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8 민주화운동 정의! (의의)
5· 18 민주화운동은 12· 12 사태를 통하여 군 내부와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중심의 신 군부집단이 5· 17 비상계엄령 확대 조치
라는 형식을 빌어 집권음모 쿠테타를 감행한 후 이를 항의하는 시민
과 학생들의 시위를 공수 특공대 등을 동원하여 무자비 하게 진압
함으로써 발단 되었다.
따라서 5· 18민주화운동은 불법적으로 집권을 획책하는 전두환 및
신 군부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선 시민 봉기이다.
첫째는 전국의 모든 국민들이 군부의 무력 앞에 숨을 죽이고 있는 상
황속에서 군부의 거대한 무력에 맞서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쟁취코자
전개된 5· 18 민주화운동은 민중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강한 염원이 분출된 것이다.
우선 거의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
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싸웠다는 점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항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까지 포함한 모
든 것을 버릴 각오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한 두 명의 영웅적인 항쟁이
아닌, 시민 전체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그에 저항 했으며, 당국에
의해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 되면서도 광주시민들은 비 인간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길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그 길을 걸었던 것이다.
둘째는 광주시에서 계엄군이 퇴각하고 시민군이 시내를 장악한 이후
다시 게엄군이 진주할 때까지 6일동안 광주 시민들은, 특히 이 지역의
민중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성을 유감없이 발휘 했다는 점이다.
그 기간 동안 광주시는 공식적인 치안체계가 완전히 붕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치안체계를 유지하였다.
그토록 많은 총기류가 시민들의 수중에 있었지만, 그로 인한 불상사
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금융기관이나 금은방 등 평소 범죄자들이 노릴만한 곳에서도 이 기간
중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세계 민중항쟁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광주
시민들은 성숙한 민주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5· 18민주화운동이 오로지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시민 봉기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셋째는 항쟁의 전 기간 동안 광주시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
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다.
광주시가 계엄군에 포위된 채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대중매체와
군 정보요원을 통한 교란작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러한 상
황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광주시민들은 각
자가 갖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며, 서로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살았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피가 부족한 부상자
에게는 피를 나누어주었으며, 일손이 필요할 때는 시민들 누구나가
달려들어 그 일을 함께 하였다.
항쟁지도부가 수습의 방법을 두고 고심할 때 일반 시민들은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 나갔던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과거 우리나라 역사적인 민중항쟁을 통해 표출
되었던동학혁명 및 4·19와 더불어 자주. 민주. 통일의 전통을 계승
하였을 뿐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앞당긴 승리의 항쟁이며 민주
화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중항쟁으로 더욱더 찬란한
역사속의 빛으로 승화 될 것이다.
5 ·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법인이사 박영섭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