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루카 1,32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묵상
책을 읽고 있으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내용을 통해 쓰고 싶은 것도 떠올려집니다. 예전에는 책에 밑줄을 그어서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책에 표시하면 단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는 사람(다시 읽는 본인도 마찬가지)에게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표시에 매여서 자기 것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표시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다 읽은 책을 본당 도서관에 기증하고 있어서 더 깨끗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밑줄보다 클립을 꽂아두었습니다. 이 클립으로 표시한 곳을 나중에 쓰면서 정리할 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읽으면 왜 클립을 꽂아두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분명 크게 와 닿는 구절이었는데, 다시 보면 별 내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곧바로 적습니다. 지금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미루면 잊어버립니다. 소중할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뒤로 미루곤 합니다. 그 순간에 해야 할 것인데도 나중에 해도 충분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생명을 유한하게 만드신 것이 아닐까요? 너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사랑의 실천은 결코 뒤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고,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실천하는 결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냅니다. 요셉 성인께서 간직하셨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강림’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약혼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지 그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의로운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성인이기에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하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간음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우거나 율법 학자들에게 고발해서 돌로 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파혼으로 인해서 그 사랑이 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천사를 보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계시에 곧바로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버리지 않고, 또 사랑을 즉시 실천하는 그 모습에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뒤로 미뤄서도 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계속해야 하는 사랑이고, 즉시 실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해줄 수 없다(캐롤 버넷).
사진설명 : Guido Reni - St Joseph with the Infant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