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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정상을 넘어 개목사 쪽으로 하산하는 능선길. 계절이 초여름으로 바뀌면서 녹음이 짙어졌다. |
이번 주 산행지인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575.4m)에 깃든 전설이다. 전국에 안동 천등산과 한글·한자가 같은 산이 꽤 많다. 그중에서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천등산의 이름 유래에 눈길이 간다. 산이 구름 위로 반달처럼 솟아올라, 마치 하늘에 걸린 등불 같다고 한다. 그래서 안동 천등산과 달리 '하늘에 걸린 등불'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생뚱맞게 다른 지역의 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깨달음이란 건 남이 아무리 깨우쳐주더라도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스스로 깨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등'을 하늘이 등불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하늘에 구도의 등불을 내건다는 주체적인 의미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산행에 임한다. 천등산은 그리 높지 않은 데다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부드러워 산행하기에 편하다. 봉정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관음굴과 수릿재, 정상, 개목사, 봉정사를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총거리는 약 8㎞로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주차장에서 50m쯤 도로를 따라가다 오른쪽 밭둑길로 진입한다. 30m쯤 가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유적지인 '명옥대(鳴玉臺)'가 있다. 1665년(조선 현종 6) 후학들이 퇴계가 이곳에서 강학하던 것을 기념해 지은 누정이다. 원래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으나 중국 서진의 학자 육사형(陸士衡)의 '솟구쳐 나는 샘이 명옥을 씻어 내리네(飛泉漱鳴玉·비천수명옥)'라는 시구에서 이름을 따와 개명했다고 한다. 명옥대 옆 바위에는 '명옥대'라는 퇴계의 친필도 남아 있다.
봉정사 입구에 있는 명옥대. 이황이 강학하던 곳이다. |
도로로 되돌아나와 15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 25분가량 걷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오른다. 15분쯤 후 만나는 갈림길에선 정상 쪽으로 직진한다. 2분쯤 후 관음굴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 자드락길로 10m쯤 내려가면 관음굴이다. 높이 5m가량의 바위 아랫부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인데, 내부에 불상을 안치해 놓았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20분가량 걸으면 수릿재에 닿는다. 이어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30분쯤 능선을 타면 천등산 정상이다.
정상에 이르기 전 쉼터에서 재미있는 시를 봤다. '아카시아향 자지러지던 날/천등산 숲에서/모처럼 결혼식이 있었습니다/서후의 까투리 양과/ 북후의 장끼 군이/ 온갖 산새들의 합창 축가 속에/결혼식을 마치고/장끼가 까투리를 안고/학가산 쪽으로/신혼여행을 갔습니다/그다음 일은 난 몰라요/정말로 모른다니까요/설령 안다고 해도/차마 말할 수가 없어요'. 잠시 피로를 풀고 정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등산 관음굴. 능선 아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 안에 불상을 안치했다. |
정상에 서면 북후면 쪽으로 안동시의 진산인 학가산(鶴駕山·872m)이 마주 보인다. 정상에선 개목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20분쯤 가면 개목사가 나온다. 개목사 앞에서는 멀리 안동 일대 산들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개목사를 지나 숲 속으로 진입해 10분쯤 걷다 갈림길에서 오른쪽(봉정사)으로 나아간다. 20분가량 가면 봉정사다. 경내를 둘러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주변 가볼만한 곳
- 김성일 기념관 임란 역사현장 '생생'
학봉종택 |
봉정사로 가는 길목인 서후면 금계리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종택이 있다.
학봉은 퇴계의 제자로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자였다. 27세에 사마시, 1568년(조선 선조 1)에는 문과에 합격해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는데, 지대가 낮아 물이 들어오자 1762년(영조 38) 100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1964년 다시 지금의 위치에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남겨둬 소계서당으로 쓰도록 했다. 안채는 오른쪽 3칸이 대청이고, 왼쪽 2칸이 안방, 그 끝이 부엌이다.
종택 옆에 학봉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학봉이 영남초유사로 일하면서 쓴 말안장과 철퇴 등 각종 유품이 전시돼 있다. '촉석루 위에 마주 앉은 세 장사/한잔 술 비장한 웃음으로 남강 물에 맹세하네/남강 물 쉬지 않고 도도히 흘러가듯/저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넋도 죽지 않으리'. 기념관 입구에 걸린 시다. 학봉이 초유사로 진주성에 도착하니 성은 텅 비어 있었다. 의병장 조종도와 이노가 학봉을 찾아와 "적의 칼날에 쓰러지느니 강물에 빠져 죽자"고 말한다. 학봉이 이들을 설득한 뒤 쓴 결사항전을 맹세한 시다.
◆교통편
- 부산동부터미널서 안동 이동, 봉정사행 버스로 갈아타세요
- 귀가 땐 버스시간 체크해야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안동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7시, 8시30분, 9시20분, 10시10분발 버스가 있다.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봉정사행 51번 버스를 갈아탄다. 산행을 하려면 오전 10시40분, 오후 12시50분발 버스를 타는 게 좋다. 귀가할 때는 봉정사에서 오후 3시40분, 6시, 7시20분에 버스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