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큼 사랑스런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3.12.05. -
사랑의 감정만큼 자신을 또렷이 바라보게 하는 것이 있을까? 사랑의 감정은 일상적 삶에 대한 일시 정지 버튼이다. 잠시 멈춰 그동안 가지고 살았던 생각이나 사회적 관계에 대해 물끄러미 바라보게 한다. 사랑의 대상은 ‘제일로 영롱한 거울’이 되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그래서 사랑은 새로운 ‘나의 시작이다’.
김남조 시인은 아가페적 사랑을 주로 노래하였지만, 이 시에서는 사랑으로 인해 ‘외롭게 되는 일’ ‘울게 되는 일’을 말하면서 진정한 존재로서 깨어남을 말하고 있다. 사랑의 애틋함이 존재의 성숙이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들게 되었을 때 우리는 ‘편지’를 쓰고 싶지만, 시인은 오히려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의 사랑은 그 대상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깨달음, 곧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경험한 여린 싹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