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정(脫井)
맹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이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소를 어디로 끌고 갑니까?" ‘흔종(釁鐘)에 쓰려고 합니다."
흔종은 종을 만들고 동물의 피를 바르는 의식입니다. 왕은 ‘놓아주어라! 나는 소가 두려워하며 죄없이 사지로 나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그러면 흔종을 폐지하오리이까’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양(羊)으로 바꾸어 쓰거라’ 백성들은 왕이 소를 양으로 바꾸라는 것을 보고 인색하다고 할 것이지만 맹자는 바로 이 마음이 왕도를 구현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왕이 소는 현장에서 보았고,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본 것과 못 본 것은 참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이고 관계입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어진 마음의 발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옛 선비들이 푸줏간을 멀리한 것은 그 비명을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건 비명이 관계를 일깨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남과 관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도시에서 대부분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는 인간적 만남이 상당히 빈약합니다. 만남이 부재하기도 하고, 그저 온라인을 통한 얼굴 없는 만남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특정한 만남에 함몰되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개구리가 우물을 벗어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듯이 우리도 탈정(脫井), 즉 아집과 편견의 우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바다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강을 바다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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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탈정? 탈정이 탈정(奪情) 인 줄 알았더니 脫井도 있네요.
삼국지에 사마의가 부친상을 입었지만, 당시 정국으론 꼭 출사해야 했기에 왕이 탈정(奪情) 을 명한다 하는 대목이 있어 기억에 남는 단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