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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둘레길 스크랩 울진십이령옛길
연초록 추천 0 조회 115 13.02.11 17: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울진십이령옛길(금강소나무 숲길) 산행 사진
<2011-05-05 토요일>


산행지

울진십이령옛길(금강소나무 숲길)

산행일자

2011-05-05 (토요당일)

산행코스

두천리 내성행상불망비-효자각-바릿재-장평-찬물내기쉼터-새재-성황당-대광천-너삼밭-저진터재-소광2리

산행거리

13.5km

소요시간

4시간 50분

날씨

맑음

교통

송암산악회(회비:38,000원)

산행인원

○ 45명 (도순,해금,마리아,도원외)

서울에서 먼거리의 울진땅을 4시간여를 달리고 달려 도착한

십이령옛길의 들머리인 두천2리의 주차장.

개념도와 해설

산림청통제구간이라 숲 해설자가 동행해야만한다.하루에 80명만 신청을 받아 하루출입을 허용한다.

화요일만 제외하고 겨울철빼고 연중개방.

오히려 숲해설자와 함께해서 더 여유로운 산행이 된다.

출발하기에 앞서 기념사진.

해금이도 아침일찍나와 참석.

보부상을 기리는 목장승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다 개울을 건너면 불망비가 바로 나타난다.

내성행상불망비가 바로보이는데 십이령옛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십이령길이 시작되는 말래(두천 2리)의 내성행상불망비각.

십이령을 넘나들던 등짐장수들을 기리는 말래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철조비에 새겨져 있다.

쇳물을 끓여 만든 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돋을새김 돼 있다.

‘乃城行商班首權在萬不忘碑(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 ‘乃城行商接長鄭韓祚不忘碑(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

행상 전체의 우두머리인 권재만과 행상단 하위 동아리의 우두머리인 정한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이곳 사람들의 순정을 담은 비(경상북도 민속자료·1890년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일 터이다.

대간과 정맥만 따라다니다 모처럼 여유있는 산행이라 마냥 흐뭇?

아니 산행이라기보다는 여행내지는 소풍온 기분이다.

모처럼 보는 하얀민들레

약효가 더있어서인지 하얀민들레는 그만큼 보기가 어렵다.

송암산악회에서 호남정맥을 같이하였던 님들을 다시만나 기념사진.

불망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하나 남기고..

숲해설자의 상세한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있는 탐방객들.

해금이와 마리아의 진지한 모습을 보니 모범생의 포스가 살짝 느껴질라하는데

한편으론 영 낯설은 모습같기만 하다.

가는 길에 작은 폭포도 있고

효자각

출입통제구역.별도의 허가와 안내자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무때나 와서 들어갈수있는 그런곳이 아닙니다.

강릉으로 가게되는 해금이도 이제 볼수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르막을 오를때면 옛날 보부상들이 짊어지고 갔을 삶의 무게를 느껴봅니다.

가벼운 몸으로 오르기에도 땀이 나는데 막삼옷에 흠뻑 땀으로 젖었을 체취를 상상해봅니다.

울진군민의 자부심이 대단한 쭉쭉뻗은 금강송소나무가 함께한 길이었습니다.

또한 일제시대때 수탈의 아픔을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여린 금강송소나무이지만....

작은 고갯길에서 숲해설자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숲해설자의 인솔뒤를 따라야하므로 궂이 서둘러 앞서 가지않아서

좋은 여유로운 길입니다.

찬물내기쉼터까지 이런길을 가야하지만 정감있는 길입니다.

여느 둘레길처럼 마을을 통과하고 아스팔트나 시멘트포장길이 아닌

온전히 산속에 스며들어 깊숙이 파고드는 그런길이라 이런길도 좋습니다.

오랫만에 정맥산행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방가운 사람을 만나 담소를 나눠가며

옛추억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비록 지금은 이런 답사를 통해서 접근할수있지만 1980년대초 불영계곡을 관통하는

36번 국도가 뚫릴때까지 울진과 봉화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었슴을....

이런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같은 않은 마리아도 오길 참 잘했다는 야그를....

해금이게도 좋은 추억이 되길...

▲ 발재.왼쪽으로 쌓아져있는 축대위 우거진 수풀속으로 당수나무아래 당집이 숨어있다

연초록의 잎새가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모든 나무를 치장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기운을 활기차게 느껴보는 계절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참 정겨운 모습.화창한 날씨라 더욱 발걸음이 가볍다.

찬물내기까지 가는 길은 이런 찻길이 한동안 지속되지만

눈이 심심하지 않게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수있다.

십이령길에는 이야기보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바람처럼 떠다닌 바지게꾼의 삶이 맴도는 십이령길은

그자체가 사색의 공간이자 대화의 통로이다.

혼자 걸으면 인생의 화두가 돼 가슴에 꽃히고 지인과 걸으면 세상 시름이 씻겨진다.

길위에서 인생을 만날수 있는 즐거움을 울진 금강송소나무 숲길이 선사한다.

이곳을 탐방하는 모든이들은 한결같이 여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보부상들은 바지게꾼이라고 불리는데 바지게라는 말은 좁은 산길을

날렵하게 다니도록 지겟다리를 없앤 지게를 말한다.

그들은 시간을 아끼기위해 잠시 숨을 고를때도 서서 쉬었다고하여

선질꾼이라고도 한다.

가는 길내내 맑은 물이 함께한 길.

길은 새로운 길을 열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가장 빠르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산양서식지.

이웃한 봉화 삼척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의 산양서식지.

산양은 200만년전부터 지구에 살면서 그모습이 변하지 않아

화석동물로 불리운다.

아직 두 다리가 가장 믿을 만한 이동수단이던 시절, 사람들은 편평하지만 돌아가는 길보다는

첩첩 산을 넘고 또 넘으며 가까운 길을 찾았다. 산마루에는 수없이 많은 고개가 생겨났다.

많은 고갯길은 육체의 원시성을 가슴에 묻은 채 풀더미에 묻혀갔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길을 ‘옛길’이라 부른다. ‘12령길’도 그런 길이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고갯길은 빠른 속도로 지워지기 시작했다.

굳건히 대지를 딛고 육신을 지탱하던 두 다리의 당당함도 함께 거세당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와 함께한 길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만든다.

쭉쭉뻗은 금강송소나무 옆 길에서.

다시금 숲해설자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누구라도 탐을 낼만한 금강송소나무가 쭉쭉 자라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준비를 하고있단다.

찬물내기까지 가는 길가에는 두릎이 많이 열려있지만

손을 절대로 될수가 없다.

‘십이령길’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도로가 사통팔달한 요즘도 오지 중 오지인 경북 울진에서도 오지인 산골에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울진 주민 가운데도 십이령길 가까이에 살거나 향토사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드물다.

바지게꾼들 울진~봉화 넘나들던 열두고개 흔적 좇아 옛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의 흐름에 공명하는 일이자 옛사람들의 방식대로 자연에 깃드는 일이다.

따라서 옛길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생태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인문지리적 감수성도 필요하다.

찬물내기쉼터.

5000원짜리 도시락을 제공해준다.그이익금은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을 공유분이다.

점심을 먹고나서 여유롭게.

도시락차는 이도로를 따라 왔을터이지만 우리는 여기서부터는

이길을 따르지 않고 진짜 좋은 숲길로 스며든다.

여름에는 물이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찬물내기쉼터


▲ (왼쪽)살짝 계곡으로 내려서면 청신한 계류를 만날 수 있다./(오른쪽)금강송이 동무를 해 주는 십이령 길.

신록이 우거지면 계류도 싱그러움이 더할 것
길은 계속 계곡을 끼고 간다. 계곡 가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누리장나무, 물박달, 층층나무,

쪽동백, 다래덩굴, 고로쇠나무들이 원시의 기운을 내뿜는다.

신록이 우거지면 계곡을 따라 싱그러움이 더할 것이다.

새재 성황당 오르기직전 멋진 금강송 소나무를 배경으로.


성황당부터는 이곳 마을 원주민 숲해설자로 바뀐다.

나이 드신분인데 산에 대해서는 아주 해박하다.

조령성황사(鳥嶺城隍祀)라는 편액을 달고 있다. 이곳이 바로 새재(595m)다.

새재를 넘어 대광천까지는 마냥 내리막길이니 무거운 짐을 진 바지게꾼들이야

어찌 성황님께 무사 안녕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안도와 한숨이 섞인 노랫자락이 절로 나왔을 법하다.

▲ 보부상들의 무사안녕과 부귀영화를 기리던 성황당. 십이령 길 중 동서를 잇는 통로였던 샛재에 있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후렴)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 한 평생 넘는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 대마 담배 곡물 지고 흥부장을 언제 가노 / 오나 가나 바지게는 한평생 내 지겐가 /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 꼬불꼬불 열두 고개 언제 넘어 고향 가노.”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글 이정숙)에서 인용.


수령 400백년 이상인 나무는 노란색으로 줄을 쳐 관리하고 있는데 대략

4000그루 이상이라한다.

새재에서 다시 찻길을 만나게 되는 대광천까지는 편안한 내리막이다.

시작 지점인 두천리 불망비의 해발고도가 112m인데 비해 대광천 합류지점은 460m로

새재와의 표고차가 135m에 불과하다. 재잘거리는 계곡물을 따라서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금강소나무의 힘찬 기운을 느껴보려 품어본다.

이제 편안한 내리막이 한동안 계속된다.

운치있게 나무를 엮어만든 길.

마귀할멈의 전설이 깃든 말무덤. 사진 찍느라 숲해설자의 설명을 놓쳤다.

옹골찬 금강소나무

복자기나무라고하는데 나무가 단단하여 제기 만드는 용도로 쓰인다 한다.

옛날 바지게꾼들이 산적과 호랑이 걱정없이

편안이 쉬었다 갔을 애환이 서린 주막터.

백작약

관중

옛길을 걷는다는 것은 문명에 감금된 육체의 권능을 회복하는 일이다.

옛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다. 자연의 파동에 공명하는 일이다.

이동수단으로서의 걷기가 아니라,

생태와 역사를 길동무시키고 우리 산천을 몸으로 읽는 일이다.

옛길을 새로운 길로 다시 열어가는 일이다

대광천.

잠시 넓다란 길을 따라 다시 숲속길로 접어든다.

잠시 편평한 평지길을 따라간다.

숲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휴식을 즐긴다.

고갯길은 두번 남아있지만 경사도는 심하지 않다.

이제 소광리 마을로 내려가는 일만 남고....

십이령 옛길중 유일하게 개방된 1구간의 끝지점인 소광리마을.

4시간 50분 소요.
십이령길은 옛날 바지게꾼들이 울진 죽변장(2일,7일장)에 가서 미역,소금,어물을 지고
봉화장(4일,9일)에 가서 대마,담배,콩등을 바꿔오기 위해 오고간 삶의 애환이 서린 민초의 길이다.
바다내음과 숲속, 들판내음이 서로 교차한 길을 여유로이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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