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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은 원 하나님, 상제님의 새 문화가 열린다
*종정님 말씀 : 2001년 4월 21일, 대구 프린스호텔
[개벽]책의 메시지
먼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준 대구지역 각 도장의 책임자를 비롯한 상제님 일꾼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개벽책('이것이 개벽이다'의 약칭)이 발간된 지 벌써 약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개벽책은, 앞으로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문명의 대전환 문제, 본질적으로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믿어지지 않는 동서양 성자들의 깨달음의 말씀과 그 결론, 그리고 영성이 크게 열려서 대변혁 상황을 직접 본 이들의 증언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도 방대하고 믿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보는 시각에 따라 소감도 체험도 달라지리라고 본다.
이 개벽책은 정교한 논리를 가지고 쓴 전문서적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 어느 날 밤, 한의원을 하는 친척집에 들렀다가 집에 가는 길인데, 달이 떠 있었다. 참 그렇게 아름다운 달은 내 생애에 처음 보았다. 그 달빛 기운 때문인지, 달을 쳐다보는 내 뇌리에 갑자기 개벽의 전 상황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그려졌다. 그래서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차를 써 본 것이다. 그 몇 달 후, 8월 1일에 증산도 대학생 하기연수회 교육을 마치고 틈틈이 원고를 정리해서 약 4개월 후에 끝마쳤는데, 분량이 5백여 페이지로 너무 많아서 두 권으로 나누어 83년 5월에 출간하게 되었다.
개벽책을 여러 번 정독하면, 거기서 전하는 메시지에 어떤 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령 노스트라다무스가 99년도 7월에 대변혁이 온다고 했다는데, 99년도 7월이 지나도록 별 일이 없으니까 그 말이 틀렸다고들 한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모든 세기 Les Siecles』를 영역본과 불어 원전, 일본의 고도 벤이 쓴 것을 살펴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대변혁의 시점 “L’an mil neuf cens nonante neuf sept mois, 1990의 9년 7의 달”에서 “세뜨 무아(sept mois)”는 “일곱 번째 달”도 아니고 “7월”도 아니고, “일곱 달”이란 뜻으로, 영어로 말하면 “세븐 먼스(seven months)”이다. 이것은 어떤 진행 과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곧 개벽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일정한 시간을 갖고 전개된다는 말이다.
내가 개벽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앞으로 오는 이 우주의 변혁에 대해 그 시점을 꼭 꼬집어서 말하기보다는, “왜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인간 문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 안고 있는 본질 문제가 무엇인가?”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묻고 싶고 반드시 체험해 보고 싶은 진리의 근본 아닌가. 무엇이 문제일까?
자, 이 의문을 바탕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증산도 일꾼들과, 오늘 처음으로 증산도의 진리를 듣기 위해 오신 이들 모두에게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전하고자 한다.
첫 번째 말씀, 지금은 우주의 가을, 천지대세를 알라! 개벽은 인간의 현실 삶 속에서 완성되는 것. 개벽이란 무엇인가?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는데, 도대체 개벽이란 무엇인가?
서양에 유일신 창조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개벽론이 있다. 그런데 그대들도 잘 알다시피, 개벽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지금 개혁과 개방으로 가는 게 현대문명의 과제다. “변하면 살고, 안 변하면 죽는다.” 사람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외치고 있다. “변하면 산다.” 그런데 변화라는 건 우주만물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모든 건 변한다. 하늘도 땅도 만물도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우주의 현상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동양사람들은 일찍이 이 변화의 본질에 대해 눈을 떴다. 이런 점에서, 동양의 깨달음이 서구의 깨달음보다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년 전, 만주에 사는 우리 증산도 신도들 몇이 와서 함께 천안 독립기념관에 간 적이 있다. 본관 건물 계단을 올라서면서 내가 물었다. “개벽과 개혁의 차이가 뭐죠?” 이에 한 여성이 이렇게 대답한다. “개벽은 본질이 바뀌는 것입니다.”라고. 그렇다. 개벽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본질이 바뀌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개벽은 질서가 바뀌는 것이다. 변화의 바탕, 틀이 바뀌는 것이다. 문자적으로는 열 개開 자, 열 벽闢 자, 개벽이란 “새 질서가 열린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겠지만, ‘개벽’이란 말은, 본래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렸다’는 뜻의‘천개지벽天開地闢’에서 왔다. 그러나 미래적 의미의 천지개벽은 “하늘의 질서가 바뀌고 땅의 질서가 바뀐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천지의 질서가 바뀌어 이 세계가 완전히 새롭게 열리는 것! 이것이 개벽이다.
서양의 우주 창조관은 기독교 사상으로 대변되는 유일신 창조관이다. 그에 상응하는 동양의 창조론이 개벽론인데, 이 개벽론이라는 용어보다 더 우리 귀에 익은 말이 생성론生成論이다. “천생지성天生地成, 하늘은 낳고 땅은 성취한다. 즉 하늘에서 창조하고 땅에서 그 창조가 완성된다.”는 것이 생성론이다.
예를 들면 물에는 유형의 물과 무형의 물이 있는데, 바닷물이나 우리가 먹는 물은 유형의 물이다. 그런데 하늘은 무형의 물을 만든다. 곧 천일생수天一生水하고, 하늘에서는 일수一水를 생하고, 지육성수地六成水라, 땅에서는 육수六水 음성적인 물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자, 하늘은 창조하고 땅은 그것을 완성한다. 얼마나 근원적인 깨달음인가. 이에 비하면, 서양의 창조론은 반쪽 깨달음이었다. 그들은 사막문화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살면서 하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물리적인 하늘도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한다. 또 하늘에서 땅을 창조했다고 한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얘기가 필요하겠지만, 그 때문에 하늘(아버지)과 땅(어머니)은 수평적이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 관계로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늘과 땅은 우리 증산도의 우주론에서처럼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간다(이 관계가 어그러진 채, 과도기적 개벽 도수를 채우면서 흘러온 게 선천 봄여름 과정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이제 현대 물리학이라든지 현대 철학의 흐름도, 존재론에서 생성론으로 가고 있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존재의 문제로는 인간 삶에 대한 궁극의 해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우주는 어떻게 태어나 변화해 가는가?’ 하는 생성론으로 세상 문제를 접근할 때, 비로소 진리의 열매를 따담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동양의 개벽론은 다른 말로 생성론이다. 하늘은 창조하고 땅은 모든 것을 완성한다. 곧 이 우주 안의 모든 문제가 인간의 현실 삶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자연개벽·문명개벽·인간개벽으로 후천을 연다. 자, 좀더 깊이 개벽의 문제로 들어가 보자.
개벽이란 하늘과 땅의 변화 질서 자체가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는 것이다. 때문에 개벽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변혁을 수반한다. 우리가 흔히 겪는 대지진이라든지 화산폭발, 즉 수화水火물과 불기운의 상극운동으로 자연계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태들도 개벽운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벽은, 이제까지 동서문화에서 인식하지 못한 삶의 모든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아우르고 종합적으로 끌러내는 새로운 진리로 인식되고 있다.
개벽책에 보면, 동서고금의 예언자가 됐든 석가가 됐든 예수가 됐든 공자가 됐든, 한결같이 이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후천개벽을 그렇게 단순한 자연질서의 변화로만 얘기하면, 우리의 현실 문제가 구체적으로 안 그려진다. 해답이 안 나온다. 『주역』이나 『정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 때문에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천지 자연질서가 바뀐다는 것, 봄 다음에 여름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온다는 건, 그것을 알든 모르든 특별히 달라질 게 없잖은가. 증산 상제님이 말씀하신 개벽은 그런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다. 후천개벽은 자연개벽과 문명개벽, 인간개벽을 포괄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종도사님(태사부님) 말씀처럼, 지금은 인류문화의 틀을 갈아끼우는 때다. 지구촌 문화의 틀이 완전히 새 문화로 갈아끼워진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우주가 개벽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주 질서가 바뀌는 자연개벽이 오면, 그에 따라 인류가 깨달음을 얻어서 기존의 문명을 새롭게 조화된 문명으로 바꾸는 문명개벽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인류가 깨달음만 얻는다고 문명개벽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영성개벽, 심법개벽이 선행돼야 한다. 인간개벽, 곧 지구촌 인간이 일체의 묵은 가치관, 기존의 제한된 깨달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넓혀주는 인류 보편의 진리인 상제님 도법으로 거듭 태어나야, 후천개벽 문화를 주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개벽과 문명개벽과 인간개벽 3대 개벽을 축으로 후천선경을 열어가는 증산도의 근본 가르침이다.
지금은 우주의 가을! 천지대세를 말할 수 있어야
이 우주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이것이 하늘땅이 첫 개벽된 이래로 모든 인간이 품어온,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내가 오늘 하늘땅 생긴 이래로 가장 큰 의문을 깨뜨려 주겠다.
증산도는 한마디로 가을우주의 새 문명을 여는 열매 진리다. 증산도 진리는 인간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일체의 어둠을 걷어내고, 인류에게 무한한 희망을 열어주는 대광명의 새 진리다. 이 개벽의 진리로 이 우주와 인간 삶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보자. 지금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먼저 상제님 말씀을 읽어보자.
*知天下之勢者는 有天下之生氣하고,
暗天下之勢者는 有天下之死氣니라.
천하의 대세를 알고 있는 자, 천하의 살 기운이 붙어 있고
천하의 대세에 어두운 자, 천하의 죽는 기운밖에 없느니라. (道典
5:259:16)
자, 이 말씀을 보라. 천지대세를 아는 것이 모든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는 대전제다. 천하의 대세 곧 동양문제 서양문제만이 아니고, 지구촌
인간의 문제 자연계의 문제만이 아닌 우주만유의 문제, 이 대우주의 대세를 아는 지천하지세자知天下之勢者라야, 유천하지생기有天下之生氣, 곧 살 기운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인류문명이 총체적으로 뒤집어지는, 모든 것의 본질이
뒤집어지는 대개벽의 차원에서는, 무엇을 좀 안다는 게 참 가소롭다.
그런 지엽적인 것 아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어디 가서 안다고 내세울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천지대세를 말할 수 있어야 된다! 지금 이 우주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쳐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도道, 증산도의 가르침이다.
현하의 학문 세계에서는 이런 얘기를 못 한다. 지구촌에 있는 어떤 학자도 지금 이 우주가 어디에 와 있는지, 이 한마디를 못 한다. 또한 불가나 유가, 도가, 서양 기독교에서도 지금 이 우주가 어디에 와 있는지, 객관적인 우주의 이법理法으로 말 못 한다.
선천 인류 문화는 이미 진리가 바닥났다.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온 건, 하늘땅이 열린 이래 증산 상제님 도법이 처음이다.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이 우주에서 오직 증산도밖에 없다, 상제님 도법밖에! 그 이법을 구체적으로 명쾌하게 밝혀 주는 게 증산도의 우주론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지금은 어느 때인가?’ 이 천지대세를 보는, 이 세상 문명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종교·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인류역사의 큰 틀을 볼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우주변화의 문제인 것이다. 그에 대해 상제님께서 결론적인 말씀을 하고 계신다.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道典 7:28:4)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만났다. 지금 큰 가을이 다가온다는 말씀이다, 큰 가을이! 지구 1년의 가을이 아니라, 이 대우주의 가을철이 목전에 와 있다는 말씀이다. 일찍이 인류역사상 이런 말을 한 자가 있었는가! 어떤 성자도 앞으로 오는 궁극의 대변혁이, 이 우주에 큰 가을이 오는 거라는 얘기를 못 했다.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팔만대장경』에도 그런 내용이 없고, 『화엄경』에도 없다. 내가
개벽책에 『화엄경』 29권, 30권 입법계품立法界品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게 있다. “미륵님은 그 선근에 따라서 모든 중생들을 성숙시키려는 뜻을 가지고 계신다.”고. 여기에 ‘성숙’이란 말이 나온다. 그러나 우주의 가을 시간대가 온다는 것을 명쾌하게 얘기 못 했다. 석가모니가 그 한마디를 못 깬 것이다. 우주의 가을이 온다!
노자 『도덕경』 80여 장을 다 들쳐봐도 그런 내용이 없다. 『주역』에도, 『정역』에도 그런 얘기가 전혀 없다. 동학에서 후천개벽을 말하지만, 동학의 본경 『동경대전』에는 개벽이란 말 자체가 없다. 다만 수운가사에 몇 번 나온다. “십이제국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등등. 하지만 그 어디에도 가을개벽이란 말은 없다. 선천 종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전 인류 문명의 틀이 바뀌는 우주적 대변혁이 오는데, 그 실체가 “우주의 가을이 오는 것이다."라는 한 마디를 못 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 깨달음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