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럽 출장에서 스위스 연방시민보호청과의 미팅이 가능하게 되어, 수도 베른 인근에서 핵화생방 대피시설을 안내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습니다. 게다가 하루묵은 호텔 지하에도 핵화생방 대피시설이 있었는데 덕분에 하루동안 4개의 대피시설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 지하의 주차장형 대피시설
스위스 민방위 대피시설의 입구는 모두 방폭문을 통해 보호됩니다.
소형 방폭문은 모두 규격화되어 있어 제조사와 관계없이 동일한 규격을 가지고 있으며, 20cm 의 철근콘크리트로 핵폭발로 인한 3Bar의 과압을 견딜 수 있습니다.
작지않은 규모의 대피시설이기에 방폭문이 한개가 아닌 두개로 이루어져 Airlock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스위스 민방위 대피시설은 화생방 가스입자여과기를 통해 화생방전에 대비합니다.
주차장은 불특정 다수가 통행하는 공간이었기에, 화생방 가스입자여과기의 훼손을 막기위해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스위스의 화생방가스입자여과기 정화통은 모두 철제캐니스터에 보관되고, 완전한 밀봉상태이기에 수십년간 성능을 유지하며 보관할 수 있습니다.
민간 대피시설용 소형 화생방 가스여과기의 경우, 유사시 송풍기와 정화통을 두꺼운 고무 호스로 연결해 작동시키게 됩니다.
전기가 끊기거나 EMP로 작동불능에 되었을때는, 핸들을 연결하여 수동으로 송풍기를 돌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피공간이 아닌 지하부분은 방폭문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은 차량이 들어가야 하는 특성상 크고 무거운 방폭문도도 필요합니다.
주차장의 방폭문으로는 슬라이드형 방폭문도 많이 사용되지만, 해당 건물은 슬라이드형 방폭문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기에 바깥 여닫이형 방폭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아쉬운점은 스위스는 법적으로 대피시설을 즉시 사용가능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고 5일이라는 기간 내에만 사용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 호텔의 경우 방폭문 설치시 발생하는 턱으로 인한 통행의 불편을 막기위해 바닥을 경사진 합판으로 덮어버렸습니다. 이로인해 방폭문은 이 합판을 제거하기 전까진 닫을 수 없이 열린채로 고정된 상황입니다.
만약 갑작스러운 전쟁이나 재난으로 급하게 대피해야 하는경우에는 방폭문을 닫을 수 없어 대피시설이 무용지물인 것이죠.
유사시 닫혀야 하는 비상탈출구 방폭문도 공조덕트가 지나가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닫는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스위스 대피시설들은 표시의 의무가 없는지 제가 본 대피시설들은 외부에 눈에띄는 표시가 없었습니다.
시민권자들은 각각 특정 대피시설에 할당되어 있기에 굳이 표시할 필요가 없어서인듯 합니다.
지휘 대피시설(KP), 준비 대피시설(BSA), 공공 대피시설
스위스 연방시민보호청 박사님과의 미팅을 위해 방문한 대피시설의 전경입니다.
이곳은 특이하게 3가지(지휘, 준비, 공공) 대피시설이 한곳에 모여있어 여러 대피시설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시설은 기밀시설이 아니며, 연방시민보호청 으로부터 사진공개에 문제가 없는곳임을 확인받고 올립니다.
스위스의 민방위 대피시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지휘 대피시설 (Kommandoposten; KP)
준비 대피시설 (Bereitstellungsanlagen; BSA)
의료 대피시설 (Geschützte Sanitätsstellen, Geschützte Spitäler)
문화재 보호시설 (Kulturgüterschutzräume)
민간 대피시설 (Private Schutzräume)
공공 대피시설 (Öffentliche Schutzräume)
지휘 대피시설(KP)는 스위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용하는 대피시설로 유사시 지휘에 사용됩니다.
준비 대피시설(BSA)은 민방위 물자를 보관하고, 민방위 대원들이 사용합니다.
민간 대피시설은 대부분의 대피시설을 차지하며 주택이나 상업시설 지하에 소규모~중간규모로 지어져 민간인을 수용합니다.
공공 대피시설은 민간 대피시설에 할당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수용합니다. 본인 주택이 오래된 주택이라 대피시설이 없거나, 대피시설을 지을 수 없는 환경이거나, 공공대피시설에 빈자리가 있어 대피시설을 지을 필요가 없었던 주민들이 공공대피시설에 할당됩니다.
인구가 900만명의 스위스에서는 800만명을 민간 대피시설에 수용할 수 있고, 100만명을 공공 대피시설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대피시설 입구로 들어가면 왼쪽이 준비 대피시설(BSA)로 차량도 들어갈 수 있도록 큰 방폭문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지휘 대피시설(KP) 입니다.
Airlock을 위한 이중 방폭문과, 화생방 오염물을 제독하기 위한 샤워실이 있습니다.
오염통제구역은 추가적인 설비, 유지보수, 관리인원,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스위스의 민간, 공공 대피시설에는 오염통제구역이 없지만, 지휘 대피시설은 화생방 상황에서도 수시로 출입할 필요가 있기에 오염통제구역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문밖에 파편이 쌓여 문이 잘 열리지 않을때 강제로 문을 개방할때 사용하는 공구와, 공기가 한쪽 방향으로 빠져나가게 제어하면서 폭발압력의 침투를 막는 방폭밸브가 있습니다.
방폭문은 기밀성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문틀에 높은 턱이 발생하는데, 유사시 바로 치울 수 있는 경사로로 이를 해결했습니다. 턱에 걸려 넘어지는것도 방지할 수 있고, 휠체어로 통행하는데에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회의실에서 박사님이 스위스의 대피시설에 대해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지휘 대피시설은 많은 인원이 원활히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민간인을 위한 대피시설과 다르게 식당, 주방, 샤워실, 세탁실 등 많은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방도 주기적으로 훈련시에 사용되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민간 대피시설과 공공 대피시설은 대피할 시민들이 알아서 식량을 챙겨와야 하지만, 지휘 대피시설의 인원들에게는 식량이 제공됩니다.
대피시설에는 EMP에도 견딜 수 있는 충전식 손전등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스위스 대피시설은 핵공격을 상정하여 설계되었으므로 핵폭발로 인한 EMP또한 방호할 수 있도록 전기인입부, 발전기, 환기설비 등에 EMP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민간 대피시설의 경우 건식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여기는 수세식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MP필터와 비상발전기가 있지만, 전원을 상실한 경우에는 좌측 송풍기에 핸들을 꽂아 수동으로 돌려서도 환기가 가능합니다.
준비 대피시설은 민방위 물자를 보관하고, 민방위 대원들을 위한 보호구, 의복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민방위 물자는 각종 전동공구류와 펌프, 조명, 삽, 곡괭이, 천막, 로프 등이 있었습니다.
물자가 어떻게 보관되어 있어야 하는지 사진을 찍어 붙여두었습니다.
스위스의 모든 대피시설에는 수용인원에 맞는 화장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민간 대피시설과 공공 대피시설에는 건식변기가 준비됩니다.
건식변기는 통을 포갤 수 있어 역시 좁은공간에 많은수량을 비축할 수 있습니다.
건식변기에 비닐을 깔고 용변을 본 후, 비닐을 묶은 후, 건식변기 안에 밀봉할 수 있게 실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용법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sichersatt.ch/hygiene-erste-hilfe/hygiene/trocken-klosett-bis-8-personen
준비 대피시설과 공공 대피시설에는 민간 대피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화생방 가스입자여과기가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평시 환기에는 위 사진과 같은 상태로 사용하고, 화생방 상황시 고무호스를 가스입자 정화통에 연결하여 사용합니다.
전력을 공급받아 돌아가지만 정전시 우측에 있는 핸들을 꽂아 수동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풍량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화통이 장착되면 공기저항이 생겨 좀더 힘들겠죠.
그외에 프리필터, 방폭밸브, 결로수받이, 기계식 풍량계, 비상조명 등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 가격은 저렴한(스위스 물가를 고려하면) 우수한 제품입니다.
일반적인 방폭문은 방폭성능을 위해 바깥여닫이로 만들지만, 파편이 밖에 쌓이면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상탈출구용 방폭문은 안여닫이로 만들어 바깥에 파편이 쌓여도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안여닫이이기 때문에 방폭성능에서는 불리하지만, 크기가 작기 때문에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게 만드는것이 가능합니다.
비상탈출구를 통과하면 사다리가 있고, 이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글, 사진 : 이상준(탄소중독화성인)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정말 귀중한 자료네요 덕분에 좋은 정보얻었습니다 ㅎ
큰돈들여 멀리 가신김에 좀더 자료 모아서 유튜브나 책으로 정리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영상을 찍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바쁘신분을 두고 너무 시간을 뺏을 수 없어서 사진만 찍었네요.
호텔에서는 미리 대피시설이 있는걸 알았으면 좋았겠으나 다음 일정 직전에 발견하여....
이번 출장에서 얻은 정보들을 포함하여 국가별 대피시설의 비교 논문이 현재 게재가 되어 곧 출판될 예정입니다.
정성이 느껴지는 체험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작성한 게시글 보는게 정말 드문 일인데요. 오랜만에 감동하며 잘 봤어요. 내용은 두 말 할 것 없이 훌륭하고요. 감사합니다~^^*
CBRN 방호 대피소 문제는 일반인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나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과거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시범적으로 서울 송파구민회관 지하강당을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화생방 방호시설로 개조하는데 1억 2000만 원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흘러 물가와 건축비가 상승해서 현재는 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북한의 실질적 핵 위협에 대비하려면, 이제는 민간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핵 벙커 설치와 기존 "유리 대피소"란 오명을 벗을려면 대대적인 개보수가 절실한 시점인 듯 싶네요.
격려의 덧글 감사합니다~
거기 비용이 1억 2천밖에 안들었군요 기회가 되면 방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대피시설 확충이 되면 좋겠네요. 일단은 개개인이 방독면을 준비할수밖에 없군요.
와 웬만한 재난은 끄덕없이 버틸것 같은 견고함이 느껴집니다.. ㄷㄷ
그렇습니다 너무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