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의 의미
세속에 살면서 우리는 복 타령(남편 복, 여복, 자식 복, 재산 복, 건강 복, 인 복, 미인/미남 등등)을 많이 하며,
이것은 마음 바탕에서가 아니라 육신 바탕에서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복이 어디서 나오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이러 저런 불평을 하거나,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는가 하고 흔히들 말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성실히 살아가지도 않는데 잘 먹고 잘 살아 가는 것을
보거나 그와 반대로 성실하고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데도 그저 밥 세끼 먹으면서 살아가거나,
또한 법이 없이도 살 수 있고 매우 근면한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우리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이것은 중생 육안의 바탕에서 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무량 전생, 금생, 내생 등 삼세의 관점에서 보면, 무량 전생에 많은 복을 지은 사람은 금생에서
주변 환경이 좋은 때(시간)와 장소(공간)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즉 척박한 사막의 공간이나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공간(문명과 문화가 잘 발달된 공간과 시간에 태어남)과 잘 먹고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지엽적으로 생각한다면 무량 전생에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가정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과 공간에 태어나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며 금생에서 부지런히 지극정성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무량 전생과 금생에서 복을 벌지 못한 것이므로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내생에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반대로,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 복으로 내생에 훨씬 좋은 삶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운 시간과 공간에 태어나도 모두가 지능, 미모, 바보, 장애, 어리석음 등등은
각자의 무량 전생의 복과 지혜의 차별입니다.
세상 도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복과 지혜의 차별 세계이며, 그 차별 자체가 평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차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극 정성 갈고 닦아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지혜를 터득하고 무량 복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복이란 주고받고 난 나머지가 복이며, 주는 사람은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오고 받는 사람은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10원을 가지고 남에게 베풀려고 할 때 현명한 지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5원씩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10원 모두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세생생 무량 복을 벌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약 예를 들어 100원어치 복을 벌어야 되는 것이라면
부단히 지극정성 불교 진리를 깨달아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 99원의 복이요, 나머지 1원의 물질적인 것을
남에게 베풀어 복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금강경에도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보시해도 금강경 네 글귀의 계송만이라도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큰 복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는 것은 나와 네가 둘이 아닌 경지에서 주는 것이며, 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르쳐 주는 것, 고쳐주는 것, 져 주는 것, 돈 주는 것, 사 주는 것, 먹을 것을 주는 것 등등 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부처님 말씀인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경을 공부하는 것도 교양 지식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터득하여 우주 진리를 일체 중생에게 가르쳐
서로 뺏는 세계에서 주는 세계로 바뀌면 세계는 일가(一家)요, 인류는 동족(同族)인 것이며, 이 세계가 바로 용화세계입니다.
따라서 주는 데서 복(福)을 벌고 복의 결과가 부(富)입니다. 복과 부의 한자에서 보듯이 두 글자의 알맹이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