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이천목(貴耳賤目)
[귀할 귀/귀 이/천할 천/눈 목]
[뜻]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김.
먼 곳에 있는 것을 괜찮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나쁘게 여기는
보통 사람들의 풍조를 가리킨다.
[내용]
귀이천목(貴耳賤目)이란 말은 귀고천금(貴古賤今)과 같은 말로 쓰인다.
예를 들면, 외부 의견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내부의 건의나
충고는 무시하는 경우가 귀이천목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의 제품이나
인물들에 대해 열광하면서 국내 제품이나 인물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낮춰 평가하는 태도 또한 그렇다.
공자나 맹자 같은 옛사람들은 신줏단지 모시듯 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장을 하면 귀담아 듣지 않는 것 또 그렇다.
소크라테스처럼 아주 훌륭한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귀이천목이다.
집토끼보다 산토끼가 더 좋아 보이는 경우도 그렇고, 이미 잡은 물고기
보다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이는 것도 그런 이치다.
이 말은 한나라 초기의 사상가 환담(桓譚, BC24~AD56)의 언행이 담긴
'환자신론(桓子新論)'에 등장한다.
당시 세태를 꼬집어 貴耳賤目 貴古賤今(귀이천목 귀고천금)이라 했다.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것보다 귀로 들은 소문을 진짜로 여기며,
옛날에 일어났다고 전해지는 일들은 옳은 정보로 생각하고 요즘의 일들은
가볍게 여긴다는 얘기다.
643년에 당태종의 명령으로 편찬한 진서(晉書)에도 이 구절이 보인다.
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소위말학부수 위이이천목자야).
세상에서 이르기를 배우는 자들이 속뜻은 이해도 못하고 겉만 읽고 전하니,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는 자들이란 의미다.
옛사람의 생각이 훌륭하고 옳다 할지라도, 그 깊은 뜻을 읽지 못하고
그저 감탄사만 붙여서 전하면 그게 무슨 학문이냐는 얘기다.
전해진 것을, 자신의 눈으로 읽어내서 그 뜻을 부연하고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며 그 지적 깊이를 더하는 것만이 학문하는 자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아주 귀담을 말이다.
첫댓글 가까운 이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