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손책(孫策)에게 정보, 황개, 한당, 조무와 함께 삼천 군사와 오백필의 군마를 주어 보낸 원술은 전국 옥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런 원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책사 도저는 두 눈을 찌푸리며 할 말을 잃고 근심에 잠긴다.
그런 가운데 조정의 대신 하나가 옥새에 정신을 팔고 있는 원술에게,
"주공, 경하 드리옵니다! 옥새를 얻으신 것은 필시 하늘의 뜻이옵니다. 이렇게 하늘이 주공께 옥새를 내렸으니 주공께서는 천명을 받들고 제위에 오르시어 대업을 이루십시오." 하고 고한다.
그러자 나머지 대신 모두는 한목소리로,
"대업을 이루십시오!"하고 복창을 한다.
그러자 하늘을 우러러 긴 한숨을 내쉰 책사 도저가,
"하~!... 주공, 대업을 이루는 것은 손책이 될지 모릅니다.
그는 절대 돌아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주공의 적이 될 게 분명합니다." 하고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탐스러운 눈길로 옥새를 계속해 보고 있던 원술이 힐끗, 도저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도저는 한탄 어린 어조로 말을 한다.
"손책은 돌덩이 하나를 버리고 정보, 황개, 한당, 조무와 더불어 삼천 군사에 군마 오백 필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그들 장수는 그의 부친인 손견의 맹장들입니다. 손책의 의도를 주공께서 설마 눈치채지 못하신 것은 아니겠죠?"
그러자 원술이,
"손책이 옥새를 포기하면서까지 날 등지고 갔는데 내가 어찌 그 의도를 모르겠소? 하나, 뜻이 있으되 실력이 없질 않소? 현실적으로 그가 가진 몇 천의 군사로는 대업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아니겠소?"
그러자 도저는 두 손을 마주 잡아 흔들면서,
"소신은 주공의 말씀이 부디 맞기만을 바랄 뿐이옵니다." 하고, 실망스러운 어조로 대답하였다.
사백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전국 옥새를 손에 넣은 흥분이 가라앉은 며칠 후, 원술은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옥새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때 책사 도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다가와 원술에게 읍하고 그 자리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런 도저의 거동을 지켜보던 원술이 도저가 하려는 말의 뜻을 먼저 알아차리고, 도저에게 사정 조의 어조로 입을 연다.
"선생, 나를 보시오. 이제 내 나이 육십을 넘어, 얼굴에는 주름살만 있을 뿐, 좋은 시절은 가고 죽을 일만 남았소. 그러니 지금 대업을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 내 숙원을 언제 이루게 되겠소? 내가 즉위하면 선생을 국사(國師)로 추대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만들어 드리면 선생은 역사에 남을 것이오. 그러니 내게 대한 설득은 이제 그만두시오."
그러자 도저는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닙니다. 주공, 용서하십시오. 제 천성이 완고해 죽음으로 간언할지언정 영화를 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공! 지금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십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과거 고조 황제 유방도 사상 지역의 정장에 불과했고, 수중엔 칼 한 자루에 추종자도 수십 명뿐이었는데도 천하를 얻지 않았소? 이제 한(漢) 실은 사백 년을 이어오면서 그 기세가 다했고, 지금은 사해가 들끓어 효용들이 난무하니 강자가 왕이 되고, 강자 중에 강자가 황제가 되는 것 아니오? 우리가 있는 회남은 풍부한 양식이 있고 정예 병력이 사십 만에 장수가 천 명이오. 그러니 누가 나에게 대적하며, 누가 나와 패권을 다투겠소?"
"주공께서는 잠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 천하에서는 오직 주공 외에 두 사람이 주공과 패권을 다투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누구 말이오?"
"기주의 원소와 허창의 조조입니다. 원소는 과거 십팔로 제후들의 맹주로서 지금은 기주, 청주, 병주를 점령하고 북방의 유주까지 노리고 있사옵니다. 현재 군사가 오십만에 달하며 휘하의 문신과 무신들도 모두 영웅호걸들 입니다. 더구나 주공의 당형이자, 명망도 주공보다 높습니다. 조조는 난세가 낳은 간웅으로 문무를 겸비한 보기드문 인재입니다. 비록 지금은 주공에 못 미치는 세력을 가지고 있으나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서 천하의 병권을 쥐고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있으니 그 위력이 나날이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있는 한, 주공께서는 황제가 되시면 안 되십니다."
"흥! 원소는 본디 원 씨 집안의 첩의 소생이니 천한 정도로만 따진다면 내 종노릇이나 해야 마땅할 것이거늘 나보다 두 살이나 많다는 이유로 내가 형 대접을 해 준 것인데 감히 나와 비교가 되겠소? 그리고 조조란 자는 본디 황간의 후예가 아니오? 조조가 천민의 자손으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파렴치한 광대이거늘 뭐가 걱정이란 말이오? 나중에 내가 제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자가 바로 그놈이오. 내가 놈을 일벌백계로서 위엄을 보여 줄 거요!"
하고 원술은 단언하듯이 말했다.
바로 그때, 문무백관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일동은 엎드려 고한다.
"신들이 주공을 뵈옵니다."
원술은 자리에 삐딱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로 앉은 채 묻는다.
"무슨 일이오?"
그러자 대표로 나선 백관이,
"신과 삼백다섯 명의 문무백관들이 주공께 연판장을 올립니다. 주공께서 천명을 이어받아 제위에 오르시고 새 나라를 개국하십시오!" 하고 아뢰며 연판장을 두 손으로 치켜 올렸다.
이런 모양을 눈앞에서 목격한 도저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원술은 좋으면서도 사양한다.
"그런 큰일은 숙고해야 하지 않겠소?" 하고 짐짓, 한 발 빼는 소리를 한다.
그러자 연판장을 들고 꿇어앉은 백관이,
"주공! 만일 하늘의 뜻을 거역하신다면 신은 주공 앞에서 목숨을 끊어버릴 것입니다!" 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자 동석해 있던 백관들이 일제히,
"천명을 받으십시오 주공!" 하고 일제히 아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원술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한다.
"아, 알겠소. 경들의 뜻이 그렇다면 할 수없이 천명에 따르고 민심에 순응할 수밖에 제위에 오르겠소!" 하고 단언했다.
그러자 백관들은 일제히,
"주공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를 외쳐대었다.
며칠 후 십팔로 제후 중에 원술(袁術)이 가장 먼저 황제(皇帝)를 칭(稱)하며 제의(帝位)에 올랐다.
이런 소식은 그의 당형(當兄)인 기주(冀州)의 원소(袁紹)에게도 전해졌다.
원소(袁紹)는 그 소식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화를 내었다.
"원술(袁術)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수춘에 개국(開國)을 하다니 이런 돼먹지 못 한 일이 있나? 게다가 나보고 자기 신하(臣下)임을 밝히라고 하는군!"
그러자 장수 하나가 말한다.
"주공, 뻔뻔스러운 자로군요.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영토의 넓이로 보나, 군사의 수로 보나, 명망으로 보나, 휘하의 장수들로 보나, 우리의 세력이 원술보다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본인이 황제가 되다니 따지고 보면 주공께서 황제가 되셔야 할 일이지 감히 원술이 황제가 되다니 이건 완전히 원술이 주공을 무시한 것 아닙니까? 당장 원술을 쳐부숴야 합니다!"
그러자 다른 장수들도,
"옳은 말이오!"
"그것보다는 주공께서 제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하면서 각기 울분을 토로함과 동시에 향후 대책에 대하여 중구난방으로 한 마디식 떠든다.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이들의 말을 듣던 모사(謨士) 허유(許攸)가 앞으로 나서며,
"주공,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천하가 혼란한 시기에 각 제후들은 셋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첫째, 한실 부흥. 둘째, 한실 찬탈. 그리고 셋째는 한실 부흥의 명목아래 찬탈을 하는 겁니다. 원술은 명리에 급급해 공공연히 한 실을 버리고 자립했으니 이는 어리석은 결정이며 필시 큰 화가 닥칠 겁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생각하시며 멀리 내다보셔야 합니다. 지금은 먼저 내실을 기하고 변화를 관망하다가 기회를 노리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허유의 말을 경청한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곽도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여러 장군들이 개국 공신이 되어 역사에 남으려 하는 것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천자가 여전히 건재하고, 각지 제후들이 여기저기 난립하고 있어 천하가 혼란하니 주공께서 개국하실 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술의 경우는 열매가 익기도 전에 따버린 격이니 양손에 가시만 가득할 뿐, 제후들의 공적만 되었습니다. 제 예상엔 길면 삼 년, 짧으면 몇 달 안에 원술은 끝장이 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사 전풍이 나서며,
"주공, 원술이 황제를 자칭한다고 노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나쁜 소식이 아니라 주공께는 희소식입니다."
"으잉? 어찌 희소식이라는 건가?" 원소는 전풍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전풍은,
"예로부터 황제가 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런 사람치고 남이 황제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원술이 황제를 자칭하고 개국을 하였으니 필시 천하의 공분을 부를 테고 그렇다면 모든 창끝과 분노는 원술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기회를 틈타 화북을 정벌하시고 유주 각 군을 취해 대업을 이루신 뒤에 다시 제위에 오르는 문제를 생각해 보셔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하니, 원술에게는 허울뿐인 황제 노릇이나 하라 하시고 주공께서는 황제의 실리를 취하시면 훗날 유명무실한 자는 자멸하게 되고, 주공께서는 명예와 실리를 얻게 되실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유가 나서면서 곽도와 전풍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주공, 곽도와 전풍의 말이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나, 제 생각엔 주공께서 단 한 가지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원술이 주공께 신하가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주공께서 원술에게 진짜 표문을 보내시되 축하만 해 주십시오. 반드시 축하만 하시고 신하라 칭하지는 마십시오."
"으음, 음!" 원소는 허유의 말을 듣자 커다란 두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편 허창의 조조는 원술이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문무백관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만조 백관들 앞에서,
"천하의 어리석은 자들이 오늘이 단오절이라고 죄다 기어 나왔단 말인가? 엉? 하하하 핫! 아시오? 원술이 황제가 되었다는군. 하하 하하!... 하마터면 웃겨 죽을을뻔했소! 으하하하..."
시립해 있는 문무백관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이렇게 말을 하며 웃던 조조가 조금은 가라앉은 소리로,
"아! ~ 내가 원술을 잘못 봤소! 원술.... 상상, 그 이상이야!"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조인이,
"주공, 원술이 황제가 됐다는데 왜 잘 못 보았다고 하십니까, 원술의 야심을 모르셨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조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팔을 치켜들며 말한다.
"아니지! 내가 잘 못 보았다는 것은 원술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다는 말이야! 그렇게 어리석은 자를 한때 나마 내가 호걸이라고 생각했으니 잘못 본 것이지 그렇지 않나? 하하하... 나, 조조가 그런 개, 돼지를 봉황으로 생각했으니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냔 말이야? 하하 하하!...."
그러자 그 자리에 입시해 있던 순욱을 비롯한 모사들과 조인을 비롯한 장수들 모두가 조조와 함께 원술을 크게 비웃으며 웃었다.
순욱이 말한다.
"주공께서는 먼저 원소가 황제를 지칭하고 나설 것으로 생각하셨는데 막상은 원술이 먼저 황제를 자칭하고 나설 것은 생각하시지 못하셨던 거지요?"
조조가 말을 받아 대답한다.
"천하 제후들 중에 원소, 원술의 세력이 나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고, 유표와 여포는 약하지, 공손찬 같은 인물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속은 없고, 유비, 손책 등은 거론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야. 원씨 형제가 황제 자리를 탐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원소가 아니고 원술이란 거요. 그러고 보면 원소가 원술보다 영리한 거야."
그러자 모사 곽가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주공, 지금 황실이 허창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황실 밖에서 황위 찬탈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주공께서 한 실의 기둥임을 보여주셔야 할 것이옵니다. 하니, 하루속히 황제의 명의로 격문을 보내, 천하 제후들에게 역적 원술을 제거해야 함을 공표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조조가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원술의 군사가 사십 만에 이르니 우리 두 배가 넘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곽가는 다시 이어 말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수적으론 우세하나 정제된 문무 관리들이 아니니 쉽게 무너질 것이 첫째고, 둘째로는 원술의 공개적인 반역으로 천하인의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니 그를 도울 원군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원소 역시 도와줄 것이 만무하니, 즉시 출병한다 하더라도 대의명분이 확실하고, 우리를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셋째, 원술이 황제라고 칭함으로써 한 황실의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천하의 황제가 둘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주공께서 두고만 보신다면, 제이, 제삼의 황제가 난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순욱이 곽가의 말을 끊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네 번째가 될 겁니다. 주공께서 일단 출병을 하시게 되면, 황제의 기치를 세워 의(義)를 행하는 것이 되니, 주공께서는 자연히 천하 제후들의 맹주가 되시는 겁니다. 각지 제후들이 조서를 거절하면 역모의 가담이 되고, 또 제후들이 조서를 받들게 되면, 주공의 지위를 인정하게 되는 셈이니, 기왕에 불거진 원술의 문제는 덮어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옳은 말이오. 그런데 제후들이 조서를 받들게 되겠나?" 조조는 반신반의를 하며 물었다.
그러자 곽가가 다시 나서며,
"당연합니다. 모두들 조서를 받들겠지만 출병은 하지 않을 겁니다. 다들 이해득실만을 따지면서 눈치만 보고 있을 테니까요."
곽가의 말을 듣고 심사숙고의 모습을 보인 조조가 침통한 얼굴을 접고 결연한 빛을 띠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명이다! 먼저 순욱은 역적 토벌의 격문을 각지 제후들에게 보내고, 곽가는 천자의 조서를 써서 내리되, 원소, 유표, 마등, 공손찬 등 조정의 녹봉을 받는 모든 제후들에게 군대를 파병해서 토벌군에 합류하라 전하시오."
"예!"
"예!"
순욱과 곽가는 조조의 명령 중간에 자신을 지목한 대목에서 각기 두 손을 읍하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고 조조의 말은 계속하여 이어졌다.
"조홍과 허저는 공성군과 선봉군을 각각 일만씩 이끌고 앞장을 서도록 하라."
"예!"
"예!"
"그리고 조인은 중군을 맡고, 하후돈은 후군으로 정병 십팔 만을 이끌고 뒤를 따른다."
"예!"
"예!"
"내일 입궁해서 천자께 상주하고 곧바로 제를 올리고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자리에 함께한 문무 백관들 모두가 일동으로 복창하였다.
삼국지 - 89회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