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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禪雲山336m)
<생태공원에서 바라본 선운산전경 >
도립공원 선운산(禪雲山)은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신라고찰 선운사가 자리 잡고 있고 특정한 정상 봉우리가 없어 사람들은 흔히 선운사의 이름을 빌어 선운사가 있는 산이라 해서 선운산이라 칭한다. 평균고도 해발 300m급 능선이 북에서 남으로 돌아 북으로 이어 졌고 선운산 계곡은 북으로 트였다. 경수산(鏡水山444m), 수리봉(336m), 청룡산(靑龍山314m), 구황봉(九皇峰298m), 형제봉(兄弟峰248m)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능선 환 종주를 하려면 총연장 약20km 에 이르러 산은 낮아도 시간이 되고 체력이 된다면 하루 산행거리로 얼마든지 길게 잡을 수 있는 산이다. 약 6km에 이르는 계곡은 낮은 산이라 계곡 수는 많지 않으나 숲이 좋아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계곡 입구에서 계곡 깊숙한 곳 도솔암 내원궁까지 여유롭게 왕복3시간거리는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산책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비포장도로가 거의 평 길로 이어져있고 계곡서편은 찻길이고 동편으로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라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특히, 봄이면 선운사 뒤편에는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약 5천여 평 수령5백년은 됨직한 약3000그루의 동백림의 동백꽃과 벚꽃 등 4월12일경 봄꽃들이 만개할 때와, 선운산의 명품 전국최대규모의 꽃 무릇 (일명; 相思花) 군락지는 9월18일을 전후한 만개시기에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계곡에는 단풍나무가 많아 11월7일경 단풍절정기에 한번쯤 찾아 볼만한 산이다. 동백(冬栢), 상사화(相思花), 단풍(丹楓) 등 삼홍(三紅)으로 산을 붉게 밝힌다.
그리움에 사무쳐도 이룰 수 없는 사랑, 相思花!
<생태공원의 꽃 무릇(相思花) 화원>
11시30분 선운사 주차장이다. 비가 그치고 오늘은 청명한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다. 오늘 산행은 명분이야 꽃 무릇 산행이지만 절정기가 일주일이나 지나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날씨나마 쾌청해 아쉬움이 위로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은 성인기준 입장료 삼천 원을 내지 않아도 되는 우측 경수산으로 향하고 나는 선운산 매표소로 입장했다. 매표소에 발을 들여놓으니 “兜率山 禪雲寺(도솔산선운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있고 생태공원 주변에는 드넓은 꽃 무릇 화원이다. 나는 선운산의 구간별 거리와 소요시간을 손금을 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지라 산행종료 시각에 맞춰 느긋하게 꽃밭 길을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본명 꽃 무릇, 속칭 상사화! 이 꽃은 불꽃처럼 붉고 꽃잎이 불꽃처럼 생겼다.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기약이 없는 아픔을 두고 김왕기 시인은 상사화를 이렇게 노래했다.
상사화(相思花)
우리 인연(因緣)이 얼마나 귀(貴)한 인연(因緣)인가/ 나도 그대 그리워 헐떡이며 달려 왔네/ 피가 마르게 기다리다 갔다니/ 이 찢기는 아픔을 어이 아니 감추랴/ 이 생(生)은 장애(障碍)도 이변(異變)도 하(何) 많으니/ 어디 애꿎게 하늘만 원망(怨望) 하겠는가/ 그대가 밤낮으로 거둬놓은 자양분(滋養分)으로도/ 이 생애(生涯)는 너끈히 꽃을 피우겠구려/ 그려, 나 다음 생애(生涯)는 서두름세/ 혹(或), 늦더라도 진득이 기다리시구려!
<숲속의 꽃 무릇>
상사화는 백색, 황색, 연분홍색이 있고 8월에 개화하는데, 꽃 무릇(석산,石蒜)은 붉은색을 띠고 9월에 개화한다. 이 두 종류는 개화 시기와 꽃의 색갈이 다를 뿐 꽃대가 비슷하고 꽃과 잎이 서로 함께 피지 않는 유사성이 있어, 오늘 보는 붉은 색깔의 꽃 무릇이 더 이름에 걸맞아 대개 사람들은 붉은 색을 띤 꽃 무릇(석산)을 흔히들 상사화(相思花)라 부른다. 이 꽃은 관상용을 목적으로 할 적에는 꽃 무릇 이라하고 약용으로 할 적에는 석산(石蒜)이라 한다. 꽃 무릇은 수선화과의 다년생 구근 야생화로 나무 밑 습하고 선선한 그늘진 곳에서 자생한다. 뿌리는 외용약으로 아주까리(피마자)기름과 썩어서 발밑 용천혈(湧泉穴)에 바르거나 피부 염증에 고인 고름을 빼는데 붙이거나 바른다.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시체(屍體)를 토장(土葬)할 때 야수(野獸)의 해(害)를 방지하기 위해 묘지 주변에 심었다고 전하는데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초가을인 9월 중순에 만개하는 이 꽃은 꽃대가 올라 온 다음, 잎이 피기 전에 불꽃같은 모양으로 정열적인 붉은 꽃을 피운다. 꽃이진 다음에 라야 잎이 피기 시작하여 그래서 꽃과 잎은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는 운명 앞에 서로가 가슴을 불태우며 그리워한다 해서 상사화라 한다. 상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불꽃같은 사랑의 심지를 더 붉게 돋울지도 모른다. 꽃 무릇(일명, 상사화)의 최대 군락지가 있는 이곳 고창 선운산과 영광 불갑산이 상사화 양대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꽃 무릇 (상사화) 화원>
누군들 가슴에 묻어둔 첫사랑이 없을까마는 조선 세종 때 문인 성균관유생 최한경(崔漢卿?~?)이 泮中日記 (반중일기)에 기록하기를 어린 시절의 이웃집 박소저를 그리며, “이 좋은날에 서로 만나 꽃밭에 앉아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그리움을 노래한 시 座中花園(좌중화원)을 생각하며 꽃밭을 떠났다.
座中花園(좌중화원)
座中花園膽彼夭葉 (좌중화원담피요엽) 꽃밭에 앉아서 그대 그리며 꽃잎을 보네
兮兮(혜혜) 고운 빛은
云何來矣灼灼其花 (운하래의작작기화) 어디서 왔을까, 불꽃같은 아름다운 꽃이여
何彼矣(하피의) 어찌 그리 농염한지
斯于吉日吉日于斯 (사우길일길일우사)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날에
君子之來云何之樂 (군자지래운하지락)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臥彼東山望其天 (와피동산망기천) 동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네
明兮靑兮云何來矣 (명혜청혜운하래의) 밝고 청명한 빛은 어디서 왔을까?
維靑盈昊何彼藍矣 (유청영호하피람의) 푸른 하늘이여, 풀어 놓은 쪽빛이네
吉日于斯吉日于斯 (길일우사길일우사)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날에
美人之歸云何之喜 (미인지귀운하지희) 그대가 돌아오신다면 얼마나 기쁠까!
<선운사 대웅전>
꽃이 지고 있는 꽃길을 따라 도착한 선운사(禪雲寺)다. 깊은 선정에 들면 구름 속을 거니는 꿈결 같은 무아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으로 선운사라 칭한다 한다. 산 이름이 본시 도솔산이었으나 백제고찰 선운사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선운산에서 선운사는 이 산의 중심에 있다. 비교적 잘 정돈된 가람 배치는 혹 화재가 발생해도 옮겨 붙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거리를 둔 사찰이다. 선운사 뒤뜰에는 산불로부터 선운사를 보호하기 위해 상록수 대나무 대신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5천여 평에 수령 5백년은 됨직한 3천여 그루의 노거수 선운사 동백림 (禪雲寺 冬栢林; 천연기념물 제184호)이 유명하다. 가수 이미자(李美子)가 “동백아가씨”를 불러 가요계의 별이 되었는데 대개 겨울에 꽃을 피운다 해서 동백(冬栢)이라 하지만 선운사 동백은 특이하게도 4월10일 경에 핀다. 해서 춘백(春栢)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선운사 동백꽃이 너무도 유명 한지라 때문에 피는 시기를 잘못알고 찾았다가 실망하는 일이 허다하다. 동백꽃은 삼월 초 춘설이 내려앉을 때 피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나 역시 삼월에 찾았다가 아직 일러 피지 않아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선운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대웅전 뒤뜰 동백 숲을 찾았더니 나무아래 때를 만난 꽃 무릇만 피었다가 지고 있었다.
<선운사 뒤뜰의 동백 숲>
이곳 출신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 1915~2000) 시인은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서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로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고 노래한 바로 그 동백 숲이다. 나주목사,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 관직을 역임하였고 천문, 지리, 병서 등 학문에 능통했으며 택당 이식(澤堂 李植), 상촌 신흠(象村 申欽),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와 더불어 조선 문학 사대가의 칭호를 받은 문장가 계곡 장유(谿谷 張維1587~1638)선생은 선운사 동백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禪雲寺 冬栢(선운사 동백)
雪壓松筠也欲摧 (설압송균야욕최) 눈 쌓여 송죽(松竹)도 곧 꺾일 태세인데
繁紅數朶斬新開 (번홍수타참신개) 한참 붉은 봉우리들 산듯하게 피어나네
山厞寂寂無人到 (산비적적무인도) 아무도 찾지 않는 적적한 이 산골짝에
時有幽禽暗啄來 (시유유금암탁래) 이따금 새들이 날아와 남몰래 꽃을 쪼네!
<선운정 앞에 장사송>
이제 선운사를 떠나 속칭 선운사 계곡이라 칭하는 도솔천(兜率川)을 따라 비포장 찻길로 오른다. 사실 도솔암까지 평탄한 길이다. 일반관광객들은 대개 주차장에서 선운사를 거쳐 이곳 도솔암까지 약 4.5km 왕복 3시간을 택한다. 선운정 앞에 장사송이 있고 진흥굴이 있다. 도솔암에서 계곡서편으로 나있는 거의 평길 같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선운사를 거쳐 산문 밖 주차장에 이른다. 계곡동쪽 오솔길을 택하여도 결국은 선운사를 거쳐 산문 밖 주차장에 가게 된다. 그러니 왕복을 한다면 계곡서쪽 찻길로 왔다가 동쪽 오솔길로 내려가면 또 다른 맛이 있겠다. 산이 낮아 계곡수는 풍부하지 않으나 숲이 좋아 어느 때 오더라도 상쾌한 느낌을 받고, 특히 봄꽃이 필 때와 인근 내장산 단풍이 질 때쯤 만추시기에 찾으면 단풍도 좋아,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라면 후회 없는 추억을 담아 갈수 있겠다. 오늘도 상쾌한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다. 계곡의 단풍나무는 단풍이 들기 한 달 전부터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그러나, 성질 급한 개옻나무 산머루 덩 쿨 잎은 벌써 단풍이 들고 있다. 그늘진 숲속에서 꽃불을 밝혀야할 붉디붉은 상사화는 꽃은 보이지 않고 꽃대만 남겼구나! 한때 유행했던 어느 노래 가사에 “화무(花無)는 십일 홍(十日紅)이요, 달(月)도 차(盈)면 기우 나니라.”했다. 모든 일이 때가 있는 법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때를 지나 여기 왔으니 누구를 탓하랴!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은 기준을 매사 내 욕심에 맞추려들기 때문이리라!
<도솔천 내원궁 입구>
선운사의 부속암자인 도솔암(兜率庵)이다. 암자 앞 전통찻집에는 이런 글이 걸려있다. “오, 자네 왔는가?/ 이 무정(無情)한 사람아!/ 청풍(淸風)에 날려 왔나?/ 현학(玄鶴)을 타고 왔나?/ 자네는 먹이나 갈게/ 나는 차(茶)나 끓임세!”
<도솔천 내원궁 앞에 우뚝 선 천마봉>
<도솔천 내원궁아래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상>
도솔암 뜰을 거처 계단을 타고 오르니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다. 불교의 설에 의하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구산팔해의 중심에 제석천의 궁전이 있다고 하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도솔천(兜率天)은 “만족 시킨다”는 뜻이라 한다. 그곳에 내원궁(內院宮)과 외원궁(外院宮)이 있어 내원궁에는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중생을 교화하기위해 지상에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머무는 곳이고, 외원궁(外院宮)은 천계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로 오욕(五慾; 재물욕, 식욕, 수면욕, 색욕)을 마음 것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라 한다. 이곳 도솔암 내원궁 앞 정면에 100m의 수직절벽의 천마봉이 멋지고, 내원궁아래 암벽에 마애불상(磨崖佛像; 보물 제 1200호)이 있다. 선운산을 본시 도솔산이라 할 만큼 도솔암이 있는 이곳 주변이 선운산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다.
<용문굴>
도솔암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선운산의 최고의 명소 용문굴(龍門窟)이다. 선운사를 지을 때 연못을 메우자 이무기가 용이 되어 놀라 달아나다 이곳 용문굴을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이굴은 특이하게 선운산 환 종주능선 상에서 또 다른 능선이 이어져있어 비가 오면 배수구 역할을 한다. 모두 막힌 두 개와 함께 3개의 바위굴이 있는데 통문역할을 하는 이곳 암벽에는 김인후의 후손으로 일제 강점기의 한학자로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경암 김노수(敬庵 金魯洙1878~1956)의 이름과 동행했던 정고 김인중(靜高 金仁中)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굴이란 출입구만 있고 움푹 패인 것을 말한다. 주로 토굴과 석굴이 있는데 이곳은 석굴이고 무주구천동의 나제통문(羅濟通門)처럼 사람의 왕래가 가능한 굴이다.
<두꺼비 모양을 한 배 맨 바위>
용문굴에서 낙조대를 지나 배 맨 바위까지 2km 거리다.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거친 바위로 된 낙조대다. 산 아래 해안선이 그어지고 멀리 변산반도와 안면도가 보인다. 날씨가 좋아 서해로 뚜~욱 떨어지는 낙조도 보았으면 좋으련만 단체산행이라 시간제한이 있어 미련을 거두고 능선을 따라 배 맨 바위로 갔다. 배 맨 바위는 선운산에서 가장 특징적인 바위봉우리로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인다. 일명 거북바위, 자라바위, 두꺼비 바위 등 이다. 동쪽 계곡 건너편 쥐 바위에서 바라보면 두꺼비처럼 생겼다. 배 맨 바위 꼭대기에 오르려면 안전이 우려되는 고난도의 매우 까다로운 곳인데 이따금 젊은이들이 오르기도 한다. 오늘도 한 쌍의 부부가 오르려고 한참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내려왔다. 배 맨 바위를 감상하거나 카메라에 담기위해서는 바위가 커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내가 청룡산까지 갔다가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룡산에서 바라 본 서해>
청룡산(靑龍山314m)은 선운산에서 가장 남쪽에 있어 선운산 환 종주 능선 반환점이 된다. 선운사 골짝이 한눈에 조망되고 서해가 내려다보이고 황금빛으로 물든 고창의 들판이 두루 내려다보인다. 고창은 선운산이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고 복분자, 풍천장어가 널리 알려져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국가나 어느 단체이거나 부패하면 망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고창 선운산 동쪽은 동학 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1855~1895)의 고향이다. 당시 관리들의 부패상은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관리들이 부당하게 세곡을 거두어들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늘 가난했다. 1889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지금의 고창군(高敞郡)의 옛 이름인 고부군(高阜郡)에 만석보(萬石洑)가 있었음에도 새로 보를 만들면서 노역 비는 한 푼도 주질 않고 사용료만 부당하게 징수했다. 학정에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 훈련도 안 된 오함지졸 농민군에 관군도 맥을 못 추자 썩은 벼슬아치들은 내란에 청군(淸軍)을 끌어들이고 일군(日軍)을 끌어 들여 청일전쟁의 불씨가 되고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은 우리의 형편없는 실력을 알아차리고 주권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공주 우금치(牛金峙)에서 일군에게 패배하자 농민군은 붕괴되었다. 전봉준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민중들의 이런 노래는 지역에 따라 가사가 약간에 차이가 있으나 전국으로 전파되어 불려졌다. 신장 152cm 로 추정되는 그는 담대하지마는 키가 작아 사람들은 녹두알만 하다해서 전봉준을 녹두장군이라 불렀다. 파랑새는 벼슬아치 들이고 녹두꽃이 진다함은 전봉준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일본군에 패해 죽는 것을 의미하고,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전봉준의 봉기가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열매 맺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애끓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결국 실패로 끝난 일이지만 민초들에게 널리 불려 졌고 이후에도 손자를 업어 흔들어 재우는 할머니는 자장가로도 불렀다. 부당한 권력에 시달리던 고달픈 민초들 자신은 굶주려도 손자가 자라 어른이 될 때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1855~1895)이 남긴 마지막 시
愛國愛族(애국애족)
時來天地皆同力 (시래천지개동력)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을 합치더니
運去英雄不自謀 (운거영웅불자모) 운이 다하매 스스로 도모할 길 없고나
愛民正義我無失 (애민정의아무실) 백성을 사랑하고 의로움에 내 잘못이 없지만
爲國丹心誰有知 (위국단심수유지) 나라위한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요!
<불꽃같은 정열적인 꽃 무릇(상사화) >
이제 목적지까지 다 왔으니 사실상 하산이다. 다시 배 맨 바위, 낙조대를 거쳐 천마봉에서 철계단을 타고 내려섰다. 낮은 산이지만 긴 철 계단이 곳곳에 놓여있다. 다시 도솔암 이정표 앞에 섰다. 5년 전 이곳에 왔을 적에 목판에 그림붓으로 쓴 이런 글귀가 있었다. 미워할 시간도 없는데 왜 미워해!! /아니온 듯 찾아 왔다가 아니 간 듯 돌아가소서! 다. 그런데, 오늘 보니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없어졌다.
<도솔천변의 송악>
도솔암을 지나 차도를 따라 가을이 익어가는 걷기 좋은 단풍나무 숲길을 걸었다. 해는 짧아져 깊지 않은 계곡에는 그늘이 졌다. 단풍은 아직 일러 붉게 물들지 않았으니 꽃 무릇 만개시기에 왔더라면 해가져도 숲속을 훤하게 밝혔을 텐데 말이다. 선운정(禪雲亭)앞 수령5백년을 자랑하는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과 진흥굴을 관람하고 선운사를 지나 상사화 꽃밭을 지나 매표소를 나서 두릅 나무과의 상록 넝쿨식물인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을 지나 곧장 주차장에 이르니 16시5분이더라. 오늘 산행은 주차장~매표소~선운사~도솔암~내원궁~도솔암~용문굴~낙조대~배 맨 바위~청룡산~배 맨 바위~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매표소~주차장, 거리12km, 4시간25분이다.
2013년 9월26일 목요일 맑음
첫댓글 눈물처럼 동백꽃 툭툭 떨어지는. .
선운사라..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ㅋㅋ
엄청 많이 고맙습니다! ...
님께서, 요청하셨는데 기대하신 만큼 흡족해 하시는지요?
꽃이 절반이 넘게 떨어져서 아쉬웠지만 다행히 날씨가 좋았습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사진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합니다만...
해외에 계셔서 고국의 계절 변화를 알려드리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맙게 감상 잘 하였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달리는 말에게도 때로는 채찍이 필요하지요?
격려도 해주시고 채찍도 많이 해주세요.
감상 잘 했습니다.
감상 잘 하셨다는 말씀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가보고싶은곳이였는데 덕분에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선운사의내력또한 감사 합니다
예, 선운산은 언제 찾아보아도 좋습니다만,
4월10일경 동백꽃 필무렵, 9월18일경 꽃무릇 , 11월7일 경 단풍이 좋습니다.
참고하셔서 기회닿는 대로 찾으시기 바랍니다.
가보고 싶은 *선운산*
감상 잘 했습니다 *.~
선운산은 도립공원 급이니까.
못 가보신 분들도 이름은 들어 보았을 명산이지요.
등산이 아니라도 때를 따라 운동화 차림의 가족 산책이 제격입니다.