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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팰리스'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주)인디스토리)
극장가가 회복 불능의 위기에 돌입한 지금 시기에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설 곳은 더 없어 보인다. 대작 영화들이 극장가를 싹쓸이하던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이젠 산업 자체가 힘겨운 상황에서 그 문제를 꺼낼 수 없이 어떤 한국 영화라도 흥행에 성공하길 기다린다. 팬데믹 이후 천만 관객 영화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사건이 되고, 시즌별로 활기가 넘치던 극장가는 옛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좋은 예술 독립영화들이 나오고 이 영화들은 조용히 개봉하고 조용히 VOD로 넘어가는 현실이다. ‘드림팰리스’는 관객 1만 명 돌파라는, 독립영화로서는 괜찮은 결과를 보여줬지만, 이것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너무도 훌륭한 독립영화다.
‘드림팰리스’는 아파트 브랜드다. 의문의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 분)은 진상규명을 위해 2년간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뒤로하고, 사측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아 고3 아들과 함께 새 아파트로 이사 왔다. 그 ‘꿈의 궁전’은 남편의 목숨값이라는 원한에 동지들을 저버린 죄책감이 더해지고,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희망이 합쳐진, 그저 아파트 한 채가 아니라 삶의 온갖 감정이 더해진 총체다. 5억 원짜리 물건 이상으로 삶의 모든 것을 걸어버린 집이 하필 이사 첫날 녹물이 나오는 부실 공사 아파트라는 사실에 혜정은 허탈감을 더한다.
혜정이 분양사무소를 찾아가자 소장은 미분양 문제가 해결돼야 아파트 전체 공사가 가능하다고 냉정하게 답한다. 그리고는 솔깃할 한마디를 던진다. 분양자를 찾아오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혜정은 적극적으로 현수막과 전단을 뿌린다. 아파트 미분양 문제가 하나의 플롯을 형성한다.
혜정의 아들은 유가족 농성장에 아직도 함께한다. 어느 날 농성자 중 누군가 회사 사무실 창을 깨고 불을 낸 사건이 벌어지고, 이 일로 혜정은 또 다른 유가족인 수인(이윤지 분)과 다시 만난다. 혜정의 남편과 수인의 남편은 하청 직원인 다른 농성자와 달리 원청 직원이었고, CCTV를 내놓지 않는 회사로부터 의문의 화재 사건의 원인자로 지목돼 동질감이 있었지만, 혜정이 먼저 합의한 뒤 둘은 갈라섰다. 유가족 간의 갈등이 또 하나의 플롯을 구축한다.
아파트 플롯과 유가족 플롯은 혜정과 수인이 다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로 모인다. 어린아이들을 놓아두고 수감 생활까지 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수인은 합의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 돈으로 꿈의 아파트에 파격 할인가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자산 1억을 앉은 자리에서 날린 아파트 입주민들이 할인 가격으로 들어온 새 이웃을 반길 리 없다. 또 다른 농성과 투쟁이 시작된다.
'드림팰리스'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주)인디스토리)
이 영화는 가성문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는 2014년 있었던 인천의 한 미분양 아파트에서 일어난 분신 사건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미분양 물량을 줄이기 위해 할인 분양을 시행하는 건설사 일은 신도시 곳곳에서 흔히 봤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세월호, 이태원 등등 많은 이가 희생된 사회적 참사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소재를 두고 고통받는 유가족들의 현실도 익숙한 이야기다.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것은, 이러한 사건들에 직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얼굴을 맞댄 을들이 갈등을 빚곤 한다는 점이다.
혜정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 그러나 그녀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타협하고 눈 감을 때도 있다. 수인은 옳지만 최선을 다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대의와 신념을 위할 때 자신의 아이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영화 내내 계속해서 밀려오는 꼬리를 무는 갈등으로 폭발해 버릴 만도 한데, 혜정은 누웠다가 다시 일어선다. 대신 꼭꼭 눌러버린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디엔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같은 듯 다른 두 여성의 생존 투쟁이 보는 이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판다. 영화는 엄청나게 자제심을 발휘하지만 보는 이의 가슴을 들끓게 하며 만만치 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 사고들은 그곳에만 해당하지 않아서 다양한 층위의 감정을 깨닫게 한다. 가지지 못해서 서러운데, 더 가지지 못한 자가 있고, 서로를 끌어내려야 올라갈 수 있는가 하면, 설계자가 누군지 몰라 이웃을 적으로 돌리고, 변명은 통하지 않아 한번 악마가 되면 그걸로 끝인 처참한 자본주의의 괴물성을 마주한다.
대단한 데뷔작이며, 대단한 배우들의 열연을 본다.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사회가 왜 이 모양밖에 되지 않는지 예리하게 짚어내는 훌륭한 사회학 보고서 같은 영화다. 많은 인물이 나오고, 그들은 이웃이었다가 악당인가 하면 또다시 자리를 바꾸곤 한다. 그들은 내가 그랬듯 모두 이해가 된다. 우리 을들은 왜 자꾸만 갈라지는가. 우리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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