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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예천군민회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창원 용지공원 남원윤씨 윤우신 부사윤공유애비(府使尹公遺愛碑)와 김구가 친필로 쓴 이순신 장군의 시
범털과개털(저상일월,미산고택) 추천 0 조회 187 17.06.05 12:54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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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6.08 10:12

    첫댓글 고맙고, 수고하십니다.
    저상일월과 미산고택에 대해선 이십칠팔 년 전에 정신문화원 박성수 교수를 (사)한배달에서 연구위원으로 만나면서 참으로 대단함을 고향의 자부심과 함께 느끼고, 연속되길 바랐지요. 다행히 당시 종로구청 박정노님이 다시 쓰신다길레...당시 함께 회포도 풀곤 하였습니다만,

  • 17.06.08 10:18

    안타깝게도 곧 명을 다하시는 바람에...나중에 자녀들이라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저도 7~8년전끼지 예천에 이십여년을 좇아 다니면서 수많은 글도 쓰고 하였지만, 귀향하셔서 관계자들이 아니면 별 관심들도 없는(?)...훌륭한 일을 하시니 오히려 반갑습니다. 사진을 보니 우리 구면같습니다.(재경 군면민회나 단체)..폰으로 댓글 쓰다보니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장회장님도 뵙고 제곡에서 쉬면서요.ㅎㅎ

  • 저를 아신다고 하시니 반갑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17.06.08 11:10

    전 태생이 고평 부루(리)실입니다.
    제곡 맛질로는 맏집이 되겠고요.
    유년시절부터 늘상 귀 아프도록 들은 것이 약포대감과 겸암선생 이야기고, 다음이 서애나 학봉입니다. 부루실엔 사육신 하위지 후손도, 금성대군 복위 순흥안씨도 있지만...대부분 그렇지만 독재이 반씨 문중 처가쪽으로 오신 것이지요.(괄시하던 장인 말고 장모님 뵈러..ㅎㅎ)

  • 17.06.08 21:56

    충무공의 동상 칼문제는 충무공의 죽음과 함께 근 삼십여년 전부터 주장한 바,
    충무공의 시 ㅡ 한산섬 달 밝은 밤에..큰칼 옆에 차고..ㅡ 도 원인인 것같습니다.

  • 17.06.09 19:00

    약포대감의 정작 큰 일은 향약입니다. 7ㅡ8십년대까지만 해도 상포계조차도 엄격했습니다.

  • 예 맞습니다.ㅎ

  • 17.06.10 06:56

    (어디에 체팅 댓글 )

    퇴계선생의 수제자는 겸암선생입니다.
    겸암은 충무공 이순신을 천거하고 영의정으로
    임란의 징비록을 쓰신 서애 류성룡의 맏형이십니다.

    겸암의 겸은 퇴계의 퇴에서 겸을 받았습니다.
    퇴계는 흐르는 물에서 물러남이고
    겸암은 겸손한 바위라고 직해할 수 있습니다.
    변화,작용에서 본체와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겠죠.
    안동 하회에서 겸암을 모르고 서애를 말하는 것은
    서애 조차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퇴. 겸.....공이안이겠지요.(공경함으로써 평안을.)
    참고로 요즘 대박난 명량은 만화같은 영화일 뿐이라고 봅니다.

  • 17.06.09 21:20

    저도 '90년에 발표한 바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 무거운 갑옷에
    권총(!)도 아닌 큰 칼 차고 광화문에 버텨 서 계실 일도 없고
    임란이 끝나는 퇴각 마당에 무슨 일로 배 위에서 전사할 일도 없습니다.
    거북선도 어느날 갑자기 만든 것도 아니고 12척으로 300여척의 배를..?
    겸암선생이 서애로 하여금 늘 본받게 한 약포 정탁대감이 그 유명한 신구차 상소로써
    다른 신하들은 입도 벙긋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살려 놓은 것이지요.
    저희 마을엔 아직도 약포의 사당과 유물관이 있고 종손이 살고 있습니다.

    어릴 때 수시로 듣던 어르신들 말씀을 학교에서 잘못 배웠습니다!
    또한 영화가 망쳐버렸습니다

  • 17.06.09 21:34

    (*30여년전 문경새재:천심십도혈)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낭케 앉지말게...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

    꽃재(사람아 사람아)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사람이 아니로구나

    온전한 팔 다리를 하고도
    사람걸음을 걸을 수가 없고
    멀쩡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무슨 사람이라 하랴

    죽기도 살기도 서러운 이승살이
    거적때기 위에서 스러져 뒹굴다가
    거적때기 덮혀 가는 길을
    어이 사람이라 하랴

    사람이고 싶어라
    사람이고 싶어라
    사람을 닮은 짐승이
    사람으로 살고 싶어라

    사람이 어찌 하늘이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오직 사람이기 위하여
    새벽이 되었노라
    돌이 되었노라

    사람아 사람아
    하늘같은 사람아

  • 17.06.10 03:35

    맏형수님(80세. 형님은 서부38회)이 하회입니다.ㅎㅎ

  • 네...소중한 글 감사드립니다.꾸벅

  • 17.06.10 03:32

    백두대간 지도는 (고)이우형선생(원래 KBS 성우 공채1기, 고은정 동기.광우당 대표)과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약 30년전 동부이촌동에서 대동여지도 주석작업을 한 추억입니다.
    끝나고 호프 한잔씩 하면서 막차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과천(43년 거주)으로...!!

  • 17.06.09 23:50

    약9년전 안동독립기념관에 강실장과 관장님의 안내로
    백범선생의 비서(실장) 구익균선생(당시102세)를 모시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은 잊혀진 신의주 학생의거의 주동 인물이시죠.
    그 연세에도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하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안동,예천지역에서 조선의 벼슬을 가지고
    비교하는 무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에 사진에 소산 출신 정제독이 멋있어 보입니다.
    각행이 따로 놀아서 열어야 할 때 다문다면..?!

  • 하회마을은 근세 의병전쟁과 독립투쟁 시기에 문중차원 또는 조직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이 정확하죠.

    예천 큰맛질 미산 박득녕은 나암 박주대의 부친인데,백하 김대락의 외조부이며 석주 이상룡 선생의 처 외조부입니다.박주대는 초대 안동의병장인 권세연,예안 의병장 향산 이만도와는 친구간입니다.

  • 17.06.10 10:21

    예, 그 상황들과 후손들의 내력을 생각하면 참으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소산마 하고는 하회는 물이 다른 곳입니다! 지름장사나 하고 돛대나 잡고 노름재이나 할 망정 그 기개는 무도리를 개똥이라 카더라!

  • 17.06.10 10:20

    백범은 민중적인 글씨가 어울리는데.. 예서를 쓰니...호탕하기는 합니다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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