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나 전투에서 폴란드-보헤미아-헝가리 등 기독교 십자군 연합은 오스만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그로 인해, 폴란드의 왕이자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왕인 브와디스와프 3세도 전사자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러자, 그의 동생이자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던 카지미에시 야기우워는 형의 죽음에 애통해 하면서도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폴란드의 왕인 형이 죽었으니, 귀족들은 그의 동생인 나를 자연스럽게 왕으로 추켜세우겠지? 그럼 나는 광대한 리투아니아의 대공에 더해 강한 기병대를 지닌 폴란드의 왕위를 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이런 점을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 리투아니아의 국정을 돌보기로 했다.
하지만, 폴란드의 귀족들로 구성된 셰임(의회)는 그런 카지미에시의 기대를 정면으로 부숴버렸다.
"만약 카지미에시가 형의 뒤를 이어 폴란드의 왕이 된다면, 잘 되면 우리가 리투아니아에도 세력을 뻗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군연합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빌미로 우리를 리투아니아의 이익을 위해 부려먹으면 이 또한 곤란한 일입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 특유의 선거군주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여지도 있어요."
"그럼 하는 수 없지요. 차라리 지방의 귀족을 왕으로 올리는게 좋겠네요."
귀족들은 그런 이유로 인해 유능한 포톡키 가문의 장을 왕으로 옹립했다.
뜻밖의 비보에 카지미에시는 낙담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북방을 치기 위한 기회로 잡았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웅거하고 있던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 겉으로는 신을 전도한다는 일념 하에 뭉친 수도사들이었지만, 몇 세기에 걸쳐 리투아니아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주민들을 기독교의 품 안으로 끌어들인답시고 노예로 팔아넘긴 위선자들이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이들부터 처리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꼴에 같은 기사단이라고, 리보니아 기사단이 프로이센 일대에서 웅거하던 튜튼 기사단과 동맹을 체결한 것이었다. 기사단끼리의 동맹. 이것은 폴란드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리투아니아에게는 양면전쟁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카지미에시는 주변국과 왕실 결혼을 맺서 왕비를 데려왔다.
초반, 카지미에시는 폴란드와의 동군연합이 실패하자 그들의 성장을 억제할 겸 튜튼 기사단과 공수 동맹을 맺었는데 그들이 리보니아 기사단과 동맹을 맺으면서 리투아니아와의 동맹이 자연스럽게 파기되었다. 그는 기사단들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이를 갈았다.
프로이센 일대에서 전도를 핑계로 동방 원정을 떠나 주변 발트해와 벨라루스, 루테니아 '기독교인'들을 숱하게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던 튜튼 기사단. 그래도 옛 원한을 잠시 묻어두고 손을 잡으려고 하니 이따위로 논다는 생각에 대공은 속이 부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토벌하겠다고 맹세했다.
한편 몰다비아에서는 로만의 침공건이 있자 헝가리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폴란드의 봉신이 되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까? 카지미에시로서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기 딱 좋았다.
(폴란드에게 삐졌지만) 동맹 요청을 허가한 카지미에시는 또한 브란덴부르크와도 공수동맹을 맺었다.
1450년 1월 1일.
카지미에시 대공은 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리보니아 기사단을 치기로 결의했다.
"이제 발트해에서 신의 사자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 발트인, 벨라루스인, 루테니아인들을 괴롭혀 온 기사단 놈들과 결판을 지을 때가 왔다! 나가자, 리투아니아의 전사들아!"
"거짓된 정의와 믿음에 맞서 싸우자! 부정한 기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성채를 불태워라!"
폴란드는 원군을 보내지 않는 대신, 일부 병력을 콘도티에리로 제공했다. 카지미에시는 병력 부담을 덜기 위해 승낙했다.
튜튼 기사단과 리가, 리보니아 기사단 연합(스코틀랜드는 거리상 이름만 빌려줬다)의 군사들은 정면으로는 리투아니아의 상대가 안되니 폴란드 영토를 통해 리투아니아의 배후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리투아니아군들은 이를 후방 약탈로 규정하고, 일부 군사들을 빼서 저들을 막기로 헀다.
연합군으로서는 스플릿 플레이를 할 이유가 있었다. 정면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은 기껏 후방을 휘젓나 했더니, 카지미에시 대공의 군사들에게 걸려 박살나기 일쑤였다.
한편 폴란드 군은 꼼수를 써서 본진이 빈 튜튼 기사단을 공략하려고 했지만, 하필 튜튼이 리보니아 뿐 아니라 마그데부르크와 헝가리하고도 동맹을 맺는 바람에 삼면 협격을 받게 생겼다.
결국 리가는 수도가 따인 끝에 항복하였다. 그들은 이제 리보니아 기사단의 동맹국에서 리투아니아의 종속국으로 바뀐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카지미에시 대공은 아들을 얻었다. 그럭저럭 군주로서의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몇 년간 격렬하게 싸웠지만, 리보니아 기사단은 한번에 삼킬 수 없는 자들이었다. 대공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고 북방의 두 곳을 제외한 모든 땅을 양도받았다. 이제 리보니아 기사단은 다시는 기사단의 핑계를 대고 리투아니아를 짓밟지 못할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정복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고.
엄청난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반란에 휩싸이기 싫었기 때문에 점령지 주민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완전자치를 허용해주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거둘 수 없겠지만, 반란으로 제 살을 깎아먹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한편 꼼수를 쓴 폴란드는 그 대가로 있는 땅까지 뜯어먹혔다. 그야말로 망신살을 뻗친 행위였다. 그 협상 소식을 들은 카지미에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게 우리와 같이 행동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쯧쯧쯧."
협상 결과. 폴란드의 영토가 흉하게 뜯어먹히고 반토막이 난 모습이 선명했다. 그 꼴을 본 카지미에시는 언젠가 폴란드의 영토를 되찾아주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폴란드 왕위를 자기나 자기 후손들이 받은 다음에 말이다.
여담으로, 몰다비아는 폴란드가 아닌 헝가리에게 손을 벌린 대가로 오스만에게 베사라비아 일대를 내줘야만 했다.
한편 로마에 르네상스 시대관이 생겨났다.
헌데 폴란드가 비참하게 박살나고 얼마 후, 반전이 일어났다.
단치히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상업도시들의 시민들이 튜튼 기사단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폴란드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그들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튜튼 기사단에 대한 폴란드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오스만은 비잔티움을 상대로 모레아를 남겨두는 놀라운 반전을 보였다.하지만 이미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된 뒤였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무슨 일에선지 일부 도시들의 주요 문화를 벨라루스로 변경했다. 특히 수도인 빌뉴스의 문화를 변경하겠다고 하자, 수도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카지미에시 대공은 도대체 무엇을 꾀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부르고뉴 대공이 상속자 없이 죽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그의 영토를 사이좋게 갈라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보니아의 분리주의자들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카지미에시 대공은 덴마크가 리보니아 기사단의 자투리 영토를 먹지 못하게 할 심산으로 스웨덴에 대한 독립 지원을 약속했다.
1459년, 대공은 보병 군제 개혁을 단행했다.
한편 폴란드는 튜튼 기사단을 상대로 단치히에 대한 독립을 보장받고 빼앗긴 영토 일부도 받아내 일전의 복수를 확실하게 해냈다. 카지미에시는 이 소식을 듣고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한편 리투아니아가 확장함에 따라 수도와 아욱슈테이티야 지방의 경기가 좋아졌다.
그리고 대공은 이 기세를 몰아 귀족, 특히 슐라흐타 계층의 특권을 축소시키는 개혁을 단행했다.
1462년. 스웨덴은 드디어 덴마크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했다. 리투아니아는 당연히 스웨덴을 지지하기로 했다.
육군은 스웨덴-리투아니아가 유리했지만, 해군은 덴마크-포메른 연합이 유리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그 사이, 성인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축복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편 스톡홀름에서 덴마크군과 리투아니아군의 전투가 펼쳐졌다. 규율에서는 뒤쳐졌지만, 사기의 우위로 덴마크를 제압했다.
그러던 중, 볼리니아 지방에서 병역 기피 현상이 일어났다. 대공은 분노하여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리투아니아는 겨울 공성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대공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포메른을 떼내는데는 성공했지만, 덴마크와 노르웨이 군은 뱀처럼 리투아니아의 배후를 찌르고 민간인들을 죽이고 도시를 약탈했다. 대공은 격노해 그 불한당들을 마지막까지 응징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분전도 덧없이, 스웨덴의 1차 독립 전쟁은 참혹한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스톡홀름은 불탔고, 독립 지사들은 대거 처형당했다. 덴마크가 리보니아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 이외에는 실익이 없는 전쟁이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일단은 안습...
폴란드는 리투아니아를 거스른 댓가를 치루었군요 껄껄
흉하게 뜯어먹혔습니다. 특히 헝가리에게!
설마 또 지난번과 같이 꼬이겠습니까.
이번엔 좀 순탄하기를 빕니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꼬이는건가요?!
아니길 빌어야죠.
플레이어가 리투면 폴란드는 무조건 귀족왕조 올려서 ㅠㅠ
다행히 1.27버전 이후로는 저래도 미션트리 따라 폴란드 동군 명분을 받으니 괜찮아요.
?! 으아닛 이런 괴상한 세계가..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