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공항에는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안순임과 이중수도 수 많은 사람들 틈에서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는 아들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순임은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눈에 어제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라도 사람들 틈에 나오는 아들을 놓칠세라 안순임의 눈동자는 바쁘게 돌아갔다.
이런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녀는 커다란 짐을 끌고 나오는 아들 진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안순임은 아들 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진우도 안순임을 보았는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순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달려가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비비며 말했다.
“아이고 내 새끼.”
“저 없는 사이에 더 몸이 좋아지신 거 같아요.”
진우도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가 반가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없으니까 세상 편하고 즐겁더라.”
안순임의 말에 진우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몇 년 더 공부하고 올걸 그랬네 하하.”
약간은 호들갑스러운 안순임과는 달리 아버지 이중수는 담담하게 아들을 쳐다보았다.
진우는 짐을 운전수에게 주고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고생했다. 집으로 가자.
이중수는 진우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런 남편이 못마땅한지 안순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뚝뚝하기는. 2년 만에 보는 아들인데.”
진우는 이런 아버지의 무뚝뚝한 태도가 익숙한지 가볍게 웃고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가요 엄마.”
안순임은 뚱한 표정으로 진우를 따라갔다.
흰색의 화려한 금박무늬가 새겨져 있는 커다란 철문이 눈에 띄는 진우의 집.
양쪽에 높은 담이 솟아있고 담 위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철문 왼쪽에 커다란 차고가 보였고 철문 앞에 진우 가족이 탄 검은색 승용차가 도착하자 철문이 저절로 열렸고 차가 들어갔다.
진우의 집은 거대한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이 현관 앞까지 나있어 차가 현관까지 갈수 있었다.
길을 기준으로 정원 왼쪽에는 커다란 연못과 잔디밭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잘 꾸며진 정원이 보였다.
정면에 보이는 2층의 집은 흰색과 회색의 금속이 적절히 조화된 세련되고 웅장한 집이었다.
현관문을 기준으로 왼쪽 벽은 모두 유리로 되어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한번 꺾어진 계단이 보였다.
계단 뒤에는 실내정원이 있는지 나무들이 울창하게 솟아있었다.
진우의 가족이 탄 검은 승용차는 거대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진우는 오랜만에 온 집이라 그런지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현관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온 진우는 집의 인테리어가 상당히 변해있자 흥미롭게 살피기 시작했다.
진우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인테리어에 상당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진우는 우선 앞에 보이는 통로를 보았다.
현관에서부터 정면으로 시작되는 통로 왼쪽에는 실내 정원이 있고 커다란 유리가 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흰색의 벽이 있었다.
희색의 벽 곳곳에 네모, 세모, 동그라미모양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 안에 각종 조각품들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현관 왼쪽에는 실내정원으로 돌아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이전에도 있던 계단이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형태와 재질로 변해있었다.
현관에서 연결된 길다란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거실이 모습을 들어냈다.
높은 천장에는 커다란 샹드리에가 걸려있고 화려하고 세련된 소파와 탁자가 보였다.
이 역시 진우가 못 보던 가구와 인테리어들이었다.
소파 맞은편 벽에는 거대한 벽걸이용 TV가 걸려있었고 아래에는 고급 장식 장이 놓여있었다.
소파 뒤의 벽 중간쯤에는 가로2m, 세로 1m정도의 사각형모양의 들어가 있는 곳이 있었고 그 안에 커다란 수석 2개가 놓여있었다.
수석아래에는 흰색의 자갈이 깔려있고 수석을 비추는 파란색 조명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거실 창 밖에는 조그만 나무들을 예쁘게 꾸민 정원이 보였다.
진우는 바뀐 집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흡족하였다.
이런 진우의 기분을 알았는지 안순임이 다가와 말했다.
“마음에 드니?”
“예, 신경 많이 쓰신 거 같아요.”
진우는 피곤한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네 방은 그대로 두었다. 바꾸고 싶으며 언제든지 얘기 해.”
“예 어머니”
진우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잠시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일어나 2층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5개월 후.
선아는 고아원 친구였던 경희와 함께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서류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힘겹게 회사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상당히 힘이든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위태위태하였다.
“젠장.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네 말을 듣는 건데.”
경희는 자신이 우겨서 한번에 모든 서류를 옮기자고 한걸 후회하며 말했다.
“내가 한번에 다 옮기는 건 힘들 다고 했지.”
선아는 너무나 힘들어 경희를 원망하며 말했다.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선아는 고개를 왼쪽으로 가끔씩 내밀어 앞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러나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왼쪽의 복도에서 나오는 젊은 남자직원을 보지 못하고 부딪혀 서류를 놓친 것이다.
선아는 부딪힌 남자직원에게 계속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죄를 한 선아는 복도에 떨어진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아와 부딪힌 남자직원도 복도에 떨어진 서류를 집기 시작했다.
선아는 서류를 집어주는 남자직원이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같이 서류를 집던 선아가 자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젊은 직원은 무뚝뚝하게 ‘예’라고 대답을 한 후 선아에게 서류를 주고는 복도로 사라졌다.
그러자 선아 친구 경희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저 사람이 누군 줄 아니?
“누군데?”
선아는 혹시 떨어진 서류가 더 있나 바닥을 살피며 말했다.
“회장님 아들이야.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몇 달 전에 귀국했다고 하더라. 이름은 이진우야.”
경희의 말에 선아는 무표정하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이 친절하기까지 하네.”
경희는 진우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겁다. 빨리 가자.”
선아는 지금 경희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 그림의 떡이지.”
경희는 진우가 사라져간 복도를 보고 입맛을 다신 후 선아를 따라갔다.
차와 사람이 섞여서 걸어 다니는 제법 큰 거리.
선아는 너무나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조금만 가면 자신의 자취방이 나왔지만 선아는 당장 길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선아의 뒤를 따르던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대가 선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멈춰 섰다.
선아는 깜짝 놀라 차를 쳐다보았고, 차에서는 40대의 뚱뚱하고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아주 느끼한 표정으로 선아를 쳐다보며 내렸다.
“안녕 선아.”
40대의 이남자의 이름은 김의중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성형 의사였는데 예전부터 선아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선아는 유부남인 이 남자가 자꾸 자신에게 수작을 거는 게 너무나 기가 막히고 싫었다.
그래서 아주 싫어하는 벌레를 본 듯 인상을 쓰고 무시하고 지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김의중은 재빨리 선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왜 이래요?”
선아는 신경질적으로 의중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왜 이리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내가 선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의중은 어느새 선아의 팔을 잡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이거 놓고 얘기해요.”
선아는 의중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의중은 선아의 팔을 놓지 않았다.
의중은 오늘 작심을 하고 온 듯 집요하게 선아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퇴근을 한 진우는 오늘 아버지에게 생전 처음으로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았다.
진우는 음악을 커다랗게 틀고 휘파람을 불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의 검은 차가 자신의 앞에서 멈춰 서서 운전자가 내려버리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준하는 조금 후진을 한 후 오는 차가 없는 지 살핀 후 앞의 검은 왼쪽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앞의 검은 차의 운전자를 보려고 했던 진우는 의중과 다투고 있는 선아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여자 우리회사 직원 아니야?”
준하는 처음에는 선아가 웬 남자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남자가 일방적으로 선아를 끌고 가려는 듯 보였다.
진우는 차를 세우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도…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처음에 짜증이 났던 선아는 이제 점점 의중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
의중은 조금은 흥분한 듯 선아를 거칠게 대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선아와 의중이 동시에 진우를 쳐다보았다.
선아는 진우를 보자 의중의 팔을 뿌리치고 진우의 뒤로 가 숨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진우가 묻자 선아는 고개를 크게 흔들며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래요?”
진우는 성형의사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성형의사를 밀치며 말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다…당신은 누구요?”
의중은 키가 큰 진우에게 겁을 먹은 듯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난 이 아가씨 직장 동료요.”
의중은 잠시 진우의 눈치를 본 후 서둘러 차를 타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한바탕 싸움을 할 생각을 했던 진우는 사라져가는 검은 차를 황당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 원 별…”
진우는 잔뜩 겁먹은 표정의 선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예…예.”
선아는 크게 놀랐는지 혼이 반쯤 나가있는 듯 보였다.
“집이 어디에요?”
진우가 무언가를 자신에게 묻자 선아는 깜짝 놀라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예…예? 아 집이요… 이 근처에요.”
“이리 와요. 제 차 타고 갑시다.”
진우는 선아를 자신의 차에 데리고 갔다.
선아는 평소라면 거절을 했을 테지만 너무 겁을 먹어서 진우의 말에 순순히 응하며 진우의 차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차 한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좁은 주택가 골목 집 앞으로 이진우의 차가 다가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는 선아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은 표정으로 진우에게 인사를 하였다.
“저…정말 고마웠습니다.”
“고맙기는요. 회사에서 봅시다.”
진우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선아는 넋이 나가 표정으로 진우의 차를 한동안 바라본 후 뒤에 보이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가구라고는 낡은 옷장과 책상이 전부인 썰렁한 선아의 방.
창에는 커튼이 없어 더욱 썰렁해 보였다.
벽지는 낡고 여기저기 누런 색 물이 들어있었고 장판은 낡고 더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놀라 울었던 선아는 이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이불을 무릎에 덮고 벽에 기대어 앉아 창 밖의 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진우라고 했나? 좋겠다. 부자집에 태어나서. 아니 부자가 아니라도 날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라도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외로워. 확 결혼이나 해서 애나 낳을까. 큭…결혼을 하려고 해도 남자가 있어야 하지. 나 같이 근본도 모르는 고아한테 누가 아들을 주려고 하겠어. 싫다…싫어…내 자신이.”
첫댓글 선아가 넘 자기 비화를 하네여...근본을 모르면 어때여...
^^ 지적 감사합니다. 초반에 선아는 좀 내성적이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케릭이지요. 나중에는 잔인하게 변하지만...
진우랬다 준하랬다 햇갈려요 하지만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