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근대 외국인 선교사들은 당시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 책에서 저자 심옥주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다섯 명의 선교사들의 활동을 추적하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헌신했는지 살펴보고, 당시 현장을 현장감 넘치는 목소리와 친절한 어투로 풀어 나간다.
호러스 언더우드, 앨리스 해먼드 샤프, 이사벨라 멘지스, 조지 새넌 맥큔, 프랭크 윌리엄스. 단순한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넘어, 한국의 교육과 의료 그리고 독립운동 등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일제의 압제에 맞섰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땀과 열정을 쏟은 이들을 통해 우리 한국의 독립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저자 소개
심옥주
한국근현대사상과 민족운동, 여성독립운동을 전공했다. 부산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동의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희순 의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미발굴된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연구해 왔고, 현재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 조지메이슨대학교 아시아 평화와 분쟁 연구센터(PACSC Asia)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여성독립운동을 널리 알린 공로로 제15회 유관순상(2016), 국무총리표창(2019, 양성평등진흥부문) 등을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호주 女선교사의 독립운동: 멘지스·데이비스·호킹의 독립운동과 서훈과정을 중심으로」, 「안중근 家 여성의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 조마리아·안성녀·오항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여군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성독립운동 탐구」 외 다수 논문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여성독립운동가 사전』, 『대한여자애국단』, 『대한여자애국단: 멕시코-쿠바 자료집』,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공저), 『벌거벗은 한국사: 근대편』(공저) 등이 있다.
목차
발간사
들어가며
호러스 언더우드(1890-1951), 대한과 고종을 지키다
앨리스 해먼드 샤프(1871-1972), 유관순과 운명적으로 만나다
이사벨라 멘지스(1856-1935), 일신여학생과 만세를 외치다
조지 새넌 맥큔(1873-1941)과 『The Mansei Movement』
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 인도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나다
책 속으로
P. 27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 여름날,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마을에는 가족 단위로 몰사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는 위생 관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물을 끓여 먹거나 위생에 대한 지식이 대중적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전염병 환자가 증가했고 선교사들도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로 이어졌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언더우드는 제중원의 의학교육에 더욱 열의를 쏟았다.
P. 47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고종 지키기에 나섰다. 일제 침략의 의도와 만행의 부당함에 대한 보호적 조치였다고 하였지만 언더우드는 대한과 고종을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P. 60 당시 한국여성은 근대화의 조류 속에 있었지만 철저한 가부장제 분위기로 인해 사회활동이 소외되어 있었다. 존중받아야 할 인간, 주체적인 여성 존재가 아니라 사회제도 속에 갇혀 있는 여성과 마주했다. 사애리시는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는 가운데 배타적인 시각으로 치우친 사회를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P. 76~77 그러면 사애리시는 독립운동가인가. 필자는 사애리시가 개화기 지식인재를 양성하고 일제강점기 항일애국인재가 양성되는 터전을 마련하고 제공하는 등 독립의 불씨를 싹틔웠기 때문에 독립운동 그 이상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애리시는 만세운동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제자와 지인이 잡혀가고 교회와 학교가 불타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P. 94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학교 기숙사를 책임졌던 이는 다름 아닌 학교 설립자 멘지스였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만세운동 소식에 일신여학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만세시위가 진행될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일신여학교 기숙사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조심할 것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억눌려 있었던 그날의 정의로운 학생들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일신여학생과 교사는 격문을 전달받아 들고는 교문 밖으로 만세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P. 115 멘지스는 호주로 돌아간 뒤 1930년 11월에 76세의 노령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수양딸 민신복의 결혼을 축하했고 결혼 선물로 좌천동의 한옥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이사벨라 멘지스는 1935년 9월 10일 7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그녀의 흔적을 발라렛 공동묘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꽃다운 나날들을 한국의 학생, 교사, 양녀를 위해 헌신했던 이사벨라 멘지스를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P. 127 놀라운 사실은 필자와 인연이 된 기록은 부친 조지 새넌 맥큔의 기록이 아니라 그의 네 자녀 중에서 막내아들인 새넌 맥큔의 기록이었다. 조지 새넌 맥큔은 네 자녀를 두고 있었다.
P. 137~138 새넌 맥큔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아마도 부친 조지 새넌 맥큔일 것이다. 새넌 맥큔이 성장하면서 바라본 부친은 다소 일본에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105인 사건으로 부당하게 기소된 학생들과 교사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부친이었기에 부친은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그는 한국에 있을 때는 일본어로 대화하지 않는 습관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인들과 교류는 했지만 그들이 한국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P. 163 한국의 공주영명학교 교장에서 한국광복군 대원을 교육하는 영어교관이 된 프랭크 윌리엄스! 한국광복군과 영국군이 원활하게 연합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어를 배워 원활한 소통을 하는 데 기여한 프랭크 윌리엄스의 조력이 있었다.
P. 178 왜 그들은 일제의 교육과정을 수용하지 않았을까. 그 해답은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을 때, 근대교육을 받은 공주영명학교 교사 대부분은 공주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출판사 서평
일제에 맞서 우리와 함께한 외국인 선교사들
교육, 의료, 독립 등 다양한 방면에서 보여 준 그들의 헌신
한국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근대 외국인 선교사들은 당시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 책에서 저자 심옥주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다섯 명의 선교사들의 활동을 추적하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헌신했는지 살펴보고, 현장감 넘치는 목소리와 친절한 어투로 당시 현장을 풀어 나간다.
호러스 언더우드, 앨리스 해먼드 샤프, 이사벨라 멘지스, 조지 새넌 맥큔, 프랭크 윌리엄스. 단순한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넘어, 한국의 교육과 의료 그리고 독립운동 등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일제의 압제에 맞섰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땀과 열정을 쏟은 이들을 통해 우리 한국의 독립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한국 근대 교육과 의료의 기틀을 마련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하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원두우)는 한국의 근대 교육과 의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5년 조선에 도착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와 경신학교를 설립하여 한국 근대 교육의 기틀을 다졌을 뿐 아니라 초기 제중원 의료 활동에도 기여했고, 최초의 한국인 의사들을 양성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의 행적을 오랫동안 지켜본 고종 황제으로부터 태극장을 수여받으면서 조선에서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의 학생들 가운데 일부가 독립운동가로 성장하기도 한 점을 보아 언더우드를 독립운동가의 아버지라 일컬을 만하다. 이렇듯 한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교육으로써 지식인들을 배출해 민족운동을 지원한 언더우드는 한국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운 교육자,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독립을 꿈꾸다
앨리스 해먼드 샤프(사애리시)는 한국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충남 공주에서 활동하면서 충청지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 명선여학당(이후 공주영명여학교)을 설립해 한국 여성들의 교육에 힘썼다. 여성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해 일제의 억압 속에서 여성들이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샤프와 인연이 되었거나 그녀의 추천으로 여성교육에 입문한 인물, 독립운동의 행적이 확인되는 대표적인 인물에는 유관순·노마리아·김유실·이순애·박루이사·조화벽 등이 있다.
샤프는 단순히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여성들이 독립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학생들의 만세운동 참여와 투옥상황 등 3.1운동과 관련한 일들을 본국의 여(女)선교회에 주기적으로 보고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역경을 이겨 내며 꽃피운 독립의 꿈,
교육으로 여성의 길을 훤히 밝히다
이사벨라 멘지스(민지사) 또한 한국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남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설립해 한국 여성들의 교육에 앞장섰으며, 일제강점기 한국 여성들이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데에도 크게 일조했다.
또한 3.1운동 당시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에 참여하며 일제의 억압에 저항했는데, 멘지스는 교육자이면서도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행동하며 그들의 독립 정신을 일깨운 실천적 선교사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도적인 인물로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2023년 3월, 저자를 비롯한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 호주 선교사 발굴팀의 노력으로 국가보훈부는 멘지스를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게 되는데, 이것으로 멘지스가 한국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임을 국가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The Mansei Movement』와의 귀한 인연,
그날의 기록을 통해 본 맥큔 일가의 독립운동
2022년 가을, 저자는 하와이에 있는 지인 작가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한 독립운동가 가족의 기록이 담긴 책자를 입수했다는 전화였다. 『The Mansei Movement』는 새넌 맥큔의 회고기록이었고, 새넌 맥큔은 한국에서 윤산온으로 알려진 조지 새넌 맥큔의 아들이었다. 뜻밖의 연락에 저자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심옥주 교수는 맥큔 집안의 만세운동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부친 조지 새넌 맥큔은 한국의 105인 사건과 3.1운동, 신사참배 반대 등에 참여한 선교사로, 1936년 초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써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평양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의 교장직을 수행하며 선교활동과 독립운동을 실천했다. 그 후에도 1941년 12월 7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의 독립과 만세운동, 일제의 탄압과 한국의 실정 등을 해외에서 알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아들 새넌 맥큔의 『The Mansei Movement』를 통해 105인 사건, 3.1운동을 몸소 겪은 맥큔 일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일제의 압박에도, 한국을 떠난 저 멀리에서도
한국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던 숭고한 마음
프랭크 윌리엄스(우리암)는 한국에서 교육과 독립운동을 지원한 선교사이다. 충남 공주에 공주영명학교를 설립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민족의식을 함양케 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가 끝내 추방되었고 이후 인도로 이주하게 된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에도 윌리엄스는 한국광복군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계속 지원했다. 한국광복군의 영어 교육을 돕고, 그들의 독립운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비록 한국에서의 활동은 일단락되었지만,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외에서 우리를 지원한 것이다. 2023년 국가보훈부는 78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한국 독립의 불씨를 살리고자 애썼던 프랭크 윌리엄스를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