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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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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토 론 방 <멸해야 할 번뇌>와 <번뇌 즉 보리>
수연 추천 0 조회 583 16.11.21 01:13 댓글 2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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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11.21 01:15

    첫댓글 <멸해야 할 번뇌> vs <번뇌 즉 보리>
    어찌들 생각하실런지 궁금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6.11.21 05:18

    그렇기도 하네요^^

  • 작성자 16.11.21 13:50

    1) 소승불교에서는 번뇌와 해탈을 실체로서 인정하며,
    2)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얻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1)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제법무아가 실체 없음을 뜻하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번뇌의 실체가 없다고 보는 점에서는 초기불교나 후기불교나 다름이 없습니다.

    2)의 진술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초기불교의 수행이 번뇌(스트레스)를 싫어하여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뇌를 직면하여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가를 통찰함
    으로써 번뇌의 뿌리를 끊는 것이라는 점에서 필자의 주장과는 아무래도 좀 거리가 있지않나
    싶습니다.

  • 작성자 16.11.21 05:54

    육체 자체를 고의 원인으로 보아서 무여열반을 추구하는 입장에 대해
    자비로 인해 생노병사의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고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보살의 입장을 "사고방식(믿음과 태도)의 변환"으로 보고, 심리학적인
    연구와 관련지어 설명한 것이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관련된 주제의 논문 하나를 답변 글로 올립니다.

  • 16.11.25 01:45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은 여러모로 다른 태도를 띠게 된다. 기존의 소승불교에서는 번뇌를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며 보리와 대립되는 존재로 취급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번뇌를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번뇌와 보리가 대립되는 관계가 아닌 상즉의 관계로 바뀌어, 그 둘을 둘로 보지 않는 불이사상(不二思想)으로 전개되기까지에 이른다. 번뇌즉보리설은 구마라집(鳩滅什, 344-413...]

  • 16.11.25 01:46

    [소승불교에서는 번뇌와 해탈을 실체로서 인정하며,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얻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즉 초기불교나 부파불교에서 번뇌는 끊어야 할 대상이자 열반에 방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대승에 이르러 180도 돌변하게 된다. 현상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번뇌와 보리를 대승에서는 상즉의 관계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이는 번뇌와 보리가 자성적 실체가 없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인데, 이 사상은 더 나아가 번뇌와 보리 그 자체를 둘로 보지 않는 불이사상(不二思想)으로 이어지게 된다. 번뇌가 들끓는 그 자리가 바로 보리를 증득하는 곳이 되는 거다...]

  • 16.11.25 07:05

    @노랑 -> 저자가 참 많은 조사를 하셔서 글 쓰셨네요.
    그런데 위 부분이 좀 걸립니다.

    1.
    대승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번뇌 즉 보리> 는 사실
    대승불교 전유물은 아닙니다.
    이미 초기불교의 사제 <고성제> 에서 언급 하기 때문이지요.

    고성제란 <과로움이 성스러운 진리> 라는 뜻으로
    <번뇌즉 보리> 와 다른 말이 아니지요.

  • 16.11.25 07:07

    @노랑 2.
    <번뇌즉 보리>를 실체론 관점에서
    설명하신 것은 좋아보이나
    이를 부각하기 위해 초기불교에서
    <번뇌를 멸하라> 를 실체론으로
    비판하는것은 센스가 안되보입니다.

  • 16.11.25 12:15

    @노랑 초기불교에서 <번뇌를 멸하라>
    하는것은
    실체론 관점에서 비판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착한일 해라'
    '쓰레기는 버려라'
    이런 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말을 실체론 입장에서 메스하면
    아주 어색해져 버립니다.
    쓰레기를 버리라 를
    실체론으로 문제 삼으면 이상하둣이..

    어떨때 실체론 관점에서 문제 삼아야 할지 구별해야 겠지요

  • 작성자 16.11.25 04:21

    그렇습니다.
    초기불교의 입장을 번뇌 실체론으로 규정하고 후기불교와 비교한 것도 문제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면 스트레스도 유익한 면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논지(論旨)도 문제입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면 스트레스로 인한 2차적인 병폐는 감소하겠지만
    스트레스 자체는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근의 인지심리학이 시사하는 바는 스트레스가 인지활동 즉, 경험에 대한 해석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트레스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는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나아가
    인지구조 즉 경험에 대한 해석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작성자 16.11.25 04:22

    초기불교의 수행은 경험에 대한 전도된 해석을 불교적인 해석으로 대체하는 것이겠습니다.
    애욕과 집착의 대상이라고 해석했던 것을 무상, 고, 무아, 부정인 것으로..
    불교수행은 결국 인지구조를 바꾸는 것이고 번뇌(스트레스 포함)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후기불교에서 일체를 공으로 보는 것도 결국 같은 것이겠습니다.
    공한 것에 대해 애욕과 집착을 일으킬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불교는 물론 후기불교 역시, 보살의 목적이 중생을 고통과 번뇌로 부터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엔 <번뇌를 멸하라>에 귀결됩니다.

  • 작성자 16.11.25 05:45

    <번뇌는 결국 멸해야 할 것>임을 전제로 한다면, <번뇌 즉 보리>는 필자가 주장하는 맥락과는
    사뭇 다른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

    <번뇌가 들끓는 그 자리가 바로 보리를 증득하는 곳>// 필자 '이원선'

    맞는 얘기입니다.
    번뇌는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깨치지 못한 저로서는 <번뇌 즉 보리>가 과연 이런 의미일런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생겨나는 자리가 같은 곳>이라는 것과 <같은 곳에서 생겨난 것들은 서로 같다>는 것은
    아무래도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16.11.25 09:34

    @수연 //번뇌와 보리 그 자체를 둘로 보지 않는 불이사상(不二思想)//

    <A와 B는 실체가 없는 점에서 같다.>는 것과 <A와 B는 그 자체가 둘이 아니다.>가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요?

    이것도 결국, 일체의 언어에 의한 규정이나 해석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중도'의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입니다.

    <번뇌와 보리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번뇌와 보리는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다.>?

  • 16.11.25 07:20

    중도설에 자타작중도설이 있습니다.
    이 중도설에선
    외도가 누가 업보를 받냐고 물으니
    부처님이 답변을 않하지요.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이 지은 업보
    눈 자신이 받는다는 자업자득
    업보설도 설명합니다

    부처님이
    한입같고 두 말 한것과 같은
    이 두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겠지요.

  • 작성자 16.11.25 07:53

    그렇겠지요!
    그러나 저로서는 아직, 위에 언급한 번뇌즉보리, 중도, 유업보 무작자...모두 이해불가입니다.ㅠㅠ
    부처님 말씀이 그러하시니 그렇다고 인정하고 믿을 뿐입니다.
    모두 논리적인 사고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겠지요?

    중론을 보아도 언어로 표현된 것이기에 이해가 되는 듯 싶어도 결국엔 그저, 모두 <아니다>일 뿐이니,
    <~이다.>라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ㅠㅠ

    - <일체는 "~인 것이 아닌것"이다>??? ^^

  • 16.11.25 10:28

    @수연 공감합니다. ()()()

  • 16.11.25 15:14

    @수연 삼시불가득이지만
    부처님도 아침 저녁 이런말
    다 사용하고 실제로 거기에 맞추어
    생활하셨습니다. 전 이리 봅니다.

    세간의 것을 받아드리고
    <그것이 실체가 없음을 여실히 아는 것>
    이게 세간과 출세간을 조화시킨
    '유업보 무작자' 가 아닐지요.

    불교의 백미죠

  • 작성자 16.11.26 22:44

    문제는, 번뇌즉보리라면, 번뇌를 번뇌 그대로 두고 그것을 동시에 보리로 경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번뇌는 이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글 - <불교의 행복 개념과 인식 - 대승보살의 서원과 번뇌>에서는 보살의 경지가 번뇌를 멸하지 않은 채로
    열반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살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과 윤회 세계에 다시 들어오는 것은 범부와 같은 번뇌를 없앴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서원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윤회 세계에서의 보살의 삶은 바로 열반의 상태와 다르지 않게 된다.>

  • 작성자 16.11.26 22:44

    <세간적인 차원에서의 번뇌를 그대로 느끼면서 동시에 열반의 상태와 다르지 않은 보살의 삶>???
    - 보살은 번뇌와 생사를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번뇌는 더이상 번뇌가 아니고 생사는 그대로 열반이라는 것일까요?

    아무개인 [나]의 번뇌가 아니라 일체 중생의 번뇌, 곧 우주적 번뇌를 느끼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이상 번뇌가 아니라
    보리라는 것일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6.11.27 05:27

    경험과 관련한 자상한 설명, 감사합니다.^^_()_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6.11.27 15:08

    공감합니다. ()()()

  • 16.12.11 23:31

    번뇌는, 우리가 번뇌를 느끼는 고통의 측면이 있고, 번뇌라는 것을 바라보는 각자(깨달은 자)의 관점이 있겠습니다.
    어느 쪽에서 번뇌를 말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습니다.

  • 18.06.30 15:31

    번뇌에 혹사 당하면 ,, 감당을 못하면 고통에 빠지고
    번뇌를 이기면 깨달음이 됨니다
    가난을 이기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 지면 가난속에서 고통을 받듯이,,

  • 18.09.07 13:55

    원글 글자가 너무 작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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