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커티스 메이필드, 도니 해더웨이, 조지 벤슨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반에서 기타를 연주한 다작의 세션 뮤지션 필 업처치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최우규 기자는 지난해 3월 8일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업처치가 기타 세션으로 참가해 이름을 올린 앨범은 1000장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낸 앨범만 20장이 넘는다며 "도대체 필 업처치가 몇 명이냐. 잘 나가는 세션 액스맨(axeman, 남성 록·재즈 기타리스트)들이 필 업처치를 공동명의로 쓰는 것 아니냐"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의 부인 소냐 매독스 업처치가 남편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으나 원인이나 LA 어느 지역에서 숨을 거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고인은 두 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사망 직전까지 자서전 집필 중이었다.
업처치가 스튜디오에서 만든 클래식 곡들 중에는 1978년 빌보드 리듬 앤 블루스(R&B)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한 차카 칸의 'I'm Every Woman'과 잭슨의 1979년 솔로 돌파곡 'Off the Wall' 에 수록된 ' Working Day and Night'가 있다. 그는 또 해더웨이의 성탄절 대표곡 'This Christmas'와 1972년 트루바두르에서 녹음된 'Live', 그리고 두 버전의 기악곡 'Breezin'에도 참여했다. 헝가리 기타리스트 가보르 사보의 1971년 녹음에서는 바비 워맥이 작곡한 곡을 소개했고, 1976년 벤슨의 히트 버전은 같은 제목의 앨범을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업처치는 1941년 7월 19일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16세에 이미 프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96년 LA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즈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가 음악에 눈을 뜨는 영감을 준 한 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스미스의 앨범들은 자신의 "바이블"이라고까지 말했다. 1961년, 업처치는 자신의 이름으로 'You can't sit down'이란 스윙감 넘치는 오르간 주도곡으로 처음 히트를 기록했다. 열아홉 살이었다. 빌보드 핫 100 차트의 29위를 기록했다. 더 도벨스가 편곡한 버전으로는 핫 100 3위에 올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1월 취임 축하 파티에서 직접 색소폰으로 연주해 큰 주목을 받았다. 1963년, 업처치는 당시 캐시어스 클레이로 알려졌던 무하마드 알리의 프로토 랩 스포큰 워드 LP 'I Am the Greatest!'에 참여했다.
업처치는 1960년대 중반 독일에서 2년간 미 육군에 복무했으며, 복귀 후 그는 시카고의 체스 레코드에서 재빠른 고정 세션 멤버가 됐고, 램지 루이스, 하울린 울프, 머디 워터스 등의 세션에 참여했으며, 해더웨이의 스튜디오 밴드 멤버로서 여러 음반을 직접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메이필드의 영화 '슈퍼플라이'와 '스파클' 사운드트랙에 참여했으며, 어리사 프랭클린이 뒤 작품에 출연했다. 업처치가 공연하거나 녹음한 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스테이플 싱어즈, 내털리 콜, 미니 리퍼튼, 밥 딜런, 아니타 베이커, 닥터 존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디지 길레스피, 스탠 게츠, B.B. 킹, 앨버트 킹, 레이 찰스, 밥 딜런, 휘트니 휴스턴 등에다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그가 앨범 제작에 힘을 보태거나 그의 음악을 연주한 이들이다. 재즈, 블루스, 솔, 팝의 대표적 인물들이 망라돼 있다.
최 기자는 '왜 그런 이가 한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너무 연주를 잘 맞춰줘서, 너무나 많은 앨범에 참여해서다. 세상은 그래서 참 아이로닉하다'고 지적했다..
아버지 필립은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기타와 만남은 우연이었다. 어릴 적 가게에 진열된 우쿨렐레를 보고 탐냈다. 아버지는 우쿨렐레를 사주며 코드 몇 개를 일러줬다. 업처치는 귀로 음악을 들으면서 연주법을 익혔다. 일렉트릭 기타는 12살 때 얻었다.
필 업처치와 블루스는 뗄 수 없다. 시카고 어반 블루스를 연주하며 자랐다. 또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재즈 오르간 주자 지미 스미스 레코드를 듣고 홀딱 빠졌다.
그가 연주로 처음 돈을 만진 것이 1957년, 16살이었다. 시카고에 근거지를 둔 비제이 레코즈에 들어가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일했다. 나중에 체스 레코즈 산하 레이블 카뎃 레코즈로 옮겼다. 두 레이블은 재즈, R&B, 솔, 가스펠, 블루스 앨범을 주로 냈다.
조지 벤슨과의 만남도 극적이었다.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벤슨은 1962년 오르간 주자 잭 먹더프와 활동하고 있었다. 하루는 맥더프와 벤슨이 업처치 바로 앞 공연에서 'You Can't Sit Down '을 연주했다. 업처치는 벤슨을 찾아가 "내 노래를 나보다 더 잘한다"고 말했다. 벤슨이 "그런데,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업처치가 "아까 그 노래가 내 노래"라고 소개했다. 벤슨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농담 말라"고 했다.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대였으니까. 그 뒤 둘은 친구가 됐다. 벤슨 앨범 'Bad Benson'과 'Breezing'에서 업처치가 베이스와 리듬 기타 연주를 했다. 'Breezing'은 1977년 19회 그래미상 3개 부문을 탔다.
귀로 들어 음악을 익힌 그는 악보를 읽기 위해 바흐 음악을 공부했다. 안드레 세고비아가 편곡한 바흐 악보를 익혔다. 1985년부터 바흐 샤콘느를 연습했다. 취미였다. 한 공연에서 긴 솔로가 시작됐을 때 샤콘느 생각이 떠올라 "까짓것 해보지 뭐"하고 샤콘느를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했다.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