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가 싶더니 어느새 글자가 .... "혁필" 장인 강완주 씨
조선일보 (1998년 7월 15일)
사라져가는 우리의 혁필을 계승-보전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고양시 일산구 강선마을에 사는 혁필가 강완주씨는 최근 "한국 혁필" 이란 저서를 자비로 발간했다. 조상의 지혜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혁필이 우리 민화(民畵)의 한 부분이었음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은 서점에선 구입할 수 없다. 민화 관련 학과가 있는 전국 대학에 먼저 발송하고, 민화 전문가가 필요로 할 경우 보내줄 예정. 시골장터나 길거리에서 넓적한 붓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찍어 호랑이 대나무 나비 등을 그리는가 하면, 그림이 어느새 글자를 이룬다. 이것이 혁필이다. 혁필은 정통 화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천하게 여김을 받던 민화 화가들의 상상력과 예술적 욕구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어릴 적 보았던 혁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30여년 전 당대 최고의 혁필가로 이름을 날리던 고(故) 홍지성(洪智成) 선생에게 혁필기법을 사사 했다.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혁필화를 그리며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그는 "가난한 무명의 화가들이 혁필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탓에 남에게 전수하기를 꺼려했다"며 "이 때문에 혁필가가 소멸 직전에 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내년엔 붓 한자루만 들고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세계를 돌며 우리 전통문화 혁필을 알리면서 여행경비도 충당할 생각. 현재 세계 각국어로 번역한 혁필 소개서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TV, 신문, 잡지 등 기사
아코디언 연주 동영상
색소폰 연주 동영상
일산 호수 공원에서 색소폰 불다 쫓겨날 뻔한 할아버지 강 완주입니다.
회원 여러분 안녕들 하시지요?
아래 글을 읽으시기 전에 저의 홈페이지 :
http://www.korean-kang.com/korean/artwork.htm 꼭 한 번 들려 주셔서, 저를 이해한 후에 이글을 읽어 주셨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색소폰에 흠뻑 빠진 것은 중학교 때부터입니다. 색소폰 소리가 그렇게 좋아 밤이면 밤마다 중심가에 있는 캬바레 담벼락에 붙어 서서 한참을 듣다 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 악기를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악기를 꼭 사고 싶다는 열망만 안고 살다가,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을 하고 종로 악기 상점에서 드디어 색소폰을 하나 샀습니다.
그것이 제 나이 서른 살 때 (1970 년도)였습니다. 금년으로 부터 꼭 40년 전일이네요.
(흐 ~ 미 ~ 내 나이가 언제 이렇게 되 버렸지......? )
색소폰을 사고 오는 날,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던 그 때의 행복함은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색소폰 기법은 캬바레 나가시던 분에게서 조금 배웠고, 주로 영어 일본어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익혀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의 같은 무게로 미술이 좋아져서, 직장에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용인 민속촌에서 활동하시든 고(故) 홍지성 선생님께 혁필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민화 기법을 사사 받았습니다. 교통도 불편한 시절에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버스를 몇 번 씩 갈아타면서 신갈의 선생님 댁까지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날에는 열정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구 절절 길어지면 ~ ~ 노인네 잔소리라고 하실 터이니 ~~~~ 여기서 끝내고,
저는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정통 혁필 장인입니다.
인사동에서 오래 동안 일하다가 은퇴한 후에 (지금도 큰 행사에 초청받아 활동하고 있으니
반 은퇴 상황이라고 해야 할지...),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인 색소폰과 아코디온, 얼후 (중국악기인데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듯...) 등을 가지고 복지 시설 등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면서, 호수 공원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하여 호수 공원내의 다리 밑에서 낮 12시부터 2시 사이에 색소폰 연주를 한 것이 6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어르신들이 점심 식사를 일찍 하고 나오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근처 직장인들에게는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이곳에 나오지 않은 시간이고, 듣더라도 잠간이니 이시간이 가장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호수공원은 오후 2시 이후부터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아무리 음악이 좋다고 하여도 2시간을 계속 불면 짜증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곡 연주하고 사람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0분쯤 지나면 또 한곡 연주하며 저와 같은 동시대인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는 토요일, 일요일은 아무리 좋은 색소폰이라 해도 소음이 될 수있기 때문에 쉬었습니다.
제 나이가 몇인데 상황 파악을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겠습니까?
약속 아닌 약속이 되어, 단 한사람이라도 왔다가 그냥 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평일 날에는 매일 연주 하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온이 영하 5도 이상 만 되면 나갔습니다.
고향을 떠난 노인들이 옛 생각에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있고, 일산 암센터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들려 제가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에 흐느껴 우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인생 황혼에서 연주하는 색소폰은 왜 이렇게 슬픈 소리가 나는 건지.......)
지난 6년여 동안, 저에게서 위로를 받았다고 인사하고 가는 그 사연들을 다 글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글을 쓰다 보니 유난히 생각나는 한 분이 있습니다.
카나다에 이민가서 초기에 고생 고생하며 자식들 교육 다 마치고, 재산도 넉넉히 모아 이제부터는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암에 걸린 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두달 전에 돌아 가셔서, 모든 것이 허무하고 생(生)의 의욕을 잃고 마지막으로 고향인 목포나 다녀 올 생각으로 귀국하여, 고향 다녀오는 길에 호수 공원을 우연히 들렸다가 저의 색소폰 소릴 듣고 왔노라고, “목포의 눈물” 등 몇 곡을 신청하여서 정성스럽게 연주하여 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잊고 있었는데, 호남지역의 저명한 분이 찾아와서 이 부인이 보내더라고 전기 면도기 하나를 전하여 주었습니다.
이 부인 하는 말 “호수 공원 그 어른이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를 듣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귀국했던 보람이 있었다”고 하더랍니다.
회원님들 여러분 !
저는 음악 활동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 후에 나의 색소폰 연주가 듣는 이들에게 평화와 감동을 주고 있는지를 늘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오는 중에 지난 3일날 (금요일) 호수 공원 관리 사무실에서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 왔답니다.
그 날 왕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던가, 생각이 꼬부라져 그냥 해꼬지하고 싶은 사름들이 이 세상에 왜 없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요 아래 신문에 나게 되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7/2009090701904.html
그런데 오늘 다행히 공원관리 사업소 소장님으로부터, 몇 사람이 색소폰을 삑~삑 연습한다고 민원이 들어왔는데, 현장 직원들이 미숙으로 본의 아니게 선생님까지 일괄적으로 전달 된 것 같아서 미안하게 생각하며, 계속 연주하는 것을 허락하니 내일 부터라도 하시라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관리 소장께서도 저의 연주를 들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고맙게도 고양 시장님이신 강 현석 시장님으로부터도 위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은 고위직에 있는 공무원일수록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일을 바로 잡아 주는 능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유 게시판에 저에 관한 사항인줄 알면서도 저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아 주신 회원님들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일산호수공원에서 색소폰연주를 하신 큰형님 정말 멋지십니다. 창포님! 색소폰 할아버지가 뭡니까.. 색소폰을 사랑하는 형님..정도로.. 크~ 누구나 시간이가면 늙어 가는인생인걸... 앞으로도 건강이 있는한 연주 소리는 계속 울려퍼질걸 기대하면서~~~
존경 하는 강완주 혁필 장인님, 아니 색소폰의 용사님, 정말 당신 같은 사람이 계시기에 우리의 사회가 유지 되나 봅니다, 일산의 장인 색소폰 소리로 우리의 메마른 정서를 순화 시켜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