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장] 스틸야드란 이름의 포항축구전용구장
K-리그의 역사가 쓰여지는 곳 축구경기장. 한국 프로축구 출범이후 전국의 수십개의 경기장이 그 역사의 무대로 사용되었다. 단 한 두 경기를 유치한 곳도 있는 반면 현재까지도 꾸준히 축구를 보듬어 안고 있는 경기장도 있다.
K-리그 명예기자단은 지금까지 ‘K-리그 꿈의 구장’ 코너를 통해서 한국프로축구의 역사의 산실인 추억속의(현재는 K-리그 용도로 사용이 되지 않는) 경기장을 찾아보고 그 경기장이 가지는 축구에 있어서의 역사적 가치와 현재 그리고 미래적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 코너를 통해 현재 프로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전국 14개 경기장의 모습과 변화과정, 그리고 연고지역과의 연계사업 및 활용에 대하여 각 1부씩 게재하기로 한다. 그 첫 번째로, 국내 프로축구 발전의 역사와 발을 맞춰온 포항스틸러스의 ‘스틸야드’를 준비했다.
“팬들에게 ‘스틸야드’로 더 잘 알려진 스틸러스 전용구장은 붉은 물결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곳, 진정한 K리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 대한민국의 축구팬이라면 꼭 한번쯤 방문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스틸야드’이다.” (출처 : 포항스틸러스 웹사이트)
#1. 여정
1983년.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의 프로축구. 햇수로 24년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지만, 아직 시작이라고 하는 이들의 말은 겸손하기까지 하다. 현재 진행중인 K-리그의 여정을 느껴보기 위해, 또 스틸야드에 아직 울려 퍼지는 함성을 듣기위해 필자 역시 ‘여정’을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나긴 장마가 끝이 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갖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잠시나마 고속버스 차창에 빗물이 긴 꼬리를 만들며 스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한창 K-리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는 필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까. 잠시 스틸야드에서 써진 추억들에 대한 회상과 상상에 빠져 보았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번갈아가며 그려진 유니폼이 가장 먼저 그려졌다.
포항 스틸러스(당시명칭 : 포철 돌핀스)는 1983년의 프로축구 출범때부터 K-리그에 몸을 담았다. 이미 1970년대에도 실업팀 강호로써 한국축구 발전에 큰 밑그림이 되어왔던 포항은 포항종합운동장을 사용하게 된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프로팀의 면모를 갖춰왔다. 그러던 1990년 11월. 한국 축구역사상 최초로 축구전용구장을 준공하면서 포항 스틸러는 정들었던 포항종합운동장을 떠나 ‘스틸야드’라고 불리는 지금의 홈구장에 둥지를 트게 되었다.
당시, 축구전용구장이 지어진 것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한국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했으며, 그에 부응해 포항은 각종 선진국형 축구발전 시스템을 도입, 실행해왔다.
#2. 성단 (Star Cluster)
별들이 모인 형태이며 은하보다 작은 규모를 ‘성단’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 육성해온 포항은 이회택, 최순호, 홍명보, 황선홍, 이동국 등 5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명실공이 프로축구에서의 명문화에 앞장서게 된다. 그야말로 별들이 모여있던 곳, 성단으로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1991년 4월 6일. 시즌 첫 홈경기가 포철 대 일화의 경기로 치러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K-리그 구장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은 포항전용구장에서 포철은 박태하, 최순호, 이기근을 앞세워 일화를 제압하며 1대 0으로 첫 홈경기에서 첫 승을 따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새 집에서 적응이 안 된 탓일까. 포철은 91년 한해 통산 12승 15무 13패로 3위에 머무르며 우승은 다음해를 기약해야 했다.
이듬해인 1992년. 포철은 ‘92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새집에 적응하였음을 보여준다. 유난히도 상복이 많았던 그 해에 포철은 감독상에 이회택 감독, 감투상에 박창현, 시즌 MVP, ‘올해의 선수상’, 골든볼에 신인선수 홍명보를 올려놓으며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 그 후로도 93년 차상해가 득점왕, 96년 라데의 도움왕. 98년 ‘영원한 스틸러’ 이동국의 신인왕 수상, 2004년 문민귀의 신인왕 수상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물들이 대거 포항전용구장에 흔적을 남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분 때문인지 포항으로 향하는 ‘여정’이 설레기 시작했다.
#3. 축구의 미래를 품은, 숲속의 요새
버스옆을 지나가는 차들이 많아졌다. 어느새 버스가 포항시내로 들어서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버스가 미끄러지듯 도로를 빠져나가더니 멀리서 ‘포항터미널’이라는 대형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수십년동안 한번도 축구의 함성이 사라지지 않았던 그 역사적인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다른 도시보다 더 뜨거운 기운을 필자는 느낄 수 있었다.
또, 스틸야드의 위치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시민들이 하나같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안내를 해주는 모습에서 ‘축구’가 여기 포항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구성요소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200’이 적인 버스에 올랐다. 그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해 혼잡한 시내를 빠져나가더니 시원하게 뚫린 왕복 8차선 도로에 들어섰고, 그 오른편으로는 옛 꿈의 구장인 포항종합경기장이 차창을 스쳐갔다. 이윽고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넜고 포항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공단에 들어서게 되었다. 익히 여러 자료를 통해 본 적 있는 수많은 굴뚝들이 ‘여기가 포항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버스내 방송에서 ‘포스코 본사’라는 안내를 들렸고 얼마 가지않아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류장으로부터 걸어서 10여분. 드디어 K-리그 꿈의 구장이면서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구장, 스틸야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가꼬 잘 찾아봐야 할낀데예. 워낙에 안쪽에 들어가 있어가꼬.’
여기까지 들어오기 전 터미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눠본 한 시민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마치 요새처럼 자리를 트고 있는 이 경기장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포스코의 사유지 안에 위치하고 있다.
#4. 입성
회색빛 콘크리트의 구조물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기장. 그 둘레를 돌아보며 손 끝에 닿이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1990년 11월 1일에 준공된 경기장. 열흘이 지난 11월 10일에 준공을 기념하는 경기가 여기서 열렸다. 당시 포철의 상대팀은 고려대. 경기시작의 휘슬소리와 함께 스틸야드에서의 축구 역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5명이 포진한 고려대를 포철이 1대 0으로 누르며 준공 첫 경기 첫 승리를 손에 쥐게 되었지만 그런 승리보다 더 값진 것은, 많은 축구팬의 숙원이었던 축구전용경기장이 가져올 축구에 있어서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선수들의 호흡소리를 들으며 경기에 흠뻑 빠진 관중들의 마음은 모두가 이와 같았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어느덧 경기장을 반바퀴 돌아 주출입구인 북측광장에 다다랐다. 자그마한 기념품??하나 위치하고 있었고 경기장 입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 그곳에서 위로 올려다보니 미리 생각했던 것처럼 흡사 요새 혹은 성곽같은 경기장이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5. (주)포항스틸러스
아직 다수의 포항시민들조차도 포항스틸러스가 포스코의 소속팀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구단 운영 시스템상 포스코의 많은 지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광역 45개의 주주사가 공동소유하고 있는 독립 법인이라고 관계자는 이야기 한다.
“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스틸러스가 포스코의 축구단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점에서 보면 시민들에 의한 연고팀이 되는 과정의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대구, 인천, 경남 처럼 처음부터 시민, 도민구단으로서의 태생을 가진다면, 그런 과도기적 성장통은 없겠지만 현재 스틸러스처럼 기업구단에서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경우에는 시민들의 인식자체를 바꾸는 데에 큰 고통이 따르는 것이죠. 사실, 전남과 마찬가지로 포스코로부터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받아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민구단으로서의 모습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구단 관계자의 말.)
사실, 포항 스틸러스는 1995년 5월 29일 (주)포항프로축구 라는 이름으로 독립법인이 되었고 2003년에 현재명칭인 (주)포항스틸러스로 변경했다. 10년이 넘은 시간동안 스틸러스가 포항시민 즉, ‘그들의 것’이라고 홍보를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전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틸러스의 강인한 축구와 포항시민의 뜨거운 축구사랑 그리고 경기장을 물들이는 빨간색 유니폼이 여전히 뜨거운‘쇳물’을 연상케 해 그런 것을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6. 탄생과 성장, 그리고 모습.
다시 걸음을 옮겨 열려있는 문으로 경기장 내부를 볼 수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무엇인가 꽉차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먼저 내려간 곳은 필드. 필자가 방문한 날로부터 이틀전, 후기리그 개막전이 펼쳐졌었다. 관중석을 거의 가득 메우던 인파들과 함성으로 경기장을 채우던 응원소리가 아직 잔잔하게 남아있는 듯 했으며, 필드 역시 여전히 따뜻했다. 잔디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관중석, 거의 내려다보는 수준의 2층 스탠드와 경기장 둘레를 감싸고 있는 차양지붕 등. 경기장의 모든 부분들은 단하나, 축구를 위해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스틸야드였다.
포항스틸러스의 홈경기장이며 한국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인 ‘스틸야드’. 준공으로부터 햇수로 16년이 지났지만 여타 월드컵구장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스틸야드’. 좌석수 18960석, 수용가능인원 25,000명이며 부지 12,906평위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준공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몇 가지 보수공사를 제외하면 아직 ‘건실한’ 하나의 ‘건축물’이라는 이야기를 관계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 아직 기능적인 면에서나 아주 튼튼합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으로 개조, 보수공사를 몇 번했어요. 지금 보이는 좌석들있죠? 준공당시에는 좌석수가 이것보다 많았어요. 일반석이라고 하는 좌석들만 있었거든요. 하지만 99년, 다른 경기장에서 볼 수 없는 ‘서포팅석’을 만들었습니다. 좌석위에서 응원하며 뛰는 행동들이 너무 위험하기도 했고, 우리 프로축구의 일부인 서포팅 문화 정착을 위해 ‘마음껏 뛸 수 있는’ 서포팅 석을 만들었죠. 좌석으로 따지면 약 500석 정도 됩니다. ”
그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좌석이 없는 구역을 볼 수 있었다. 타 경기장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필자에게 그는 ‘하지만 요즘 서포터들이 많이 와도 사용은 잘 안하시더라고요.’ 라며 아쉬움을 내뱉기도 했다.
또 모두가 알고있는 반대편의 원정팀 서포터즈석에도 ‘원정팀 서포터즈석’이라고 친절히(?) 안내해주고 있다.
점으로 표현되어 문자제공에만 그쳤던 전광판이 월드컵경기장 못지않은 최첨단 칼라 전광판으로 교체되었고, 경기장내 조명 및 음향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교체작업을 통해 더욱 실감나는 경기를 관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준공당시 그라운드를 구성하던 한국형 잔디를 2003년에 외국형 사계절 잔디로 교체하였고, 본부석 부근의 일반석을 특별/초청석으로 개조하여 구단홍보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했다. 총 382석의 특별석중 106석은 대외적 홍보차원으로 이용되고, 나머지는 일반인들에게 제공하여 더 안락한 경기관람을 원하는 관중들의 편의를 충족 시켜주고 있다.
계단을 걸어 관중석의 가장 높은 부분으로 한번 올라가 보았다. 보이는 것만큼 무척 가파른 2층 관중석이 사실 안전사고의 우려를 갖게 했지만 이런 관중석이 경기장을 둘러가며 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중세에 지어진 오페라극장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축구와 오페라극장이라니, 스스로 코웃음 치면서도 은근히 비슷한 매력을 가진 것 같기도 했다.
#7. 지울 수 없는 이름, 포항.
포항스틸러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붙여질 이름인 포항. 그만큼 구단과 포항 사이에는 다른 누군가가 범접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포항스틸러스를 떼어놓고 K-리그를 말할 수 없듯이, 포항없이는 포항스틸러스를 말할 수가 없다. 현재 도민구단 및 광역시 연고 지역구단들에 비해 연고지규모면에서 인구가 상당히 적은 포항이지만 지역 협력차원에서는 인정받는 바가 크다.
얼마 전 개막된 ‘삼성하우젠 K-리그 2006’ 후기리그 개막전을 통해, 포항스틸러스는 포항지역민의 화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 바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파업문제로 어수선해진 지역분위기를 쇄신해보고자 마련했던 이 자리를 통해 포항 스틸러스가 연고구단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프로구단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는 유소년 시스템에 포항도 함께하고 있다. 한국형 선진 클럽시스템을 활용하여, 유소년 유망주를 조기에 발견하고 이들을 포철동초, 포철중, 포철공고 소속으로 운영되는 클럽에서 ‘유소년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어린이축구교실’ 방법을 이용, 축구를 좋아하는 포항지역의 초등학고 6학년이하 어린이를 회원제로 구성하여 또 하나의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또 포항은 자매결연을 맺은 브라질 명문팀 바스코로 우수선수를 선발해 축구유학을 지원하기도 한다.
#8. 연고지역의 광역화
토끼의 모습을 하고있는 한반도, 그 중 꼬리부분으로 표현되는 부분에 포항이 자리하고 있다. 바다와 접하고 있어 수산업과 관광업으로 인기가 많은 이곳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철강공단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쇠를 연상케 하는 철교를 지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공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숲속의 요새라고 표현한 바 있는 스틸야드가 있다. 깊숙이 들어선 위치 때문인지 포항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포스코 본사와 인접해있는 이 경기장은 포항터미널로부터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터미널로부터 이곳으로 오는 버스는 200번 단 한노선뿐이었다. 비록 포항의 시내로 불리는 오거리, 육거리에서는 6개의 노선이 연결되어 있지만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가 62대 뿐이어서, 경기시작시간을 맞추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고 구단 관계자는 이야기 한다.
“너무 외곽에 있다보니 대중교통이 불편한것이 사실이죠. 대신에 포스코 직원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본사 통근버스를 지원받아 사용하고 있어요. 직원들의 퇴근시간이 저녁이기 때문에 19시경기 경우 지원에 문제가 없지만 15시경기에는 지원을 받기 어려워요. 출퇴근 하는 직원들과 시간이 안맞거든요. 이 경기장을 포항종합경기장 자리로 떼어서 옮긴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
물론 스틸야드의 현재위치 대신, 포항종합경기장의 자리에 위치한다면 구단이나 축구팬들에게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경기장을 떼어서 옮긴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나 가능한 공상과학 이야기 같이 들린다. 예전 포철의 마스코트인 아톰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포항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연고지역 규모가 작은 포항은 인근 지역인 경주, 영천을 포함하는 ‘연고지역광역화’를 꿈꾸고 있다. 이미 포항-영천 간 산업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어, 영천, 경주에서의 접근성이 보장된 상태이며 현수막 설치를 실시하고 있어, 조만간 연고지역광역화의 불씨를 켤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한 K-리그. 참모습을 만드는 포항, 그리고 스틸야드. 이제는 미래를 위해 넓은 팔을 드리우고 있다.
#9. ...ing
잠시 흐렸던 날씨가 맑게 개이더니, 이제는 저물기 시작했다. 포항전용구장의 꿈과 함께 젖어들어 시간가는 줄 몰랐나 보다. 나오는 길, 다시한번 경기장을 돌아보니, 당연한듯 그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스틸야드. 이제 열 여섯해를 지내오며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프로축구와 함께해 온 곳.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있듯 K-리그의 영원한 꿈의 구장이 될 것임에 의심이 없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진행형으로, 그리고 미래의 꿈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틸야드’ 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공장에서 하늘로 우뚝 솟은 굴뚝들이 붉은 노을에 물들어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K-리그 명예기자 윤진식
첫댓글 ㅋㅋㅋ 스틸야드다~~ 스틸야드에서 경기를 보면 거리가 워낙 가까워 장 안에서 경기를 보고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내년에 또 갈게~~~ㅋㅋㅋ
역시... 멋있다. 포항최고.
최고최고.... 스틸러스
알레포항!!! 스틸야드 멋있어~~ㅋ
서포팅석에서 섭팅을안하는게 아쉬울뿐입니다 ~ // 포항이 최고!!!!!!ㅠㅠ지짜멋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