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구독하던 경향신문을 중단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어떤 신문을 보면 경품으로 자전거도 주고 뭣도 주고 한다면서 다른 신문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했지만, 그래도 경향신문같은 민족을 생각하는 신문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독해야 한다면서 구독을 해 온 것이다.
그런 신문을 작년 말 중단했다.
중단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경향신문은 적어도, 민족은 안중에도 없고 회사 이익만 추구하는 조중동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평소 경향신문의 기사내용을 보면 국가와 민족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깊게 경향신문과 접하고 보니 큰 테두리 내에서는 조중동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경향신문 구독을 중단한 것이다.
아래에 있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참모습’ 이라는 글을 기고하려고 경향신문 독자부장이라는 친구와 몇 차례 통화를 했지만 글의 내용이 경향신문 편집방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싣지 못했다.
평소의 보도 태도로 볼 때 조중동의 민족관 ․ 국가관이라는 것이 (북한을 포함한)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큰 나라의 힘에 의지하여야만 민족의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고 국가가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큰 나라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반하는 소리는 감히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독자부장이라는 친구와 통화를 통해서 경향신문의 민족관 ․ 국가관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신문을 굳이 계속 구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중단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국민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독자부장이란 친구도 우리 선대로부터 교육을 잘 못 받았고 그것을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가 인구가 많고 면적이 넓은 나라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국민들이 전사(戰士)의 기질을 주로하고 거기에 서생과 상인의 기질을 종으로 하는 국민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야 되는데, 실제는 서생과 상인의 기질만 키우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독자부장이란 친구와 같은 국가관을 가졌다고 본다(독자부장이란 친구는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씨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사대교린주의는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거만하게 구는 사상으로서 서생과 상인의 기질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사상인데 아마도 독자부장이란 친구가 그런 사상을 실리외교로서 한민족이 생존하는방법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글이 경향신문에 기고하려다 독자부장이란 친구로부터 편집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거절당한 글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참모습
언론을 통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분은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대학교수나 국제관계 연구소의 연구원들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직 장교들이다.
이들은 모두 직업의 특성상 한반도 핵문제에 관하여 기고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필자는 한반도 비핵화의 찬반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교수나 연구원들이 여러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지면관계상 일부씩만 소개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도 핵무기를 모두 폐기함으로써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겠지만, 실제로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들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할 방법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국제관계는 힘의 관계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보다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나 한국이 핵 옵션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의 성격상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합리적인 선택이다.’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미국의 힘이 압도하는 21세기 초반 국제사회에서 생존과 번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토와 인구 규모를 볼 때 우리가 군사 강대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주변의 초강대국들을 고려할 때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 강경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군사대치를 하겠다는 자살행위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다음은 2005년 북한의 핵실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목사의 글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상정을 통한 경제제재를 추진하고 나아가 대북선제공격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우리 민족의 공멸을 의미한다. 미국의 군사행동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은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는 어떤 사람의 글이다.
‘지금 전 세계는 북한을 비롯한 소위 불량국가들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세계평화에 가장 중대한 위협요인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의 방지를 위해서는 무력사용도 불사한다는 방향으로 국제여론을 모아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노력들을 주도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위의 글들은 표현 방식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쉽게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힘있는 나라한테 대들어 보았자 손해이니 잘잘못 따지지 말고 강대국 비위나 맞추며 편하게 살자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약삭빠르고 비도덕적이며 나약한 주장인가?
그런데 도덕성이 생명인 교수나 학자 종교인들이 이런 비도덕적인 주장을 하고 무강성이 생명인 군 장교들이 이런 나약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성이 생명인 교수나 종교인들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주장해야 하고 그르다고 판단되면 그르다고 해야 한다.
전직 국방부 차관이라면 무강성을 지닌 무인답게 전국민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우리의 목적을 위하여 싸우자고 해야 한다.
핵무기 자체가 인류의 평화에 위험한 존재가 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핵보유국들이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민족의 생존에 핵무기가 필요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핵무기를 갖자고 주장해야 정상이다.
강자에게 비굴하게 굴자는 얘기는 약자에게 거만하게 굴자는 얘기와 똑 같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 사회생활에서의 행동도 그렇게 할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약삭빠르고 나약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 행동도 비도덕적이고 약삭빠르고 나약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회, 강인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 사회,약삭빠르게 행동하여 실속만 챙기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된 사회,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거만하게 구는 행위가 영리한 짓으로 인정되는 사회. 이것이 현재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정상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사회이다.
이러니 가짜 학력, 가짜 논문, 가짜 명품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평소엔 도덕적이고 바른 말만 하던 사람을 장관이나 대학 총장으로 임명하려고 뒷조사를 해보면 논문 표절이나 하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던 사람으로 밝혀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