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1986년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가를 세계 만방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중앙정보국(CIA)은 적성국이었던 이란에 무기를 몰래 수출한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우익 성향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반군으로부터 마약을 사들여 미국에 판매하다가 발각돼 한바탕 난리가 났다.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용케 빠져 나갔다.
CIA 지원을 받은 보급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유진 하센푸스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2일 보도했다. 위스콘신주 마리네트에 위치한 한센-어니언-마텔 장례식장의 부고에 따르면, 하젠푸스는 9년의 암 투병 끝에 지난달 26일 미시간주 메노미니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1941년 1월 22일 마리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트남에서 해병대원으로 복무했으며,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항공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니카라과 정부 내 산디니스타에 맞서 활동하던 반공 우익 게릴라 조직인 콘트라를 CIA가 지원하도록 승인했다. 하지만 의회는 1984년 콘트라에 대한 모든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그런데 공식 중단 시점 몇 달 전,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백악관 지시를 받아 비밀 보급망을 강화했다. 작전의 일상 업무는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올리버 노스 중령이 담당했다. 목표는 의회가 CIA 자금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설득할 때까지 콘트라를 계속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86년 10월 하센푸스가 탑승한 노스의 비행기 중 하나가 니카라과 상공에서 격추되면서 노스 네트워크의 비밀성은 무너졌다. 승무원 셋이 사망했으나, 하센푸스는 낙하산을 타고 정글에 내려가 24시간 넘게 당국을 피해 다녔지만 결국 니카라과 정부군에 체포돼 테러 등 여러 범죄로 기소됐다.
하센푸스는 체포 후 CIA가 콘트라에 대한 보급 비행을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레이건 행정부 관리들은 문제의 비행기가 미국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센푸스 비행 논란에 자극받은 의회는 결국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콘트라에 무기를 전달한 혐의로 니카라과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30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한 달 뒤에 하센푸스를 사면했고, 그는 위스콘신 북부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1988년 그는 이란-콘트라 무기 거래와 연관된 두 남성과 두 회사를 상대로 1억 35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실패했다.
2003년, 그는 식료품점 주차장에서 신체를 노출한 채 음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브라운 카운티 순회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온라인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의 집행유예는 2005년에 취소돼 수감됐다.
그는 네 자녀와 여덟 명의 손주를 남겼다고 AP는 덧붙였다.
AP 기사에 '이란-콘트라 무기 거래와 연관된 두 남성'이란 대목이 눈길을 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노스 중령과 존 포인덱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인 것으로 보이는데 AP 기사가 왜 이렇게 익명으로 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노스는 무죄 방면돼 1994년 중간선거에서 버지니아주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당시 현역 의원이었고 전 버지니아 주지사였던 민주당 소속 척 롭(Charles Spittal Robb. 린든 존슨의 사위)에 맞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득표율 43%로 낙선했다. 그 뒤 폭스 뉴스의 레귤러 보수 정치 평론가로 활약하다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전미총기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20대 인턴에게 매달 생활비를 몇만 달러씩 준 사실이 밝혀져 사임했다.
포인덱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해군 중장에서 소장으로 불명예 강등됐다.
미국은 이런 추악한 면모가 드러났는데도 1990년대에도 남미로부터 코카인 밀반입을 시도했다.그러면서도 밖으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베네수엘라와 마약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