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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로의 노무사 신쌍식의 중앙노동위원회 농협의 승소한 내용
< 50 여명의 농협 임시직 포함 용원들의 허위 진술서 대법원에 보관중이니 그 엄청난 사실을 조사케 도와주시옵고,,,
세상에 공개를 도와주시며,
언론 매체 티브이등 세상에 공개를 요청
식목일 포함 아파서 병원 1주간 입원을 무단결근 복무자세 불량 해고사유와 무능력을 천추의 한이니 조사해 주시옵고...
동아일보 여기자들께서는 이 한많은
여자이기에 격어야했던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서울서 발령한
이 기막힌 사건을 좀 조사하신후에
최연희 의원의 사건을 논해주십시요.
수 많은 사람의 한을...
죽음의 나날을 손끝하나 못 움직이며,
죽음의 고통에 있는 이 사건을
그 한 많은 사연들을 어찌 다 여쭈오리이까......!!!!!!!!!!!!!
죽음으로라야 만이....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수 있을지....
그 방법을 택해야만 가능이 할지요....
사람이 사는 땅에서 어찌
이런일을 겪고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요...
이 땅이 어찌!!!!!!!!!!
한 의원의 성희롱이라며 난리인데...
목숨을 걸고있는 이 사건은...
이 한은 어찌해야 하는지요
가슴이 쓰려 한순간도 숨을 쉴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의원님들,,,
그렇게도 홈피 자유발언대에 올렸건만....
죽음의 사건은 외면하더니만
동아일보여기자사건....
힘있는 자의 그 ㅇㅣㄹ은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어린자식 4세 7세 8세 둔 농협 여직원 서울서 강원태백 탄광촌 발령과 불법 해고는 거들떠떠도,,,
관심도,,,,
이 기막힌 사회,,,,
돈 있고 힘있고 권력있는 자의 사건은....
온 나라가 난리법썩이고,
힘없는 주부 농협직원의 부당해고는 관심이 없으니
이 기막힌 현실에서...
너무나 억울한 저의사연을 읽어주십시오
저의 이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을 꼭 읽어주십시요.
저는 농협에서 20여년을 착실이 근무하다가 너무도 억울하게 해고당한 김영순 입니다.
해고사유는 직무수행능력부족과 근무태도불량등의 사유였습니다.
저의 어처구니 없는 해고사건은 광명시 철산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철산지점의 한상무차장이 젊은여직원들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듣기 민망한 농담을 자주하였고 이를 본 창구고객들마져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철산지점 노조분회장역임 본인) 여직원박이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그 후 박홍순은 성희롤 가해 차장의 부친을 만나 항의 했고 박은 노동조합에 고발하여 해고의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박찬혁이 법정진술함
이의 제기후 한상무차장은 그러한 성희롱행위를 사과하고 개선하지는 안 하고 그 항의를 괘씸히 여겨 저와 선임여직원에게 앙심을 품고 엉뚱한 시비를 걸고 후배여직원과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후배여직원이 우리와 싸우게 만들고
다른 상사들이 두 여직원을 불량한 직원으로 여기도록 만들어 우리가 자기위주로만 얘기를 하고 상사들에게 절대불복종 한다고 평가하여 경기지역에서만 20년을 근무한 저는 멀리 연고 하나 없는 강원도 태백시지부 철암 출장소로 전출시켜 버렸고 광명시에서만 17년을 근무한 항의한 다른 선임여직원은 전라남도 해남으로 전출시켰습니다.
저를 2년동안에 강원도 태백으로 보냈다가 다시 성남 효자촌으로 발령을 내더니 또다시 파주하나로클럽으로 보내서 3급 대리대우를 파주 하나로클럽에서 식권파는 업무를 담당시키고 강제로 해고시켜버린 것입니다.
저는 1976년에 입사하여 20여년을 농협을 위해 일했고 1992년도에는 철산지점 노조분회장이었으며 1994년에는 전국여직원연합회 간사를 역임했습니다.제 근무사안을 모두 말씀드리지 안 해도 20년을 농협에 아무 탈없이 근무한 제가 기막히게도 어느날 갑자기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해졌고 근무태도가 불량해졌다니 기맥 힐 노릇 아니겠습니까 ?
시부모모시고 삼남매가 있는 제가 더욱 괴롭고 미쳐버릴 심정은 법원이 농협이 자의대로 거짓으로 만든 삼척동자도 웃을 해고사유인 직무수행능력부족과 근무태도 불량을 인정해버린 것입니다.
위 두가지 해고사유의 평가는 저를 강원도 태백으로 전출시킨 이후의 인사고과로 평가한 것입니다.즉 성희롱의 발단이 된 지점에서 저를 왕따시키고 나쁜소문을 내고 제가 발령받은 지점에 연락하여 저를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 저를 해고시켜 버린 흉악한 음모였습니다.
20년이나 열심히 일해온 저를 노무사를 시켜 직원 50명에게 제가 불량하다는 진술서를 쓰게 만들어 그 허위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한 농협이라는 곳이 정상적인 직장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김영순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그만두기를 바랍니다,등 이 모든 허위진술들은 해고후 정신적 충격으로 신체적인 질병으로 경남밀양고향서 요양하느라 나중 고법원 해고사유유 사건내용패소 사유를 열람해보니 이런 사유로, 변호사는 시골저에게 사실확인서 확인을 도와주고 알렸어야지 박주현 변호사(열린당) 강종쾌 변호사 500만원 받고 뭘 했는지.
그 진술서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진술인들을 만나 얘기 했더니 모두 강요에 의해서 작성했다고 합니다.그리고 법원은 그 허위진술서를 저의 해고사유 인정 증빙으로 채택했으니 얼마나 미쳐버릴 일입니까.
저는 강원도 태백에서 성남 효자촌으로 부임하여 근무하는데 그곳 차장 유운규가 강원도까지 쫒겨난 주제에 말이 많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여 어쩔 수 없이 항의 하니 20년이상 근무한 제가 업무지식이나 업무처리능력이 신규직원보다 못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병원진료중)
저의 고성과 싸나움이 직원들이 견디기 힘든 실정이라고 허위로 몰아세워 저에 대한 인신공격문서인 직무수행능력 부족직원에 대한 전출요청서를 만들어 농협 경기지역본부장에게 제출하여 효자촌지점에 발령난지 7개월도 안 되는 시점에 다시 파주 하나로클럽 식권파는 자리로 전출명령을 냈습니다.
하나로클럽으로 전출명령이 날 때에는 저는 연고도 없는 머나먼 강원도로 출퇴근하는 고통을 겪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자궁경부미란 질병을 얻었고 수술을 해야만 하여 수술을 받기로 하였고 수술날짜가 예약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연차 월차를 포함한 휴가를 내고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부임하면 도저히 근무가 불가능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받고 완치되기도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당시 제가 사는 분당에서 삼 남매인 주부가 왕복 5시간이나 소요되는 파주로 부임하여 통근을 하였습니다.
치료가 덜된 저는 근무 중 점심시간을포함해 디스크 물리치료, 치료를 위해서 외출부에 기재하고 31번 병원 행 외출을 하였습니다.지병을 동료나 상사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은 직원들이 양해하였고 부족한 업무는 시간외 근무를 하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발병전 1회의 외출 결근 무)
농협은 이를 해고의 빌미로 하기 위해 가만이 보고 있다가 주의촉구 조치 한번 안 하고 저를 대기발령냈고 대기발령 후 3개월간 보직을 부여 안 하면 직권면직되는 농협규정을 빌미삼아 저를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2년동안 이렇게 저를 부당히 전출시키고도 부족하여 신병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 것을 치료를 도와주기는 커녕 근무태도 불량이라고 하였고 20년동안 일 할 땐 업무능력 부족이란 말 한번 들어보지 못했는데 업무능력부족이라고 대기발령을 내고 나서 해고시켜버렸으니 이 기막힌 사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
저는 너무나 억울하고 피를 토하고 죽을 심경이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제기 하였으나 악랄한 농협의 허위 진술과 허위 증거제출에 의해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여직원들에게 차장이 성희롱을 하여 목격한 고객들이 민망하다고 까지 하여서 수 차례 시정권유 하였으나 도리어 차장차장은 고참 여직원들과 어린 여직원들을 이간질시켰고 심지어 선배 여직원들의 칫솔을 화장실 휴지통에 버리고 고참여직원에게 수시로 계이동을 하고
동료여직원이 아파서 웃사람에게 전화하고 휴가신청하였는데 차장지시에 의하여 결근 처리해버리고 이런 부당함을 동료가 노동조합에 전화하여 자문하자 4세, 7세, 8세의 아이 셋과 노령 시부모를 모신 저는 멀리 강원,태백 , 철암 탄광촌으로 전출시키고 또 한 사람은 전남 해남으로 전출시켰습니다.
저는 1년 후 자택인 광명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분당으로 다시 발령되었고 성희롱당시 인사고과가 10명중 10위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제가 분당으로 올때 강원도에서 인사고과가 17명중 8등, 16명중 6등등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저를 왕따시켜 파주 하나클럽으로 보내고 저는 아픈몸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식당 식권발급, 화장실청소, 식당바닥청소등을 할 때 총무계직원 서은호는 명예퇴직금 받고 그만 두라고 수차례 강요했습니다.
3급 은행대리대우가 점심시간 주지 않아 책상에서 점심시간에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팔고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팔고 하면서 왕복6시간을 출퇴근하다가 디스크가 발병, 중식시간을 이용하여 병원진료를 하였음에도 무단외출, 무단조퇴처리를 해버렸고 입원치료 자료를 제출하였는데도 무단결근, 근무태도불량, 무능력등으로 해고시켰습니다.
경기최초의 여성 노조분회장 겸대의원으로 선출선출되었고 97년도에 강원도 태백에서 분당으로 발령받아 노조분회장에 선출되었으나 이택열 경기지부장 방해로 분회장자리도 박탈당했습니다.
저에게 시간외수당을 전혀 지하지 안 했고 유치원보조비를 주지 안 했으며 건강진단 미실시등 의 시정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오히려 김용우라는자가 탈의실에 저를 밀어넣고 밖에서 장승으로 못을박아 감금하였습니다.
당시 경기지부에서는 해고시키기 위하여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제가 지급을 요구하니 이효기장장이 말하길 일을 계속시키면 근로기준법에 저촉되고 시간외수당을 주어야 하는데 경기본부에서는 주지마라고 하니 일을 시킬 수 없다며 탈의실에 대기하라고 하던중 감금 당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문을 두들기니 한선화가 총무계에 가서 열쇠를 가져와서문을 열어주었습니다.이런 사실이 저는 너무도 비참한 심정입니다.
해고하기 위하여 남직원에게는 지급하는 월40여만원의 3개월동안 120여만원을 시간외수당을 저에게는 지급하지 안 했습니다.
파주클럽에서는 임시용역직원들 동원하여 김영순에 대한 사실확인서등 모두 50여장을 작성했는데 그 중에는 김영순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짓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또 식권의 양식이 변동된다 하여 신양식이 나올때까지 구양식을 재사용하기 위하여 기존일부인을 지우고 다시 찍은 것을 일부인을 남발하여 식당손님과 싸우고 야단이 났다는등 물의를 일으켰다고 몰았부쳤습니다
태백에서 아는 사람들, 그곳 새마을부녀회장, 약국사모님, 이웃식품점, 가게. 교회교인,가족과 친인척등 안집주인등등의 고객들에게 공제권유를 위하여 사은품 휴지를 전달하기 위해 휴지를 받아온 것을 회사측은 소송에서 휴지를 훔쳐갔다고 허위진술을 하였고 또 식당아줌마가 부침개를 아이들 먹으라고 조금 준 것을 식당에서 양념을 모조리 훔쳐가서 식당아줌마와 크게 싸웠다며 거짓진술을 하는등 말로는 표현못할 억을한 일이 너무 너무나 있습니다.
태백근무시 새벽3시에 강원태백의 철암역에 내려서 주인이 집을 비운 부산사람의 셋방에 도착해 연탄불도 꺼진 상태로 일여년을 모진고생을 하다가 신병을 얻어 지금까지도 병원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 겨울방학에 강원도까지 와서 퇴근시간에 엄마마중 왔다가 객장소파에 조금 앉은 것을 아이들이 은행업무를 못 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다는 해고사유도 있습니다 .
방학이 끝나 아이들을 집에 보낼 때는 태백 역 열차 칸에서 아이들 셋이 안 가려고 크게 소리내어 울면서 기차에서 뛰어 내릴려고 할 때는 차에 탄 열차손님들이 너무나 안타까워했으며 저는 가슴이 무너지면서 태백 역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멀리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돌아설 때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거웠는지 태백역사를 돌아 나와 버스를 타고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애써 눈물을 감추며 어느새 집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그 아린 이세상의 그 어떤 아픔도 비교가 안될 처참히 다가오는 아픈 통증들….
당시 막내는 어미가 강원도에 발령근무 중 우측 팔을 크게 다쳐 광명 성애병원에서 뼈를 대수술 한 후여서 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미 없이 어린것이 얼마나 수술실에서 힘들어 했을까를 생각하니 더욱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수십년간 써온 일기장을 들여다보면서 요즘도 그때를 생각하며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눈물을 짓곤 합니다.
지금도 이글을 쓰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자판기가 젖었습니다 .더 이상 작성 할 수가 없읍니다. 해고
후 실업수당도 복직을 위하여 전액을 다 받지도 않았습니다. 당분간 쓸 수 있는 의료보험혜택도 없습니다. 법정에 제출된 50여명의 사실확인서 내용을 보면 근무할 때는 그렇게 잘한다고 칭찬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허위진술들을 할 수가 있는지 정신적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우울증, 대인기피증, 가슴이 부들부들 떨림, 심한 두통 , 불면증 ,급격한 시력저하, 어지러움 ,복통 팔다리 통증 머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등 무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정신적 신체적 질병과 저는 8년간을 싸워왔습니다. 2005년 2월 현재는 늘 죽음을 생각합니다.
신쌍식 노무사는 대단한 사업수완가로 한강로에 사무실이 있는데 그 대단한 지식으로 농협이 소송에 이기도록 수많은 직원을 동원하여 회유와 강요와 허위로 사실확인서를 작성케 하고 변호사공증을 하였는데 나중에 진술서 작성직원들이 조직적으로 하라고 강요하여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하다 하였고 타점포로 발령 난 당시 안경호 철산지점장은 예금유치관계로 서울출장 왔을 때 광명 철산지점에 들려 미안하다며 저에게 김대리는 잘못이 없고 휩싸여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안경호지점장은 차장으로 갔다가 다면평가에 의하여 얼마 후 퇴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국여직원연합회에 군포시지부, 안양시지부, 안산시지부, 시흥시지부등의 간사였습니다.쌀 수입반대 서명운동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다니며 열심히 하여 농민신문에도 나오고, 잡지사에서는 원고청탁이 들어와, 글도 실으면서, 보람이 많았고,
입사 후 꽃꽂이를 조금 배워 사무실에 꽃 장식도 봉사하고 82년도에 국제꽃꽂이친선전에 몇 차례 출전하며 외국인들과 많은 것을 주고 받으며 KBS 제2 TV 꽃꽂이 관련방송의 현장에서 참여도 했으며 학교 협의회 감사로 위촉되어 재산세 예금등의 유치를 열심히 하고 또한 집에서 농약 없이 재배한 토마토등 채소를 고객들과 나누어 먹었고 토마토주스를 집에서 가져간 찻잔에 나누어 주기도하며 하며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고사유에는 저의 모든 것이 형편없는 인간쓰레기로 몰았습니다. 저의 근무처인 철산지점 근처 기업은행 장창수대리는 김영순대리 때문에 예금추유치가 안 된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고 그가 저의 점포에 들어서면 저의 담당창구가 빛이 반짝반짝 난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업무능력부족이고 근무태도 불량이라 기가 막힐 뿐입니다..
많은 할머니들께서 저를 위하여 손해를 보아가며 예금을 타 은행에서 해약하여 저에게 유치해 주셨으며 신원식점장은 너무나 열심히 한다며 특별히 휴가비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의 예금유치 내역을 보면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였는지는 알 수 있는데 해고사유가 능력부족 근무태도 불량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50여명의 허위진술서를 펼쳐보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암담하고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절망감 그 어떠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기가 막힌 현실 많지 않은 세상을 살았지만 이렇게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보기에는 처음 인 것같습니다 .
2002년8월 대법원 기각판결시 졸도하여 쓰러져서응급실에 실려갔으며, 입이 돌아가고 눈이 작아졌으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중풍 증세), 그 이후 엄청난 후유증에 허리디스크와 하루 종일 팔다리가 쑤시고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송과 고통에 시달려온 6년간의 이 한을 이 목숨 다하기 전에 한강으로 가기 전에 한번더 한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농협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활동한 저를 한 사람의 차장이 여직원 희롱을 하고 나서 분풀이 앙심을 품어 윗사람들을 세뇌하여 저의 인사고과를 영점으로 만들고 직원들과 이간질을 시키고
연고도 전혀 없는 지역으로 발령을 내고 비열한 덧을 놓고 있다가 직원치료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무단외출이라는 사유를 확대시켜서 20년 이상을 농협을 위하여 일해온 연로한 시부모와 삼 자녀를 둔 주부직원을 근무태도 불량 및 능력부족이라 무참히 해고 시켰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농협은 허위 증거들을 나열하여 개인이 도저히 승소 못하도록 교묘한 방법을 동원시켜 저를 패소 하도록 만들고
대법원 제3부 판결 사건(2000두9113)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2002.8.23) 판결문에는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무거운 금전적 부담을 억울하게 받아서 이제는 죽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이 사건은 금융권의 구조조정 차원과는 전혀 다른 한 여성의 인권문제 입니다.
저는 농협과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너무나 비열하여 계속하여 사실을 알리고 국가인권위원회등에 알려서 억울함을 호소하겠습니다. 사건이 악화된 뒤 지점에서 전화 한번 걸려고 하니 전화를 던져버리고 전화 줄을 떼어버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들부들 치가 떨려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협에서 부당해고 당한 김영순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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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 기막힌 사연을 꼭 좀 읽어 봐 주 십 시요. 저는 금융기관 20 여 년 근무 중 해고당한 김영순 입니다 .
해고사유: 경기지역 노조지부장의 분회 순방 비 횡령 건 동료직원이 분회 순방 비 내역을 공개하라 한 후, 이택열 지부장 이 대의원 대회에서 사과했고, 또한 젊은 여직원들에게 차장이 성희롱 사실을 고객들이 민망하다며 수 차례 사무실 여직
원에 시정 권유 한 후 차장의 부친을 동료여직원이 만나서 성희롱 사실과 상대적으로 고참 여 직원들과 어린 여직원들 을 이간질시키며 선배 여직원들의 칫솔을 화장실 휴지통에 버리는 등 상대적으로 차장은 고참여직원에게 잦은 계 이동 동료여직원 아파서 세 차례 용환득 에게 전화하고 휴가 신청하였는데, 차장지시에 의하여 결근 처리되고 동료가 노동조합에
고발하여 사건시작 이 에 시끄러워져 동료는 정치인들에게 사실 알려져 보복이 되고 두 여직원 강원, 태백 , 철 암 탄광촌발령 또한 진도 고향인데 전남 해남으로 발령 한 명은 4세,7세,8세 아이 셋 노령 시부모 모신 상태 6개월 후 동료는 인천 발령 본인은 1 년 후 자택인 광명에서 출퇴근이 안 되는 분당 발령. 총무부 과장 성희롱당시 인사고과 10명중 10위 모든
평가 자 최하위 강원에서 17명중 8등 16명중 6등 등 업적 평가받아 1 년 후 97 년 분당 발령 99 년 지방노동위원에 승소 76일간 수술진단서 제출 후 파주 하나클럽 발령 식당 식권발급 화장실 청소, 식당 바닥 청소. 중앙 노동 위원회 소송 중 경기 본부 총무 계 서 은 호 는 고액 명예 퇴직 금 받고 그만 두라고 수 차례 강요.
은행대리대우가 점심시간 주지 않아 책상에서 점심을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주고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주고 근무하다, 왕복6시간 출, 퇴근 디스크 발병 병원 중식시간포함 병원 진료를 무단 외출, 무단 조퇴 입원치료를 자료 제출하였는데 무단결근 해고 근무태도 불량 무능력해고 경기최초의 여성 노조 분 회장 겸 대의원 선출 97년 강원 다녀와 다시 분당서 노
조 분 회장 선출되었으나 , 이택열 경기지부장 방해로 분회 장 자리 박탈 70 여 시간 의 근무 3개월 시간 외 수당 전혀 지급치 않고 유치원보조비 2 년 간 건강진단 미실시 등 시정을 수 차례 요구했으나 오히려 김용우 는 탈의실에 밖에서 장승으로 못 을 박아 감금함. 당시 경기지부에서는 보복으로 해고시키기 위하여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제가 지급
을 요구하니 이효기 장장 은 일을 계속 시키면은 근로 기준법에 저촉이 되고 시키면 주어야 하고 경기 본부는 주지 말라하니 일을 시킬 수 없다며 탈의실에 대기하라 하여 감금하게 되었음 시간이 많이 흘러 문을 두들기니 한 선 화 가 총무 계에 가서 열쇠로 열어줌 해고하기 위하여 타 남 직원 지급하는 월40 여 만원의 시간 외 수당 미지급 등등 불법하다. 3 개월 동
안 시정권유 보복 월 70 여 시간 의 시간외 근무를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하여 일을 시킬 수 없다며 탈의실에 대기하라하여 이에 본인은 이 사실을 이택열 지부장에게 모든 부당 사유 조사 요청했으나 파주클럽 와서는 임시용역직원들 동원하여 김 영순 에 대한 사실 확인서 등을 모두 50여장을 작성했는데 그 중에는 김 영순 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또 식권의 양식이 바뀐다하여 양식이 나올 때까지 재사용하기 위하여 일 부인을 지우고 다시 두 번 찍은 것 을 중앙 노동 위원회 에서 일 부인을 남발하여 식당과 손님과 싸우고 야단이 났다 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태백에서는 모든 가족 친인척 그 곳 새마을 부녀 회장, 약국 사모 님, 이웃 식품점 가게. 교회 교인 안집 주인 등 모든 고객의 공제 권유 사은품 휴지를
받아온 것을 회사측 중 노 위 소송에서 휴지를 훔쳐 갔다. 또 식당아줌마 부침개 아이들 먹으라고 준 것 을 식당에 양념을 모조리 훔쳐가서 식당아줌마와 크게 싸웠다며 허위 진술을 하고 이 김씨는 지부장형님 배추를 은행사은품 비싸게 사들였다며 항의 할 때 저는 말렸으며 김 양이 약혼을 파혼하여 그 파혼 당사자가 은행 창구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할 때 김씨에게 만류를 권했을 때 욕설을 한자로서 행실이 안 좋은 행동으로 지부장을 고발하겠다고 했음.
새벽 3시에 강원 태백의 철 암 역 에 내려 주인이 집을 비운 부산 사람의 셋방에 연 탄 불 이 꺼진 상태로 일 여 년을 고생하다 신병을 얻어 지금까지도 병원진료를 받음
.
아이들 겨울 방학에 강원 도 까지 와서 퇴근시간에 엄마 마중 왔다가, 객 장 소파에 앉은 것을 아이들이 은행업무를 못 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다고 해고 사유. 방학이 끝나 집에 보낼 때는 태백 역 열차 칸에서 아이들 셋이 가지 않으려 고 크게 소리내어 울면서 차에서 뛰어 내릴 여고 하여 차에 탄 열차 손님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서 안타까워했으며, 저는 가슴 이 무너지며 태백 역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멀리 시야에서 멀어 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
질 때까지 바라보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거운지 역사를 휙 돌아 나와 버스에 몸을 실어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지 었 는 지 애써 눈물을 감추며 어느새 집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그 아린 이 세상의 그 어떤 아픔 도 비교가 안될.. 처참하리 만치 다가오는 아픈 통증.....당시 막내는 어미가 강원도에
발령 근무 중 우측 팔을 크게 다쳐 광명 성애 병 원에서 뼈 대수술을 한 후 여서 더 가슴이 미 어 졌습니다. 어미 없이 그 어린것이 얼마나 수술실에서 힘 들 어 했을까를 생각하니 더욱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수십 년 간 써온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서 요즘도 그때를 생각 하 면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눈물을 짓곤 합니다. 지금도 이 문서를 작성
하 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이 자판기가 젖었습니다 .더 이상 작성 할 수가 없습니다 .......................... 해 고 후 실업 수당도 복직을 위하여 전액을 다 받지 도 않았습니다. 당분간 쓸 수 있는 의료 보험 혜택 도 없었습니다.
법정 제출 50 여명의 사실 확인서 내용 .
임승강 은 본인예금 일본 고액 유치 금액 을 본인코드로 몰래 입력함.
태백 태 승전문 대 등록금 수납, 출장에 중식을 먹지도 않았는데, 급여에서 공제, 혼자 고액을 수납하게 함. 위험부담이 컸음. 총무 과장은 많은 일수의 중 식 비를 부당하게 공제함 .
남 직원 주는 숙소 장거리 근무 숙소 여직원 제공 안 함.
근무 할 때는 그렇게 잘한다고 칭찬해 놓고는, 이기기 위하여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허위 진술들을 할 수가 있는지 정신적 충격이 이루 말 할 수 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우울증, 대인 기피증,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며, 심한 두통 , 불면증 ,급격한 시력 저하, 어지러움 ,복통 팔다리 통증 머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 등 무려 열거 할 수 없는 수많은 정신적 신체적 질병과 8 년 간을 싸워왔습니다.
신쌍식 노무사의 대단한 사업수완 한강로에 사무실 있는걸 알고있는데 그 대단한 지식을 (소송에 이기기 위하여 수만은 사람을 동원 하 여 허위로 사실 확인 서를 작성 하 여 , 그것도 강요 하 여 작성함 .)배우고 매일 매일 따라 다니 면 서 개인적으로 수많은 것들을 개인 교습 받고 싶네요. 어떻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위로 사실 확인 서를 작성하게 하고 변호
사 공증을 하여 농협 사무실 비용으로 작성했으며 ,나중에 그 직원 들 은 조직적으로 하라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 하다함 안 경호 철산지점장은 예금유치관계 서울 출장 왔을 때 광명철산지점 들렸을 때 미안하다며 김 대리 는 잘못이 없다. 휩싸여서 그렇게 됐다. 설명을 해줌 . 안경호 지점장은 차장으로 갔다가 다 면 평가에 의하여 그 뒤 얼마 후 사직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사실은 모든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확인해 보지 않았음.
중앙 노동 위원회 소송 중 중부노동사무소 부족 임금중 시간 외 수당 만 120 여 만원 중 80만원만 받음. 아직도 3월분 시간외 수당 40 여 만원은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음.(디스크 분당 동국대 병원에 입원 관계 4월초에 [식목일]에 작성하지 못하여 아직 까지 못 받음 . 본인이 작성하지 않아도 근무한 사실이 있으면 지급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하지 않음.)
4월5일 식목일포함 입원 한 것을 무단 결근 사유 해고 저는 전국여직원연합회에 군포시지부, 안양시지부, 안산시지부, 시흥시지부 등 의 간사로 선출 됐는데 당시 회장은 노동조합 위원장이 "당신 같은 사람은 필요 없다"는 등 엄청난 많은 일들 겪은 후 노동조합을 뒤로하고 결성된 단체 그 후 그 단체는 유야 무야 지금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쌀 수입반대 서명운동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다니며 열심히 농협사업에 열심이라며 농민신문에도 나오고, 잡지 사 에서는 원고 청탁이
들어와, 글도 실으면서, 보람이 많았고, 입사 후 꽃꽂이를 조금 배워 사무실에 꽃 장식도 봉사하고 82년도에 국제 꽃꽂이 친선 전에 몇 차례 출전하며 외국인들과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제2 TV꽃꽂이 관련 내용에 현장도 갔으며 학교 협의회 감사로 위촉되어 재산세 예금 등 등 기관에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하고 또한 자택에서 농약 없이 재배한 토마토 등 채소를
고객들과 나눠먹으며 토마토 주스를 집에서 가져간 찻잔에 나누기도 하며 결혼 때는 고객들도 축하해 주시면서 어떻게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님을 주례로 모셨느냐며 결혼식 바이올린 축하연주 축시 낭독 연예인 친구 사회 모두들 큰 축하로 열심히 하라 격려 주셨고 그러나 해고사유 에는 모 든 면에서 형편없는 인간 쓰레기로 몰아 해고 철산지점의 근처
기업은행 장창수 대리는 김 영순 대리 때문에 예금 추진이 안된 다며 농담을 할 정도였고 현관에 들어서면 저의 담당 창구
\가 빛이 반짝반짝 난다고 했습니다. 많은 할머니들께서 손해 보아가며 예금을 타 은행 해약유치에 주셨으며 손해 보아 가며 해지 고액 입금 유치해 주시고 열심히 하고, 신원식 점장은 열심히 한다며 특별히 휴가비를 우리만 주기도 했습니다. 타 행 의 해약 유치 내역은 얼마나 열심히 하 엿 는 지를 고액 예금 유치 내역서 를 작성하여 안양시지부에 보냄. 지방 발령후 두 여직원 노동조합에서 해고시키고 해 하겠다함.
출퇴근 도 못하게 해야하며 박이 고발 후 보복발령 박은 점장 이 점장 실에 서 빳빳한 신권 만 원 짜리 몇 다발을 고객이 전하는 것을 보았다며 우리 발령 내었으니 폭로하자 공제추진비도 횡령했다며 폭로하자 하였으나 말렸음.
차장은 의자를 들어 욕설을 하며 손을 높이 쳐들어 위협을 가하여, 고소하자고 하였으나 이 또한 말리고 그 외에 수많은
드릴말씀이 많으나 차차 라면 몇 박스의 자료를 챙겨본 후 사정이 허락되면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50여명의 허위 진술서 펼쳐 보면 부들부들 떨립니다. 이렇게 비 참 하 고 암 담 하 고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절망감 그 어떠한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고, 기가 막히는 현실 많지 않은 세상을 살았지만 이렇게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보기에는 처음 인 것 같습니다 .
2002 년 8 월 대법원 기각 판결 시 졸도하여 쓰러 저서 입이 돌아가고 눈이 작아졌으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중풍 증세), 그 이후 엄청난 후유증에 허리디스크 하루종일 팔 다리가 쑤시고 수많은 질병에 시달립니다.
6 년 간 의 이 한을 이 목숨 다 하기 전에 한강에 가기 전에 한번 한을 풀어놓습니다.
철저히 조사 해 주 십 시요.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청와대접수번호 A0407-2958 금융감독원 민원번호 200476559 감사원 접수 번호 13465
자료 충분함 병원 진료사실 증빙 자료 있음.
20년 무사고 징계 한번 없고 무단 조퇴, 결근 ,외출無
복직 후 신변위협 경찰서 신변보호요청.
광명고객이 강원 발령 후 고액을 출장까지 다녀와 본인실적 유치 태백 지부장 열심히 한다면 회의 때마다 돋보인다고 칭찬. 같이 근무 할 때 직원들 모두 볼링 클럽 활동 등으로 업무 후 활력이 넘치고 아이들 셋을 사무실에 데리고 오라 하여 윷놀이도 같이 하고 떡 이랑 과일 등 음식도 싸서주고 볼링장도 아이들 셋을 다 데리고 직원모임에 회식도 시켜주고 어려
움 속에서도 보람이 많았으며 오직 돌아가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박현성 과장 예금유치 잘 한다며, 우먼파워 인쇄물표시 전 직원 귀감 되라고 회의 때마다 전달 . 광명시 근무 중 박이 김창석 여자관계 부인에게 폭로하여 농협이 시끄러워져 두 직원 지방 발령 전해줌 .
꽃꽂이 관계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 학술 세미나 초청 받음 타 직원 다 받고 퇴직한 명예퇴직금 일원 한푼 못 받고 불명예해고 윤 종일 과장 같이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인사고과에 0점 처리.
복직 후 주방에 대기하라 하고, 일을 주지 않고 ,전화 한번 쓰니 전화기를 뺏으며 땅바닥에 밀쳐서 넘어짐.
이에 신변에 위협을 느껴 파주경찰서 신고 경찰관 방문.
경기본부 스스로 사망한 부지부장 같이 근무한 직원들 중에 힘들었다는 사람 있음.
이택열 경기노조지부장 소송 때마다 수 차례 법정진술 노조지부장 자격으로 조합원 김 영 순은 해고해야 마땅 하 다고 진술함.
경기본부 총무 계 직원 들 같이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인사고과 0 점 처리 수많은 사람들이 노조지부장이라는 사람이 노동 조합원을 해고해야 마땅하다고 직접 법정진술하고 서 면으로 수 차례 법정에 해고해야 마땅하다고 제출한다 는 것은 모두들 하는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노동조합 조합원을 보호 해 야 할 간부가 더구나 두 번 씩 이나 노
동조합 분 회장과 대의원 에 선출 되 어 노동 조합을 위하여 일해 보겠다 는 사람을 법정에서 해고해 야 마땅하다 고 기가 막힌다고 하였음. 이 수많은 사실들을 그 때 그 때 는 알지 못 했는데 소송 패소 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 행정소송에서 박 주 현 변호사 , 고등법원에서 강종쾌 각각 선임 하 여 저는 신병을 얻어 친정에서 몇 년을 요양 하며 지내느라 그 때 그
때 확인 못함 . 법정 소송 후 패소 후 법정 자료를 열람해본 결과 알 수 있었음. 농협에서 지방 발령 이후에 있었던 일은 농협이라는 글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음. 부들부들 떨려서 의식 적으로 외면 하 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 소송을 챙기지 못하고 , 사찰에서 요양 하 는 형편으로 잊고 있었음 . 20 여
년 근무하며 해고 당 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기 때문에 절차만 밟았지,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음 . 대법원 기각 후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해고인지 법정 자료를 열람해 보니 어 처 구니 없게도 신병으로 병원 다닌 것을 당연히 외출 부에 기록 하 고 모든 절차를 거쳐 진료 , 입원 한 것을 모두 무단으로 처리 해 서 해고 당함 . 정신적 충격으로 경남 밀양 친정에서
심신을 요양하고 있을 때 법정출두 하지 못해 그때그때 사실이 아님을 전달치 못하고 대응치 못하여 엄청난 결과초래 감금까지 하고 또한 그 사실은 중부 노동사무소 전달되어 부족임금분과 함께 전달했기 때문에 감금 건 은 자동으로 검찰로 이첩되어 저의 임시거주지가 신병 요양하느라고 밀양으로 되어 있어 창원 지방 검찰청 밀양지청에서 조사 받게 되어있었
으나, 담당검사는 "서울사건을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요."불친절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끔 몰아 부쳐서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눈물을 머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음. 그렇게 하게 된 상황 은 그렇게 할 수 밖 에 없는 사연이 있었음 . 아직 까지도 정당 조사하지 않음. 중앙노동위서, 농협 상대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하며 고액 명퇴 금 받고 여기서 끝
내라 강요함. 수 십 년 간 모은 국내 해외 시트, 우표, 책자 등을 고객들과 서로 나누며 직장생활이 신바람 났었는데, 지금은 8년 동안을 고통 속에 있습니다. 엄청난 많은 내용을 사정이 허락하면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 분당 효자 촌 유윤규 차장은 강원 도 까지 갔다 왔으니 인사고 가 안 좋다며 잘 봐주겠다고 돈을 요구 함. 고객이 보는 앞에서 책상에 서류를 집어
던짐 . 동네 고객이 고액 유치하며 어음 추심 관계 부산에 본인의 친 인 척 까지 동원하여 업무에 도움 되 고, 고액 유치하였는데 유윤규 차장은 강원 도 까지 갔다온 주제에 설친다며 예금 유치를 방해 . 업무 추진하며 집에서 음식도 장만하여 오고 수박 큰 것을 2덩이 사서 점장, 차장 댁에 보내고 ,사무실에서 노조 분 회장 재 선출 되 었 다 고 수박 파티 함 . 얼마
후 분 회장 자리 박탈당함 . 이택열 지시에 의하여 정식 은행 대리 대우를 임시 농산물 판매 업무 직 에 배치 함 . 신병 관계로 진단서에 의해 병원 진료 다니니 , 보직을 주지 않고 책상을 치워 버림 .고액 손님들 이 식당으로 찾아와 예금 상담 함 . 수술 날자 예약 해 놓은 상태에서 파주 하나로 클럽으로 무능력 발령 . 효 자촌 떠난 다음 , 7세 아이가 엄마 발령 난
줄도 모르고 들리니 , 이 과장은 "이 새X야, 너희 엄마 여기 없다, 여기 뭐 하러 왔나?"며 호통을 쳐서 아이가 울면서 돌아옴 .
연락처: 02-933-0711 HP:018-235-7063
[이 글은 한강에 가 기전 생애 마지막 민원 을 호소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인터 신문고 번호:A0407-2958
이헌재 부 총리실 자유발언대:104281
감사원접수번호:13465
금융감독원번호:200476559
노동부, 대검찰청 등등 조사중에 있습니다. 6년간소송하며 민원 송부했으나 각 부처에서는 한 보따리의 눈물로 쓴 민원들을 외면하고 있다가 인터넷에 200여분의 국회의원, 각부장관 등등 인터넷으로 사실을 알리니 이제 서야 전화가 쉴새없이 오고있습니다.또보고드리겟습니다.연일이어지는 폭염 속에 건강 조심 하 십 시요. 요즘 수많은 분들께서 이메일로 많은
격려 말씀을 주십니다. 어느 한 분은 안중근 의사 님께서 당시 돌아 가셨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안중근님을 기억 할 수 있겠느냐며 감히 그분을 비교해 주십니다. 너무 너무 들 감사 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한강 가는 길을 조금은 늦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잘 해결되도록 간절히 기 도 하신 다며 넘어 지는 저를 일으켜 세워 손잡아 주십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또 보고 올 리 겠 습니다
.
방금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신 당시 광명 철산 지점의 고액 거래하신 분이 저에 누명을 그리고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법적 증언 해주시겠다고 하는 군 요 이제 정말 살아야 겠 습니다. 감사합니다. 철산 근무당시 사복 경찰(청경)안양 사시는 유용이 선생께서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오십 여명의 진술서를 KBS , MBC , SBS 그리고 라디오 등 공중파와 , 신문지상에 공개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 꼭 도와 주 십 시
요 . 다시는 이 땅에 저와 같은 이런 일을 두 번 은 겪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 아마 생각을 조금만 달리 했었더라도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 어느 누가 그 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 저보다도 훨~씬 덜 힘든 사람들도 한강에서.....고층아파트 아래로.......얼마나 많은 사람들이..................지금의 민생을 살펴 주 십 시요 . 하루하루 겨우 연명....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지를 저희가 사는 아파트도 매일매일 이사 짐이 드나듭니다. 점점 빛에 쪼들리니 평수를 줄여서 가고 또는 경매 처분되고 쫓겨가고.....미리미리 한번 챙겨 봐 주 십 시요 . 표면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극히 일부고 보도되지 않은 내용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 숫자 놀이로는 가늠이 안될 것입니다. 말못하고 골병들고
어디 하나 상담 할 곳도 없고 저 같은 경우에도 진작 민원 시에 적극적으로 조사해주셨으면 8 년 전에 이미 해결 되었을 것을 6 년 실업자가 1 원 한푼 안 벌면서 거의 3천여 만원의 소송비를 드려 6 년 동안 피눈물로 싸워야 했으니 얼마나 국가적, 개인 적 낭비는
아닐 런 지요.KBS [우리 사는 세상]억울한 내용들만 보더라도 어떤 경우 행정적인 시청 등 공무원에 실수로 등기가 잘 못되었을 경우 일일이 시민이 법률 적으로 쫓아다니며 부당함을 밝히고 증명해야하는 하는 경우와는 제 문제가 다를 런 지요 . 보고가 너무 길어 다시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갑자기 놀랍고 어리둥절합니다. 부디 내 디디시는 발걸음걸음 보람으로만 가득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장관님 여성의 권익을 위하여 계속 힘써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농협중앙회 문서 번호 : 인력 12103-247 참고: 법 무 부 장관실홈페이지 작성자 :김 영순
시행일:2004-8-3 (1,500여명 열람 참고 요망)
경유:
수신: 김 영순
위 건은 청와대 신문고를 통하여 민원 접수 건인데, 농협에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고 수 차례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의례적으로 이미 끝났다고 했는데......대법원 판결, 고등법원, 행정법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전혀 재판 심의 중 누락된 엄청난 사실(탈의실에 여직원을 장승으로 못 을 박아서, 밖에서 감금, 성희롱 가해자 부친을 동료 여직원이 만났다는 사실은 누
락됐으며 부친을 만나서 성희롱 사실과 여직원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수많은 사건 등등 의자를 들고 때리려 고 하는 등 사무실 대형 금융사고후 불이익 누명은 결국 견습학생의 소행으로 밝혀 진 사건 현금 ,백지 자기앞 수표 횡선 날인된 수표 ,등등은 후에 견습생이 물건구입한 사용 내역서 에서 밝힘 .그러나 우리는 누명 불이익. 진단서에 의해 수술 입원한 것을
아이 셋 사십대 주부 임직원이 해고순위1순위인데 , 어찌 76 일 입원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결근 했겟습니까?해고 사유 : 무단 결근 ,무단 외출 어찌 아프지 않으면서 해고 순위1 위가 병원을 다니며 병원은 왜 갑니까? 아파서 진료하려 그리고 나아서 더 농협 사업을 열심히 하려고 다닌 거지 심심해서 할 일 없어서 다녔겠습니까? 어느 바보가 해고 1순위가 아무
소리 없이 마음대로 병원을 다니고 무단으로 결근하고 어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삼척 동자도 ... 중앙회는 계속 말장난을 하고 있는데 , 뻔히 알면서 기가 막혀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농협중앙회에서 부녀자 임직원을 감금해서 해고 시켰다는 사실 등
좋습니다 . 다른 것은 필요 없고 , 사측에서 소송 중에 강제로 직원들을 동원하여 강요에 의하여 작성하였다고 본인들이 김 영순 에게 고백하고 미안하다한 그 조직적인 사실 확인서 50 여명의 것을 KBS ,MBC ,SBS 모든 라디오 방송사, 모든 신문사에 50 여명의 진술서를 보도해서 세상에 알려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농협중앙회가 모든 수단 방법
을 가리지 않고 한강로에 있는 노무사 신 쌍식 을 동원하여 , 이 노 무사는 이겨 주기 위해서 50 여명을 강요하여 사실 확인서 작성했다고 김 영순 에게 미안하다 했는데 이 사실을 제가 한강에 뛰어 들기 전에 세상에 알려져 보도 되 는 것 을 보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조사는 그만 두더라도, 모든 매체에 진실을 알리는 일은 꼭 도와
주 십 시요 .얼마나 비도덕 적이고 ,정식 대리대우를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 점심시간도 안주고 , 식당 식권을 팔게 하고, 식당 청소를 하게 하고 ,식당 책상에서 밥 한술 뜨고 식권하나 팔고, 밥 한술 뜨고 식권하나 팔고 왕복 6시간 출근 퇴근하다 디스크 발병했고, 병원 입원했고, 강원도까지 쫓겨갔다 왔으니 인사고가 안 좋다며 ,차장은 인사고가 잘 봐주겠다며 돈
을 요구하고 ,여러 가지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니 , 무능력 해고 . 이 택렬 경기 노조 지부장은 재판 판결 ,심의 때마다 구두로 서면으로 노동조합원을 보호해야 할 간부가 조합원 김 영순 은 해고해야 마땅하다 했는데 ,이 택렬 은 분회 순방 비를 횡령했고 전임 농협중앙회 노조 위원장이 제보를 주어 횡령한 사실이 폭로되어 대의원 대회에서 이 택렬 이 순방 비 횡
령 건에 사과했다 하여 , 저도 해고 중에 있고 ,소송이 늦어지고 등등 의 이유로 하여 분회 순방 비 내역을 알아보고 싶었는데 얼마 후 감금한 후 해고. 이 택열 은 해고해야 마땅하다고 법정 증언 함 .본인이 경기도 최초 노조 분 회장 겸 대의원에 선출되어 활동 중 그 당시만 해도 귀한 삼성 무비 카메라를 아이들 커 가는 모습 담아 두려고 사 둔 것을 노조 지부 행
사 때 많은 촬영을 본인이 직접 했고 또 노조 지부에서 비디오를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경기도내에 강매 할 때 여러 곳에서 사지 않으려 했을 때 본인도 직접 촬영한 내용도 있고 하여 조합 원 들이 사지 말라 하여 구입하지 안으니 .보복 했 고 ,전국여직원연합 의 안양시지부 군포시지부 시흥시지부 안산시지부에 본인이 간사를 맡았는데 , 이 단체의 회장은 당시 노
동 조합 위원장 이 너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등등 수많은 사건을 겪은 후 결성된 단체로 그 당시 경기 노조 지부장실 여직원은 먼 거리로 발령 났음 .그리고 저는 광명 철산에서 강원 태백 철암 탄광촌 발령 .당시 4세 7세 8세 아이 셋 .이 택렬 은 두 여직원을 출퇴근도 못하게 죽여 버려야 한다며 박 씨에게 전했다 함 .광명 철산 임 영환 은 본인의 친인척 등 수많은 김
영순 의 단골고객이 공과금을 납부 할 때 거스름돈을 부족하게 지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유 용이 선생 ,박 씨 본인 등등 직원들에게 고지서를 가지고 와서 계산 다시 해 달라 계산 해보면 부족 금이 몇 천 원 씩 있어 다시 내 드리고 이런 내용을 저는 40 여 년 간 계속 적으로 일기장을 쓰고 있어 일기장을 드려다 보니 하루에 몇 건씩 발생 하여 많은 고객들이 원성이
자자 했 는 데 이 사실을 박씨가 차장에게 알려서 미움을 샀고 그리하여 보복이 됐는데 그 외에도 수많은 사건 많음 . 해고 후에 메모를 해 두었는데 당시 차장은 임 영환 을 많이 아껴 주며 업무 후 화투놀이도 같이 하고 장기도 두고 일상적인 활동이지만 상대적으로 김 영순 은 인사 고가 0점 .임 영환 등 남 직원들을 상위권 전체 인원 중에 인사고가 본인(김 영순)
은 맨 끝. 뒤에 사람이 없음. 그 수많은 친인척 고객 들 은 임 영환 의 부족 거스름돈 소송 다시 하라 증언해 주겠다함. 차장은 어린 여직원들과 박을 이간질 시켜 박에게 형편없는 행동을 했으며 이에 격분한 박은 『입을 찢어 죽이겠다고』할 정도로 다투게 만 듬 .박 씨는 잘해보겠다며 상사들에게 집에서 공수해온 음식들 미역 ,양복감 ,고구마 등등을 가져다 주
었다고 저에게 전함 그러나 얼마 후 차장 때문에 가져다준 책임자 배신했으며 나중에 여자관계 사생을 폭로하여 농협이 시끄러 웠다 전해 줌 더 보고 드릴 말씀이 많으나 우선 법무부 홈페이지-나도 한마디-작성자-김 영순 내용 천 오백 여명 네티즌 열람 참고 바랍니다. 라면 몇 박스 에 민원을 한꺼번에 다 못 보내고 차차 보내겠습니다. 수족에 통증이 와서 더 이상 아파서 보고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실을 언론 매체에 공개 되도록 도와 주 십 시요. 또 보고 드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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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억울한 저의사연을 읽어주십시오
저의 이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을 꼭 읽어주십시요.
저는 농협에서 20여년을 착실이 근무하다가 너무도 억울하게 해고당한 김영순 입니다.
해고사유는 직무수행능력부족과 근무태도불량등의 사유였습니다.
저의 어처구니 없는 해고사건은 광명시 철산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철산지점의 한상무차장이 젊은여직원들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듣기 민망한 농담을 자주하였고 이를 본 창구고객들마져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철산지점 노조분회장역임 본인) 여직원박이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그 후 박홍순은 성희롤 가해 차장의 부친을 만나 항의 했고 박은 노동조합에 고발하여 해고의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박찬혁이 법정진술함
이의 제기후 한상무차장은 그러한 성희롱행위를 사과하고 개선하지는 안 하고 그 항의를 괘씸히 여겨 저와 선임여직원에게 앙심을 품고 엉뚱한 시비를 걸고 후배여직원과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후배여직원이 우리와 싸우게 만들고
다른 상사들이 두 여직원을 불량한 직원으로 여기도록 만들어 우리가 자기위주로만 얘기를 하고 상사들에게 절대불복종 한다고 평가하여 경기지역에서만 20년을 근무한 저는 멀리 연고 하나 없는 강원도 태백시지부 철암 출장소로 전출시켜 버렸고 광명시에서만 17년을 근무한 항의한 다른 선임여직원은 전라남도 해남으로 전출시켰습니다.
저를 2년동안에 강원도 태백으로 보냈다가 다시 성남 효자촌으로 발령을 내더니 또다시 파주하나로클럽으로 보내서 3급 대리대우를 파주 하나로클럽에서 식권파는 업무를 담당시키고 강제로 해고시켜버린 것입니다.
저는 1976년에 입사하여 20여년을 농협을 위해 일했고 1992년도에는 철산지점 노조분회장이었으며 1994년에는 전국여직원연합회 간사를 역임했습니다.제 근무사안을 모두 말씀드리지 안 해도 20년을 농협에 아무 탈없이 근무한 제가 기막히게도 어느날 갑자기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해졌고 근무태도가 불량해졌다니 기맥 힐 노릇 아니겠습니까 ?
시부모모시고 삼남매가 있는 제가 더욱 괴롭고 미쳐버릴 심정은 법원이 농협이 자의대로 거짓으로 만든 삼척동자도 웃을 해고사유인 직무수행능력부족과 근무태도 불량을 인정해버린 것입니다.
위 두가지 해고사유의 평가는 저를 강원도 태백으로 전출시킨 이후의 인사고과로 평가한 것입니다.즉 성희롱의 발단이 된 지점에서 저를 왕따시키고 나쁜소문을 내고 제가 발령받은 지점에 연락하여 저를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 저를 해고시켜 버린 흉악한 음모였습니다.
20년이나 열심히 일해온 저를 노무사를 시켜 직원 50명에게 제가 불량하다는 진술서를 쓰게 만들어 그 허위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한 농협이라는 곳이 정상적인 직장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김영순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그만두기를 바랍니다,등 이 모든 허위진술들은 해고후 정신적 충격으로 신체적인 질병으로 경남밀양고향서 요양하느라 나중 고법
원 해고사유유 사건내용패소 사유를 열람해보니 이런 사유로, 변호사는 시골저에게 사실확인서 확인을 도와주고 알렸어야지 박주현 변호사(열린당)그때0 수임료를 5백인가 얼마인가...영수증 처리 잘 했는지 확인도 해 보고 싶네요. 강종쾌 변호사 500만원 받고 뭘 했는지.
그 진술서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진술인들을 만나 얘기 했더니 모두 강요에 의해서 작성했다고 합니다.그리고 법원은 그 허위진술서를 저의 해고사유 인정 증빙으로 채택했으니 얼마나 미쳐버릴 일입니까.
저는 강원도 태백에서 성남 효자촌으로 부임하여 근무하는데 그곳 차장 유운규가 강원도까지 쫒겨난 주제에 말이 많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여 어쩔 수 없이 항의 하니 20년이상 근무한 제가 업무지식이나 업무처리능력이 신규직원보다 못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병원진료중)
저의 고성과 싸나움이 직원들이 견디기 힘든 실정이라고 허위로 몰아세워 저에 대한 인신공격문서인 직무수행능력 부족직원에 대한 전출요청서를 만들어 농협 경기지역본부장에게 제출하여 효자촌지점에 발령난지 7개월도 안 되는 시점에 다시 파주 하나로클럽 식권파는 자리로 전출명령을 냈습니다.
하나로클럽으로 전출명령이 날 때에는 저는 연고도 없는 머나먼 강원도로 출퇴근하는 고통을 겪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자궁경부미란 질병을 얻었고 수술을 해야만 하여 수술을 받기로 하였고 수술날짜가 예약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연차 월차를 포함한 휴가를 내고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부임하면 도저히 근무가 불가능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받고 완치되기도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당시 제가 사는 분당에서 삼 남매인 주부가 왕복 5시간이나 소요되는 파주로 부임하여 통근을 하였습니다.
치료가 덜된 저는 근무 중 점심시간을포함해 디스크 물리치료, 치료를 위해서 외출부에 기재하고 31번 병원 행 외출을 하였습니다.지병을 동료나 상사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은 직원들이 양해하였고 부족한 업무는 시간외 근무를 하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발병전 1회의 외출 결근 무)
농협은 이를 해고의 빌미로 하기 위해 가만이 보고 있다가 주의촉구 조치 한번 안 하고 저를 대기발령냈고 대기발령 후 3개월간 보직을 부여 안 하면 직권면직되는 농협규정을 빌미삼아 저를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2년동안 이렇게 저를 부당히 전출시키고도 부족하여 신병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 것을 치료를 도와주기는 커녕 근무태도 불량이라고 하였고 20년동안 일 할 땐 업무능력 부족이란 말 한번 들어보지 못했는데 업무능력부족이라고 대기발령을 내고 나서 해고시켜버렸으니 이 기막힌 사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
저는 너무나 억울하고 피를 토하고 죽을 심경이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제기 하였으나 악랄한 농협의 허위 진술과 허위 증거제출에 의해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여직원들에게 차장이 성희롱을 하여 목격한 고객들이 민망하다고 까지 하여서 수 차례 시정권유 하였으나 도리어 차장차장은 고참 여직원들과 어린 여직원들을 이간질시켰고 심지어 선배 여직원들의 칫솔을 화장실 휴지통에 버리고 고참여직원에게 수시로 계이동을 하고
동료여직원이 아파서 웃사람에게 전화하고 휴가신청하였는데 차장지시에 의하여 결근 처리해버리고 이런 부당함을 동료가 노동조합에 전화하여 자문하자 4세, 7세, 8세의 아이 셋과 노령 시부모를 모신 저는 멀리 강원,태백 , 철암 탄광촌으로 전출시키고 또 한 사람은 전남 해남으로 전출시켰습니다.
저는 1년 후 자택인 광명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분당으로 다시 발령되었고 성희롱당시 인사고과가 10명중 10위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제가 분당으로 올때 강원도에서 인사고과가 17명중 8등, 16명중 6등등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저를 왕따시켜 파주 하나클럽으로 보내고 저는 아픈몸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식당 식권발급, 화장실청소, 식당바닥청소등을 할 때 총무계직원 서은호는 명예퇴직금 받고 그만 두라고 수차례 강요했습니다.
3급 은행대리대우가 점심시간 주지 않아 책상에서 점심시간에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팔고 밥 한술 뜨고 식권 하나팔고 하면서 왕복6시간을 출퇴근하다가 디스크가 발병, 중식시간을 이용하여 병원진료를 하였음에도 무단외출, 무단조퇴처리를 해버렸고 입원치료 자료를 제출하였는데도 무단결근, 근무태도불량, 무능력등으로 해고시켰습니다.
경기최초의 여성 노조분회장 겸대의원으로 선출선출되었고 97년도에 강원도 태백에서 분당으로 발령받아 노조분회장에 선출되었으나 이택열 경기지부장 방해로 분회장자리도 박탈당했습니다.
저에게 시간외수당을 전혀 지하지 안 했고 유치원보조비를 주지 안 했으며 건강진단 미실시등 의 시정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오히려 김용우라는자가 탈의실에 저를 밀어넣고 밖에서 장승으로 못을박아 감금하였습니다.
당시 경기지부에서는 해고시키기 위하여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제가 지급을 요구하니 이효기장장이 말하길 일을 계속시키면 근로기준법에 저촉되고 시간외수당을 주어야 하는데 경기본부에서는 주지마라고 하니 일을 시킬 수 없다며 탈의실에 대기하라고 하던중 감금 당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문을 두들기니 한선화가 총무계에 가서 열쇠를 가져와서문을 열어주었습니다.이런 사실이 저는 너무도 비참한 심정입니다.
해고하기 위하여 남직원에게는 지급하는 월40여만원의 3개월동안 120여만원을 시간외수당을 저에게는 지급하지 안 했습니다.
파주클럽에서는 임시용역직원들 동원하여 김영순에 대한 사실확인서등 모두 50여장을 작성했는데 그 중에는 김영순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짓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또 식권의 양식이 변동된다 하여 신양식이 나올때까지 구양식을 재사용하기 위하여 기존일부인을 지우고 다시 찍은 것을 일부인을 남발하여 식당손님과 싸우고 야단이 났다는등 물의를 일으켰다고 몰았부쳤습니다
태백에서 아는 사람들, 그곳 새마을부녀회장, 약국사모님, 이웃식품점, 가게. 교회교인,가족과 친인척등 안집주인등등의 고객들에게 공제권유를 위하여 사은품 휴지를 전달하기 위해 휴지를 받아온 것을 회사측은 소송에서 휴지를 훔쳐갔다고 허위진술을 하였고 또 식당아줌마가 부침개를 아이들 먹으라고 조금 준 것을 식당에서 양념을 모조리 훔쳐가서 식당아줌마와 크게 싸웠다며 거짓진술을 하는등 말로는 표현못할 억을한 일이 너무 너무나 있습니다.
태백근무시 새벽3시에 강원태백의 철암역에 내려서 주인이 집을 비운 부산사람의 셋방에 도착해 연탄불도 꺼진 상태로 일여년을 모진고생을 하다가 신병을 얻어 지금까지도 병원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 겨울방학에 강원도까지 와서 퇴근시간에 엄마마중 왔다가 객장소파에 조금 앉은 것을 아이들이 은행업무를 못 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다는 해고사유도 있습니다 .
방학이 끝나 아이들을 집에 보낼 때는 태백 역 열차 칸에서 아이들 셋이 안 가려고 크게 소리내어 울면서 기차에서 뛰어 내릴려고 할 때는 차에 탄 열차손님들이 너무나 안타까워했으며 저는 가슴이 무너지면서 태백 역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멀리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돌아설 때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거웠는지 태백역사를 돌아 나와 버스를 타고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애써 눈물을 감추며 어느새 집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그 아린 이세상의 그 어떤 아픔도 비교가 안될 처참히 다가오는 아픈 통증들….
당시 막내는 어미가 강원도에 발령근무 중 우측 팔을 크게 다쳐 광명 성애병원에서 뼈를 대수술 한 후여서 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미 없이 어린것이 얼마나 수술실에서 힘들어 했을까를 생각하니 더욱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수십년간 써온 일기장을 들여다보면서 요즘도 그때를 생각하며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눈물을 짓곤 합니다.
지금도 이글을 쓰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자판기가 젖었습니다 .더 이상 작성 할 수가 없읍니다. 해고
후 실업수당도 복직을 위하여 전액을 다 받지도 않았습니다. 당분간 쓸 수 있는 의료보험혜택도 없습니다. 법정에 제출된 50여명의 사실확인서 내용을 보면 근무할 때는 그렇게 잘한다고 칭찬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허위진술들을 할 수가 있는지 정신적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우울증, 대인기피증, 가슴이 부들부들 떨림, 심한 두통 , 불면증 ,급격한 시력저하, 어지러움 ,복통 팔다리 통증 머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등 무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정신적 신체적 질병과 저는 8년간을 싸워왔습니다. 2005년 2월 현재는 늘 죽음을 생각합니다.
신쌍식 노무사는 대단한 사업수완가로 한강로에 사무실이 있는데 그 대단한 지식으로 농협이 소송에 이기도록 수많은 직원을 동원하여 회유와 강요와 허위로 사실확인서를 작성케 하고 변호사공증을 하였는데 나중에 진술서 작성직원들이 조직적으로 하라고 강요하여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하다 하였고 타점포로 발령 난 당시 안경호 철산지점장은 예금유치관계
로 서울출장 왔을 때 광명 철산지점에 들려 미안하다며 저에게 김대리는 잘못이 없고 휩싸여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안경호지점장은 차장으로 갔다가 다면평가에 의하여 얼마 후 퇴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국여직원연합회에 군포시지부, 안양시지부, 안산시지부, 시흥시지부등의 간사였습니다.쌀 수입반대 서명운동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다니며 열심히 하여 농민신문에도 나오고, 잡지사에서는 원고청탁이 들어와, 글도 실으면서, 보람이 많았고,
입사 후 꽃꽂이를 조금 배워 사무실에 꽃 장식도 봉사하고 82년도에 국제꽃꽂이친선전에 몇 차례 출전하며 외국인들과 많은 것을 주고 받으며 KBS 제2 TV 꽃꽂이 관련방송의 현장에서 참여도 했으며 학교 협의회 감사로 위촉되어 재산세 예금등의 유치를 열심히 하고 또한 집에서 농약 없이 재배한 토마토등 채소를 고객들과 나누어 먹었고 토마토주스를 집에서 가져간 찻잔에 나누어 주기도하며 하며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고사유에는 저의 모든 것이 형편없는 인간쓰레기로 몰았습니다. 저의 근무처인 철산지점 근처 기업은행 장창수대리는 김영순대리 때문에 예금추유치가 안 된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고 그가 저의 점포에 들어서면 저의 담당창구가 빛이 반짝반짝 난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업무능력부족이고 근무태도 불량이라 기가 막힐 뿐입니다..
많은 할머니들께서 저를 위하여 손해를 보아가며 예금을 타 은행에서 해약하여 저에게 유치해 주셨으며 신원식점장은 너무나 열심히 한다며 특별히 휴가비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의 예금유치 내역을 보면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였는지는 알 수 있는데 해고사유가 능력부족 근무태도 불량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50여명의 허위진술서를 펼쳐보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암담하고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절망감 그 어떠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기가 막힌 현실 많지 않은 세상을 살았지만 이렇게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보기에는 처음 인 것같습니다 .
2002년8월 대법원 기각판결시 졸도하여 쓰러져서응급실에 실려갔으며, 입이 돌아가고 눈이 작아졌으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중풍 증세), 그 이후 엄청난 후유증에 허리디스크와 하루 종일 팔다리가 쑤시고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송과 고통에 시달려온 6년간의 이 한을 이 목숨 다하기 전에 한강으로 가기 전에 한번더 한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농협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활동한 저를 한 사람의 차장이 여직원 희롱을 하고 나서 분풀이 앙심을 품어 윗사람들을 세뇌하여 저의 인사고과를 영점으로 만들고 직원들과 이간질을 시키고
연고도 전혀 없는 지역으로 발령을 내고 비열한 덧을 놓고 있다가 직원치료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무단외출이라는 사유를 확대시켜서 20년 이상을 농협을 위하여 일해온 연로한 시부모와 삼 자녀를 둔 주부직원을 근무태도 불량 및 능력부족이라 무참히 해고 시켰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농협은 허위 증거들을 나열하여 개인이 도저히 승소 못하도록 교묘한 방법을 동원시켜 저를 패소 하도록 만들고
대법원 제3부 판결 사건(2000두9113)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2002.8.23) 판결문에는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무거운 금전적 부담을 억울하게 받아서 이제는 죽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이 사건은 금융권의 구조조정 차원과는 전혀 다른 한 여성의 인권문제 입니다.
저는 농협과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너무나 비열하여 계속하여 사실을 알리고 국가인권위원회등에 알려서 억울함을 호소하겠습니다. 사건이 악화된 뒤 지점에서 전화 한번 걸려고 하니 전화를 던져버리고 전화 줄을 떼어버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들부들 치가 떨려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협에서 부당해고 당한 김영순올림
*이글은 이미 이십년전부터 국회의원 홈피에 거의 다 올린글입니다. 복사하여 올려봅니다.
2008년 3월 6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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