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 국밥집 / 엄원태
골목 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졸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식당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 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소읍에 대한 보고』, 문학과지성사, 1995.
감상 – “세 사내는 친하다. 작당이 아니라 모국어처럼 합수처럼 친하다. 1955년생, 동갑내기에 똑같이 삼형제 중 장남이다. 세 사내는 ‘오늘의 시’ 동인이다. 표정이 비슷하다. 그늘이 깊다.”로 시작되는 문인수 시인의 「장엄송」 중 일인이 엄원태 시인이다. 선산이 고향인 장옥관은 대륜고, 대구가 고향인 엄원태는 경북고, 영천이 고향인 송재학은 대구고를 졸업했다.
엄원태의 『소읍에 대한 보고』는 한때는 흥성했지만 상권과 사람이 떠나면서 점점 “빈 껍질”이 되어가는, 중소도시 가까운 읍의 운명과 상황에 대한 시적인 기록 성격을 띤다. 전국 어디서든 마주치는 정황이지만 엄원태가 대구가톨릭대 조경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일한 것을 감안하면 대구 인근의 하양읍과 그 주변 모습에서 소재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골목 안 국밥집」의 형편도 “소읍엔, 파리를 날리는 식당이 있고/ 짜장면과 짬뽕 외에는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중화요리집이 있”(「소읍에 대한 보고」)다는 소읍 식당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낡은 드럼통 목로에 그릇을 쌓아두거나, 아니면 드럼통 목로가 바로 손님 술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허름한 식당 풍경이 떠올려진다. 손님이 없고 손님이 없으니 적요하기만 하고, 손님을 기다리다가 국이 졸아서 짜지기도 하는 그런 식당이다. 가난하고 누추하고 쓸쓸한 것으로부터 발을 빼는 사람들을 시인은 존중해주면서도 자신의 사랑은 바꾸지 않는다. 시인의 사랑엔 똑같은 상황에 분위기를 입히고 낭만을 부여하는 능력도 있고 안 되는 가게를 돕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고단했을 모녀의 실루엣과 음성에 “햇살”을 놓는 것도 시인의 마음이다.
소읍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그저 그렇게 끈질기게/ 견·뎌·내·는 것”(「소읍에 대한 보고」)이라며 시인은 견디는 삶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면서 “그곳에 안식이 있겠나, 정말로 거짓 같은 평화가 있겠나”(「소읍은 다리를 건너야 나온다」)라고 반문도 한다. 참다운 평화는 소읍에서도, 소읍을 떠난 도시에서도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즈음, 시인은 생의 어떤, 한 순간의 햇살에도 평화가 머물기도 함을 「골목 안 국밥집」으로 보여준다.
시집 속 「감포 가는 길?」에서 조금 웃었다. 송재학 시인의 쏘나타에 장옥관, 엄원태, 박진형이 함께 타고 감포 가는 길이다. 커브 길에 아찔했던 일행이 다음 커브 길에 끝내 중앙분리대를 부딪치고 차가 주저앉는 위험천만한 사고를 내고 만다. 엄원태 시인은 벗들이 감포 대신 정비공장으로 향하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형상화해두었다. 국밥집 술안주로 오래 회자되었을 것 같은 이야기다. 이후 장엄송의 우정은 여전하리라 믿지만 함께 움직일 때 운전대는 누가 잡는지 궁금해진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