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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산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뫼 晶峰
<평설>
참된 삶의 의미와 갈닦은 시어詩語의 탐구
―성동제 시인의 시집 『마중물 붓는 마음』의 시세계
趙世用(시인, 문학박사)
1. 들어가는 말
일찍이 R. M. 릴케는 『말테의 수기手記』에서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어디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려야만 한다. 사람은 될 수만 있다면 평생을 두고 꿀벌처럼 꾸준히 꿀과 의미를 수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 최후에 몇 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을는지 모른다. 시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중략).......시는 경험이다.
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를 다시 곱씹어 보면, ‘시란 흔히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에 창작되어지는 문학’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이며 ‘시다운 시의 창작은 오히려 인생 체험이 풍부하게 쌓여진 늙마에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말이 되겠다.
1940년 이른봄 부산에서 태어난 성동제 시인은 푸르른 바다와 등대를 바라보면서 시인의 꿈을 키워 온 시인이다. 그러하였기에 성동제 시인은 195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청소년 문예지인 『새벗』지에 시 <등대>와 <호수>를 투고하여 당선된 적이 있었고, 대학시절에는 문학 동아리 <천탑 동인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덕수궁 주위에 산재해 있었던 다방을 빌어 시낭송회와 시화전을 열면서 열심히 문학 활동을 해 왔으며, 1968년에는 <경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학을 해야만 했던 성동제 시인은 무조건 서울로 상경해서 갖은 고생을 해 가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다가 도저히 학비를 충당할 길이 없어 시인에의 꿈과 학업을 잠시 접은 채 전공과는 거리가 먼 금융계 회사에 취직하여 동분서주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다.
공자孔子께서 인생 40을 ‘속사俗事에 미혹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찾는 나이’인 ‘불혹不惑’이라 했듯 성동제 시인은 드디어 나이 40세에 이르러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역정을 뒤돌아보면서 잠시 잃어버렸던 자신의 젋은 날의 꿈을 되찾으려고 고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동제 시인은 오랜 동안 사용하지 않아 켜켜이 녹이 슬어 있는 펌푸에 다시 마중물을 붓고 땅속 깊이 잉걸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던 시심詩心을 건져 올리기 시작하여, 2012년 『문학예술』 가을호에 <대나무>, <자연 속 묘품>, <단풍잎>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 얼굴을 내밀 무렵 이미 건져 올린 시편의 수가 200여 편이 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시편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나서, 과거 우리나라 굴지의 전통시인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쳤던 오산학교 스승 김억金億과 1920년 3월 『창조創造』 제5호에 <浪人의 봄>, <午過의 읍>, <夜의 雨滴>, <春岡>, <그리워> 등을 김소월의 요청대로 글자 하나 구둣점 하나 고치지 않고 발표해 줌으로써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했던 김동인金東仁을 떠올리면서 당시 그 두 사람의 기쁨이 지금의 나의 기쁨과 같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나는 성동제 시인에게 주저없이 작품을 정리해서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낼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게 되었고, 그도 나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여 여러 번의 비정批正과 퇴고推敲를 거쳐 비로소 처녀시집을 상재上梓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제1부 ; 갈대꽃 깃발
제1부는 사시사철 우리 인간들 눈에 나타나는 아름답고 신비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A. 단테가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자연은 조물주의 절묘한 걸작품인 동시에 경외敬畏스런 신비의 존재다. 그러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부 철학자들과 종교가들은 자연을 통해 철학적, 종교적 이론을 정립했으며, 또한 많은 시인들은 자연을 시적 대상인 시의 소재素材나 제재題材로 삼아 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2천여년 전 ‘일체의 인위적人爲的 인 것을 배제하고 무위無爲의 자연 속에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노장老莊 철학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의 사상, B. C. 5세기경 불교 이전의 고대 인도 바라문(婆羅門, Brahman)교의 성전 베다(Veda)의 하나인 우파니샤드(Upanisad)의 중심사상인 우주 본체로서의 브라만(Brahman, 梵)과 인간 생명의 근본 원리인 개인 본질로서의 아트만(Atman, 我)은 동일불이同一不二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 18세기 서구 낭만주의 예술사조의 모태가 된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부르짖으며, ‘자연은 인간을 선량, 자유, 행복한 존재로 만들었으나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키고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인위적 문명을 통열히 비판한 J. J. 루소의 서양 철학 사상이 전자의 그것이다.
한편, 2천 5백여년 전에서 3천여년 전 중국의 엣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시들을 모은 중국 최고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경체시의 고체시古體詩들(305편의 시편 대부분이 시적 대상인 소재나 제재를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에서 취했다), 중국 진晉나라 때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은 팽택彭澤의 영令이 되었으나 상관의 권위주의적 명령에 분개하여 사직을 하고 ‘돌아가자 전원이 바야흐로 묵정밭이 되려 하는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라고 노래한 초사체시楚辭體詩의 고체시 <귀거래사歸去來辭>, 속세를 떠나 산중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시적 자아인 자신의 생활을 노래한 당唐나라 때 시선 이백李白의 칠언절구의 근체시近體詩(=당시唐詩)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 인도의 우파니샤드의 중심사상인 범아일여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R. 타고르의 <기탄잘리>,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살리로다 살아갈 것이로다 청산에 가서 살리로다 머루와 다래를 먹고 청산에 가서 살아갈 것이로다)’라고 시작되는 고려 속요俗謠의 백미白眉인 ‘고달픈 삶으로부터의 탈출과 자연 귀의’를 노래한 작자 미상의 <청산별곡靑山別曲>, 조선조 초기에 정극인丁克仁이 만년에 고향인 전북 태인泰仁에 낙향하여 봄의 경치를 완상하면서 지은 가사歌辭의 효시(일설은 고려말 때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지었다고 하는 <서왕가西往歌>를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로 보기도 함)인 <상춘곡賞春曲>, 이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조선 선조 때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 강호江湖에서 자연을 즐기며 사는 생활을 4계절에 따라 노래한 조선조 세종 때 맹사성孟思誠이 지은 연시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이에 영향을 받아 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이 지은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심경을 노래한 연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조선조 선조 때 이이李珥가 황해도 수양산에 들어가 그곳의 풍광을 노래한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조선조 중기 때 대문호 윤선도尹善道의 시문집『고산유고孤山遺稿』 속에 수록되어 있는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산중신곡(山中新曲>,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1920년대 김소월金素月이 지은 자연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노래한 <엄마야 누나야>와 <산유화山有花>, 1930년대 말기 공히 『문장文章』지를 통해 등단한 자연을 시적 대상으로 즐겨 다루었던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등 청록파靑鹿派(=자연파自然派) 시인들의 시, 18세기 ‘자연법칙에 의한 교육 원리’를 주제로 한 J. J. 루소의 『에밀』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과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W. 워어즈워즈와 S. T. 콜리지가 자연 관조를 통해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 영적 세계를 노래한 『서정시집』에 출현하는 시들이 바로 후자의 그것인 것이다.
이에 대자연의 하나인 널푸른 바다 냄새를 맡고 성장한 성동제 시인의 시 몇 편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가을이 스며들면
오리털 흰꽃 피워
강바람 멋스럽게 불면
다가와 야지랑떨고*
햇살 하뭇하게* 내려앉으면
온몸 한드작거리는 교태
오늘도
노긋한 대자연에 묻혀
수없이 나부끼는
얄캉한* 갈대꽃 깃발
* 얄밉도록 능청스러운 태도를 하고
* 마음에 흡족하여 만족스럽게
* 가늘고 탄력 있으며 부드러운
― <갈대꽃 깃발> 전문
이 시는 대자연 속에 묻혀서 깃발처럼 한드작거리는 갈대밭 풍경을 은유법과 의인법을 써서 창작한 서경시적 서정시다. 원관념 ‘갈대 열매’를 부드럽고 하얀 색의 ‘오리털 흰꽃’과 ‘깃발’로 은유한 것이 참신하며, 시적 자아 앞에서 ‘야지랑떨거나 한드작거리는 교태’를 부리는 시적 대상인 갈대꽃의 의인법적 표현이 정겹다. 이 짤막한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얼음에 박밀듯 매끄럽게 흘러가는 시의 음악성의 하나인 내재율과 ‘야지랑떨고’, ‘하뭇하게’, ‘얄캉한’, ‘한드작거리는’ 등과 같은 아름다운 순수 고유어의 시어화이다.
시란 형태론적인 면에서 언어와 운율이,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이미지, 은유, 역설, 상징이, 내용론적인 면에서는 주제가 요구되는 문학 양식임은 주지의 사실이라 하겠다. 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 등한시할 수는 없으나, 언어의 예술인 문학의 여러 장르 가운데 시에서의 언어는 P. 발레리가 ‘시는 언어의 연금술鍊金術이다.’, 김기림金起林은 ‘시는 언어의 건축이다.’, C. D. 루이스는 ‘언어는 시의 가장 근원이 되는 재료’라고 언급한 것처럼 시인에게 있어 적절한 시어詩語의 선택과 사용은 시의 질적 우열을 결정짓는 중요한 핵심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어화死語化되기 일보 직전의 우리 고유어를 발굴해서 시어화詩語化하는 작업은 독일어 순화에 크게 기여했던 J. W. 괴테나 J. C. F. 실러에 비견될 만한 바람직한 작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바닷속 뿌리내리고
하늘 향해 뻗은 위용
끌 쥔 신의 손
깊게 얕게 파내고
모나게 둥글게 다듬어
긴 세월 색감 올린
자연 속 돋을새김은
변화무상 추상화
그 앞에 찾아와
촛불 환히 밝히면
신되는 석벽 성벽
―<자연 속 묘품妙品> 전문
이 시 역시 활유법과 의인법을 써서 쓴 서경시적 서정시이다. ‘푸르른 해원海原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석벽’을 ‘바닷속에 뿌리내리고’로 활유법을 썼으며, ‘끌 쥔 신이 모나게 둥글게 다듬어 색감 올린 수채화’로 원관념 ‘석벽’을 보조관념 ‘수채화‘로 은유법을 써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안병욱安秉旭 의 『행복의 미학』에서 ‘자연은 신이 쓴 위대한 책이다. 한 포기의 조그만 꽃 속에 신비가 깃들어 있고, 한 마리 이름 없는 벌레 속에 경이驚異가 배어 있다.’라고 언급한 대목이 연상되는 시로 자연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감을 주제로 하고 있다.
3. 제2부 ; 올레길 돌아
‘ 제1부 ; 갈대꽃 깃발’에서의 시편들이 자연의 관조觀照를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신비’를 노래한 시라면, 제2부 ; ‘올레길 돌아’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交感과 친화親和을 통한 ‘범아일여梵我一如=주객일체主客一體’의 경지를 노래한 시편들이다.
세조에게 우산되어
하사받은 이름
정이품송
법주사 가는 길
육백년 세월 속 거목
일국의 만고풍상
솔잎으로 느끼다가
눈비 맞아 찢긴 지체
천명 다하는 날
비는 숙원
점지點指되어
닮은 넋 심어지면
잘 자라
아픔도 다스리고
노여움도 걸러내는
정이품송 자식으로
아빠 닮은 우산 펼쳐
역사 다지는 수호신으로
천수 누렸음 하는 마음
―<후계목後繼木을 보면서> 전문
조선 세조 10년(1464) 왕이 법주사法住寺로 갈 때, 가마가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되어 “연輦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가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무사히 통과케 한 적이 있었고, 또한 왕이 돌아갈 때 우산이 되어 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 하여 세조가 이 나무에 정이품 벼슬을 하사하였다고 하는 전설은 두루 다 아는 바다.
이 시는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이 수령이 6백년이 넘어 점점 그 수세樹勢가 기울어 가고 있고,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가지가 부러지는 등 상처를 입어 그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산림청에서 2012년 4월 19일 세조릉이 있는 광릉숲에 이 나무의 후계목을 심을 때, 성동제 시인이 직접 현장에 달려가 식수하는 장면을 보고 쓴 서경시적 서정시다.
이 시에는 이 시의 소재이면서 제재인 ‘정이품송’이나 ‘후계목’ 그 자체에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과 친화의 정이 짙게 스며 있으며, ‘일국의 만고풍상 솔잎으로 느끼다가’라는 의인법적 표현 속에는 ‘오랜 세월을 인간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다.’라는 범아일여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무엇인가
곁에 둘 나이련만
모두 빗겨 간
한낮의 오후
붉게 타는 고추잠자리
화사한 날개 아래
허우적이는 나신裸身 하나
해망쩍은* 자화상
(....중략.....)
지는 가을 수선거려
소주 한 잔 하였더니
새살궂은* 내가
나와 함께 하자는군
* 영리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 수선스러운
―<가을에 앉아>의 일부
이 시에서도 시적 대상인 ‘붉게 타는 고추잠자리’와 ‘소주 한 잔‘에 빨갛게 취한 시적 자아인 ’‘나신裸身’이 서로 댓구를 이루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과 친화인 범아일여의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역시 성동제 시인은 이 시에서 ‘해망쩍은’과 ‘새살궂은’ 등의 아름답고 고운 순수 고유어를 시어화해서 시의 품격을 한 층 높여 주고 있다.
4. 제3부; 현악 이중주
성동제 시인은 사랑이 넘치는 시인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 등 그 어느 것 하나 등한시하지 않은 다정다감한 ‘정情의 시인’이다.
같이 있으면
너울가지* 절로 일고
눈길만 보내 와도
열곷으로 울렁이는 가슴
무성한 잡초 칼바람에 날리고
토네이도가 원기둥 만들어도
벗어 준 외투 걸치면
알맞게 익은 군고구마 체온
손이라도 내어 주면
부끄러움에 화덕되는 얼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끝없이 하뭇해지는* 영혼
* 붙임성이나 포용성.
* 마음이 포근하고 흐뭇해지는
―<같이 있으면>의 전문
이 시는 아내를 소재로 읊은 애정시로 성동제 시인의 아내에 대한 지순至純한 사랑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시적 자아가 시적 대상인 아내와 ‘같이 있기만 해도 안아 주고 싶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눈길만 보내 와도/ 열꽃으로 울렁이는 가슴’이 되며, ‘손이라도 내어 주면/ 부끄러움에 화덕되는 얼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끝없이 하뭇해지는 영혼’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원관념인 시적 대상인 아내의 체온을 보조관념 ‘군고구마 체온‘으로 은유한 표현이 참신하다. 이 시에서도 ’너울가지‘, ’하뭇해지는‘ 등의 순수 고유어를 발굴해서 시어화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넌 왕이다
보채고 때쓰면 얄밉다지만
난 아니다
어쩌다 안 보이면
심장 울렁이는 불안증
왕이 앉은 식탁에
왕이 가는 목욕탕에
왕이 가는 화장실에
꼭 붙어다니는
최근위 파수병
난 왕의 언어에서
사랑과 평화를 수확하고
왕의 수준에 걸맞게
한껏 재롱부리면
까르르 웃는 왕의 웃음
즐거움이 마냥 핀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웃음꽃피는 행복한 사이
―<파수병> 전문
이 시는 시적 자아인 성동제 시인이 시적 대상인 손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애정시다. 시적 대상인 손자를 보조관념 ‘왕’으로 은유하면서 시적 자아인 자신은 ‘왕이 앉은 식탁에/ 왕이 가는 목욕탕에/ 왕이 가는 화장실에/ 꼭 붙어다니는/ 최근위 파수병’으로 은유하고 있다. 귀여운 손자의 재롱으로 온 집안이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는 평화스럽고 행복한 가정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5. 제4부 ; 승천무昇天舞
성동제 시인은 비극적 상황을 그냥 지나칠 줄 모르는 눈물의 시인이다. 존경해 왔던 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진걸님의 부음을 듣고 ‘내일, 모래/ 아니 글피쯤/ 외톨로 님께 찾아 와/ 속내 마음껏 쏟아내며/ 속시원히 울래(<승천무> 일부)’라고 눈물을 글성이며 노래한 사실이라든지, 고독을 씹으며 쓸쓸히 살아가는 독거 노인을 소재로 시를 썼다든가, 저승으로 떠난 친구를 소재로 안타까움에 소줏잔을 기울이며 시를 썼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사코 도리질이다
준비 없는 막연함
저승의 많은 것들
야윈 얼굴에 심한 경련
확 풀린 두 동공
병자성사 신비 베풀
그 누구도 이웃이 아닌
눈물 흥건한 독거노인
피붙이 있으나 마나
언제나 혼자인 생명
창 밖엔 된바람
고독을 싣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독거노인> 전문
‘늙고 병든 몸은 눈 먼 새도 안 앉는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 깔려 있는 의미를 다시 환치해 보면 ‘사람이 늙게 되면 깊은 고독의 수렁으로 빠져 들게 된다.’는 뜻이 되겠다. 최근 신문(서울신문, 2012. 10. 6.)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독거노인 수는 88만 2천명(65세 이상 전체 노인 481만명 중 18. 13%)이나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무연고 독거노인이 대부분이겠으나, 자식이 있는 유연고 독거노인도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식이 뻐젓이 있으나 부모가 늙었다고 요양원이나 닭장 같은 쪽방에 방치해 두고는 거들떠보지 않는 자식들이 너무나 많다. 바야흐로 ‘신판 고려장 시대’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성동제 시인은 이러한 비극적 사회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피붙이 있으나 마나/ 언제나 혼자인 생명’이라고 읊으며 마음 아파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의 ‘혼자-고독-된바람’의 이미지 연결이 뛰어나다. ‘혼자’인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게 살다가 ‘된바람[北風]’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겠는가?
네가 떠난 날
설움젖은 친구들
한 모금 잔 비우며
네 이야기로 울먹였지
너에 대한 아쉬움이
이제는
우리들 몫으로 남아
소줏잔에 네 그리움 담아
가슴 적시는구나
우리끼리 들레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식구들 모르게 울겠지
가물가물 잊을 만도 한데
하마 진력 날만도 한데
여태 해작이고* 있으니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자꾸만 조금씩 들추어내고
―<먼 길 떠나버린> 전문
이 시는 시적 자아인 성동제 시인이 철친했던 시적 대상인 벗과의 사별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리움의 정이 넘치는 추모시다. 일찍이 F. 베이컨은 그의 『수상록隨想錄』에서 ‘참된 벗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참혹한 고독이다. 벗이 없으면 이 세상은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 절조絶調는 ‘소줏잔에 그리움 담아/ 가슴 적시는구나’라고 노래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시적 자아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눈물 흘리는 따뜻한 마음씨’가 역연하게 드러나 있다.
6. 제5부 ; 이사 오셨네요
성동제 시인은 신앙심이 남보다 투터운 시인이다. 따라서 제5부의 시편들은 ‘영혼의 해맑은 미소와 강생구속降生救贖’의 신비를 승화시킨 성시聖詩들이다.
J. S. 패스탈로치는 『은자隱者의 저녁』에서 ‘신앙은 인간 도야의 밑바탕이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으며, M. 루터는 『기독교도의 자유』에서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에 의해서 사람은 올바르게 되고, 또한 의롭게 된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시인에게 있어 신앙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시란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시인에 의해서만 창작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벅차도록 힘들어도
거우게* 만들어도
갈라놓아선 안 되는 쉼터
파괴될 수 없는 고운 쉼터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이
본으로 보여 주신 가정
성가정
사랑 있고
순종 있고
질서 있는
예로부터 가화만사성
내 가정
내가 가꾼다는 일념으로
아침을 여는 진지한 기도와
즐겁게 하루를 지내는 믿음과
식구들이 함께하는 감사가
어우러져 평화되는
가정이고 싶다
* 집적거리어 성나게
―<성가정聖家庭> 전문
이 시는 성동제 시인의 가정이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이/ 본으로 보여 주신 가정/ 성가정’이요, ‘갈라놓아 선 안 되는 쉼터/ 파괴될 수 없는 고운 쉼터’ 임을 강조한 가정시요, ‘아침을 여는 진지한 기도와/ 즐겁게 하루를 지내는 믿음’이 충만한 가정임을 강조한 신앙시다.
하늘나라에서
달랑 몸 하나
이사 오셨네요
처녀 태 여시어
육신으로 오신 분
오시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자리매김하시고
예고된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천주의 아들이시며
천주이신 당신
현존하시기 위해
이 세상으로
아주 이사 오시어
자비관 쓰고 계신 분
―<이사 오셨네요> 전문
이 시에서는 시적 자아인 성동제 시인이 시적 대상인 예수의 출현을 ‘처녀 태 여시어/육신으로 오신 분’으로 표현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부각시켜 노래하고 있는 점과 ‘하느님’을 한자어 ‘천주天主’로 표현한 점으로 보아 천주교 신자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7. 끝맺는 말
이상 성동제 시인의 시집 『마중물 붓는 마음』을 읽고 나서 그의 시세계를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오랜 신앙 생활을 통해 형성된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이 용해溶解되어 있 는 시정신을 밑바탕으로 한 진지하고도 참된 삶의 무게가 짙게 녹아 있다.
둘째, 사어화되기 일보 직전의 순수 고유어를 색출해서 시어화한 점은 과거 독일어 순화에 크게 기여했던 J. W. 괴테나 J. C. F. 실러처럼 ‘모국어 지킴이’로서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본다.
셋째, 시어의 조탁彫琢과 간결성이 뛰어나다.
넷째, 자연의 소재를 제재화한 작품들이 많다.
다섯째, 시의 음악성인 내재율 잘 살렸다.
모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동제 시인은 2012년 『문학예술』가을호에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루 해가 이미 저물었으되 노을이 아름답고, 한 해가 장차 저물려 하지만 귤향기 더욱 꽃답다. 고로 인생의 말로인 만년은 군자가 다시 정신을 백배할 때이다(日旣暮而猶煙霞絢爛 歲將晩而更橙橘芳馨 末路晩年君子更宜精神百倍)’라는 글은 『채근담採根譚』에 수록된 명언이다.
그렇다. 해가 완전히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 아름다운 저녁 노을빛을 볼 줄 안다는 것처럼 보람된 일이 어디 또 있으랴. 비록 녹슨 펌푸지만 마중물을 붓고 지하에 묻혀 있는 시심詩心을 건져 올리고 있는 성동제 시인의 앞날에 뿔이 우뚝 솟는 날이 있기를 충심으로 빌면서 평설을 마무리할까 한다.
첫댓글 성동제 시인의 평전을 통하여 또 하나의 문학세계를 보았습니다.
한편의 시를 창작하는데 얼마나 시인은 인내하고 다듬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건필하소서
활안거사님 ! 열심히 읽어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의 시를 읽고 평설을 쓰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자칫하다가는 명작을 졸작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고,, 졸작을 명작인 양 오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평설은 금년 가을 <문학예술>지를 통해 등단한 성동제 시인의 처녀 시집에 수록된 평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