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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의 유머
영미(英美)의 묘비명에는 대개 고인의 성명, 사망 일자, 연령, 직업 따위를 적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곁들여 경건한 좌우명이나 신의 가호를 비는 기원 같은 것을 적는 경우도 있다.
옛날의 묘비명은 주로 명사들의 비석에만 새겨졌으므로
대개는 엄숙하고 진지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었다. 그
리고 고인이 받을 자격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찬사를 새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앰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묘비명을
'죽음 때문에 얻은 미덕이 소급효과를 가지는 것을 나타내는 묘 위에 새긴 비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묘비명은 그 내용이 유머러스한 성격을 띤 것이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타작(他作)인 경우에는 고인의 실책, 악덕 그리고 기구한 운명 따위를 마구 들먹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고인의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pun)을 하고 있는 것도 생겨났다. 이것을 보면 영미인들은 마치 웃음은 죽음마저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런 점은 웃음은 죽음에 대한 모독이라는 관념 때문에 유머의 요소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묘비명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영미에서는 묘비명 선집이라고 하는 책들도 나와 있고 또 문학 사전이나 인용구 사전에도 묘비명들을 수록한 것이 많다. 이런 책들 중에서 좀 특이하고 재미있는 묘비명들을 골라 여기에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의 묘와 묘비명
Good friend, for Jesus'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are:
Blest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 my bones.
ㆍㆍㆍ벗이여, 원컨대 이곳에 묻힌 유해를 파지 말지어다. 이 묘석을 그대로 두는 자는 복을 받고 나의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이 비문은 셰익스피어 자신이 쓴 것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 앤과의 합장을 거부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 이 비문의 진의를 알 길은 없으나. 단순히 후세에 자기 묘를 파헤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전기적 자료의 부족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실재에 대해서 마저 의문이 제기되고,
베이컨설, 말로우설 심지어는 엘리자베드 여왕설까지 나오는 실정이고 보면
많은 연구가들이 그의 묘를 파보고 싶어할 것은 당연하고
또 실제로 그런 계획이 대두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 묘비명에 적힌 저주는 제법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극작가 벤 존슨
O rare Jonson
ㆍㆍㆍ아아 희귀한 존슨
이 간단한 비문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벤 존슨(Ben Jonson)의 석관에 새겨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성당 속에 있는 많은 관들 중에서 오직 하나 이 관만은 서 있다는 것이다.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17세기 런던의 극단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만년의 생활은 아주 궁핍하고 비참했다. 그래서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 간신히 묘지를 구하기는 했으나 손바닥만큼밖에 입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딱한 사정 때문에 그는 눕지도 못하고 이렇게 선 채로 매장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희귀한 존슨이다.
존 게이
Life is a jest, and all things show it;
I thought so once, but now I know it.
ㆍㆍㆍ인생은 농담. 만사가 그것을 나타내준다. 나 일찍이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안다.
위는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로 유명한 존 게이(1685∼1732)의 묘비명이다.
찰스 2세
Here lies our sovereign Lord the King,
Whose word no man relied on,
Who never said a foolish thing
Nor even did a wise one.
ㆍㆍㆍ여기에 우리 왕이 잠들다. 그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노라. 그는 어리석은 말은 한 적이 없었고, 또 현명한 말도 한 적이 없었노라.
위는 찰스 2세(1630∼1685)의 묘비명이다. 찰스 2세는 여배우 넬 그윈, 애첩 레이디 캐슬매인 등 많은 여인들과 놀아난 왕이지만 이 비문을 쓴 왕의 친구 로체스터 백작도 왕에 못지 않은 탕아였다.
로마 시대의 묘비명은 대개 'Siste, viator(Stay, traveler ; 나그네여 걸음을 멈추라)'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 당시의 무덤들은 대부분 길가에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고인을 위한 기도를 간청하는 말을 사용한 것은 자연스럽게 생각된다.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의 비문도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
Stop, Christian passer-by-Stop, child of God,
And read with gentle breast. Beneath this sod
A poet lies, or that which once seem'd he.
O, lift one thought in prayer for S.T.C
ㆍㆍㆍ예수를 믿는 행인이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잠시 걸음을 멈추라. 그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이 글을 읽어다오. 여기 이 흙무덤 속에 한 시인, 아니 옛적에 시인 같았던 존재가 누워 있나니. 오, 잠시 S.T. 콜리지를 위하여 기도하여 다오.
건축가 존 밴러프
Lie heavy on him, earth! for he
laid many heavy loads on thee.
ㆍㆍㆍ흙이여, 무겁게 그를 눌러라. 그것은 그가 생전에 그대에게 많은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또 한 가지 옛날부터 흔히 쓰이는 비문의 표현은 '흙이여, 그대를 가볍게 덮을지어다(May the earth lie light upon thee)'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건축가 존 밴러프 경(l648∼1782)의 묘비명은 이 표현을 뒤집어서 풍자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조나단 스위프트
ㆍㆍㆍ여기에 본교회 수석사제 신학박사 조나단 스위프트의 유해가 잠들고 있다. 분노도 이제는 그 심장을 찢는 일이 없노라. 나그네여, 가서 가능하다면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운 이 사람을 본받을지어다.
위 묘비명은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의 것이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로서,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현실에 대해서 큰 의분(義憤)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만년에 고향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 수석사제직에 있었을 때는 발광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이 묘비에는 고난에 찬 그의 생애가 잘 요약되어 있다. 라틴어로 되어 있으므로 원문은 생략한다.
오스카 와일드
파리 근교에 묻혀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비문.
When the Last Trumpet Sounds and We Are Couched in our Porphyry Tombs, I Shall Turn and Whisper to You Robbie, Robbie, Let Us Pretend We Do Not Hear It.
ㆍㆍㆍ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반암(斑岩)의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때, 로비 나는 자네에게 몸을 돌리며 속삭이겠네. 로비 우린 저 소리를 못들은 체 하세라고
벤자민 프랭클린
The body of
B. Franklin, Printer
(Like the cover of an old book
Its contents torn out
And scripts of its lettering and gilding)
Lies here, Food for the Worms.
But the Work shall not be Lost;
For it will(as he believ'd) Appear once More,
In a new and more Elegant Edition
Revised and Corrected
By the Author.
ㆍㆍㆍ인쇄업자 벤자민 프랭클린, 낡은 책의 표지가 닳고 문자와 금박이 벗겨져 나간 것처럼
그의 몸은 여기 누워 벌레에게 먹히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이 책이,
그가 믿는 바와 같이 저자(하나님)에 의해 개정(改訂)되고 수정되어 아름다운 판으로 다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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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