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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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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 절대 금지)
오전 내내 지루한 기말 고사가 이어졌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이 객관식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선호하는 삼 번과 사 번을 적절히 교차해서 써넣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열두 시 정각에 하루 분의 모든 시험이 끝났다. 창밖에는 가는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매점으로 달려가 시원한 소이밀크를 마시며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전에 일어서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돼지같이 살찐 녀석이 내 이름을 아주 친한 친구 이름 부르듯이 부르고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녀석 뒤로 상민의 패거리가 슬럼가의 흑인들 같은 자세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이- 민혁이- 백원짜리 하나 있나?"
말자하면 돼지 녀석은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치사하게 백원을 빌미로. 상민에게 등이 떠밀려 고작 백원에 옹색한 자존심을 팔려는 녀석의 수작이 한심해 보였다. 물풍선처럼 출렁거리는 녀석의 뱃살만큼이나.
"어이 임마- 민혁이- 백원짜리 하나 있냐고?"
무시하고 그냥 가려는데 그가 그렇게 바닥을 기는 듯한 탄식의 목소리를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나는 그만 그 모든 알 수 없는 일들의 원인을 그 돼지 녀석에게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녀석을 신나게 두들겨 팼다.
학생 주임이 오고 있다는 소리에 우리는 모두 흩어졌다. 흩어지기 직전 나는 상민을 노려보았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빗방울은 어느새 굵어져 있었다.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버스 정류소까지의 거리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지기를 기다리며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늘고 하얀 종아리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희선이었다. 머리카락이 비어 젖어서인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산발한 처녀귀신의 모습 같았다.
"뭐야 너?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희선은 말없이 나에게 자신의 빨간 우산을 씌어 주었다.
"됐으니까, 그냥 가. 난 뛰어가면 되니까."
"삼길이한테 그렇게 심하게 할 필요가 있었어?"
"삼길이는 또 뭐냐?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저리 가."
희선이는 누구라도 호감이 갈 만큼 예쁜 아이였지만 이런 엉뚱한 순간에는 누구라도 짜증이 날 터이다.
"아까 네가 두들겨 팬 애."
"뭐? 그 돼지 이름이 삼길이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모범생답게 싸움을 한 것에 대해 질책하려 한다.
"제발 좀 그냥 가 줘! 내가 삼길이를 패든 사길이를 패든 상관 말고!"
"일어나 봐."
"뭐?"
나는 잠깐 뭔가를 착각한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어나 보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그 목소리는 앞과 뒤에서 동시에 울리듯이 들렸다. 나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등뒤에는 굳게 닫힌 노란 대문이 있었다. 대문 같은 것이 메아리를 보낼 리는 없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빨간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거부할 수 없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왜 그래?"
내가 마지못한 듯이 일어서자 희선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마셔봐."
"뭐?"
그녀가 내민 것은 드링크제였다. 그런데 수상한 것은 드링크제에 어떤 라벨 표시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갈색의 반투명 유리병이었고 그 속에는 어떤 액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독약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뭔데 이게?"
"박카스."
"어쩐지 아닌 것 같은데."
"빨리 마셔."
"잠깐만, 내가 왜 이걸 억지로-?"
"그것만 마시면 가 줄게."
그녀는 마치 선심 써 주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너 못 말리는 애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아련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아이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가! 그 엉뚱함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다. 나는 짐짓 대범한 척 유리병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심장 박동 수는 증가하고 있었다.
"됐냐?"
빈 병을 희선에게 쥐어주며 기침을 몇 번했다. 급하게 마시느라 사레가 걸린 것 같았다. 유리병 속의 액체는 그냥 맹물이었다. 나를 상대로 이런 기묘한 실험을 하는 희선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요즘은 알 수 없는 일 천지였다. 나는 그 애가 또 엉뚱한 얘기를 하기 전에 빗길을 달렸다. 곁눈질로 돌아보니 희선은 골목에 솟아오른 묘비처럼 우두커니 서서 언제까지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비는 더욱 거세게 퍼부었다. 비에 흠뻑 젖은 교복을 벗으며 누나 방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대꾸가 없었다. 문을 열어보니 누나는 없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학교엘 갔나. 방학한 대학생이 무슨 중요한 볼일이 그렇게 있다고.
아침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나의 목에 난 두 개의 작은 상처. 그것은 흡사, 드라큘라에게 물린 상처 같았다. 심란한 기분을 가라앉히고자 샤워를 하고 따끈한 커피를 한잔 끓여 마셨다. 커피는 역시 스타벅스보다 집에서 끓여 마시는 커피 믹스가 한 수 위였다. 커피를 마신 후 곧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비를 맞아서인지 감기 바이러스가 내 몸을 방문하려는 조짐이 느껴졌다.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 눈을 감으니 빨간 우산을 들고 나에게 이상한 물을 마시라고 권했던 희선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휴대폰 소리에 잠을 깬 것은 밤 아홉 시경이었다.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며 침대 위의 휴대폰을 들었다. 폴더를 열기까지의 짧은 순간동안 가슴에 무거운 추를 단 것 같은 저릿함이 느껴졌다. 요 근래 예민해진 나의 육감이 무언가 불길한 내용의 전화일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응- 혹시 자고 있었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경 누나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경 누나의 목소리가 무척 떨렸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벌써 자다니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혜주 언니한테 연락이 안 돼서 말야."
"예?"
미경 누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거든. 퇴근하고 일곱 시에 우리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덟 시가 넘어도 안 나오는 거야. 휴대폰으로도 연락이 안 되고. 혜주 언니 회사로 전화를 해보니, 언니 오늘 아예 출근을 안 했대!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혜주 언니 집 초인종을 눌러봤는데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는 거야."
다급하게 얘기하는 미경 누나의 목소리만 들어도 누나가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어제 혜주 언니가 했던 이야기 생각나?"
생각이 났다. 빌라에서 혼자 사는 독신 여성 세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혜주 누나가? 설마, 그 연쇄 살인마가 우리 아파트에!
"누나 내가 지금 그리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현관을 나서기 전 누나 방의 문을 두드려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문을 열어보니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건지 왔다가 다시 외출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나 목에 있었던 상처 두 개가 떠올랐다. 그것은 두통처럼 나의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비는 그쳐 있었다. 어둠의 옷으로 갈아입은 세상은 고요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십오 층에 멈추어져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를 기다렸다. 우웅, 하는 엘리베이터 진동음에 묻혀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목 뒷덜미가 간지러웠다. 아주 미세한 바람이 복도 내를 부유하며 내 목덜미에 스치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벽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이제 십 층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굼벵이 같이 느렸다. 슈슉! 이상한 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에는 분명하게 들렸다. 그것은 등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였다.
슈슉!
나는 고개를 들어 복도의 천장을 응시했다.
그때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렸다.
엘리베이터에는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안 탈 거니?"
그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자는 정혁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하강했다.
"이 밤중에 어디 가니?"
그가 물었다. 그는 흰색 트레이닝 복 차림이었다.
"비, 비디오 빌리러요."
어쩐지 그에게 십일 층의 미경 누나에게 가는 길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냐? 나도 비디오 빌리러 가는 길인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닝 복 안 주머니에서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꺼내들었다.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였다.
"드라큘라 영화 좋아하니?"
"아, 아뇨."
"파하핫- 되게 겁이 많은가 보구나!"
무엇이 그리 웃긴지 그는 파안대소를 했다. 그가 입을 벌리자 썩은 고기 냄새가 나는 듯했다. 돼지고기? 아니면 생선 회? 아무튼 거북한 냄새가 엘리베이터 공간에 가득히 차 올랐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일 층에서 멈추었다.
"먼저 나가."
정혁이 손을 뻗으며 내가 먼저 나가기를 권했다. 하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그는 천천히 내 뒤를 따라 내렸다. 나는 경비실을 지나 계단 앞에서 멈추어 섰다. 나로선 한가하게 비디오나 빌리러 갈 입장이 아닌 것이다.
"왜 멈춘 거야?"
정혁이 등뒤에서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다른 길로 샐까봐 감시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집에 놔두고 온 게 있어서요."
"뭔데?"
"예?"
그는 되돌아가려는 나의 앞길을 거대한 덩치로 막고 있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묘하게도 무척 사나와 보였다.
"뭘 두고 왔냐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할 의무는 없었지만 대답을 회피해야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사실 그런 정도는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행위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휴대폰'과 '지갑' 중 무엇을 대답으로 내놓을지 갈등했다.
"휴대폰을 두고 왔어요."
결국 휴대폰을 선택한 것에는 만약 '지갑'이라고 했다가는 그가 이렇게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돈 빌려줄 테니 그냥 가자!
"휴대폰?"
그는 마치 스스로가 거짓말 탐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오른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면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엘리베이터에 온전히 오를 때까지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십일 층 버튼을 누르려다말고 나는 불에 데인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십일 층을 누르려던 손을 멈추고 그 아래로 내려와 칠 층을 눌렀다. 왠지 그 작자가 일 층에 버티고 서서 엘리베이터가 칠 층에서 멈추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칠 층에서 내린 나는 십일 층까지 뛰어서 올라갔다. 숨이 차도록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내가 무척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내가 그 떡대 같은 인간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해야 하는가!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미묘한 힘이 느껴졌다. 내가 그 힘에 압도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십일 층에 도착했을 때 손목 시계는 아홉 시 십오 분을 지나고 있었다. 너무 시간을 지체한 것 같아 불안했다. 겁에 질려 있던 미경 누나의 전화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누나- 미경 누나!"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두드렸다.
응답이 없었다.
오늘 아침 영순 이모의 현관문을 두드리던 기억이 났다. 그와 함께 옥상에서 나를 바라보던 영순 이모의 시체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나는 미경 누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를 않았다. 나는 계속 재통화를 시도하며 한 손으로는 창문을 열어보았다. 드르륵! 창문이 소리내며 열렸다. 잠가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창문을 타고 넘었다. 엄연히 무단 침입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불 꺼진 방안은 컴컴했다. 하지만 우리 집과 실내 구조가 같았기 때문에 헤맬 이유는 없었다. 복도 창이 난 이 방은 작은 방이고 이 작은 방은 미경 누나의 서재로 이용되는 방이었다. 미경 누나는 만화책과 추리소설 매니아였다. 나는 은은히 풍기는 책 냄새를 맡으며 작은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다만 미경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커피가 삼분의 일쯤 남겨진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커피 잔 옆에는 누나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누나?"
소리내어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미경 누나의 침실로 이용되는 큰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큰방의 스위치를 올려 방안을 확인했지만 그곳에도 누나는 없었다.
다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그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아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복도에서 들었던 그 괴상한 소리와도 같은 소리였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려다 말고 바닥의 한 부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핏자국이었다.
화장실 앞, 바닥에는 단 한 방울의 핏자국이 떨어져 있었다.
슈슉!
화장실에서 예의 그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스위치를 올리고 문을 열었다.
변기와 욕조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화장실 천장에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뒤로 물러났다. 천장의 눈은 환풍구 틈 속에 있었다. 말하자면 화장실 천장의 환풍구 안에 누군가가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슈슉! 괴상한 소음이 환풍구에서부터 들려왔다. 그것은 환풍구 속의 그가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일 때 나는 마찰음이었다. 슈슉! 다시 소리가 들렸다. 마치 환풍구 속의 그가 내려오려는 동작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그 자리를 박차고 달렸다. 들어왔던 경로 그대로 역행해서 창문을 통해 복도로 뛰쳐나왔다. 면바지와 티셔츠가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계단을 통해 칠 층으로 내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누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목에 두 개의 상처가 난 누나가 뛰어들어오는 나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다. 그리고 이 저주스러운 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려고 몇 번이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관두었다. 미경 누나가 정말로 실종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이틀정도는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아서였다. 제 삼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떤 중요한 일로 집을 비웠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등교를 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현관 앞에 서서 거울을 보았다. 며칠 새 해쓱해져 있었다. 왜 갑자기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터지는 것일까. 하지만 곧 그것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진행 과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바이러스가 잠복기를 거쳐 어느 시기에 발병하는 것과 같이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이미 그 사건에 대한 진행 과정이 잠복기처럼 거쳐갔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누구도 잠복기에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리라. 마치, 한 달 동안 시체와 이웃하며 살면서도 전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다미 빌라 사람들처럼.
문제는 지금 이 아파트가 잠복기를 끝냈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일련의 미스터리들은 발병 현상의 초기 단계라고 보면 타당하리라!
이제는 하나의 일과가 되어 버린 것처럼, 누나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누나는 잠자고 있었다. 엎드려 자고 있어서 목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어제의 일을 상기시켰다. 환풍구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 눈은 과연 누구의 눈이었을까. 어쩐지 그 눈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눈과 흡사한 듯했다. 머릿속에서 가물거리는 누군가의 얼굴, 그 얼굴이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치르면서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얼굴!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얼굴!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인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기억해 냈다.
그 얼굴은 정규의 얼굴이었다!
<계속>
첫댓글 이거 너무너무 긴장감이 넘치는데요....제이슨님 글도 빨리 올려주시공....^^ 쪼아쪼아
읔...첫번째로 읽고 싶었는데 ㅠㅠ
^^ 긴장 이빠이에요~희선양이 등장하는 부분에선 예전에 읽었던 무조건맛있는 딸기우유 삘도 쩜 나고...ㅋㅋ
빨리 연재가 되었으면 !!!
딸기쨈님 말 들으니 정말 그리 느껴지네요...ㅡㅡ
제이슨 님 친구님의 글을 읽으면 제 글이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아무쪼록 저도 님처럼 멋진글을 쓰기를 희망하며~^^
답글 주신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수(sue)님, 글을 쓰실때 문단 나누기에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면 더 좋은 글이 나오실 것 같습니다~^^ (문장을 일일이 하나씩 다 끊지 마시고...)
요홋.....+,,+~!!!
오랜만에 들어와서 한꺼번에 읽으니까 더 좋네요..안기다려도 되서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