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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토요일 아침 조조시간대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본 사람은 모두 7명이었다. 우리 가족 3인을 포함해서 ---. 일본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점에서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어쩌면 정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耆好)에 안 맞아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일본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영화 이전에 여러가지로 일본문화에 대한 선이해(先理解, pre-understanding)가 있어야 한다. 그 점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할복』을 보는 내내, "일본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할복』이 에도시대, 그 중에서도 17세기 초엽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극이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사극 영화(?)와 대비해 보고 싶었다.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에 떠오르는 비교대상이 『최종병기 활』이었다. 『최종병기 활』은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아니, 긴장감과 더불어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영화 안에서 이민족의 침략 앞에 무너져 가는 나라의 설움도 있기는 했다. 또 빼앗긴 동생을 찾아오려는 오빠의 분투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서가 영화관 문을 나서는 사람들 마음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었던 것일까?
각인, 이라는 말은 새길 각(刻), 도장 인(印)이다. 그렇게 깊이 마음에 새겨지거나, 마음에 도장이 박혀서 이미 일상적 삶의 현실 속으로 귀환해 버린 우리를 쫒아와서,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 주인공들의 아픔과 슬픔을 살아있는 그것(리얼리티라 말한다)으로 되새김질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가 이야기이니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럴 경우 비로소 나는 그 영화가 여운(餘韻)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한 사례를 이제 소개하려고 한다.
복제되는 할복?
할복, 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이 영화에는 세 번의 할복 장면이 등장한다. 그 중에 주요한 것은 두 번이고, 마지막 하나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장면들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때는 에도 시대. 정확한 연도는 잊었지만, 17세기 초이다. 아마도 1617-1630년대 쯤 되었던 것같다.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지방의 영지를 다스리는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의 저택이다. 무사(武士), 즉 사무라이 하나가 찾아온다. 중년의 무사(츠쿠모 한시로/이치카와 에비조 扮 이다. 그의 용건은?
“나는 할복을 하려고 한다. 무사가 할복을 하려는데 아무 데서나 할 수 없으니, 할복할 현관(무가의 거처로서 정면 입구에 손님을 맞는 곳이다. 우리의 사랑채 마당쯤에 해당된다)을 빌려달라.”
다이묘를 대신하여(다이묘는 에도/도쿄에 볼모로 잡혀가서, 반역할 의사가 없음을 보이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를 參勤交代라 한다.), 이 지역을 대신 다스리고 있는 가로(家老, 사이토 가게유/야쿠쇼 코지 扮)가 묻는다.
“치지이와 모토메라는 젊은 무사를 아느냐?”
“모른다.”
치지이와 모토메(에이타 扮)라는 젊은 무사에 대한 이야기를 가로는 해준다. 다 듣고난, 중년무사는 “애처로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가로는 다시 묻는다.
“그래도 정히 할복을 해야 하겠는냐?”
"물론이다. 무사는 두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 라는 것이었을까? 마당으로 안내된다. 높은 곳에 가로가 앉고, 사방으로 이 번에 소속된 무사들이 다 둘러앉아 있다. 아마도 수십명은 될 것같다.
마당 중앙에 앉아 있는 중년의 무사. 이윽고 할복의 의례가 시작될 참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원이 하나 있다. 그야말로 죽을 사람 소원이 아닌가. 어찌 못 들어주겠나. 엔간하면 들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중년의 무사는 한 무사의 이름을 든다. 그 무사를 카이샤쿠닌(介錯人)로 쓰고 싶다는 것이다. 할복은 스스로 자기 배를 찔러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오는 것인데 그 고통의 극심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때 '안락사'(?)할 수 있도록 뒤에서 목을 쳐주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가로는 그 호명된 무사 오모다카(澤潟)를 찾는다. 없다. 오늘 출근 안 했다는 것이다. 군기가 좀 빠졌나 싶다. 그렇다면 좋다. 또 다른 무사의 이름을 하나 더 든다. 그도 찾아 보았는데, 역시 없다. 또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는데, 그 역시 없다. 그제서야 가로는 외친다.
“네 놈은 도대체 웬 놈인냐?”
“그래, 내가 아까 치지이야 모토메를 모른다 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토메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모토메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에서는 벌써, 가로가 처음 찾아온 중년무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신도 여전히 할복의 뜻을 굽히지 않겠는가, 라고 할 때 다 삽입되어서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보아서, 모토메의 할복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중년무사가 할복을 하려고 다시 찾아왔다. 시간을 되돌려서, 모토메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할복할 현관을 빌려달라고 찾아온 모토메. 가로 앞으로 모토메가 안내 되기 전, 그는 한 쪽 방에서 말차 한 잔과 나뭇잎 모양의 조그만 모찌(떡) 하나를 대접받는다. 그 사이 가로에게 브리핑하는 무사 A.
“또 가짜 할복(狂言切腹)을 하려는 놈이 찾아왔습니다. 세끼가와라 전투(도쿠가와 이에 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추종 세력을 결정적으로 물리치고 천하를 얻게 된 결정적 전투) 이후로, 노는 무사들이 많아지자 이 놈들이 동전을 몇 푼 얻으려고 가짜로 할복을 하겠다고 다이묘의 현관을 빌려달라는 것이 요즘의 유행입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혼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토메의 소원(?)은 쉽게 허락된다. "좋다. 뜻대로 할복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몸을 씻게 하고, 옷을 갈아입힌다. 무사의 겉옷 안에 하얀 옷(수의 역할을 함)을 입게 한다. 그리고서는 안뜰 정원으로 안내된다.
이제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젊은 무사 모토메는 당황한다. 더욱이 무사 오모다카는 모토메의 목을 쳐주겠노라 자원한다. 그러면서 동료 무사 두 사람의 이름을 더 든다. 한 사람은 입회인이고, 한 사람은 세와인(世話人, 아마도 시신 처리 같은 것을 담당하는 사람인 듯)을 맡아라는 것이다.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죽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당황한 모토메가 소원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틀림없이 할복을 한다.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하루 말미만 주고, 돈 석냥만 달라"는 것이다. 오모다카가 짐작한 대로, 역시 모토메도 가짜 할복(영화의 자막으로는 '연극할복'이라 했는데, 狂言/쿄겐이 일본 전통의 연극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이라는 수법으로 돈이나 몇 푼 얻어걸리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아니 단정하고 말았던 무사 오모다카는 이미 진검이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토메를 더욱 몰아세운다. “자기의 칼로 할복을 하는 것이 좋겠지” 하면서, 모토메의 칼을 던져준다. 그 칼을 모토메가 뽑아내는데, 그 안에서 정체를 드러낸 것은 진검(眞劍)이 아니라 목검(木劍)이다. 모토메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돈 석 냥을 포기하고,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에게 한 번 아이의 상태를 보이는 데 돈 석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꼭 석 냥을 얻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포기하고서, 무사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다며 할복을 시도한다. 나무칼로 어떻게 배가 갈라질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쉽지 않은 만큼 더욱더 고통스러운데, 오모다카는 다그친다. “더 세게”, “더 힘껏”, “ 더 ---” 세차게 배를 지른다. 차차 배에서 피가 난다.
무사 A는 어디 갔는가? 그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목을 쳐주지 않는다. "이제 제발 목을 쳐라"고, 속으로 나는 외치고 있는데, 아까부터 외치고 있는데(모토메도 그랬을까?) 아직 안 쳐준다. 마루 위에 있던 가로가 다리를 절면서 내려간다.(그는 역전의 용사인지, 달리를 절었다.) 내려가는 것을 보고서, 나는 끝내 눈을 감는다. 한참 눈을 감는다.
무사도(武士道)에 대한 회의
중년의 무 츠쿠모 한시로(이치가와 에비조 扮)는 모토메의 장인어른이다. 모토메를 데려다가 키웠다. 직장 상사의 아들인데, 상사인 그 무사는 병으로 죽는다. 이때 이미 이들의 무사집단은 망해버린 뒤였다. 허락없이 성을 높였다는 이유로, 에도막부로부터 무장해제된 상태. 중년의 무사는 모토메와 딸 미호를 데리고 도쿄로 올라와서, 우산장수를 하면서 연명하는 중이었다.
모토메는 사무라이의 후예라고 하나, 칼(武)보다는 글(文)에 더 관심이 많았다. 비어있는 절 건물을 빌려서 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가르쳤다.(에도 시대에 이렇게 소학교 역할을 했던 절 안의 교육기관을 테라꼬야/寺子屋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중년무사는 모토메를 찾아가서, 절을 하면서 부탁한다. "미호를 데려가 달라"고.
그렇게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들이다. 킨고, 라는 이름의 아들. 그런데 어느날 미호가 각혈을 한다. 결핵인 것 같다. 그 시절 에도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못 먹었다. 두끼나 먹었을까. 그러니 병을 이겨낼 수 없다. 제일 먼저 남편 모토메는 책들을 내다 판다. 전당포집 사장이 하는 말 : “그 칼도 파시지요?” 이 말에 모토메는 "무례하다"면서, 성을 낸다. 하지만 끝내 진검을 팔았고, 안에 목검을 넣은 '가짜 칼'을 들고 다녔던 셈이다.
아내 미호 뿐인가. 아들 긴고도 열이난다. 아프다. 의원은 돈 석냥을 가져와야, 한번 봐주겠다는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모토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골목을 떠돌던 소문에 따라, 가짜 할복을 실현해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장인어른인 중년 무사에게 가족을 잠시 부탁하고 떠난 사이, 아들 긴고는 죽는다.
모토메는 어디가서 아직 안 오는 것인가? 장인은 안절부절하는데, 눈내리는 밤 모토메의 시체가 운반된다. 아내 미호는 모토메를 붙들고 우는데, 그 소매 안에서 모찌 하나가 떨어진다. 미호는 울면서 그 모찌를 먹는다. 아까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차와 함께 나온 모찌다. 처자식을 위해서, 그때 안 먹었던 모양이다.(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신을 운반해 온 사람 하나를 붙들고 사정하여 진상을 알아낸 장인어른. 역시 목검을 드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도 할복을 하러 왔다"면서, 찾아온 것이다.
이제 가로를 비롯한 무사들도 다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중년 무사는 할복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 그런데 여기서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중년 무사는 앉은 자리 앞에 칼을 던져둔 채, 모토메의 죽음, 즉 돈 석냥을 얻으려고 '가짜 할복'을 하려고 온 젊은이에게 할복을 시키는 것이 옳은 행위였던가, 하는 주제로 설전(舌戰)이 이어진다. 가로가 하는 변명 :
우리가 할복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무사는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 것이 아닌
가. 할복을 하러 왔다고 해놓고, 그럼 막상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가문(번주의 가
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고, 우리 가문의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로서는 그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무사의 예의를 다하여 모셨다.
대강 이런 논리였다. 이에 대해서 중년의 무사가 반박하는 말을 하는데, 내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말 :
어찌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사무라이가 돈 석냥을 구걸하는 그 심정을 애처롭게 생각
해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여기서 대립구조는 분명해진다. 윤리적 딜렘마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사도, 즉 무사로서의 체면이나 일구이언해서는 안 된다는 것, 명예 등을 지키는 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관점과 구체적으로 무슨 사정인지를 살폈어야 했다는 것, 또 설사 그가 할복을 원한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그 말의 진정성 없음이 드러난 터에, 이미 했던 말을 빌미로 삼아서 할복케 하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마치 "마하바라타(그 한 편인 "바가바드기타)"에서, 무사(kshatriya)로 태어났으되 동족상잔의 비극을 눈 앞에 두고서는 무사로서의 의식(意識, 이것을 무사도라 할 수 있겠다. 일본어 '무사도'에 대한 산스크리트는 kshatra-dharma가 된다.)을 내다버리고서 비폭력으로 돌아선 아르쥬나와 그렇게 하지 말고 다시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크리쉬나 사이의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적인 삶의 세계나 실존의 정황(情況)에 대한 세심한 고려나 배려보다도 먼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묶여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백성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서 살펴보려는 세심한 자비심이 있었다고 한다면, 가짜 할복을 하러 오는 '실직 사무라이(이를 로닌/浪人이라 함. 언제나 이들이 문제였다. 임진왜란도 근대의 침략전쟁도 모두 이들의 실직이 그 배후에 놓여있었음은 상식이다. 지금은 재수생을 ‘로닌’이라고도 함)의 형편을 헤아렸음직 하다. 어차피 시신과 함께 '돈 석냥'을 달려보냈을 바에야. 돈 석냥을 달려보내는 것을 "예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역시 생명에 대한 문제이다. 가짜 할복을 하러 온 사무라이 --- 이미 명색 뿐인 사무라이가 된 것이지만 --- 에게, "무사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서 그가 겉으로 한 말 그대로 실천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무사도의 정체가 여기에 있는 것같다. 거짓말하지 마라, 는 것은 하나의 계율이다. 불망어(不妄語, satya)이다. 무사도에서 말하는 체면(面目)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렇긴 하겠지만, 무사들의 윤리의 하나인 불망어를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 비록 그가 형색으로는 무사라 하더라도 --- 죽음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 무거운 것일까.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 "남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보다 우선적인가? 스스로 할복을 결정하고 왔지 않는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가짜 할복이라고 하는 것이 "돈 석냥" 달라고 하는 데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체면을 위해서는 다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라면서, 모토메의 장인, 중년무사는 칼을 든다. 그 칼은 여전히 목검이다. 수십명의 진검을 상대하는 것은 목검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쉽지 않은 목검이다. 그러나 수십 명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면서, 그들을 다치게 한다. 아마 결정적으로 죽인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죽이려면, 목검으로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마루 위에까지 뛰어올라서는 무사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상처를 준다. 밀어젖힌다. 그러다가 늘 가로 뒤에 자리하고 있던 이 가문의 상징, 저 높은 무사도의 상징인 갑주를 산산조각나게 만든다.
어차피 살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닐 터이다. 목검은 진검을 벨 수 없지만, 진검은 목검을 벨 수 있다. 이제 그에게는 목검도 남지 않았다. 그는 두 팔을 벌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서는 형상일까? 두 팔을 벌리고 내리쳐라, 찔러라 말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 그의 배 안으로 칼을 찔러 넣는다. 깊숙이 넣었다가 벤다. 그렇게 그는 모토메가 간 길을 간다. 폭력의 논리이자 윤리인 무사도에 대해서 비폭력적으로, 비폭력의 논리로서 상대하다 죽는다.
이 와중에 행방불명된 세 명의 무사가 머리를 싸매고 들어온다. 그들은 어젯밤 중년무사로부터 무사의 자존심인 '상투'를 잘렸던 인물이다. 그 중 오모다카는 스스로 자기 배를 찌른다. 할복으로 남을 죽게 하더니, 이제 할복으로 스스로를 죽여간다. 무엇이 남을 죽이고 자기도 죽게 하는 것일까? 체면이 무엇이길래? 명예가 무엇이길래?
도쿄에서 할 일 없이 지내다가 영지로 돌아온 번주의 눈에 그들 가문의 상징인 갑주가 새로워 보인다. 갑주가 새롭다 말한다. 형편없이 패배를 당했다 할 수 있는 그 무사들을 이끈 가로는 결국 체면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할복도 하지 않고, 주인을 향해서 웃으면서 말한다. "갑주는 우리 가문의 상징이니까요. 새롭게 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웃으면서", "웃기면서"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는 감독이 무사도를 희화화(戱畵化)하고, 무사도에 대한 회의(懷疑)를 제시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이런 영화를 "우리가 철학적인 영화다", 그렇게 말하지는 말자.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는 철학은 너무 어려워, 쉬운 말로 해야지. 철학은 재미없어, 이렇게 말하면서 나와는 무관한 세계라고 밀어내지 말자. 그 대신 "사람이, 사람의 삶이 봉착하는 문제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로 하자. 이런 영화를 일본은 아직은 만들고 있다. 우리가 시나리오 적으로 볼 때 지리멸렬이라 밖에 할 수 없는(처음에 주인공 부친이 정변으로 죽게 되고 오누이만 남게 되었을때, 이들 삶은 부친의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는 청나라 병사의 침입으로 그러한 갈등구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리멸렬'이라 평한 것이다.) "최종병기 활"같은 영화에 환호할 때 말이다.
우리 말 제목으로는 "할복 --- 사무라이의 죽음 --- "인데, 일본어 제목은 "하나 뿐인 목숨(一命)"이다. 얼마나 핍진한 말인가. 목숨이 둘이 아닌데, 그렇게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다. 다키구치 야스히코(瀧口康彦)의 "이몬로진끼(異聞浪人記)"이다. 정사가 아니라 야사 같은데서 전해오는 사무라이 이야기, 라는 뜻이겠다. 물론 창작일 것이다. 작가는 나오키상 후보로만 6번인가 올랐다 한다. 상은 못 받았고 ---. 1958년에 나온 이 소설을 기본으로 해서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 감독이 『셋푸쿠(切腹, 우리말 '할복'에 해당하는 원어임)』라는 영화를 1962년에 만든다. 그리고 1962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그러니까 『이치메이(一命)』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감독은 미이케 다카시. 2011년 작품인데, 일본에서 개봉되기 전에 칸느영화제 경쟁부분에 출품했다.
(2012. 8. 2.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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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간만에 들어와서 좋은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부지런히 읽고 쓰시고 하시는 모습에 감탄, 감탄입니다. 저도 일본어 공부삼아 이 영화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는 산문 쓰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콜콜히 써야 하는 걸 아주 성가셔 합니다. 그만큼 수준미달인 것이지요. 일정수준 이상 도달되면 선생님처럼 절로절로 이렇게 일목요연한 글이 흐르듯 써지나 봅니다. 본받을 점이지요. 일본불교연구소 알고 나서 선생님의 여러 의미로운 글작업들에 감동과 자극도 받습니다.
그렇다고 따라하지는 못하고요. 늘 마음쓰시며 여기 모이는 사람들 공부시키시는 진실한 공부인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무대포로 그냥 쓰는 것이지요. 잘 쓴다, 못 쓴다 그런 생각은 안하고요. 이 영화 평은 오늘 좀 고쳐 놓겠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봤는데, 어제 글을 보여주고 좀 '지도'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고쳐서 새로 올릴께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이야기는 풀어놓아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요. 보살님께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시고요. 자주 오십시오. 건강하시고요.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