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曹操)의 출병(出兵) -
다음날 궁중(宮中) 악사(樂士)들의 출정가(出征歌)가 요란(搖亂)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군사(軍事)들이 좌우로 도열(堵列)한 중앙(中央)으로 조조(曹操)가 거만(倨慢)하게 뒷짐을 지고 천자(天子)의 집무실(執務室)인 장락궁(長樂宮) 앞으로 천천히 입장(入場)하였다.
천자(天子) 유협(劉協)은 면류관(冕旒冠)에 정장을 차려 입고 장락궁(長樂宮) 중앙계단 중간에 긴장(緊張)한 표정(表情)으로 서서 출정식(出征式)에 입장(入場)하는 조조(曹操)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천자의 앞에 조조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좌우의 팔을 들어 출정가(出征歌) 연주(演奏)를 멈추게 한 뒤에 단상(壇上)의 천자(天子)에게 예(禮)를 표(表)하였다.
천자(天子)는 절월도(節鉞刀)를 들어 조조(曹操)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조 장군(曹將軍), 그대를 호국 대장(護國大將)으로 임명(任命)하니 절월(節鉞)과 황명(皇命)을 받들어 천자(天子)의 검(劍)을 쥐고 천자의 가마에 올라 대 한(大 漢)의 병권(兵權)을 호령(號令)하시오!"
그러자 조조(曹操)는 단상에 올라 천자(天子)로부터 절월도(節鉞刀)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 들고 뒤로 돌아서서 만장(滿場)한 장졸(將卒)들을 향해 절월도를 뽑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도열(堵列)해 있던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천지가 떠나갈 듯이 소리친다.
"조 장군(曹將軍 만세(萬歲)~! 황제 폐하(皇帝 陛下) 만세(萬歲)~!"
이윽고 조조는 호위(護衛) 병사(兵士)를 앞세우고 천자(天子)의 수레를 타고 남양(南陽) 원정 (遠征)길에 올랐다. 진군(進軍)하는 병사들의 사기(士氣)는 하늘을 찔렀고, 대북과 진고(晉鼓 : 긴 북)는 귀를 찢을 듯이 큰소리로 울리며 천지(天地)를 진동하였고 진군하는 병사들의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렇게 황제(皇帝) 유협(劉協)을 비롯해 만조백관(滿朝百官)과 백성(百姓)들의 환송(歡送)을 받으며 원정(遠征)의 길에 오른 조조(曹操)는 광야(曠野)로 나오면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투(戰鬪) 수레로 갈아탔다.
그런 연후(然後)에 한참을 행군(行軍)하며 수레에 탄 조조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본 순욱(荀彧)이 조조의 곁으로 말을 달려와,
"주공(主公), 뭘 염려(念慮)하십니까?" 하고 물으면서 이어서,
"원술(袁術)의 세력(勢力)이 커서 이번 원정(袁術)에서 패(敗)할까 봐 걱정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曹操)는,
"내 걱정은 원술(袁術)이 아니라 여포(呂布)요. 혹시나 우리가 원술과 싸우는 틈에 여포가 후방(後方)을 기습(奇襲)할 까봐, 염려가 되는군."
그러자 순욱(荀彧)이 단언(斷言)하듯이 말한다.
"못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가 순욱을 힐끗 쳐다보며,
"이유가 뭐요? 내가 여포(呂布)라면 그러겠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순욱(荀彧)이,
"여포(呂布)는 주공(主公)이 아닙니다. 그가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 하나 지략(智略)에 있어서는 주공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허나, 진궁(陳宮)이 있지 않소?"
"진궁(陳宮)이 있기 때문에 원술(袁術)을 돕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건 반역(反逆)을 의미(意味)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를 자초(自招)하지는 않을 겁니다. 더구나 예전에 여포가 연주를 기습할 때에 주공(主公)께 대패한 경험이 있어서 실수를 되풀이하려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나 우리는 지금 성이 비어있질 않소?"
"지나친 염려이십니다. 여포(呂布)는 연주가 비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여포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설사 진궁(陳宮)이 안다고 해도 무모하게 연주(兗州)를 공격(攻擊)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 여포는 오히려 혹시 주공께서 원술(袁術)을 제압(制壓)하러 출병(出兵)했디가, 그틈에 군사를 돌려 서주(徐州)로 공격해 올까 걱정을 할 것입니다."
"맞아! 내가 좀 의심(疑心)이 많지... 성공(成功)을 해도 의심, 실패(失敗)를 해도 의심,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에 걱정이 하나 있는데 당신(當身)이 해결(解決)해 주겠소?" 조조(曹操)는 느닷없이 순욱(荀彧)에게 부탁한다.
그러자 순욱(荀彧)이,
"말씀해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이번 원술(袁術) 정벌(征伐)은 필(必)히 승리(勝利)해야만 하오. 혹시라도 패(敗)하면 천하 제후(諸侯)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모두가 조조가 토벌하러 갔다가 토벌(討伐)됐다고 비웃을 테니 그럼 우리는 역적(逆賊)이 되버리고 놈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사정(事情)없이 물어뜯고 영토(領土)를 나눠갖는 처참한 최후(最後)를 맞게 되겠지..."
"물론 그렇겠지요."
"당신이 볼 때에 어떻게 해야 원술(袁術)을 이길 것 같소?"
"병력(兵力)을 총동원(總動員)해 원술이 수도(首都)로 정한 수춘성(壽春城)을 집중(集中) 공략(攻略)하는 게 상책(上策)입니다."
"음, 그건 나만의 공략 방법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그게 원술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이고, 더 좋은 공략은 없다고 봅니다."
"음.... 고맙소!"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조조가 탄 전투 마차(戰鬪馬車) 가 들판을 지나고 있을 때 무엇인가 사두마차(四頭馬車)를 끌고 있는 말 앞에 푸드득거리며 날아들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메추리이었는데 알을 품고 있다가 많은 군사(軍事) 행렬(行列)이 일시에 몰아치자 급히 날아오르려다가 사두마차 앞으로 느닷없이 떨어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조조의 전투 마차를 끌던 네 마리의 말들이 일시에 놀라며 대열(隊列)에서 이탈(離脫)하며 마구 날뛰기 시작하였다.
"워! 워!"
마부(馬夫)와 조조는 놀라 날뛰는 말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말들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사정없이 이리저리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주공(主公)을 보호하라!" 순욱(筍彧)과 장수들이 기(氣怯)겁하며 소리치고 달려들었지만 말들은 쉽게 진정(鎭靜)되지 않았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말들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조조가 원술을 치려고 출정할 때에는 한창 보리 이삭이 피어나는 계절(季節)이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출정 전에 농민(農民)을 보호(保護)하는 차원에서 보리밭을 피해서 행군(行軍)할 것을 명령(命令)한 바 있었다. 그런데 날뛰던 말들을 진정시키고 나서 쳐다보니,
조조가 탄 수례가 멈춘 곳은 보리밭 한가운데요.
이미 넓은 보리밭을 마차가 휘젓고 다니면서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조조가 진정된 마차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말들이 사정없이 짓밟아 버린 보리밭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종군 주부(從軍 主簿)를 불러라!" 그러자 종군 주부(從軍 主簿)가 부리나케 조조 옆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창백(蒼白)한 얼굴로 읍하며 대답한다.
"주공!"
조조가 종군 주부(從軍 主簿)를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출정하기 전에 하명한 것이 있는데 기억하나?"
"옛, 기억합니다!"
"말해봐라."
"주공께서 이렇게 하명하셨습니다. 이번 역적 토벌(討伐)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지금은 보리가 자랄 시기이니 보리밭을 지날 때에는 밟아서는 안 된다. 위반자는 참(斬) 한다. 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차가 보리밭을 밟았으니 어찌해야 하나?" 조조가 냉철한 어조로 종군 주부에게 물었다.
그러자 종군(從軍) 주부(主簿)는 매우 난처(難處)해 하며,
"아, 예. 소관(小官)은 주공(主公)의 죄(罪)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쩔쩔매며 허리를 굽힌다.
그러자 조조(曹操)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自身)이 정(定)한 군령(軍令)을 자신이 어기면 누가 복종(服從)하겠나? 검(劍)을 가져와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순욱(筍彧)이 눈꼬리가 쳐진 채 침통(沈痛)한 표정 (表情)을 지으면서 장검(長劍)가지고 조조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조조는 이번에는 종군 주부에게 말한다.
"명이다! 지금 당장 그 검(劍)으로 내 목을 쳐라!"
"음, 음!... 주공, 소관은 못 합니다!" 종군 주부(從軍 主簿)는 조조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절대, 못 합니다!"
이런 광경은 순욱(筍彧)을 비롯한 조조의 휘하 장수와 병사들 모두가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순욱(筍彧)은 장검을 든 채 조조의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서며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주공, 춘추(春秋)에도 법이 존귀한 분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자결은 안 됩니다."
"아무리 춘추에 그런 말이 있더라도 법이 존귀를 가린다면 도대체 법이 무슨 소용이오!"
그러자 순욱은 더욱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옳은 말씀이지만 생각해 보셨습니까? 황명(皇命)을 받든 토벌 길에 이리 쉽게 죽으시면 누가 군사를 인솔할 것이며 누가 백성을 위해 역적을 멸하겠습니까?"
"으 흠,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소. 역적 토벌의 대임을 맡았으니 그렇다면 내 잠시 목숨만은 살려두도록 하겠소."
그러자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휘하의 장졸 모두가 조조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면서 일시에 복창한다.
"알겠습니다!"
조조가 머리를 묶어 씌운 관을 벗겨내며 말한다.
"오늘은 목 대신 상투를 자르고 훗 날 공을 세워 속죄하겠다."
그 말을 듣자 순욱은 지체 없이 지금까지 들고 있던 장도(長刀)를 조조에게 내밀었다.
조조(曹操)는 날카로운 장도(長刀)를 뽑아 들고 자신의 상투를 지체 없이 잘라 내던졌고, 휘하의 장졸들은 이런 광경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조조가 일갈(一喝)한다.
"조조(曹操)의 수급(首級)을 전군에 전달해라!"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병사가 긴 행렬의 군사들 틈을 누비고 다니며 명령을 전달한다.
"주공(主公)께서 보리밭을 밟지 말라는 군령을 어겨 참수(斬首)를 당해야 마땅하나 역적 토벌의 대임을 맡은 몸이라 목숨만은 남겨두고 공을 세워 속죄(贖罪)한다 하시며 상투를 잘라 참수(斬首)를 대신하였으니 이를 전 군에 전하라 하신다!"
그리고 원술(袁術)을 정벌(征伐)하기 위한 조조군(曹操軍)의 행군(行軍)은 다시 시작되었다.
삼국지 - 90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