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해가 나면 햇살 속을 걷는다. 조각가 박효정 작가의 집에서휴식이란 그게 전부다.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 자연이 있고 내가 있다.순간의 일상이 풍경과 만난 힐링 하우스로 초대한다.
컬러 유리를 패치워크해 하나의 작품 같이 보이는 온실. 온실 꾸밈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에서 1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한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평화로운 풍경 속에 연둣빛 신록이 가득하다. 양지와 음지, 비와 바람이 시간과 계절의 순환 속에서 수만 가지의 표정을 만드는 자연 속에 파묻힌 조각가 박효정 작가의 집. 그 자체가 변화무쌍하고 기기묘묘한 자연을 담은 하나의 그릇이다. 푸른빛을 머금은 풀과 나무들의 소박한 풍경이 문지방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뒤통수까지 쫓아오던 서울에서의 급한 시간은 사라지고 저 멀리 세월을 옆에 두고 앉은 듯하다. 조각가 박효정도 그렇다.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어수선함과 번잡함을 털어내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여유가 생긴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소박한 마을의 풍경을 담아 오기도 한다.
조각가 박효정은 남양주 집의 안과 밖에서 자연을 끼고 걷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모은 자연의 이미지는 동양적인 메타포가 느껴지는 조각 작품으로 탄생한다. “자연, 생명, 순환, 대지는 모두 제 작품의 재료예요. 마당에 있는 커다란 구는 생명을 품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 물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지요. 순수 조각가로 30년 동안 살아왔지만 몇 년 전부터는 생활 가구로 사용할 수 있는 벤치, 테이블, 티 테이블 등을 만들고 있어요. 조각이 반드시 감상용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를 아끼는 평론가나 몇몇 작가들은 순수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해줍니다. 하지만 생활 가구는 전체 작품의 10~20% 정도에 불과하고 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 꾸준히 선보일 예정입니다.”
위 거실 창가의 가장자리에 만든 매입형 화단은 햇빛을 머금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일반 가구와 소품 그리고 박효정 작가가 만든 가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개방감 있는 거실. 아래 (왼쪽) 커다란 원목에 철근 다리를 달아 만든 테이블이 다이닝 공간에 중심을 잡고 있다. 다이닝은 현관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아래 (오른쪽) 자연의 순수한 소재인 나무와 돌, 흙, 금속으로 작업하는 조각가 박효정.
작은 마당이 있는 작업실과 이웃해 있는 사각 형태의 집은 3년 전 건축가인 남편과 공동 작업으로 완성했다. 집이 완성되는 동안 작업실에서 생활하면서 가까이에서 완성까지 지켜보았기에 더욱 각별하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벌써 15년째예요. 집을 짓기로 하고 남편과 상의해서 지금의 심플한 집을 계획했어요. 10여 년 전에 집 모양의 구축적인 조각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집을 짓고 나서 그때 만든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작업과 집이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집은 본래 주변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서 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마감재는 시멘트를 썼다. 단순하지만 편안한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위했던 것. 벽면에는 벽지 대신 밝은 그레이와 화이트로 도장해 내추럴하고 차분한 느낌을 살렸다. 그리고 나무의 자연스러움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1층은 다이닝과 거실이 시원스럽게 뚫린 오픈형 공간으로, 지인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것을 고려해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을 두었다. 거실 창가 근처에 바닥을 매입해서 만든 작은 정원은 이 집의 백미. 햇빛을 머금은 화단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1 2층에 마련한 작은 거실. 2 자연미 넘치는 욕실. 3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아들 방을 배치했다. 4 2층 베란다로 나가는 문 앞에 마련한 드레싱 룸. 소박한 느낌의 가구들로 공간을 꾸몄다.
2층에는 작은 거실과 부부 침실, 서재, 그리고 잘 사용하지 않는 다락방이 있다. 한 층이 66㎡(20평형) 남짓하지만 원래의 크기보다 확장되어 보이는 이유는 높은 천장고 때문이다. "2층 거실의 경우 히노키로 마감해 풋풋한 나무의 향을 즐기고 싶었는데 견적을 내봤더니 어마어마한 비용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가평에서 많이 자라는 잣나무를 켜서 직접 마감했어요. 요즘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을 위해 어딘가를 찾아 다니지만 우리 가족은 집이 곧 힐링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휴식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곳이 치유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 아닐까요?" 지금도 바람이 지나고 꽃들이 피고 지고 있을 강효정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두 번째 정원(Second Garden)'을 주제로 5월 30일부터 6월 29일까지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갤러리에서 열릴 그녀의 전시는 이 집만큼이나 아름다울 것 같다.
텃밭이 있는 마당에는 박효정 작가의 조각 작품이 놓여 있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우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