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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먼저 배려하면 상대가 내게 온다
부산 경남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이태석 신부의 동상.
지금으로부터 꼭 143년 전인 1875년 1월 14일은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태어난 날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슈바이처’는 가난한 곳에서 어려운 이를 돕는 의사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8년 전인 2010년 1월 14일은 ‘수단의 한국인 슈바이처’로 불린 이태석 신부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슈바이처 박사와 이태석 신부 모두 성직자이자 의사로서 아프리카 오지의 주민들 삶에 헌신했다.
남을 나쁘게 만들려는 시기심이
좋게 만들려는 이타심의 반대말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이기심
남에게 도움 되는 이타심과 양립
슈바이처·테레사 효과처럼
베풀면 자신에게 더 나은 결과
당장 자기 이익 위해 행동하는 집단
진정한 이기심 아니고 공멸 십상
슈바이처는 젊은 나이에 철학, 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학다식함을 보여줬다. 30대 후반에는 의사가 되어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오늘날 가봉공화국 내)에 병원을 세워 의료 봉사를 실천했다.
독일 바이마르의 공원에 세워진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동상.
독일 국적의 슈바이처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구금됐다가 유럽으로 송환되었고 전쟁 직후 출신지역 알자스가 다시 프랑스로 귀속되면서 국적을 프랑스로 바꿨다. 그의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가 아프리카 원조의 필요성과 그의 활동을 널리 알렸고, 슈바이처는 여러 모금활동을 통해 랑바레네 병원을 운영했으며,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슈바이처는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것이 인간 윤리라는 ‘생명의 외경’ 사상을 제시했다. 반세기 넘게 인류애를 실천한 후 1965년 랑바레네 병원 앞 자신이 만든 십자가 묘비 아래에 영면했다.
신학에 먼저 입문한 후 뒤늦게 의사가 된 슈바이처와 반대로, 이태석은 의과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수도회 입회 및 신학과 편입을 거쳐 신부가 되었다. 이태석이 선택한 선교 지역은 전쟁과 가난으로 얼룩진 수단의 톤즈(오늘날 남수단공화국 내)였다. 톤즈 사람들은 이태석을 세례명 ‘요한’과 그의 성 ‘이’가 합쳐진 ‘쫄리 신부’로 불렀다. 슈바이처처럼 음악적 재능을 지닌 이태석은 한센인을 포함한 지역주민의 의료 지원뿐 아니라 총칼을 녹여 악기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음악 교육을 실시하는 등 여러 봉사 활동을 수행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봉사하던 중에 2008년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대장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투병 중에 출간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그리고 사망 직후 방영된 『울지마 톤즈』로 그의 봉사 활동이 한국 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사후에도 한국인들의 톤즈 지원은 이어지고 있다.
선교나 봉사의 해외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선교사를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고, 또 해외원조가 현지국의 정권 교체를 막아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분석도 있다. 2016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응구기 와 티옹오의 소설 『울지마 아이야』 그리고 『강 사이』만 해도 제목이 비슷한 『울지마 톤즈』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와 이태석의 헌신적 활동이 아프리카 현지 주민들의 삶에 크게 기여했음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다.
이기심을 전제로 하는 사회과학에서 이타적 행동의 설명은 늘 논란거리다. 내세에서의 보상이나 신앙적인 안도감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내세관이나 종교를 믿지 않아도 이타적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타심의 반대말로 이기심을 말하지만, 엄격하게 보자면 시기심이 이타심의 반대말이다. 남을 나쁘게 만들려는 시기심은 남을 좋게 만들려는 이타심과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태석기념사업회 회원과 부산은행 직원들이 베트남 수재민에게 보낼 구호용품을 포장하는 모습(2013년 10월). [중앙포토]
시기심의 공멸성은 이솝 우화에도 등장한다. 유피테르신은 서로를 시기하는 이웃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소원을 들어주되 동시에 그 소원의 두 배만큼 이웃에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자 상대를 시기하던 자는 결국 상대의 두 눈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한 눈을 없애달라고 소원한다는 이야기다. 슈바이처는 두 배가 되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행복을 시기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집단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시기하는 자는 선동되기도 쉽다. 정치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실제 아무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다른 소수의 행복을 박탈만 함으로써 다수에게 일시적 행복감을 줘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행복하던 남의 고통(샤덴)이 불행하던 나의 기쁨(프로이데)이 되는 일종의 샤덴프로이데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사회 실험 결과들도 있다.
시기심과 달리,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이기심은 남을 이롭게 하려는 이타심과 양립이 가능하다. 자신의 이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남에게 베풀어서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더 나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업체의 성장이 주변인과 주변 업체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사례가 전자에 해당한다. 후자의 사례로는 슈바이처 효과나 마더테레사 효과를 들 수 있다. 슈바이처 박사와 테레사 수녀는 보건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류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다. 이에 착안하여 남에게 봉사하면 호르몬 변화 등으로 인해 건강이 증진된다는 사실을 드러낸 조사와 실험이 있다.
그렇다고 이타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더 건강한 것은 아니다. 열악한 보건 환경 속에서 사랑과 봉사를 펼친 이태석 신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고 선종했다. 오히려 이타적이기는커녕 나쁜 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자가 오래 살기도 한다. 그래서 마더테레사 효과는 악한 마음보다 선한 마음을 가질 때 건강하다는 것이지, 체질적으로 선한 사람이 체질적으로 악한 사람보다 꼭 건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결과는 어떻게 전략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보은이든 보복이든 되갚음(pay back)은 그런 연결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되갚음은 보복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먼저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이후에는 상대가 나의 향후 협력을 얻기 위해 나에게 협력할 것이기 때문에 나의 선도적 협력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배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런 계산된 이타적 행동이 이기적인 기준에서 합리성을 가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 이기심은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 간의 경쟁에서 이타주의자보다 자신의 생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잘 생존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단위가 아닌 집단 단위의 경쟁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한 고려도 없고 철저하게 당장의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집단은 서로 협력하지 않아 공멸하여 도태하기 쉽다. 반면에 이타적이거나 네트워크를 형성해 함께 하는 집단은 오히려 대외 경쟁력을 가져 살아남는다. 결국 이타심은 집단화나 네트워크화로 진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집단화나 네트워크화의 전략적 연결 하나는 내리갚음(pay forward)이다. 무료로 식사하되 다른 사람의 식사 값을 지불하는 카르마 식당 그리고 무료로 커피를 마시되 다음 사람의 커피 값을 지불하는 릴레이 커피숍은 내리갚음에 의해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결과가 연결되는 예다. 이타적 행동의 사회적 효과는 되갚음보다 내리갚음일 때 더 크다. 예컨대 A는 B에게 1개를 기부하면서 언젠가 다른 C에게 그대로 갚으라고 했다고 하자. 사회 구성원 모두가 확실히 내리갚음을 하면 1개의 기부만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혜택을 볼 것이다. 만일 내리갚을 확률이 5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개의 기부는 사회적으로 2개(= 1개 + 0.5개 + 0.25개 + …)의 효과를 갖는다. 만일 1개의 기부를 받아 성공한 후 여유가 생겨 2개를 기부하는 구성원이 많아지면, 그 사회적 효과는 배가되는 것이다.
남의 이타적 행동으로 혜택을 얻거나 또는 그 이타적 행위를 관찰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제3자에게 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남의 이기적이거나 잘못된 행위를 관찰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이기적이거나 잘못된 짓을 더 행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태석의 삶 역시 다른 위인의 삶에서 연유한 면이 있다.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인에게 봉사하다 49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몰로카이』가 이태석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친형 이태영 신부가 기억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태석과 슈바이처의 정신과 활동은 그들이 사망한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의 정신과 활동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랑바레네와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행한 슈바이처와 이태석의 봉사는 이타적 행위를 지구촌 곳곳에 확산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 작은 로컬 행동이 큰 울림을 통해 글로벌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꾼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편가르기와 위선 대신에 진정성 있는 이타적 행동이 자주 관찰되고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 내셔널 펠로.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