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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어머니 혼수 농 뜯어 새로 짜보기도... | |||||||||||||
56년 목공외길, 경복.창덕궁 복원도 그의 손에 | |||||||||||||
“어렸을 적 어머니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농을 뜯어 새로 짜거나 증조부님 제사상까지 부숴 상자를 만들다가 어른들께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그저 나무 만지는 게 좋아 평생을 목공예에 미쳐 살았습니다.” 덥수룩한 흰 수염이 흡사 도인과 같은 충남도무형문화재 18호 소목장 조찬형(72·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씨는 외모만 도인이 아니라 전통창호를 만드는데도 최고의 장인이다. 한약방을 하던 부친 덕분에 넉넉한 생활을 했지만 조부가 빚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탕진하면서 16살에 목공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친척집 공방에서 가구기술을 배운 후 1959년부터 스승 김건우 씨에게 본격적으로 창호(窓戶)를 배워 현재까지 56년간 목공 외길을 걷고 있다. “종일 물 긷고 장작 패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못하게 하면 도망가서 또 배우고 잡혀오면 다시 도망가 배우기를 수차례하면서 무일푼으로 종처럼 취급받으면서도 나무가 좋아 묵묵히 계속했습니다.” 전통 창호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진 조 씨는 고향인 예산에 옥계산방(玉溪山房)을 열고 연꽃, 모란, 국화, 우담바라 등의 문양이 새겨진 창호들을 제작 전시하고 있다. 짧게는 100년에서 500년까지 된 춘양목이 그의 손을 거쳐 깎고 다듬고 끼워 맞춰지면 은은하고 우아한 자태의 한옥 전통 창호로 다시 태어난다. 경복궁과 창덕궁 복원공사와 단양 구인사, 하동 쌍계사, 하회마을 등 전국의 유명한 문화재 복원과 사찰 창호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7년 문화재수리기능자로 지정돼 2001년 서울 인사동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창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나무가 좋아 나무와 함께 평생을 살다보니 어느덧 그의 호가 나무의 노랫소리를 듣는다는 목음(木音)이 되었다. 고희를 넘긴 나이, 장인의 인품 또한 도인의 경지에 다다른 듯하다. “전국의 문화재와 사찰을 누비며 찾아낸 전통문양들을 후대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전시관을 만들어 보여주고 직접 실습해볼 수 있는 공간을 꾸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창호 기술을 계승하는 게 장인으로서 할 일”이라는 조 씨는 공방 옆에 전통창호전수관을 짓고 곧 문을 열 예정이다. 전통 방식을 고수해 배우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건축 방식과 아름다움은 계승되어야한다고 강조한 그는 “하늘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제비 몰러 나간다'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를 노래하던 박동진 명창처럼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손에서 나무와 연장을 놓지 않겠다”며 호방한 웃음을 터트렸다. /임연희·동영상=금상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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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통을 이어가는 그 손이 진정 아름답습니다
대단하십니다.존경스럽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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