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보기가 어렵다.
여름이다. 벌써 대학생들은 6월 하순에 일찌기 종강을 했고,
여름방학이 시작 되었다. 주변에 나름대로 알찬 방학을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있었다.
1학기내내 어려운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를 몇 명 보았다. 정말 잘 하는 일이다.
젊었을때 모든 일을 해 보아야 한다. 혹자는
"도적질 말고 모든 것은 다 해보라"고 까지 하였다. 맞는 말이다.
경험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우선 세계의 넓음을 보고, 외국어의 중요성도 깨닫고,
노동의 진정한 가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때는 그런 세상을 경험치 못했다,
해외 여행비용을 마련할 만큼의 알바 자리도 없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저 한 것이 몇 명이 모여 국내여행을 다녀 오거나
지리산등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시골출신 학생들은 여름방학이면 농사꾼이 되어야 했다. 나이드신 부모님
들의 바쁜 일을 도와 드려야 해서 여행이나 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면서
동생들이나 어린 조카들의 여름방학 숙제를 도와 주어야 했다. 초등교 학생들은
당시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이 꼭 있었다.
식물채집을 위해 들로 산으로 오가며 식물을 뽑아 책갈피에 끼워 건조 시키고,
그것을 도화지나 백지에 붙혀 이름과 채집장소, 날짜등을 기입해 만들었다.
식물채집은 그래도 쉬웠는데~, 곤충채집이 문제였다. 곤충을 잡는 것도 문
제였지만 썩지 않도록 예쁘게, 변형없이 박제처럼 건조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동물채집의 대상은 대개가 잠자리였다, 잠자리는 종류도 많았고, 집 주변에서
채집 채를 이용해 잡기가 좀 수월헀기 때문이였다. 그 다음이 매미류와 나비류
였다. 시골에는 곤충의 종류가 당시는 참 많았다. 잡아서 핀으로 꽂아 건조 시킨
후 작은 상자에 예쁘게 배열, 크기와 종류별로 곤충을 꽂아 방학이 끝나고 개학
하는 날, 과제물로 제출했다.
그 당시는 잠자리가 참 많았는데~, 지금은 시골에 가도 잠자리 보기가 어렵
다. 모두들 원인을 농약 사용때문이라는 결론이다. 농약 사용으로 유충들이 살
수가 없단다. 우리 어릴적 그 흔하던 메뚜기, 방아개비도 보이지 않는 것이나
같은 이유가 될것 같다.
어릴적 잠자리 잡는 법은 매미채 같은 기구도 좀 있었지만 대부분 "조용. 조용"
발걸음을 옮겨 쉬고 있는 잠자리 위에서 손가락을 "빙빙~~" 360도 돌리면 잠
자리는 날아 갈 생각보다, 큰 눈으로 손의 움직임을 보다 사람들의 손에 잡히곤
했다. 특히 잠자리는 유충땐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고, 성충땐 모기의 성충을 잡
아 먹는 이로운 곤충이란다.
지금은 시골에도 그런 낭만이 없어진지 오래다.
그저 곤충도감에서 보고 배울 뿐이다.
그런 류의 방학숙제도 이제는 없단다.
특히 가을, 하늘 높고 푸른 날, 빨간 고추 잠자리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고추 잠자리는 특히 높게 날았다,
하늘 향해 "사뿐~~사뿐~~~" 날았다.♧
첫댓글
그옛날 우리 고향의 어귀에 잠자리가
참 아름답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엔 곤충에 대한 숙제는 왜 그리
지금도 그런 숙제가 있을 까요
잠자리가 이쁘기도 합니다
어제 아침엔 매미 한마리를 봣는데 ㅎ
오늘은 웬 늦잠을,기침이 많이 늦으셨네요, 지금에 와서야 쓸대가 없었던 교육이었음을 실감하여 본답니다.
꼭두새벽에 일나서는 마을운동등
기억이 가물 가물한것들도 많습니다.
열여드렛날의 달도 기울고 햇님과의
교대를 하는 살바람이 그렇게도
다정하여 보입니다만 지금의
햇볕은 따갑기만합니다,
@행운
아침에 아니 새벽에 눈을 떠지긴 한데
때론 불편해요
다시 눈감았지요
시간 날때 잠자리 댓글 이미지로 좀 넣어 주세요
혹시 하면서요
@양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핸폰이 작동이 잘 안되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