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명칭: 케냐공화국(Republic of Kenya/Jamhuri Ya Kenya)
인구: 32,022,000 (31,639,000-’03)
면적: 582,646 ㎢(한반도의 2.7배), 인구밀도: 54.3명/㎢ (’03)
국경: 3,476Km, 해안선: 536km, 영해: 12해리(경제수역 200해리, ’79.3.4)
수도: 나이로비 Nairobi(250만명)
정체, 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영연방), 다당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스와힐리어(통용어), 영어(공용어) * 문맹률: 31%
독립: 1963.12.12(영국), 헌법:1963.12 제정, 1992년 7차 개정
화폐단위: 케냐실링(Kenya shilling/K Sh), 환율: 77KSh = 1$(’03.9)
1인당 국민총생산: 350달러(2003)
☞주요도시: 몸바사(Mombasa), 나쿠르(Nakuru), 키수무(Kisumu)
☞주요민족: 키쿠유족(21%, 320만), 루오족(13%, 195만), 루히야족(14%, 212만), 캄바족(11%, 172만), 칼렌진족(11%, 165만) 43개부족, 아시아 인종 약 8만
☞주요언어: 영어(공용어), 스와히리어(통용어)
☞종교: 기독교(70%, 천주교 28%), 토착종교(20%), 이슬람교(6%), 힌두교(소수)
☞시차: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정체: 공화제(영연방)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원수: 모이(Daniel T Arap Moi) 대통령(79.11승계, 98.1.5재임, 5선, 임기5년)
실권자: 모이 대통령 대의기구: 단원제(정원:222명, 임기 5년)
정당: 케냐 아프리카 민족동맹(KANU), 케냐 민주회복회의(FORD-KENYA), 케냐민주당(KDP), 아실리 민주회복회의(FORD-ASILI)등 20개 정당
UN가입: 1963.12.01 비동맹가입: 1964.10.05
GDP: 453억불 (1998년) , 1인당 GDP : 1,600불
무역: -1997년도 기준
- 수출: 307,000만불 (커피, 홍차, 사이잘마)
- 수입: 236,000만불 (원유, 기계류, 철강, 운송기기)
국방비: 21,600만불(1998년), 육군 20,500명, 해군 1,200명, 공군 2,500명(98년)
군맹 관계: 케냐•에티오피아 방위협정(63.7),
케냐•미국 군기지 사용협정(80.6)
[개요]
<수도는 나이로비이다. 중부 아프리카의 동해안에서 적도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는 에티오피아와 수단을 인접국으로 하고, 동쪽으로는 소말리아와 인도양을 경계로 하며, 남쪽으로는 탄자니아, 서쪽으로는 우간다와 접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 를 하는데, 어획량은 가족을…
나이로비의 식민지풍 건물:
나이로비는 유럽이 동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할 때 거점
[자연환경]
케냐는 서로 대조되는 5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첫째는 이 나라 남서쪽 모퉁이의 빅토리아 호에 접하는 분지이다. 이 분지는 빅토리아 호에서부터 동쪽으로 마우 단애(斷崖)까지 펼쳐져 있으며, 평균 해발고도 1,070m의 평평한 고원이다. 고지 지역은 케냐의 서반부에서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의해 마우 단애와 애버데어 산맥의 두 구역으로 갈라진다. 서쪽의 마우 단애는 해발 2,740m 이상으로 솟으며, 탄자니아의 국경으로부터 북쪽으로 뻗어 중서부 국경까지 320km 이상에 걸쳐 있다. 동쪽의 애버데어 산맥은 지구대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거의 3,050m의 높이까지 솟으며, 나이로비 근처에서부터 북쪽으로 라이키피아 고원까지 뻗어 있다. 이 나라 최고봉인 케냐산은 해발 5,199m로, 애버데어 산맥의 외곽을 이룬다(→ 동아프리카 지구대). 케냐의 동반부에서는 광대한 니이카 평원이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이 평원은 동부 고지와 해안의 좁은 지대 사이에 펼쳐지며 바다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다. 케냐의 북부는 대부분이 반건조지와 건조지로 되어 있다.
5대 지역 가운데 마지막은 해안지대인데, 이 지대는 인도양 연안을 따라 약 400km에 걸쳐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일련의 낮은 언덕들로 가로막혀 있다. 케냐의 물은 망상을 이루는 작은 강과 하천들로 빠지는데, 이 하천망은 대체로 수심이 얕고 계절적인 유량의 변화를 보인다. 케냐의 가장 중요한 강인 타나강은 동부 고지에서 발원하여, 국토 전체면적의 7%가량인 약 4만 2,200㎢ 면적의 유역을 흘러 인도양으로 빠진다. 케냐의 북부지방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남부지방에는 물이 풍부하다.
해안과 바로 인접한 내륙에서는 연평균기온이 약 27℃이다. 케냐에는 대체로 비가 많이 내리는 3월말에서 5월까지와 그보다 적은 비가 내리는 10월부터 12월까지의 2차례 우기가 있다. 고지에서는 광대하게 펼쳐지는 대나무 숲의 여기저기에 상록수림의 작은 구획들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고지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식생이 1.5∼2.4m의 높이로 자라는 풀과 그 풀밭의 여기저기에 나지막하게 자라는 나무들로 바뀐다. 해발 915m 이하인 북부의 반건조지에서는 굵은 줄기의 바오밥나무가 산재하는 가시덤불 숲이 펼쳐진다. 해안지대를 따라 키큰 관목이 우거진 울창한 숲과 공터가 교대로 나타난다. 케냐는 야생동물이 많기로 유명한데, 많이 서식하는 동물은 사자, 표범, 들개, 코끼리, 물소, 코뿔소, 얼룩말, 앤틸로프, 가젤, 영양, 하마, 악어 등이다. 가경지는 국토의 약 4%밖에 안 되는데, 가경지의 거의 전체가 경작되고 있다. 작물은 곡물과 옥수수가 대부분이다. 국토의 약 7%는 소, 염소, 양의 방목지로 이용된다.
[국민]
케냐에는 43개의 인종 집단이 있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로 구별된다. 다수 집단은 키쿠유족(21%, 320만), 루히야족(14%, 212만), 루오족(13%, 195만), 캄바족(11%, 172만), 칼렌진족(11%, 165만) 등이다. 아시아 인종도 약 8만 정도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케냐의 Paul Ereng, Peter Rono, John Ngugi, Julius Kariuki는 800m, 400m, 1,500m와 5,000미터에서 각각 금메달을 휩쓸어서 또한 우리에게는 육상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과 그 밖의 종족들은 3대 언어군인 반투어, 나일어, 쿠시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이다. 주민의 종교는 3/4 정도가 그리스도교도이며, 약 1/5이 토착종교인 애니미스트이고, 나머지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이다. 케냐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인구밀도는 이 나라 중부의 빅토리아 호에서 가까운 곳과 인도양 연안에서 가장 높다. 건조한 북부지역은 인구가 희박하다.
케냐의 출산율은 비교적 높은 사망률을 월등히 초과함으로써 이례적으로 높은 인구의 자연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인구 성장이 완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주민의 평균연령이 낮아 전체의 3/4 이상이 29세 미만이다. 기대 수명은 남자 51세, 여자 55세이다. 인구의 대다수가 촌락에 거주하지만, 1970년대초부터 도시 인구가 급성장했으며, 20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는 전체인구의 1/5이 도시민이었다.
[경제]
케냐는 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1963년에 독립한 이래 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급성장하는 인구는 경제기구의 일거리와 토지 및 사회복지사업 제공능력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업이 큰 문제이며, 정부의 지출 확대와 관련하여 인플레이션이 잦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독립 이래 완만히 증가해왔지만 여전히 낮다. 농업은 GNP의 1/4 이상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4/5가 고용되어 있다. 관개용수를 이용하는 농지가 드물기 때문에 농업생산량은 일기에 크게 좌우된다. 농업 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자급용의 생산이며, 종종 주식인 옥수수, 밀, 우유 등이 부족하여 식량 수입이 불가피하다. 커피(주로 아라비카 커피)와 차는 케냐의 주요수출품이며, 국제시세의 변동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밖의 작물로는 사탕수수, 감자, 카사바, 밀, 사이잘삼, 제충국, 파인애플, 덩굴강낭콩 등과 그밖에 채소류, 종면(種棉) 등이 있다. 가축과 낙농품은 내수용, 수출용으로도 중요하다.
공업은 GNP의 약 1/9을 차지하고 노동력의 1/10이 고용되어 있는데 케냐는 특히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로 꼽힌다. 제조업부문의 성장은 엄중한 수입통제와 동력의 부족으로 둔화되었다. 발전은 주로 수력에 의존하는데, 강우량이 적은데다가 댐이 침니로 막히는 일이 많아 연간 전력생산이 제약을 받는다. 원유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수입되어 몸바사에서 정제된다. 주요제조품으로는 식품과 음료용 제품, 담배, 직물, 조립 수송수단, 시멘트와 석유 제품이 있다. 공업 투자의 약 절반이 외국인 소유이다. 서비스업은 GNP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1/8이 고용되어 있다. 꾸준히 성장하는 관광산업은 케냐 최대의 외화 소득원의 하나가 되었다.
연료 수입과 정부의 공공사업에 드는 비용의 증대는 생산의 불안정성 및 커피와 차의 국제시세 변동과 더불어 예산적자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영국, 독일, 미국 등이다. 케냐는 상당한 규모의 운송체계를 갖추고 있다. 몸바사에 항만시설이 있고, 몸바사와 나이로비에 국제공항이 있으며, 도로망도 상당하다. 1980년대 말에 세계 은행과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아 철도를 개량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었다.
[정치•사회]
케냐는 독립공화국이다. 1963년에 채택되었으며 종종 개정된 케냐의 헌법은 단원제 국회의 구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의원의 정원은 202명이며 대부분이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겸해야 하며, 일반투표에 의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가운데서 부통령과 장관들을 임명하며, 그들이 함께 내각을 구성한다. 사법부는 케냐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며 고등법원, 상설 하급법원, 지방 하급법원을 포함한다. 이슬람 관습법이 법원에서 수용된다.
케냐는 케냐 아프리카 민족연합(Kenya African National Union/KANU)이 다스리는 합법적인 1당 체제 국가이다. 공공의료는 정부 기관들과 사설 개인병원들에서 제공하는데, 말라리아, 위장염, 성병, 설사, 이질, 트라코마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전국적인 보험 조직은 없지만, 가족과 아동 복지사업의 개발, 생활력 상실자의 보호와 재활, 장애자에 대한 지원 등에 정부가 관여하고 있다. 주택 마련은 인구 팽창으로 인해 전국의 대소 도시들에서 중대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냐 주택공사는 여러 도시에서 임대 아파트와 단독 주택들을 건설하고 있다. 케냐의 국민교육제도는 의무제가 아니며, 8년제 초등교육, 4년제 중등교육, 대학교육의 3단계로 되어 있다. 사립학교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보조를 받는다. 나이로비대학교는 현재 케냐의 자주적인 대학교이다.
신문은 자치적으로 발행되고 대개 검열을 받지 않으며, 일간신문과 주간신문이 각각 발간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시설은 정부 소유이며 프로그램은 스와힐리어와 영어로 방송되는데, 많은 프로그램이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수입된다.
[문화]
케냐는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음악과 춤은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에서 불가결의 역할을 한다. 전통음악과 춤을 공연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문기관이 있다. 미술은 주로 목각품의 대량 생산에 국한되고 있다. 스와힐리 문학은 구비문학이나 저술문학이나 모두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전통적이며, 현대 소설들은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국립박물관은 야생생물의 수집물, 고고학적인 유물, 케냐의 물질 문명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소장되어 있다.
[역사]
기록으로 남은 케냐 최초의 역사는 수세기 동안 남부 아라비아와 교역 관계를 맺은 해안선에 관한 것이다. 내륙에 대해서는 19세기까지 외부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와 아랍인과 스와힐리어 상용자들이 대상을 구성하여 상아를 찾아 몸바사에서 빅토리아 호까지 통과하고 거기서 엘곤 산까지 나아갔다. 이 통로는 훨씬 남쪽의 대상로들만큼 인기가 없었는데, 그것은 타루 평원의 사막을 횡단하기 어렵고 호전적인 마사이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사이족이 북쪽으로부터 케냐의 중부로 들어온 것은 18세기경으로 추측된다. 1830년경에 탄자니아의 헤헤족(와헤헤족)이 마사이족의 남진을 저지했지만, 마사이족의 습격대들은 계속 돌아다녔다. 거의 같은 시기에 훨씬 큰 인종 집단인 키쿠유족이 포트홀 지역에 있는 그들의 영토로부터 북쪽•서쪽•남쪽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19세기말까지 그들의 진출은 북쪽과 남쪽으로 마사이족의 영토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애버데어 산맥의 높은 사면에 다다랐다. 내륙으로 침투한 최초의 유럽인은 독일의 교회 전도회 요원들로, 그들은 19세기초 라바이에 전도 본부를 설치했다. 그후 독일인과 영국인들이 그 지역을 장악했다. 그것은 마사이족이 약탈했지만 한 번도 지배한 적은 없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1890년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1920년에는 직할 식민지가 되었으며, 영국령 동아프리카 회사가 상권을 장악했다.
1948년 동아프리카 고등위원회가 구성되어 나이로비에 본부를 두고 케냐•우간다•탄자니아에 공통의 이익이 되는 일정한 사업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 위원회는 세 영토의 총독으로 구성되었고, 케냐 총독이 위원장 역할을 했다. 1950년대에 마우마우단의 반란이 일어나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그 봉기는 키쿠유족이 케냐에서 유럽인을 축출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었고, 비상사태는 1960년대초에 끝났다(→ 대영제국). 1963년에 케냐는 완전히 독립했고, 1년 후 조모 케냐타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고 오깅가 오딩가를 부통령으로 하는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케냐타의 영도하에 케냐는 정치적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누렸다. 1978년 케냐타가 죽자 이어 다니엘 아라프 모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1988년에 그는 집권당의 권한을 강화하여 의회를 누르게 하고, 여타의 방법으로 자신의 직권도 강화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63년 8월 영사관계를 맺고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며, 이어 1964년 2월에 대사급 수교를 맺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1982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의 케냐 방문과 1990년 9월 케냐의 모이 대통령의 방한으로 더욱 긴밀해졌으며, 이후 케냐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우방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동안 한국은 두 나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차량과 농기구 등을 무상원조하는 것을 비롯해 기술연수생 초청, 전문가 파견 등을 실시했다. 지금까지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는 의료협력협정(1973. 9), 무역협정(1977. 8), 문화협정(1980. 12), 항공협정(1981. 1) 등이 있다. 통상현황을 보면 1991년 11월을 기준으로 케냐는 한국으로부터 공산품 2,064만 달러어치를 수입해갔고 대신 343만 달러 상당의 원자재를 한국에 수출했으며, 앞으로도 두 나라의 교역확대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지 교민으로는 이미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체와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직원 등 다수가 체류하고 있다. 한편 이 나라는 1975년 5월 북한과 수교를 합의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실질적인 외교관계는 없다.
케냐의 남부는 사바나 고원지대, 북부는 광대한 사막이 펼쳐지고 경작가능한 지역은 국토의 6%뿐이다. 기후는 4-6월의 대우기와 10-11월의 소우기와 그 사이의 건기로 나누어진다. 고원지역의 월평균기온은 섭씨 12.7도이다. 수도인 나이로비는 사바나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
아프리카 동부해안에 위치한 케냐는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수단, 우간다, 탄자니아와 접경하고 있으며 경도 34' E와 42' E, 위도 5' N 와 4.5' S사이에 위치해 있다.
낮은 평원지대에서 대리프트 산악에 의해 등분된 중앙고지대의 지형이고 서부의 비옥한 고원지대이다. 전체 국토 중 경작가능지는 3%, 경작지 1%, 초원 7%, 산림 4%, 기타 85%로 기후조건과 경작지 부족으로 케냐의 중요한 경제분야인 농업의 장기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차 25%, 커피 21%,석유제품이 7%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문화
인구의 85%가 남서쪽에 집중되어 있다.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이지만 영어와 키쿠유어 등도 쓰인다. 예전엔 부족 전통 종교를 많이 신봉을 했었지만, 최근에는 기독교가 25%에서 75%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나머지 19% 정도가 전통의 부족 종교를, 6% 정도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관광수입이 전체 GDP의 16%를 차지하며, 주요 수입원이다.
☞기후
해안지대는 열대성 몬순기후이다. 저지대는 주로 건조하고 덥다. 고지대는 보다 더 시원하고 사계절이 있다. 나이로비는 해발 1,700m에 위치하고 있고, 평균 13°C인 반면, 해안 지역의 몸바사(Mombasa)는 평균 27°C (80°F). 강우량은 다양하지만 평균 150mm정도이지만, 빅토리아호 주변의 북서쪽 Lodwar에서는 1,470mm를 기록한다.
케냐는 적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선입견은 '무지하게 덥다'이다. 하지만 해발 1,000m 이상에 속한 나라인 케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서운 더위는 없다. 우리나라의 겨울철이면 여기는 소우기로 접어든다. 소우기에는 며칠에 한번씩 가벼운 소나기가 내리고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낮 기온도 섭씨 25도 정도를 유지한다. 단, 햇볕이 강하므로 자외선 차단에 유의해야 한다.
해안지방: 년평균 20.5° - 31°C 내륙지방: 년평균 7°C - 27°C
☞역사
- 식민시대 이전
BC 500-AD 500년 아프리카대륙 각지에서 이동된 부족이 케냐 정착
14세기 동부해안지대에 아랍계 Swahile Community 정착
1593-1698 폴투갈의 몸바사 점령(Fort of Jesus 건설)
18-19세기 오만제국의 동아프리카 연안지대 지배 및 노예무역
1890 영국과 독일, 동아프리카 분할 합의 (영국은 케냐와 우간다지역, 독일은 Tanganika)
1895. 7. 영국 동아프리카 보호령화 선포
1899 우간다 철도부설 본사를 몸바사에서 나이로비로 이전
- 식민시대
1906 유럽인만의 Legislative Council 구성
1914년이전 세계 1차대전 발발전까지 영국, 내륙 개척에 대한 현지부족의 반발제압
1920 아프리카인의 각종 정치, 사회단체 결성
1944. 5. Legislative Council에 최초의 케냐인 진출
1946 Kenyatta, KAU(Kenya Africa Union) 의장 피임
1952-56 Mau-Mau단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테러행위 전개, 영국 정부 계엄령선포, Kenyatta 구금 (13,500명의 케냐인이 피살되고 약 10만명이 구금됨.)
1963. 6. 케냐 자치정부 수립
1963.12.12. 독립 선언
사파리
암보셀리는 케냐에서 서식하는 대형 동물 거의 모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건조기에는 물 있는 장소가 적기 때문에 중앙의 습지대 근처에 몰려 있기가 쉬우므로 비교적 편안하게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로지로부터의 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관리인에게 부탁하면 그들이 몇 개소를 돌아주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움직이면 된다. 투어에 참가한 경우에는 운전사가 관리인 없이 모든 루트를 운행한다. 스스로 운전하는 경우에는 로지를 출발하여 나망가로 가는 도로를 약간 되돌아가면 왼쪽으로 전망대(Observation Hill)로 가는 표지가 있다. 이곳을 왼쪽으로 돌아 길을 따라가면 왼쪽에 습지대가 나타난다. 작은 다리 위로 이 습지대를 건너가면 전방에 약간 높은 구릉이 보인다. 이곳이 전망대로서 이 구릉의 기슭까지 차를 달린다.
마사이의 집단부락
암보셀리는 원래 마사이족의 고향이다. 공원 외곽에는 마사이 집단부락이 여기저기 있고, 로지에서는 마사이 젊은이들이 관광객으로 찾아와서 맥주 같은 것을 마시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사이족은 일반적으로 자부심이 대단하고 다른 문화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팔목시계를 차거나 구두를 신고 있는 젊은이도 눈에 띈다. 그렇지만 사진 찍는 것과 대화는 꺼려한다. 촬영해도 좋다고 하는 부류는 찍은 다음에 돈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부락을 발견하더라도 곧바로 방문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타당성 있는 루트를 통해서 찾아가야 한다. 예컨대 친구로 사귄 마사이족이나 로지에 와 있는 마사이족이 데려가 주겠다고 할 때 그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다만 소개료 명목으로 몇 백sh을 요구받는 수도 있다. 키나마 게이트를 조금 빠져 나가면 이와 같은 관광객 상대의 집단부락이 있으며 운전사에게 말하면 데려다 준다. 물론 운전사에게는 팁을 주어야 한다. 집단부락의 촌장에게도 사례금 정도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케냐에는 땅속 자원이 없다. 땅 위의 사람이나 야생동물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케냐는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이 겪는 유혈 내전과 그로 인한 기아를 피할 수 있었다. 대신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를 얻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가 동아프리카의 관문이 된 이유다. 사파리를 목적으로 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여행은 나이로비에서 시작된다.
◆ 나이로비: 차가운 샘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아프리카는 덥다'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진다. 나이로비는 적도에서 160㎞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영상 18도 정도의 쾌적한 기온이 연중 계속된다. 해발 1800m가 넘는 고지이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고 낮에도 그리 뜨겁지 않다.
나이로비란 이름도 '차가운 샘', '맛있는 물'이라는 마사이 방언 '엥카레 나이로비'에서 유래했다. 가축들에게 먹일 신선한 물이 있는 마사이 족의 광활한 목축지였던 곳이리라.
동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케냐 동해안 몸바사에서 우간다 캄팔라를 잇는 철로를 놓다 중간 기착지로 건설한 도시다. 그래도 인구 200만의 나이로비는 도시답다. 도심 교차로 주변은 언제나 극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 차량은 늘었는데 도로는 식민지 시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마사이족은 신의 자손이다. 아버지인 응가이 신한테 허락을 받고 세상 구경을 하러 하늘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런데 신의 경고를 잊고 사슴 한 마리를 잡아먹었단다. 격분한 신은 밧줄을 잘라 버렸다. 마사이족은 용서를 빌었고 신은 함께 내려 보낸 소와 양의 숫자가 만족할 만큼 늘어난다면 밧줄을 다시 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사이족이 목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소 기르기 말고는 욕심이 별로 없다.
매사 태평이고 바쁠 게 없다. 마사이 속담에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라는 게 있다. '빨리 빨리 하면 복이 없다'라는 뜻이다.
대신 '뽈레 뽈레'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천천히 천천히'라는 의미다.
나이로비는 인도양 해안의 몸바사항(港)으로부터 철도로 약 530km 떨어진, 케냐 중남부의 해발고도 1,676m의 고원에 있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연평균 기온은 17.9℃ 정도이며, 연강우량은 920mm 내외로 3∼5월 이 우기(雨期)이다. 서쪽으로는 리프트발레 (아프리카大地溝帶), 북서로는 약 4,000m의 아버데어산맥이 있는데, 시내의 서부 및 북부의 키쿠유고원은 이 아버데어산맥 남단부 남동사면의 일부로, 서쪽은 주로 유럽인, 북부는 인도인의 거주지였다. 또 키쿠유고원을 가르며 동류하는 나이로비강은 저지대를 형성하며 나이로비시의 핵심부를 이룬다. 즉, 중동부에 있는 나이로비역 서북쪽은 상업- 문화지구, 북동∼동쪽은 아프리카인 거주지구, 동∼서쪽은 공업지구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마사이족, 키쿠유족의 거주지였다. 도시로서의 나이로비의 역사는 9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에서 우간다의 빅토리아호 연안을 연결하는 철도건설을 위해 1896년 이곳에 전진기지가 설치되었다. 1899년 나이로비까지 철도부설이 완공되었고 그 후에도 기지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지방의 행정기관들도 마차코스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졌다. 기후의 쾌적함과 원활해진 교통조건 때문에 백인 입식자(入植者)들은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화이트 하일랜드’ 라는 광대한 지역을 형성하여, 동아프리카의 중심적 대도시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케냐의 정치 중심지이고 통신•상공 및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 도시에는 케냐 정부의 각종 건축물 외에 1967년까지는 동아프리카 공동(EACSO)의 본부가 있어서 동아프리카 지역의 경제 중심지적 지위에 있었다. 그 후 동아프리카 공동 서비스기구가 동아프리카 공동체로 개편되어 지금은 동아프리카 철도공사와 동아프리카 항공공사 본사만 남아 있다. 그러나 기후가 서늘하고 상쾌한데다가 국제항공도 발달되었기 때문에 외국의 기업과 문화시설이 많고, 각종 국제회의가 열린다. 또 동아프리카대학의 일부, 코리돈박물관, 기타 국립의 각종 교육•문화•사회 시설도 있다.
교외에는 면적 114㎢의 나이로비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야생동물이 보호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또 나이로비 전체가 동아프리카의 관광•탐험기지로서 알려져 있다. 시에서 동쪽으로 15km 지점에 있는 엠바카시에 있는 나이로비 국제공항에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로부터 각종 항공기가 기착하여 이 도시의 국제도시로서의 기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철도는 남동으로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 서쪽으로 우간다의 빅토리아호 연안, 북쪽으로 케냐산 북서산록의 나뉴키와 이어진다. 또 간선도로는 북동으로 42km의 시카, 남동으로 45km의 몸바사, 남쪽으로 80km의 카지아도, 북서로 156km의 나쿠루와 이어진다.
◆ 라이언킹의 사바나
뭐니뭐니해도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는 사파리다. 그중에서도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대평원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사파리 투어 장소다. 지평선과 맞닿은 초원과 고즈넉하게 서있는 로코니(우산 아카시아),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그림엽서가 된다.
사실 세렝게티 평원의 북쪽 끝이 마사이마라다. 식민 열강들이 지도 위에 금을 그어 국경을 만든 탓이다. 여권 없는 야생동물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지만 사람에게만 길이 막혀 있다. 시멘트로 만든 푯말만 있을 뿐 경계도 따로 없는데 선을 넘으면 용케 알고 국경 순찰차가 달려온다. 수백만 마리의 누, 얼룩말 등 초식동물 떼가 더 많은 풀과 물을 찾아 계절별 대이동을 한다.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등 포식자들도 따라 움직인다. 대이동 중 누 떼가 악어가 매복해 있는 마라강을 건널 때는 야생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가 되는 장관을 연출한다. 마라강을 따라 12~3월에는 세렝게티, 8~10월에는 마사이마라에서 더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다. 사파리의 운전기사는 귀신같이 사자나 표범이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이밖에 가장 아름다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암보셀리 국립보호구역과 세계 최대의 홍학 서식지인 나쿠루 호수 국립보호구역 등이 유명하다.
◆ 몸바사: 아랍의 전설
사파리를 하면서 뒤집어 쓴 먼지를 씻기 위해서 몸바사로 간다. 케냐 제2의 도시인 몸바사는 아름다운 섬이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와 함께 동아프리카 인도양 연안에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프리카와 아랍 문명이 만나 빛나는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만큼 상처도 많다.
몸바사의 옛 이름 '음비타'는 '전쟁의 섬'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왕국이 세워졌다가 8세기 초에 페르시아인들이 상업 도시를 건설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 19세기에는 영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몸바사의 상징인 '포트 지저스' 요새는 1593년 포르투갈인들이 세운 것인데 이후 300년 동안 아홉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그런 와중에 많은 원주민이 노예로 팔려가는 슬픈 역사도 안고 있다. 하지만 밤에도 따뜻한 바닷물과 밀가루처럼 고운 백사장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다. 그래선지 바다 위에 떠있는 많은 아랍식 범선들은 '천국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나왈리커 다우'라 불린다.
밤하늘에는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보던 것이 아닌 남반구의 별자리들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케냐 맥주 터스커도 맛있다.
여행정보: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기존 패키지 대신 대표적 사파리 투어 장소인 케냐만 돌아보는 실속 '리얼 아프리카' 여행상품이 개발됐다. 일정도 11일로 줄고 목요일 밤에 출발해 일요일에 돌아오기 때문에 시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도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훌쩍 떠날 수 있다. 야생동물 사파리는 물론 인도양에 몸을 담글 수도 있어 허니문 여행으로도 좋을 듯. 문의: 카타르 항공 02-3708-8532, 유로투어 02-732-1337, 하나투어 02-2127-1318, 현대드림투어 02-3014-2335, SK투어비스 02-2196-4050, 포커스 투어 02-397-3341, 범한여행 02-2001-4607
◆동물의 왕국에서의 사파리 – 케냐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 나쿠루 국립공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케냐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야생동물 국립공원으로 유명하다.
* 암보셀리 국립공원 –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한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킬리만자로를 가장 잘 아름답게 볼수 있는 지역이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에서 수백킬로 떨어진 케냐의 이곳까지 평원으로 펼쳐져 있어, 탁트인 평원위에 우뚝솟은 킬리만자로의 멋진 모습을 볼수 있다. 킬리만자로산의 모습이 나온 많은 영화와 사진의 실제 로케이션 장소로 유명하다.
* 나쿠루 국립공원 –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서서로 350Km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국립공원이다. 사파리는 나꾸루 호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사파리 차량을 타고 호수 주위를 돌아보면 커다란 몸통과 날개 그리고 부리를 자랑하는 수천마리의 펠리칸과 황새 그리고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핑크빛의 수십만마리가 넘는 홍학 무리는 나쿠루의 하일라이트이다. 이들 각종 새 무리 이외에도 코뿔소, 버팔로, 기린, 임팔라 등의 초식동물과 사자, 표범 등의 육식동물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사파리가 가능하다.
*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270Km 떨어진 우리나라 제주도 크기의 마사이마라는 탄자니아를 가로질러 흐르는 마라강을 경계로 케냐와 탄자니아가 구분된다. 5월부터는 우기 이후에 길게 자란 마사이마라의 풀들을 찾아서 탄자니아의 옹고롱고로와 세렝게티에 머물던 초식동물들이 이곳 마사이마라로 몰려들기 시작하여 7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수많은 각종 동물들의 천국을 이룬다. 특히 7월 중순을 전후로 탄자니아의 마라강을 건너는 수백만 마리의 누우(소과)떼와 얼룩말을 비롯한 수많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들의 지상최고의 동물 이벤트의 종착지가 결국 마사이마라의 초원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빅파이브(사자, 표범, 코끼리, 버팔로, 코뿔소)뿐만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초식동물들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