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의 여행이라고 해야하나.
파리에선 노르망디 지역,
모네의 집이 있는 지베르니에 갔었던 일이 그랬고
베니스에선 본 섬이 아닌
부라노섬과, 리도섬으로의 여행이 그랬다.
오늘은 피렌체 근교 토스카나지역의
'시에나'로 여행을 간다.
처음 계획은
'친퀘테레' 지역을 여행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기차시간을 검색하던 딸들이 난색을 표한다.
기차시간이 애매하여
너무 일찍 출발해야하거나
너무 늦게 도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
결정스트레스가 있기마련이다.
'우린 딸들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니 어디든 좋아'
이럴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제일 밉더라.
하지만 실제로 우린 딸들이 하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 능력부족이기에.
딸들이 결정한 변경장소인 '시에나' 라는 도시는 우리모두 정보가 그다지 없었다.
그냥 시골의 조용한 도시겠지
한적하게 거닐다가 우연히 만난 동네의 작은 성당도 둘러보고
예쁜 찻집에서 커피한잔씩 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올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기차보다 배차간격이 잦은 시외버스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1시간30분 가량 걸리는 거리다.
시외버스를 타는 여행도 또 색다르네
아, 그런데 시외버스가 한적한 산길을 달려 시에나에 들어서면서 뭔가 심상치않다.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크기나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넘치는 관광객들로 거리는 온통 북적댄다.
어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연신 설명을 들으며 끄덕대고
거리거리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황토빛이 소박하면서 무게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한적한 시골마을을 기대했던 딸들의 검색손길이 바쁘다.
"엄마, 이 시에나라는 도시는 피렌체와 경쟁했던 유서깊은 도시였대"
피렌체와 오랜 라이벌관계를 유지해오다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쇠락한 중세도시다.
구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이곳은 많은 학생들이 설명이 듣고 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고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프란치스코수도회에서 운영하던 은행건물이라고 한다.
수사들이 운영하는 은행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돈이 궁한 서민들은 고리대금업자의 돈을 쓸 수는 없고
자신의 농기구나, 금 등을 맡기고 현금을 빌려썼다고 한다.
일종의 전당포같은 곳이니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구나.
여기 참 좋다 하며 앉아서 고풍스런 건물들을 살펴본다.
여행의 백미는 역시 좋은 곳에서 하염없이 앉아있기다.
딸들은 아주 독특한 광장을 보여줄테니 따라오라한다.
와! 이런광장이 있었다니~~~
광장 이름은 캄포광장이라고 한다.
광장이 완벽한 부채꼴모양이다.
이 부채살이 비스듬한 기울기로 한곳에 모여든다.
푸블리코궁전 앞으로.
비가오면 빗물이 자연스레 한 곳으로 모여들테고
그 모습 또한 장관일듯하다.
'비오는 날 여기 꼭 와야해'
이해를 돕기위해 다음에서 이미지 검색한 사진 2장을 올려본다
-사진출처: daum 이미지검색-
-사진출처: daum 이미지검색-
위 사진은 '팔리오' 라는 안장없는 말경주대회 장면이다.
기념품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이렇다
바닥의 타일을 기하학적 무늬로 정교하게 맞추어놓은 그들의 미학.
이보다 더한 정교함도 많이 봤지만 볼 때마다 놀랍다.
종탑의 그늘을 따라 앉아있거나 햇살아래 누워 광장을 즐기는 사람들.
독특한 광장에 마음 빼앗기고 한참을 서성거려본다.
가로질러 걸어보기도 하고.
남편은 이 광장의 설계나 구조를 파헤치기라도 할 듯 살피더니
9개의 부채살이 펼쳐져있다고 한다.
난 세어보다가 금방 포기한다.
부채살이 번져나가는 곳은 골목으로 이어져있다
골목길의 유려한 선이 아주 멋지다.
우선 점심식사할 곳을 검색하던 딸들이 우릴 이끈다.
처음엔 야외식탁을 권해주기에 앉았는데
가끔씩 차도 지나가 고사람들도 분주히 지나다니는 골목이다.
차 매연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식탁을 흘깃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기가 어려울 듯 하다.
우린 적응이 어려워 얼른 실내 식탁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이 햇살좋은 날에 실내로 들어오겠다니,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의 종업원.
이 고기 사진 얼른 찍어 큰아빠한테 보내드려야지.
아빠는 이렇게 매일 고기를 드시니깐 걱정마세요.
사실 음식주문할 때 제일 실패율이 낮은 게 스테이크요리다.
1일 1스테이크, 1일 2 젤라또를 생존구호처럼 여기며.
이 골목엔 가로등이 모두 이런 모양이다.
기둥은 각양각색이지만.
작은 전구가 불꽃처럼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
매일매일밤이 불꽃놀이하는 분위기겠는데.
시에나에 들어와서부터 저 종탑에 자꾸만 눈길이 갔었다.
저 종탑이 있는 성당에도 가 봐야지 하며.
피렌체 지역 성당의 파사드는 거의 이런모습이다.
4각형 쌍탑이 있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노트르담 성당이
유럽에서 제일 많이 봐온 모습이었는데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이 지역의 성당은 다른 모습이다.
피렌체 두오모가 그렇고,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그렇고
여기 이 시에나 대성당의 파사드가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가운데가 솟아 양옆으로 이어지는 듯한 부드러움.
핑크색, 진녹색, 흰색이 어우러진 성당 외벽이 아름다움의 극치다.
피렌체 성당보다 끝부분의 장식이 더 디테일하고 화려하다.
저 핑크빛 대리석은 볼수록 아름답다.
성당 내부는 날 더 깜짝 놀라게 한다.
이런 내부의 모습은 처음이다.
수많은 얼룩말들이 서 있는 줄 알았다.
머리를 성당 밖으로 내어놓은 수많은 얼룩말들이 사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식의 표현은 성당건축 모욕죄로 걸릴지도 모르겠다.
저 기둥들 모양이 동그랗거나 사각이거나한
단순한 모양이 아니다.
곡선과 직선을 조화롭게 섞은 기둥에
녹색(거의 검은색으로보임) 과 흰색을 규칙적으로 대어만든 정교함.
이 피렌체 인근엔 핑크와 진녹색의 대리석이 많이 있었던 게 분명해.
바닥도 밟기가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무늬장식이다.
성화도 많은데 군데군데 보호장치가 설치된 곳이 많다.
내 눈엔 바닥 전체가 귀한 예술품이다.
돔에선 별이 쏟아진다.
아름다운 돔에 별을 촘촘히 박아놓은 건 단순한 위트가 아닐게다.
하늘에, 신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였을까.
저 파이프오르간에는 특이하게도 나팔이 붙어있다.
단순한 장식인지는도 모르지만
아름다운 성가가 더 멀리멀리 퍼져나가기를 염원한 것이겠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도 아름답다.
성당 안쪽에 유리바닥은 왜 필요한거지?
지하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발을 딛고 서 있기가 불안한 나는 한발만 간신히...
성당의 파사드 정면을 찍느라
큰 딸은 햇살 강한 곳으로 나가 눈을 최대한 찡그리고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온다.
저 핑크빛 볼수록 예쁘다.
성당이란 다소 무거운 장소를 편안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여기도 꽈배기공법이다.
늘여서 비비 꽈야만 완성될 것 같은 이 장식들을 자꾸 만져봤다.
이 아름다운 성당을 금방 떠나기 아쉽다.
맘껏 바라보자며
성당 앞 광장에 앉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고
그래도 질리지를 않는다.
이날 목이 1센티쯤 늘어나지 않았을까.
유려한 곡선의 골목길을 걸어 다시 캄포광장으로 향하는 길
이 골목을 걷다보니
스페인의 똘레도 구시가지가 생각난다.
똘레도보다는 좀 넓은 골목길이다.
예쁜 샵들이 자꾸만 발길을 느리게 한다.
서두를 일 없으니 느리게느리게 기웃기웃
모든 골목길은 캄포광장으로 뚫려있다.
골목길을 끝까지 걸어나가면 캄포광장으로 어김없이 연결되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어보인다.
광장의 푸블리코 궁 종탑의 이름은 '만자의 탑' 이라고 한다.
종탑의 종지기가 하도 게을러서 제 시간에 맞추어 종을 치질 못할 때가 많았나보다
그래서 그 종지기를 게으르다는 뜻의 '만지아구아다니' 라고 불렀는데
후에 그의 이름이 만자로 굳어지고
지금은 통상 만자의 탑이라고 불리운다.
광장의 노천카페는 어디나 좋지요
이 노천카페의 테이블도 비스듬히 놓여있어 커피잔 조심조심 해야한다.
광장 자체가 만자의 종탑쪽으로 기울어 있으니
왠지 몸도 기울여 앉아야 할 것만 같다.
맛나게 빵도 먹고, 차도 마시고
광장의 토론인가요
뭔 열변을 토하는지 손짓이 분주하다.
커피 다 식겠어요.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도 모두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걷기만 하여도 많은 이야기가 이미 품어져나오고 있지 않은가.
여행이 그런거지.
광장의 그림자가 바뀔 때까지
참 오랜시간 앉아있었던 것 같다.
오전엔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겼었는데
오후의 따끈한 햇살로 그늘을 찾아 앉아있는 사람들.
여행 속의 작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편안하다.
지붕으로 난 테라스의 문을 밀고 나오면
날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아래층의 딸들을 부른다
"얘들아, 피렌체의 마지막 날 노을이야."
오늘은 또 짐을 꾸려야한다.
내일 로마행 기차를 타기위해.
캐리어엔 조금씩 짐이 늘어가고 있다.
지인들 선물에, 각 지역의 기념품들이 꽤 불어났다.
오늘은 시에나까지 가서 베네통 매장엔 왜 들어갔담?
거기서도 남편은 지갑을 열었다지 호호.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같은 숙소에서 만난 수다스런 이태리아주머니.
우리에게 좋은 시간 보내라는 호들갑스런 인사를 하시더니
우리 남편보고 그랬다.
"이 세여인과 쇼핑 다니려면 엄청 힘든 하루가 되겠다고."
원래는 쇼핑계획은 아니었는데 그 아주머니 말대로 되었다며
남편이 웃는다.
이래저래 아름다운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