 <그대 흘러라 기쁨의 강물이 되라> 음악조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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